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한때 대한민국 전체 천여 개에 가까운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만든 곳!
동시에 비슷한 음식을 광풍처럼 유행시켰다.
이름하야 밥버거.
하지만 그중 제일 큰 프랜차이즈 본사 사장이 범죄를 저질렀다.
마약 상습 복용으로 유죄가 떨어진 것.
일명 오너 리스크가 제대로 터졌다.
결국 그 밥버거 프랜차이즈는 마약 밥버거란 이름으로 조롱하듯 불리었고, 그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아울러 시장 자체가 축소되어 불과 10년도 되지 않아 사양 업종으로 분류될 정도.
물론 편의점 본사들이 유행을 타고 앞다투어 밥버거 제품을 출시한 영향도 무척 컸다.
여기에 주먹밥과 삼각김밥류 제품들도 업그레이드시키면서 밥버거 시장의 일부를 잠식해 들어갔다.
몰락하는 건 당연한 수순.
“왜 하필 그건데?”
“일단 깔끔하잖아. 그리고 그런 쪽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유현성이 추구하는 디자인은 그런 거였다.
일단 비슷한 계열의 색상이 주는 통일감.
청결하고 깔끔함에서 오는 신뢰감.
무엇보다 고급 식당처럼 보이지 않아 출입에 부담이 없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싸구려처럼 보이는 것도 곤란했다.
그럼 소위 진상이라 불리는 인간들이 많아진다. 사장도 직원도 음식도 깔보게 되면서 괜한 시비 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어디서도 그럴 새끼들은 그러겠지만.
“오빠도 고민 많이 했네. 근데 그건 아이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괜히 비슷한 콘셉트로 인테리어했다가 오해 받거나 하면…….”
“아니, 그 말이 아이고. 그거 망한 거 아이가. 그냥 재수 없다. 하지 마라!”
관점은 달랐지만, 단호함만큼은 역시 현지가 최고였다.
재수 없으니까 하지 말라니.
일견 그 말도 맞다 싶고.
“확실히 오빠 말도 맞기는 하다. 나도 괜히 비싼 카페 같은 데 들어가기 부담스럽거든.”
“그렇지?”
“그래. 분식집인데 입구부터 으리으리하면 누가 가는데. 애들은 겁나서 못 간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고3 때 친구들이랑 그런 가게 처음 갔다가 놀랐단다.
“와! 그때 진짜 당황해서 아직도 기억나네. 즉석 떡볶이 한 냄비에 18,900원. 메뉴판에 적힌 건 3~4인분이라는데, 셋이서 묵어도 간에 기별도 안 가드라.”
갑자기 미안해졌다.
현지와는 다섯 살 차이, 고3이 되어서야 용돈을 주기 시작했으니 즉석떡볶이를 그 나이에 처음 먹었다는 게 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내가 무심했던 게 가장 크지.’
“이후로는 그런 데 안 간다. 비싸기만 비싸고 입에도 안 맞더라. 친구들하고 놀아도 서면 시장 쪽으로 자주 가지.”
크흐, 눈물이 날 뻔했다.
서면 시장은 돼지국밥 골목이 제일 유명했다.
그 아래 라인에 있는 건 일명 길거리 떡볶이.
리어카를 개조해서 가판대를 만들었기에 서서 먹어야 했다.
“표정이 와 그런데?”
“어? 아니. 그냥 이것저것 생각하느라.”
“씰데없는 생각 하지 마라!”
“크, 크흠. 어쨌든 그런 인테리어는 별로라는 거지?”
“오빠가 그린 거 보면 구조야 어쩔 수 없고. 색만 바까바라.”
“색깔을 바꾸라고?”
“그래. 왜 하필 노란색인데?”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러게. 왜 하필 그 색이지?
* * *
“으음, 내가 싫어하는 색은?”
이건 두말할 필요 없이 붉은색과 검은색이다.
탁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어쨌든 피와 불길함이 연상되니까.
“좋아하는 색은 또 뭐였지?”
당연하게도 파란색이었다.
하늘과 바다를 상징하기도 했고, 거기서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느꼈으니까.
더욱이 연식 쌓인 부산 사람들은 파란색을 좋아했다.
바다 사나이 아닌가!
특히 임무를 마친 직후, 풀장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면 유리 너머로 푸른 하늘이 자리했다.
그걸 볼 때, 살아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게이트 안쪽은 티 없는 하늘을 보기가 무척 힘드니까.
“그때는 분명 가게를 파란색으로 꾸미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왜 노란색으로 바뀐 거지?”
흠, 원인은 바로 [힘의 근원] 때문일 터.
“베나레스…… 이게 그가 말했던, 물든다는 건가?”
이능을 받아들이게 됐으니 그 힘을 준 존재에게 영향을 받는 건 당연한 일.
노란색에 끌리는 건 분명 그 때문일 것이다.
“……뭐, 상관없나? 괜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 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생산적인 뭔가를 하는 게 경험상 이로웠다.
무엇보다 현지가 말하지 않았던가.
망한 가게에서 쓰던 색상이라 재수 없다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간이 책상 역할을 하는 밥상 앞에 앉았다.
그 위에 놓인 노트북 화면에는 한 장의 그림이 있었다.
곽준열이 파일로 보내준, 새로운 행복 분식의 구조도.
일단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형태였다.
먼저 오른쪽 아래 출입구를 둔다. 그 입구 왼편으로 오픈 주방을 두고, 바로 아래쪽 벽을 뚫어내 바깥과도 소통이 가능한 구조로 짰다.
“보통 테이크아웃 위주로 하는 카페들이 이런 경우가 많지.”
오픈 주방의 바깥은 ㄱ 자 모양의 ‘바’로 되어 있었는데, 그 너머 우측 벽으로 네 개의 테이블이 놓인다.
주방 위쪽에는 세로로 한 라인당 2인 테이블 두 개씩, 적당한 간격으로 모두 여덟 개가 그려져 있었다.
추가 설명을 보니 테이블을 합치면 4인석이 되고, 의자를 추가하면 최대 여섯 명까지도 가능하단다.
마지막으로 가장 위쪽은 창고와 화장실이었다.
특히 화장실은 남녀 분리에, 강 여사와 혜진 이모의 주장에 따라 비데 설치까지 가능한 넉넉한 크기였다.
“하긴. 요즘 시대에 쪼그려 앉아서 볼일 보는 건 좀 아니지.”
다소 공간을 많이 잡아먹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구조도는 최적에 가까웠고, 뭔가를 추가할 필요도, 뺄 곳도 보이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색만 파란색으로 바꾼다면?”
짙고 푸르스름한 바다색은 가게에 차분한 느낌을 주었다.
적어도 이보다는 가벼워야 했다.
다시 눈을 감고 집중하자 이번에는 파스텔톤의 하늘색이 펼쳐졌다.
일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여기에 흰색으로 나머지를 채운다면, 한결 편안해지겠지.
“대충 사진으로만 봤던 산토리니 느낌인가?”
문제는, 분식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휴양지 분위기에 라면은 뭔가 조합이 맞지 않는다고나 할까.
“단순히 심플하기만 해선 안 될 것 같은데…… 어울리는 뭔가가 없을까?”
바닥에 대자로 누웠다.
거기에 옵션으로 뒹굴뒹굴 뒹굴기까지 했다.
전형적인 놈팽이의 자세.
하지만 조악한 뇌세포들은 열심히 아이디어를 쥐어짜고 있었다.
행복 분식에 오색찬란한 무지개 색을 덧칠해 보기도 하고, 유명 관광지의 사진도 입혀보기도 했다.
심지어 천장부터 바닥까지 핑크색으로도 칠해봤다.
묘하게도 남성의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크흐, 다시 원점으로.”
파아란 하늘색, 짙푸른 바다색. 여기에 휴양지의 하얀 벽돌집들까지.
비슷한 이미지를 검색해 보니 다시금 산토리니 마을이 나오더라.
“가만? 부산에도 이런 느낌이 있지 않았었나?”
입대 전, 친구들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바람 쐬러 가봤다.
평범한 해안 도로 아래, 산책로가 만들어진 곳이었다.
우측 아래로 파도가 거칠게 치고, 좌측 산 쪽에는 오래된 주택들이 절벽에 매달린 것처럼 붙어 있었다.
부산의 유명한 관광지인 감천 문화 마을의 일부를 가져다 붙인 느낌이랄까.
차이가 있다면 이쪽은 파란 물결과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자신이 생각한 컬러와 썩 어울렸고, 행복 분식의 벽에 적당한 무게감을 가져다줄 것 같았다.
유현성은 씨익 웃었다.
“오오, 이거~ 마음에 드네.”
* * *
“와~ 벌써 이만큼이나 된 거예요?”
솔직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공사 시작하고 철거한다고 한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뒤편 벽에 H빔을 박고 있었다.
곽준열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제일 중요한데, 의외로 시간이 걸리거든. 시멘트가 굳을 때까지 며칠 정도는 놔둬야 해.”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미 하수구는 고압 세척으로 뚫어놨단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역류하거나 막힐 일은 없다는 것이다.
내일 자재가 들어오면 새로 배관을 깔고 다시 바닥을 덮을 예정이라고 했다.
“그런 다음 미장을 하거나 타일을 깔거나 해야 하는데, 어떤 식으로 꾸미고 싶어?”
“그게 제가 생각한 게 이런 건데요.”
근처 출력소에서 대충 프린트해 온 종이를 내밀었다.
그림이나 이미지가 조악했지만, 곽준열은 어렵지 않게 알아봤다.
“이런 느낌의 디자인이라면, 요즘은 타일 잘 안 쓰니까 에폭시로 덮어야겠네. 무광은 좀 그러니 반광 정도로 하면 되겠어.”
레벨링이니 프라이머니 하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귀에 쏙 들어오는 건 이거였다.
“깔끔하고 청소하기 편하고, 무엇보다 흰색 바닥인데도 고급스럽게 보이거든.”
“그럼 그걸로 하죠.”
“대신 공사비가 좀 더 올라가.”
“돈은 벌면 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강 여사한테 엄살을 부리긴 했지만 통장은 아직 여유로웠다.
거기에 매달 연금식으로 들어오는 금액도 매우 넉넉해서 공사비를 아낄 필요는 없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계획한 대로 나오느냐.
그 말에 한참 생각하던 곽준열은 결론을 내린 듯 말했다.
“확실히 광택 필름으로도 비슷하게 나오긴 하겠는데 느낌은 안 살 것 같아. 실사 이미지를 그래픽 작업해도 출력하면 또 다르거든.”
“그럼 어떤 방식이 제일 괜찮을 것 같아요?”
“직접 그리는 게 제일 낫지. 감성이란 게 그런 거니까.”
“정말 잘 어울릴까요?”
“해봐야 아는 거지만, 난 괜찮다고 보거든. 일단 조합이 좋단 말이지.”
곽준열은 프린트한 종이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의 선택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전문가가 그렇게 말한 이상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벽 하나 정도의 그림이라면, 마음에 안 들 경우 새로 하면 그만이니까.
“일단 그쪽으로 진행해 주세요.”
“그래. 그리고…….”
곽준열은 가게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천장을 뜯으니까 밖에서 보는 것보다 층고가 높다고 했다. 이걸 살리려면 안쪽에 이중으로 덧대는 게 단열에 유리하단다.
일단 그 부분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외에도 건축주가 직접 정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았다.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철거를 할 때마다 예상과 다른 일들이 생기곤 했으니까.
예를 들면 창고 바닥을 뜯었는데 날림 공사였다.
시멘트를 아낀다고 자갈을 대충 깐 뒤 판자를 덮고 그 위에 미장을 한 거다.
화장실도 비슷했다.
싸구려 샌드위치 판넬에 안쪽만 벽지만 바른 거라고.
그게 뭐가 문제냐 하겠지만, 중간의 녹슨 부분과 무게 중심이 맞지 않아 일부가 점점 벌어져서 그쪽으로 바람이 새고 있었단다.
어째 화장실이 춥기는 무지하게 춥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
“어차피 다 뜯고 새로 할 거라 상관은 없지만 알고는 있으라는 거지. 사실 인테리어나 설비 쪽에는 먹튀랑 양아치들이 정말 많거든.”
“그래요?”
“어. 방금 내가 말한 것처럼 마감하면서 덮어버리면 건축주가 알 방법이 없지. 뜯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요.”
“사기 안 당하려면 매일 현장 돌면서 확인해야 해. 그러니까 너도 자주 와보란 말이다. 아무리 믿고 맡긴다지만 건축주가 무관심하면 나쁜 마음이 들게 마련이라고.”
곽준열이 투덜거렸지만 유현성은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제가 좀 감이 좋아요. 특히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냐?”
“믿고 맡겨도 된다 싶으면 거의 그렇더라고요. 틀린 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무슨 말도 안…….”
순간 곽준열은 움찔했다.
‘착각…… 인가?’
느닷없이 유현성의 눈에서 황금빛 광채가 뿜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기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전신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기분.
단순히 소름이 돋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금까지도 저려 왔다.
자신도 각성자였다.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고작 눈빛 한 번에 겁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곽준열은 슬쩍 고개를 아래로 숙이며 확인했다.
설마, 나…… 지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