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저씨, 뭐 해요?”
“어?”
“왜 그러고 있어요? 급하면 화장실 가요.”
유현성이 맞은편 칼국숫집을 가리키자 곽준열은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니, 괜찮아. 하여간 공사는 그렇게 진행할 건데, 더 궁금한 건 없어?”
“솔직히 제가 뭘 알겠어요. 그냥 아저씨 믿고 맡기는 거지. 그리고 설명해 줘도 잘 몰라요.”
이번에 알았는데, 태수 녀석이 곽준열을 삼촌이라 부르는 걸 보니 저절로 믿음이 생겼다.
무턱대고 맡겨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물론 방금 전,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능력도 그걸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다, 라고.
방금 곽준열은 그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제가 음식 쪽은 좀 배웠지만, 그거 말고는 다 꽝이에요. 특히 인테리어니 디자인이 하는 거, 보통 사람이 잘 알기는 어렵잖아요.”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군대에서 공사를 할 때도 그랬다.
행보관이 필요한 걸 알려주면, 그 외 나머지는 다 때려 부순다. 일단 다 치운 다음 모자라면 가져와서 채우는 방식인 거다.
대부분의 노동이 그러했다.
고민할 필요 없이 몸만 움직이면 끝인 셈.
“특별히 크게 돈이 들어간다거나 아예 구조가 달라지는 거 아니면 그냥 그 프린트랑 비슷하게만 해주시면 돼요.”
“명색이 건축주인데 너무 성의 없는 거 아니냐?”
“하하, 믿고 맡기는 거라고 봐주시죠.”
곽준열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장난스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내 온 힘을 다해서 삐까번쩍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유현성도 맞장구치듯 고개를 숙였다.
“근데 너, 현장 안 오면 할 거라도 있냐?”
“새로운 메뉴 만들어야죠.”
“그냥 이전처럼 장사하는 거 아니었어?”
“아직 그렇게 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거든요. 하나하나 차근차근 밟아가려고요.”
“대충 정해진 거라도 있나 보네?”
뭔가를 기대하는 듯, 곽준열의 눈빛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대답은 짧았다.
“우선 라면부터 해보려고요.”
* * *
“조금 정신없구만.”
유현성은 주변을 돌아본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지하에 폭탄(?)을 두고 있지만, 무려 억 소리 나는 돈을 주고 구입한 주택이었다.
그 일 층의 절반과 마당에는 짐이 한가득이었다. 행복 분식 공사 때문에 거기 있던 집기들 상당수를 이쪽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문제는 이 중에 쓸 만한 것이 거의 없다는 거였다.
“일단 고물상 박씨 아저씨 불러서 처리하고, 필요한 건 전부 새로 사는 게 낫겠다.”
오래된 튀김기와 어묵, 떡볶이통, 찌그러진 냄비들과 그릇들이 한가득했는데 자신이 구상한 가게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아깝지만 이럴 땐 미련을 버리는 게 나았다.
무리해서 싸 안으려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아저씨 덕분에 한시름 덜었네.”
곽준열이 디자인을 뽑으면 그걸로 명함도 파고 휴지도 찍고, 오픈 기념품으로 줄 수건도 제작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래 일한 만큼 거래처가 많았다. 그중 몇 군데에 맡기기로 했으니 따로 알아볼 필요가 없었다.
“진짜 가게 하나 오픈하는 데 준비할 게 태산이네.”
쉽게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까지 일이 많을 줄은 예상 못 했다. 새삼 군대와 사회가 이렇게 다르고 거리감이 있다는 걸 겪어보고 깨닫게 된 거다.
여기는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물론 돈으로 처발라서 처리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건 또 재미가 없겠지.
그 외 잡다한 건 상황에 맞춰서 처리하기로 했다.
장사 초보임을 인정하고 하나하나 부딪혀서 경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가령…… 음식 하는 것도 그렇지.”
유현성은 1층의 나머지 공간을 확인했다.
예전에 카페였던 공간의 한쪽은 심플한 주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애초에 집을 구입할 때도 이걸 염두에 뒀었다.
400만 원짜리 업소용 냉장고를 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고.
임시지만, 이제부터 여긴 [유현성의 음식 연구실]이었다.
아직은 규모가 작지만 생각한 바대로 장사가 진행된다면, 앞으로 이곳의 역할은 무척 중요했다.
판매될 음식 대부분이 여기서 연구되고 만들어질 예정이니까.
“해보자!”
꺼낸 건, 찐라면이었다.
안심탕면보다 면발이 굵어 다양한 요리를 하기 적합했고, 생각 이상으로 잘 퍼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호불호가 가장 적은 라면이면서 제일 저렴하기도 했고.
“솔직히 라면 싫어하는 사람은 없잖아.”
대략 6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식품.
또, 대한민국은 1인당 라면 소비량 세계 1위였다.
통계를 내는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전 국민이 일주일에 평균 1~2개씩 먹는단다.
물론 거기에는 라면을 아예 안 먹거나 못 먹는 사람도 있으니, 실제적으로 일주일에 2~3개 이상은 먹는다고 보면 된다.
“즉, 된장찌개 김치찌개에 이은 국민 음식이라는 거지!”
길가다 아무 집 들어가서 싱크대를 열어보면 반드시 존재하는 게 라면이다. 특히나 ‘게이트 사태’가 터진 뒤 식량 비축은 필수였고, 덕분에 현재 라면의 인기는 초고공행진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종류도 많아서 질리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
그냥 라면, 짬뽕 라면, 비빔 라면, 짜장 라면, 카레 라면부터 저 북쪽 시벨 욕 같은 지명의 리아라는 추운 지방에서 즐겨 먹는다는 마요네즈 라면에, 동남아 쌀국수 스타일의 라면까지.
정말 라면이란 놈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음식을 흡수해 버린 것 같았다.
사실, 구구절절 늘어놓는다면 몇 시간이나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라면이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그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몇 번 만들어보기는 했는데…… 미묘하단 말이지.”
추구하는 건, 오직 행복 분식에서만 먹을 수 있는 라면이었다.
특히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밖에선 결코 사 먹기 어려운 것일수록 좋았다.
“그런 걸 보통 시그니처 메뉴라고 하지.”
유현성은 냉장고에서 각종 재료들을 차근차근 꺼내 넓은 싱크대에 올렸다.
그런 뒤 조리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아버지가 했던 대로 육수부터.
넓은 육수통에 물을 채운 뒤, 내장을 딴 멸치와 디포리를 한 줌씩 넣었다.
여기에 다시마 한 뼘짜리 두 장에 건새우 다섯 마리, 야채로 얇게 썰어낸 무와 대파를 추가했다.
마지막으로 어긋하게 썬 감초를 더하면 끝.
“대충 20인분 정도 나오겠군.”
라면 봉지 뒤편에 적힌 물의 양은 550㎖.
하지만 육수로 끓이면서도 스프를 다 넣을 계획이라, 한 그릇에 대략 600㎖ 정도로 잡았다.
물론 약불로 뭉근하게 우릴 예정이니 증발하는 걸 감안해 물의 양을 넉넉하게 했다.
육수가 끓는 동안 재료를 다듬었다.
고명으로 올라갈 당근과 양파를 얇게 썰고, 제일 중요한 베이컨을 구웠다. 거기서 나온 기름으로 계란을 튀겼고, 야채는 숨이 죽을 정도로만 볶았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었다.
“대충 간이 맞으려나?”
그리고 육수 맛을 봤는데 예상대로였다.
일부러 재료를 적게 넣었기에 깊은 맛은 없었지만 은은한 멸치 향과 깔끔함이 존재했다.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너무 많이 넣고 오래 우리면 향이 진하거나 간이 강할 수 있었다. 오히려 스프 맛을 잡아 버려 이도 저도 아닌 라면이 되는 것이다.
이 육수로 라면을 끓여보기로 했다.
맛을 본 뒤 조금씩 비율을 조정해 최종적으로 완성할 생각이었으니까.
냄비에 육수를 붓고, 바로 스프를 넣는다.
이미 데워져 있었기에 국물은 순식간에 끓어올랐고, 여기에 면을 투하하면 끝이었다.
띠띠띠띠-
3분 20초 타이머가 울리자 바로 면부터 건져 그릇에 담았다. 이 위에 숨을 죽인 당근과 양파, 베이컨을 올리고 마지막으로 계란프라이를 올리면…….
위에서 보니 느낌이 조금 이상하긴 하네.
“비주얼은 잔치국수도 아니고 비빔밥도 아니네.”
SNS용으로 쓰기에는 조금 애매한 느낌이 있었다. 국물과 볶은 양파, 주황색 당근의 존재감이 강해서 전체적으로 벌겋게 보였던 것이다.
노른자가 선명한 계란프라이가 아니었다면 거의 짬뽕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맛이니까.”
후우, 후우.
면발을 크게 한 젓가락 들어 입김으로 식힌 뒤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루룹.
후아~ 하.
몇 번 우물거린 뒤 목구멍으로 넘겼다.
예상대로 적당히 짭쪼름하고 매콤하면서 깔끔한 맛이었다.
기본 라면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보다 진한 향이 남았고, 그게 묘하게 식욕을 부추기는 것 같은 맛.
“하, 이걸 감칠맛이라고 하지.”
이번엔 베이컨과 함께 면발을 입으로 집어넣었다.
약간 바삭할 정도로 구웠기에 씹히는 식감은 충분했다. 여기에 베이컨 자체의 짭짤함과 기름기가 라면 국물과 더해져 깔끔함보다 고소함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번엔 계란과 함께.”
젓가락으로 프라이를 가르자 노른자가 국물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바로 아래 면발을 들어 다시 한 번 호 하고 식힌 다음 단숨에 입에 넣었다.
후루룹, 후룹.
“와,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네.”
몇 번이나 감탄하고는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그릇을 비웠고, 심지어 국물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누구나 아는 익숙한 라면의 맛이었다.
여기에 육수의 깔끔함, 베이컨의 기름과 계란의 고소함이 더해졌다.
유현성이 내린 결론은.
“맛은 있는데…… 이거, 실패네.”
* * *
“와? 맛만 좋구만.”
“오빠. 맛있는데?”
현지와 현아의 평가와 다르게, 강 여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들, 이거 좀 느끼하다.”
“역시 좀 그렇죠?”
“애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어른들이 자주 찾기는 힘들지. 좀 더부룩한 느낌도 들고.”
확실히 그런 부분도 있기는 했다.
자신도 한 그릇 반까지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질린다는 느낌이 계속 들어서.
“아이다. 이거 꽤 맛있다. 자극적인 느낌도 드는데 짭짤하면서 묘하게 고소하다.”
현지는 진심인지 남은 국물까지 쭉 들이켰다.
그런 다음 트림까지 ‘끄어억~’ 하는 걸 보니,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졌다.
어제 술 많이 마신 게 분명했다.
맛 평가하러 왔다기보다 해장하러 온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군.
“술 적당히 마셔. 그러다 한숨에 훅 간다.”
“아이고, 걱정도 팔자다. 20대 꽃다운 청춘이라 간도 쌩쌩하거든. 아, 말하고 나니 순대 간이 땡기네.”
“거기에 소주?”
“잘 아네.”
당연한 듯 받아치니 이젠 화도 나지 않았다.
그때 현아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오빠아~ 라면은 맛있는데…… 이거 어디서 먹어본 맛 같아.”
“그야 당연하지. 원래 있는 음식의 변형에 가까우니까.”
“이런 게 있다고?”
“어, 일본 라멘 중에 니보시, 혹은 교카이 계열이 비슷한 맛이거든. 그걸 한국사람 입맛과 분식 스타일에 맞도록 손본 게 이거야.”
그쪽에서는 돼지 사골 육수를 돈코츠, 닭 육수를 토리 혹은 토리 파이탄, 어패류를 니보시 혹은 교카이 계열로 불렀다.
물론 이건 대충대충 분류한 거다.
세세하게 따지면 더럽게 복잡하니까.
얼마나 까다롭냐면, 중층 스프에 삼중 블랜딩, 무슨 기름을 띄우느냐에 따라 달랐고, 여기에 소금, 간장, 일본식 된장으로 간을 하면 또 다른 이름이 추가된다.
중요한 건, 내가 그딴 걸 자세하게 알 필요가 없다는 점이지.
목표는 분식집이지 라멘 전문점이 아니니까.
어쨌든, 그냥 몇 번 먹어봤는데 닭 육수에 쪄서 말린 멸치를 갈아 섞고 간장으로 약하게 간을 한 게 제일 입에 잘 맞았다.
묘하게도, 기름 둥둥 뜬 라멘인데 덕순 할머니의 칼국수가 떠올랐던 것.
거기서 멸치 육수와 인스턴트 라면의 조합을 생각했고 부재료를 추가하는 식으로 구상한 거다.
이건 충분히 먹힐 것 같았다.
하지만 맛의 중심을 못 잡은 것도 사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그쪽은 최소 7~8000원대고 이쪽은 라면 가격이라는 거였다.
“확실히 한 그릇, 한 그릇 끓이면 내 입에는 맞출 수 있는데, 그걸로는 어려워.”
“왜? 그냥 맛있으면 되는 거 아냐?”
“맛있는 거 더하기 맛있는 거라도 어떤 경우에는 맛이 끔찍할 수 있거든.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니까.”
“엄마가 느끼하다고 한 것처럼?”
“어, 그게 맞아.”
유현아는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아직 맛과 맛을 섞는다는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어리지. 그러면서도 보편적인 반응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도 모를 거다.
결국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거였다.
“음식 장사란 원래 그런…… 흐음?”
순간 고개를 돌렸다.
원래 카페였던 1층이라 전면부는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마당 너머 입구까지 한눈에 보였는데, 그쪽에서 맹렬한 기세가 느껴진 것이다.
“습격……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