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잠시 대기.”
익숙한 습관에서 나온 말이다.
이 동네가 치안이 안 좋다고 해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게이트 안쪽의 몬스터들만큼은 위험하지 않을 터.
슬럼가니 우범 지역이니 하지만 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가 아니던가.
아, 위험한 곳은 맞구나.
지하 터널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게이트가 있고, 수상쩍은 기운도 몇 개나 있었다.
처음 집을 볼 때 느꼈던 바로 그것들 말이다.
‘하지만, [늑대]랑 [호랑이]는 좀 아니지 않나?’
막 마당으로 들어선 건 그런 형태의 두 짐승이었다.
“크헝…… 크르릉…….”
호랑이가 위협하듯 목을 긁는 소리를 터트리자, 곧 들개 역시 늑대처럼 울부짖었다.
“으우우우우---”
저녁 달빛에 흩날리는 회색의 갈기. 그 중심에 붉은 동공과, 들개와 달리 비쭉하게 튀어나온 날카로운 송곳니.
저 정도라면 물리는 순간 즉사하리라.
옆의 호랑이는 성인보다 약간 큰 체구였다.
특히나 눈에 들어온 건 발톱.
거의 사람 손가락 두 마디만큼 튀어나왔는데, 달빛에 번뜩이는 걸 보니 무척 날카로워 보였다.
그냥 걷기만 하는데도 마당 흙이 푹푹 파일 정도였으니까.
“크르르릉…….”
두 짐승은 나지막하게 을러대며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렸다. 그러면서 마당 주변을 탐색하는데, 흡사 다른 위험이 있는지 살피는 것 같았다.
“일단 환술은 아니군.”
생각할 수 있는 건 원래 저런 짐승이거나 혹은 각성자의 변신인 경우.
무엇보다 녀석들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눈싸움을 걸어왔다.
즉,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의미겠지.
그만큼 경험이 많다거나.
“현지야. 이 동네에 사람 잡아먹는 짐승 있다고 들은 적 있냐?”
“그게 말이가? 당연히 없지. 안 그래도 아카데미 있어서 수시로 순찰 도는데 짐승이 어디…… 엥? 있네?”
뒤늦게 창밖을 확인했는지 현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눈에도 늑대랑 호랑이처럼 보였을 테니까.
“근데 귀엽다.”
“뭐?”
“좀 큰 개 새끼랑 냥이 새끼 아이가.”
“……그걸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똘끼 있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면 선을 넘은 것 같은데.
“강 여사랑 현지, 현아는 2층으로 올라가 계세요.”
“우리 아들은 뭘 하려고?”
“글쎄요?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쫓아낼 거고요. 조금 귀찮아지면 타일러서 쫓아내야죠.”
현지가 궁금한지 물었다.
“근데 그게 가능하나? 저 둘이면 사람 하나 그냥 씹어서 먹을 것 같은데.”
“군대에서 7년 있었다. 짬타이거도 잡는데 뭘.”
“그거 전설의 괴수 아이가?”
“전설까지는 아니고. 그냥 겁나 크고, 겁나 빠르고, 사람 안 무서워하지.”
물론 내가 잡은 건, 평범한 짬타이거가 아니었다.
소 한 마리 정도는 가뿐히 먹어 치울 수 있는 놈이었으니까.
“빨리 올라가.”
“그냥 잡는 거 보면 안 되나?”
“위험해서 안 돼.”
솔직히 보여주고 싶은 광경도 아니었다. 거칠게 반항하면 결국 피를 보게 될 테니까.
“치, 알았다.”
“전 괜찮으니까 현아도, 강 여사님도 올라가시죠.”
몇 번 재촉하자 세 사람은 머뭇거리면서도 2층으로 올라갔다.
이미 강 여사와 현지는 ‘개발새발 글씨 유언장’ 때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다.
7년간의 군 생활.
통장을 풍족하게 해준 수입.
그게 결코 평범한 군인이 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걸.
빚도 갚고, 집도 사고, 분식집도 샀으며 내 집 마련의 꿈도 이루었으니까.
즉, 나 역시 각성자라는 걸 짐작하고 있다는 거지.
“그나저나 쟤들은 피죽도 못 먹었나? 왜 부실해 보이지?”
그게 오히려 위협적이긴 했다.
굶주린 짐승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
특히나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뚝뚝 떨어지는 침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크르르릉……!!”
다시금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늑대와 호랑이가 안쪽으로 서서히 들어왔다.
“길게 끌어서 좋을 건 없지.”
전면 창을 활짝 열고 한 걸음 내디뎠다.
하지만 늑대와 호랑이는 섣불리 다가서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혹시나 함정이 아닐까 우려하는 것처럼.
“의외로 신중하군.”
유현성은 왼손을 앞으로 내밀며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그에 맞춘 듯, 들개와 호랑이도 거리를 좁혔다.
이제 한 번의 도약만으로 승부가 갈릴 수 있는 간격.
그때였다.
파앗!!
갑자기 호랑이의 두 눈에서 시퍼런 불꽃이 튀었다.
몸집이 부풀고 발톱 역시 날카로운 빛을 뿜어낸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늑대 역시 자세를 바짝 낮췄다.
동시에 입이 크게 벌어졌고, 송곳니도 순간적으로 더 길어졌다.
“크르르렁-!”
“커허엉!”
유현성이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늑대와 호랑이가 동시에 몸을 날리고.
길어진 송곳니가 목을 노리고 다가오며, 날카로운 발톱이 위협적으로 내리그어졌다.
그렇게 셋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순간.
펑!
퍼엉!!!
“꺄악!!”
“이게 뭐……!”
유현성의 좌우로 우당탕 소리가 울렸다.
돌아보니 나체 상태의 두 인영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린 듯 허겁지겁 망토를 펼치더니 다급히 몸을 가리더라.
두 녀석은 우왕좌왕 끝에 가까스로 앉는 자세를 잡은 뒤, 유현성을 쳐다봤다.
눈빛에 어린 건, 당황과 두려움.
순간 맥이 풀린 유현성이 툭 내뱉었다.
“너넨 뭐냐?”
* * *
“아저씨, 대체 우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딱히 아무 짓도? 오히려 일을 벌인 건 너희들 같은데?”
“그, 그게…….”
고개를 숙인 소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옆에 있던 녀석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고.
“설명이 필요하지 않나?”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서로 주섬주섬 시선을 마주친 끝에 나온 말은 이거였다.
“배고파서요.”
정말 심플하네.
두 오누이는 진심으로 배가 고팠다.
그런 상황에서 며칠 내내 라면 끓이는 냄새를 강제로 맡아야 했으니, 눈이 돌아가는 게 당연했던 것.
“흐엥…… 참으려고 했는데…… 며칠 동안 한 끼도 못 먹었어요!”
“그렇다고 사람을 습격하면 쓰나.”
“그냥 위협해서 쫓아내려고만 했어요…… 다들 도망치면 라면만 먹고 가려고…….”
“그거 당하는 입장에선 기겁할 일인데?”
“그건, 그냥…… 진짜 해칠 의도는 없었다고요…….”
다소 맥이 빠지긴 했지만 확실히 그런 기운이 느껴지긴 했다.
무엇보다,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너희들 운 좋은 줄 알아. 다른 나쁜 놈 같았으면 바로 튀겨 버렸을 거야.”
“히익!”
주로 대답하는 누나 쪽이 호랑이 임혜리, 동생 쪽이 늑대 임수원이었다.
특히 임수원은 겁이 많은지 가벼운 농담에도 화들짝 놀라더라.
진짜 내가 잡아먹을 줄 알았던 모양인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실 늑대 고기는 맛없어.”
“그, 그러지 마세요…….”
임수원의 큰 눈동자에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춥고 배고픈 건 정말 서러운 거다.
그걸 군대에서 뼈저리게 경험했으니 도와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이럴 때 양보하는 게 어른이겠지.
“에휴, 그래도 배고파서 왔으니 라면 한 그릇 정돈 내주마.”
어차피 라면은 박스째로 사 왔으니 부족하지 않았고, 가족을 제외한 객관적인 평가도 필요했으니까.
물을 올리고 재료를 꺼냈다.
탕탕탕탕!
지글지글.
달그락, 달그락.
그렇게 익숙하게 라면 끓일 재료를 준비하는데, 임혜리가 슬며시 다가왔다.
“……그런데 아저씨. 아까 진짜 어떻게 한 거예요? 우리 변신, 어지간해서 잘 안 풀리거든요. 몇 가지 주문도 포함된 건데, 그러니까 마법 방어 같은 거요.”
“그 방어가 허접했겠지.”
“그럴 리가 없는데. 그거 비스트 마스터급이 걸어준 건데요?”
“원래 모든 건 상대적인 거니까.”
“말도 안 돼요.”
“말 된다. 비스트 마스터건 뭐건 간에 드래곤 피어 앞에서는 배 까고 눕는 거야.”
임혜리의 눈이 임수원보다 더 커졌다.
“노, 농담이죠?”
“그래, 농담. 세상에 드래곤이 어디 있냐? 됐고, 라면이나 먹어.”
라면을 애들 앞에 두자, 마침 2층에서 현지가 내려왔다.
아무래도 너무 조용하다 보니 궁금해진 모양이다.
“부를 때까지 내려오지 말라고 했더니 왜 내려와?”
“엄마랑 현아랑 드라마 본다.”
“그래서?”
“난 맨날 울고불고 짜는 거 싫다.”
확실히 현지 성격을 생각하면 그게 맞다.
물론 다른 속셈도 있는 것 같았고.
얼굴에 깃든 장난기가 유독 드러났으니까.
“근데, 아까 그 고양이랑 강아지가 얘네 둘이가?”
“일단은. 자세한 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임혜리와 임수원은 라면을 앞에 두고도 입맛만 다셨다.
아무래도 갑자기 내려온 현지 때문에 긴장한 것 같았다.
“괜찮으니까 먹어. 부족하다 싶으면 더 끓여줄 테니까 미리 말하고.”
“두 개, 아니, 세 개요.”
이 새끼 급발진이네.
곧바로 말하는 걸 보니 부끄러움은 잊은 모양이군.
“그게 들어는 가나?”
“저 돌도 씹을 수 있어요.”
“그래, 한창 먹을 때긴 하지.”
“진짜 씹을 수 있는데요?”
피식 웃으며 가볍게 어깨를 토닥거려 주자 임수원이 헥헥 하고 혓바닥을 내밀었다.
이거…… 진짜 개 아냐?
그때 현지가 임수원의 왼손을 잡았다.
“너, 변신 한번 해봐.”
* * *
유현성은 고민에 빠졌다.
임수원이 진짜 사람인지 개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으니까.
“라면 정말 맛있어요. 베이컨도 많이 안 짜고, 계란프라이도 좋았어요. 송송 썬 파도 깔끔했고요, 당근도 적당히 볶아서 식감이 아삭하더라고요.”
미세하게나마 맛과 식감을 다 구별하더라.
그러면서 여러 가지를 줄줄이 이야기하는데, 무슨 미슐랭 평가를 받는 줄 알았다.
확실히 탐나는 능력이었다.
특히 활용만 잘하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을 것도 같고.
그건 미각만 섬세하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향을 구분할 수 있는 후각이 더해져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니까.
무엇보다…….
라면 세 그릇을 뚝딱 해치운 임수원이 배가 부른지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때, 현지가 옆에 앉으며 왼손을 내밀었다.
“손.”
텁!
수초간 정적이 흘렀다.
직후, 임수원은 당황해하며 다급히 손을 뺐다.
얼굴까지 시뻘게진 걸 보니 의식하고 한 행동이 아닌 것 같았다.
‘본능이냐…….’
아무래도 아직 동화 과정이 진행되는 중인 것 같았다. 그게 일부 괴수화의 특질이기도 하니까.
“흐흥, 확실히 고민이 되네.”
현지가 장난스럽게 웃고, 임수원은 어쩔 줄 몰라 하고, 그걸 보며 임혜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광경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늘 처음 봤는데도, 의외로 잘 어울렸으니까.
애들 밥 먹이면서 들은 히스토리를 요약하면, 둘은 고아원 출신이었다.
아카데미 교관의 눈에 띄어 입학은 했는데 개화하고 나니 무능력자에 가까웠던 경우.
둘의 능력은 단순한 변신이 전부.
인간으로써의 전투력이야 당연히 바닥이지만, 괴수화 이후에도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소문이 다 퍼졌으니 헌터 관련 쪽 취업은 불가.
결국 임혜리는 동생이 졸업할 때까지 알바로 버틸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차질이 생겼다.
알바 하던 편의점에서 보름 전에 잘렸단다. 각성자라는 사실을 들키는 바람에 사장이 내보냈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각성자는 위협적인 존재였다.
수시로 이래저래 지시를 내려야 하는 사장 입장에서는 당연히 껄끄러울 수밖에.
“물어보자. 돈도 없고, 동생은 기숙사비도 못 내서 아카데미를 나왔다면, 대체 어디서 사는 거야?”
“여기 아래 적당한 빈집에요.”
주민등록도 되지 않는 무허가 건물.
애초에 주인이 버리고 간 집이니 사는 거야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기본이 되는 수도,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씻는 건 눈치껏 요령껏 하는 거죠. 먹는 건 알바하면서 조금씩 챙겨 갔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니까요.”
조금씩 모아놓은 돈도 얼마 전 임수원의 마지막 학기 등록금으로 냈단다.
하필 그 직후 잘렸고.
물론 말하지 않아도 대충은 짐작이 됐다.
장학생이 아닌 이상, 아카데미 학비는 더럽게 비싸다.
그 외에도 들어가는 돈들이 적지 않으니 알바비로는 부족할 수밖에.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는지 알바 잘 안 구해지더라고요. 나 진짜 일 잘하는데.”
의외로 씩씩하게 말하는 게 조금 기특해 보였다.
반대로 임수원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금방이라도 울먹일 것 같았다.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이겠지.
사연을 들은 현지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오빠, 되나?”
“아마 되긴 될 거다.”
“그럼 난 개집 하나 알아보면 되겠네.”
얘가 또 선을 쎄게 넘네.
물론 현지가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거의 가족밖에 없었다.
저건 나름 뭔가의 타협에 가까운 발언인 거다.
당연하게도, 임혜리와 임수원은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말똥말똥 바라보았다.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 나랑 일해보지 않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