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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7화 (7/156)

7화

아마 고2 때였나?

하여간 10년도 넘은 기억이다.

칼국숫집 안방에서 현지랑 태수, 현아의 시험 문제를 봐주고 있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당시 홀에서 다 받지 못해 결국 아저씨 세 분은 안방까지 들어왔었고. 입구 쪽에 밥상을 펴놓고 드시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할머니 말고도 주방 아주머니 한 분이 더 계셨는데, 그래도 돕는다고 내가 직접 칼국수를 날랐었다.

그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가, 그날 처음 알았다.

사람이 칼국수 곱빼기를 두 그릇이나 먹을 수 있다는 걸.

원래 할머니 칼국수는 양이 많았다.

라면으로 치면 한 개 반에 가까웠는데, 곱빼기는 두 개 반 정도.

그러니 앉은 자리에서 라면 다섯 개를 후루룩 말아 잡수신 거다.

더욱 놀라운 건 추가로 김밥 두 줄까지 흡입하고도 십오 분이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저씨는 그때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 때문에 민망했는지 오천 원짜리를 하나 주셨다.

과자 사 먹으라고 말이다.

이후에도 가게에서 마주치면 몇 번 용돈을 주셧다.

비록 몇천 원에 불과했지만.

‘나중에 아버지에게서 뒷이야기를 들었지.’

당시 곽 실장은 사기를 비슷하게 당했고, 사업을 막 시작하는 바람에 빚에 허덕이고 있었다고 했다. 할머니 가게에서 한 끼를 먹는 게 하루 식사의 전부였다는 것.

한데 그마저도 할머니는 받지 않았단다.

오히려 어려우면 언제든 들러서 한 끼 먹고 가라며, 인부들 식대까지 거절했다는 거다.

무려 이주 동안이나.

그러고 보니 확실하게 기억이 났다.

덕순 할머니 가게의 낡은 식탁과 삐걱거리던 의자가 고3 올라갈 즈음 전부 새 걸로 바뀌었다.

듣기론 아는 손님이 직접 만들어 준 거라고 했었고.

범인은 아마도 이 아저씨겠지.

“야, 그걸 기억하고 있어?”

“저 아저씨처럼 많이 먹는 사람 그때 처음 봤거든요.”

물론 나중에는 더 처먹는 인간 돼지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그건 각성자들 이야기이니까.

“하, 하하. 그땐 좀 그랬지.”

“근데 할머니가 그러시던데요? 요즘 가게 잘 안 오신다고.”

“그게…… 몇 달 포항에 출장을 좀 다녀왔거든. 안 그래도 아까 전화 와서 한 번 들르라고 하더라.”

“그렇죠. 오셔야죠. 태수가 하는 것도 맛도 좀 봐주시고 그러세요.”

“할머님, 많이 편찮으신가?”

“엄살이에요. 아마 태수 장가가서 애 낳을 때까지는 정정하실걸요?”

이건 농담이 아니었다.

아직 손님이 뜸한 점심은 혼자 하고 계셨고, 비록 기계를 쓰긴 하나 반죽도, 밑반찬도 직접 했다.

물론 간간이 동네 아주머니들이 도와주긴 하지만.

무엇보다, 심지心志가 굳건했다.

대개 의지가 강한 사람은 기운이 단단해 쉽게 쓰러지지 않는 법이다.

어지간히 큰일이 아니라면 잔병 정도는 건드리지도 못할 정도로.

“휴우,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래, 분식집을 리모델링하겠다고 했지?”

“예. 조금 수리해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기왕이면 전문가의 손을 빌리고 싶어서요.”

곽준열은 잠시 내 눈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좋아. 가자!”

* * *

“흠. 이건 수리가 아니라 개축 정도인데?”

“개축…… 이요?”

사무실에서 건축물 대장과 몇 가지 서류를 뽑은 다음, 할머니한테 인사를 드리고 행복 분식으로 왔다.

곽준열은 줄자를 가지고 이래저래 치수를 재더니 가게 뒤편까지 살폈다.

“나도 여기는 처음인데, 공간이 제법 넓단 말이지.”

“여긴 창고로 쓰던 곳이고요. 이쪽은 화장실 통로니까 좀 되긴 하죠.”

“그래. 그럼 다 합치자.”

“그렇게 해도 돼요?”

“안 되는 게 어디 있냐? 하면 되는 거지. 여기서 저기까지 연결하면, 이거 평수 제법 나오겠는데?”

“대충 어느 정도 나와요?”

“실평으로 치면 스무 평 정도?”

정말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들어보니 실평수가 스물이면, 일반 가게 기준으로 스물 곱 평형 정도로 계산하면 된단다. 우리같이 주차장이나 계단이 없는 경우에는 더 넓게도 나오기도 한다는 거다.

이래저래 확인해 보니 졸지에 가게가 한 배 반 가까이 커지게 된 상황.

더 황당한 건 토지 대장이었다. 뒤편의 주택 일부까지 우리 땅이라는 것이다.

“여기 건물 살 때 알려주지 않던데요?”

“집주인도 몰랐겠지. 원래 오래된 집들은 남편만 알고 있는 경우도 있고.”

확실히 건물을 사 버릴 때, 전 주인 아주머니는 아는 게 많지 않았다. 부동산 중개인도 별말 없이 가격만 치르면 된다고 했었고.

그렇게 말을 하니 곽준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일으키기 싫었을 거야. 막말로 토지 대장 들고 뒷집에 가서 여기 우리 땅이니 담 허물겠다고 하면 백 퍼 싸움 나거든.”

“그렇다고 제 땅인데 그냥 놔둘 수는 없잖아요. 더 확장할 수도 있다는 건데.”

“그 말도 맞기는 한데, 자투리 한두 평 때문에 남의 집 벽을 허무는 것도 문제지. 소송하면 이기겠지만 그것도 몇 년 걸리고.”

“그럼 현실적인 대안은요?”

“흐음, 가만 보자.”

곽준열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기름통을 보더니 그 위로 올라갔다.

확실히 키가 크니까 저건 좋은 것 같네.

“딱 보니까 길어야 5년이겠다. 그 안에 철거하겠는데?”

“예?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요?”

“바로 옆에 공사하는 거 보니까, 여기도 보나 마나 원룸 같은 거 올릴 거야. 그때 이야기하면 자투리를 사가든가, 내놓든가 하겠지. 어차피 그쪽도 공사하려면 확인해야 할 테니까 먼저 연락 올 수도 있고.”

들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 동네 집들 상당수는 무려 60년 전에 지어졌다.

한국 전쟁 끝나고 저 아래부터 야금야금 주거지가 형성되다가 여기 고개 아래까지 판잣집이 들어섰다. 그런 집들을 개조하고 보수하는 식으로 다들 지낸 것이다.

하긴 칼국숫집 뒤쪽에는 아직도 기와를 올린 집들이 보이기도 하니까, 확실히 오래되기는 했지.

하여간 그런 식이라 토지 분할이 명확하지 않단다.

“솔직히 말하면, 다들 그냥 사는 거지. 이거 제대로 하겠다고 이웃과 싸우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니까.”

“연락은 해봐야겠네요. 모르는 분도 아니고, 음식 좀 싸 들고 가서 이야기하면 되겠죠?”

“그래. 그게 서로 좋은 거지.”

이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눴다.

자세한 내용은 관련 업자가 아니니 알 수 없었지만 대략적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일단 뒷담 앞에 두꺼운 벽을 하나 만든다.

정면을 제외하고 양옆 모서리를 무너뜨린 뒤 땅을 파서 좌우로 H빔을 박고.

천장 역시 田 자 형태로 용접을 하면 끝.

그다음 벽체를 보강하든가, 새로 만들든가 하기로 정했다.

이게 요즘 이 동네에 유행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주택을 개조해서 카페나 식당을 차리는데 워낙 오래된 집들이 많아서 보강은 필수란다.

안 그러면 허가가 잘 나지 않는다나.

“그런데 이 층 다락방은 어떻게 할 거냐?”

“예? 다락방이 있었어요?”

“여기 구조 보니까 화장실 앞쪽에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었던 모양이야. 저건 딱 봐도 다락방이거든.”

“아니, 그런 게 식당에 왜 있어요?”

“뭐, 뻔하지. 옛날에는 통금이 있었잖아. 새벽에 못 다니는 거. 그럼 여기서 술 마시다가 올라가서 자거나 그랬던 거야. 아니면 몰래 마셨던가.”

그 외에도 몰래 만든 밀주를 숨어서 마셨거나, 대학생들이 데모하다가 숨거나 했을 거란다.

이 낡고 오래된 건물에 그런 역사들이 있다는 것이 조금 신기하기도 했다.

“어차피 다락방 정도야 크게 하중을 안 받으니까 뚝딱 만드는 건 어렵지 않거든. 어때, 생각 있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비밀의 방 같은 거!”

“짜식. 나름 로망이 있네.”

“그럼 그렇게 가는 걸로 하죠.”

곽준열은 스마트폰에 이런저런 내용들을 메모하더니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럼 내부 디자인은?”

* * *

“꼴리는 대로 해라!”

현지가 현답을 내놨다.

어떤 인테리어가 좋을지 물어봤더니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란다.

사실 외벽 공사를 하는 동안 주변을 많이 돌아보기는 했다.

정말이지 이 동네는 신기했다.

일단 디자인을 정하겠다고 마음먹고 자료 수집에 나섰다. 최근에는 어떤 인테리어가 유행하는지, 왜 그런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본 거다.

동시에 칼국숫집 할머니와 손님들에게도 이런저런 것들을 물었다.

“어떤 가게가 좋을까요?”

대답은 천차만별이었고, 어머니와 혜진 이모조차 원하는 게 다르더라.

더욱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냥 잘되는 가게와 비슷하게 한번 해볼까 하고 조사를 나섰다.

그게 가장 큰 실수였다.

행복 분식 우측으로 가면 학교가 나온다.

그 주변에는 치킨집과 토스트, 교복 가게, 이발소, 반찬집 등등이 있는데, 유현성이 학교 다닐 때부터 존재한 가게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인테리어 역시 고풍스러웠고.

프랜차이즈의 흔적이 그대로였기에 익숙했고, 딱히 끌리는 것도 없었다.

여기까지는 그나마 무난(?)했다.

아래쪽 번화가부터는 혼란 그 자체로 변했다.

어떤 양식당은 서점을 연상케 했고, 신발 벗고 평상에서 먹던 막걸리 집에는 어이없게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노래방 조명이 달려 있었다.

유명한 떡집은 제과점처럼 꾸며져 있었고, 카페는 전통 주막 스타일의 인테리어로 해놨더라.

“헐, 무슨 순대 국밥집이 중식당 스타일이냐?”

카페 느낌의 국밥집 인테리어는 봤어도 저런 건 처음이었다.

원탁 테이블 중간에 김치, 깍두기, 새우젓 등의 밑반찬들이 올라가 있었는데, 그게 고급 중국집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구조였다.

“하,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동네구나.”

아무래도 디자인을 참고하기에 여기는 심리적으로 너무 먼 동네였다.

앞서가도 너무 앞서갔다고 해야 할까.

“장사할 사람은 오빠 아이가? 그럼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지.”

“흐음, 확실히 그게 맞기는 한데 딱히 어떻게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렇지.”

솔직히 삭막한 군대에서 7년이나 살아봐라.

밖을 나다닐 수 있다고 해도 인테리어나 디자인 같은 건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냥 음식 맛있고 푸짐하기만 하면 끝이니까.

“그럼 군대식으로 꾸미든가!”

“뭐?”

순간 머릿속에 그림이 그러졌다. 군부대 식당과 퀴퀴한 내무실, 그리고 구르고 굴렀던 연병장.

“미친! 내 분식집을 그렇게 꾸미라고?”

나도 모르게 뿜어지는 살기 때문인지 현지가 움찔거렸다.

“그, 그냥 익숙한 게 좋은 거 아이가?”

“너. 그 발언, 선 넘었다!”

“진짜. 그렇게 싫나?”

“그건 좋아하는 게 이상한 거야! 그리고 그 지옥에서 7년이나 있다가 왔다고!”

단호하게 말하자 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이고, 요즘 군대 좋다더만 다 헛소리네.”

“좋아도 군대는 군대라는 거지.”

“근데…… 진짜 생각해 놓은 거 없나?”

“있기는 있는데, 그건 못 쓸 것 같아서.”

입대 직전까지 고등학생이었다.

당시 친구들과 자주 가는 음식점이야 뻔했는데, 그런 곳 중 깔끔해서 좋았던 가게가 있었다.

“내가 장사한다면 그렇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가게가 있기는 했거든.”

“어떤 가게인데?”

“그러니까…….”

메인은 깔끔한 노란색이었다.

거기에 약간의 초록색을 섞은 듯한 색상으로 가게 전체를 인테리어했고, 포장지나 그릇, 기타 소품도 노란색으로 통일했다.

사실 유현성이 학생일 때는 인테리어 콘셉트에 변화가 생기던 시기였다.

‘자연 친화적인 디자인에 무조건 고급스럽게 보여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유행을 타면서 많은 카페들과 분식집, 식당들이 그런 걸 따라 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가격이 비쌌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선뜻 접근하기 어려웠고 어떤 곳은 거부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내 기억 속의 그 가게는 그런 부분에서 합격이었다.

“노란색이면, 밥솥 도시락집?”

“아니, 거긴 아니고.”

“아! 답답하네. 그럼 뭔데?”

“어. 밥버거.”

현지는 뭔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모양인지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다 툭 내뱉었다.

“그 마약 말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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