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1화 (11/156)

11화

난 직감이 좋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틀린 경우가 적다고 하는 게 맞겠다.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진 감각이 바로 그것이니까.

그 덕에 무수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그리고, 그 직감이 말했다.

이 둘을 붙잡으라고.

“시급 만 원…… 에, 숙식 제공.”

뭔가 표정이 미묘해서 옵션을 붙였다.

그럼에도 임혜리와 임수원은 멍한 얼굴이었다.

결국 현지가 임수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빈집에서 지낸다면서? 그러지 말고 여기서 살아.”

“예?”

“그, 그래도 돼요?”

“어차피 집은 넓으니까.”

아무래도 현지는 임수원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물론 사람으로 보는 게 아니란 것이 문제지.

어쨌든 다들 날 보고 있으니 결론을 내려야겠지?

“그래. 여기 1층은 카페 크기고, 2층도 그만큼이거든. 혼자 쓰기에는 넓어. 가끔 우리 강 여사님과 동생들이 와도 주로 거실만 쓰니까 방도 두 개나 남아돌고.”

일단 붙잡아 놓자.

그렇게 지내다 정 불편하면 근처에 세라도 하나 얻어주면 되겠지.

그런 생각으로 다시 물었다.

“어때?”

“조, 좋아요.”

“개처럼 충성하겠습니다.”

“그건 쫌…….”

순간이지만, 임수원은 진짜 그럴 것 같아 섬뜩했다.

“가서 짐 챙겨 오고,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그리고 현지 니가 좀 도와라.”

“알았다. 도.”

“뭘?”

“카드.”

“헐.”

임혜리가 여자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그렇게 카드를 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니 예상보다 반응이 격렬했다.

특히 임수원은 너무 좋았는지 연신 감사합니다, 하다가 갑자기 내 얼굴을 핥으려 달려들었다.

“앉아!”

털썩.

임수원은 아까와 다르게 부끄러운 감정이 사라진 모양이었다.

오히려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현지를 바라볼 뿐.

황당해하는 임혜리를 옆에다 두고 현지는 승자의 웃음을 내보였다.

사실 이런 부분이 불안했다.

임혜리는 최소한의 자각은 있는 것 같았지만, 임수원은 아니었다. 게다가 괴수화가 강제로 풀린 영향 때문인지 본능적인 부분을 여전히 감추지 못했다.

뭐, 그래도 이런 거야 차차 고치면 되고…….

오히려 저렇게까지 다룰 수 있는 현지가 더 신기할 따름이다.

어쨌든, 최저 임금 더하기 숙식 제공.

계약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사실 조금 급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결국 난 내 직감을 믿기로 했다.

지금껏 손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난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자! 이제 움직이자고.”

* * *

흐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두 녀석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자다 일어났는데, 어쩐지 충족감이 느껴졌다.

강 여사한테 가게를 받겠다고 한 이후 처음으로 차오르는 감정이었다.

회복이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두 녀석에게 좀 더 집중하기로 했다.

-예?

두 번이나 설명했음에도, 이상도는 이해 못 했다.

“이상도 중사-”

-상사 진급했습니다.

“이상도!”

-진급했다니까요?

“이 새……!”

-옙! 말씀하십시오.

말이 짧아져야 빠릿빠릿해지는 놈이었다.

솔직히 연락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

결국 아쉬운 사람이 참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우리 피곤하게 살지 말자!”

-저도 그렇습니다.

“됐고, 어차피 말로는 이해 못 할 것 같으니까 간단하게 톡으로 보낼 거야. 필요한 서류 확인하고 이쪽으로 신고해 놓고…….”

원래라면 임혜리가 동생과 함께 이쪽으로 전입 신고하면 된다. 임수원이 미성년자이기에 누나인 임혜리가 보호자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저 단순한 전입신고에 불과했다.

하지만 내가 정부와 계약한 이상 동거인에 대한 보고는 필수였다.

-조장님, 그런데 이건 무슨 케이스 입니까? 설마 전역하고 열흘도 안 됐는데 벌써 사고…….

“죽는다!”

-아, 아닙니다.

“후우, 코드 00. 흐음…… -F2로 등록해. 추가 기록은 G.O+ 정도로.”

-흐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멍청한 이상도 역시 바로 납득을 했다.

코드 00는 내 식별 번호, -F는 가족이 아닌 동거인, 뒤에 붙는 숫자 2는 분류 번호였다.

추가 기록은 게이트 사태로 인한 상실자란 의미.

6년 전, 그 일련의 사고가 터지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가족을 잃은 이들도 부지기수.

고아들 역시 많았으니 딱히 특별하게 보지는 않겠지.

그러니 임혜리, 임수원의 동거인 등록은 시민 번호만 보내면 자동으로 처리될 것이다.

“우선 등록하고, 청에는 나중에 보고해.”

-그래야 합니까?

“너, 내 얼굴 또 보고 싶냐?”

-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럼 끊는다!”

-자, 잠시만요. EX2 First 쪽에서 긴급…….

뚜뚜뚜뚜-

그게 이상도가 들은 마지막 소리였다.

* * *

“우와……!”

진심으로 감탄이 나왔다.

곽준열과 인부들은, 바깥으로 먼지가 날리지 말라고 쳐놓은 가림막을 걷어냈다.

곧, 행복 분식의 전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 괜…….”

“와! 직이네!”

현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말을 잘라 버렸다.

거기에 현아까지 합세해 호들갑을 떠니 괜히 나서기가 머쓱해졌다.

“우리 강 여사님은 어떠십니까?”

“어? 어어~ 예쁘긴 예쁘네.”

다소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강 여사는 잠시 멍하게 서 있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예쁘긴 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색상으로 가게 전면이 칠해져 있었으니까.

그때 커다란 곰이 슬쩍 다가와 옆구리를 툭 쳤다.

바로 곽준열이었다.

“어떠냐?”

“아, 생각한 것보다 잘 나왔는데요.”

“큭큭. 내가 힘 좀 썼다. 그러니 그런 반응이 나와야 정상이지. 와, 진짜 내가 저거 톤 잡는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곽준열이 자화자찬을 했지만, 오히려 칭찬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행복 분식의 전면은 파란색이었다.

어두운 느낌은 있었지만 탁하진 않았고, 그저 파란 하늘색을 짙게 여러 번 덧바른 것 같았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바닥에서부터 간판이 있는 위까지 같은 색은 하나도 없더라.

“진짜 어떻게 한 거예요?”

“그게 기술이고, 노하우지. 그러니까 어떻게 한 거냐면…….”

메인 컬러는 파란색이었다.

저 유럽의 유명한, 이케 이케 조립해서 쓰라는 DIY 가구 회사와 비슷한 톤이란다.

그다음, 허리 아래서부터는 조금씩 초록색을 섞어서 가로로 칠하는데 그걸 한 뼘 단위마다 색상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칠하면 발목 즈음에 이르러서 파란색과 초록색의 비율이 같게 된다나.

그 미묘한 변화는 단일 톤의 벽이 가지는 답답함을 가시게 했다.

“제주도 바다가 거의 에메랄드 초록빛이잖아. 페인트라 그렇게 투명하게는 못하고, 또 실외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 고민 끝에 이 정도에서 합의 봤지.”

“아! 그렇군요. 생각보다 근사하게 나왔네요. 마음에 들어요.”

“천장도 마찬가지긴 한데, 조금 다른 게 있어.”

마치 계속 물어봐 달라는 양, 곽준열의 히죽 웃은 뒤 뜸을 들였다.

“어떻게 한 거…….”

“반대로 파란색에 보라색을 조금씩 섞는 거지. 대신 한 뼘이 아닌 두 뼘 간격으로 칠한 거야. 그럼 제일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서는 남색에 가깝게 되는 거지.”

막상 보니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환하게 빛나는 파랑색이라고 할까, 딱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위에는 다 같은 색이 아닌가요?”

“그건 빛의 방향 때문인데, 가게 전면이 거의 남향이더라고. 햇볕에 따라 미묘한 감각을 건드리기 위해…….”

괜히 물었다 싶었다.

동시에 머리도 아파왔다.

솔직히 그라데이션이란 말까지는 이해하겠다.

층층이 바르는데 경계가 티가 안 나게, 부드럽게 뭐 그런 의미지.

문제는 이후였다.

페인트의 성분에 따라 빛이 어쩌고저쩌고, 볕의 반사와 바닥 난반사와 뭐가 이러니저러니 하는데…….

왜 사람들이 자칭 전문가라면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들을 피곤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결론!

겁나게 예쁘게 잘 나왔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개고생을 했다.

“아하하, 충분히 이해했어요. 삼촌 정말 잘했어요. 진짜 부산 시내 어딜 돌아봐도 이렇게 멋진 가게는 없을 것 같아요. 대단하네요.”

쌍따봉을 날리며 계속 칭찬 러시를 퍼붓자 결국 곽준열도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었다.

덤으로 이어지던 설명도 사그라졌고.

하지만 역시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했던 행복 분식은, 리모델링으로 재탄생했다.

외벽 색상이 달라진 걸 떠나 완전히 새로운 가게처럼 다가온 거다.

특히 출입구 옆, 오픈 주방 옆의 창문은 내가 요구한 사항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일단 日자 형식으로 된 새시는 무척 크고 시원시원했다.

거의 가로 2m, 세로가 3m나 되어 보였다.

위로 밀어 올리면 주문도 받고, 바로 거기서 바로 포장 판매까지 가능할 정도였던 것이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바로 간판이었다.

[행. 복. 분. 식.]

그 네 글자는 거의 흰색에 가까운 두꺼운 아크릴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묘하게도 주황색 빛을 띠었다.

또, 글자 아래 U 자가 널찍이 박혀 있어 마치 스마일처럼 웃는 그림 같기도 했다.

“저게 입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영어 ‘You’를 심볼로 만들어 넣은 거거든. 전에도 말했지만…….”

고막도 힘든지 자동으로 곽준열의 목소리를 차단하더라.

사실 아이디어는 내가 주긴 했지만 그걸 저렇게 멋들어지게까지 해줄지는 몰랐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분식.

입체 글자가 딱 그런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진짜 기깔 나게 뽑히긴 했…… 악!”

현지가 파닥파닥 뛰면서 손으로 등짝을 문지르려 했다.

하지만 동생들의 오랜 속 썩임에 강 여사의 등짝 스파이크는 이미 만렙이었다. 손이 닿기 어려운 절묘한 위치라 통증을 덜기 위한 꼼수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지지배야! 좀 적당히 호들갑 떨어!”

“아잉, 왜 나만 가지고 그래.”

“다 너만 쳐다보니 그렇지!”

그제야 현지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했다.

좋다고 방방 뛰면서 가게 좌우를 미친 듯이 돌아다녔으니, 뉘 집 자식이 병(?)에 걸렸나 하고 모두가 쳐다본 거다.

뻘쭘해진 현지는 마이크 잡듯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큼큼. 이제 안으로 들어가죠.”

* * *

“우와우~”

내부로 들어서자 환호성이 나왔다.

일단 벽 전체가 파란색 톤이었다. 그런데 LED 전등에서 나오는 빛 때문인지 더욱 밝게 보였고, 신비롭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이건 밖이랑 같은 색에 Harbor blue 펄 페인트를 소량 섞어서 칠한 거다. 이름 그대로 반짝이는 항구의 바다 색상이라고 볼 수 있어.”

설명을 들었지만 모르겠고.

하여간 조명 때문인지 빛 알갱이 같은 게 뿌려진 느낌이랄까.

그냥 표현을 하자면, 무척 고급스럽게 보였다.

바닥 역시 전에 이야기한 대로 흰색이었는데, 뭔 짓을 한 건지 개미도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반짝했다.

“진짜 청소할 맛이 나는 바닥이네요.”

“그야 당연하지. 이건…….”

이젠 귀가 자동으로 음소거 모드에 들어갔다.

영화는 감상해야 맛이지, 강의 들으며 보는 게 아니니까.

그렇게 둘러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시끌시끌해야 하건만 의외로 주변이 조용했던 거다.

강 여사와 현지, 현아가 멈춘 곳은 오픈 주방 옆, 정확히 말하면 홀의 좌측 벽과 맞닿은 부분.

거기에 딱 경계를 나눈 것처럼 커다란 나무판이 약간 비스듬하게 붙어 있었다.

그저 오래된 나무판.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그게 뭔지 알았다.

중심이 손바닥 크기로 파여서 용도가 다한 물건.

그만큼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이제는 주인을 잃어버린 ‘도마’였다.

“아들.”

“예, 강 여사님.”

“부탁 하나만 해도 돼?”

평소의 강은하 여사와 다른 분위기에, 유현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묘한 표정으로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 우리 가족사진 걸고 싶어.”

강 여사의 말에 다들 대답이 없었다.

그저 물끄러미 나무 도마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뿐.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다들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그리운 것이다.

아버지가.

* * *

“우리 강 여사님. 그렇게 하죠.”

“괜찮겠어?”

사실 리모델링을 진행하면서 조금의 아쉬움과 미련 같은 것이 남기는 했다.

듣기로 처음 가게를 얻었을 때, 아버지는 돈이 넉넉하지 않았다.

결국 직접 시멘트를 사 와 벽의 갈라진 부분을 미장하고, 어머니와 함께 페인트를 칠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벽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긴 했지만 만족스러웠단다.

이후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아버지는 틈틈이 조금씩 손보셨다고 했다.

지인들의 도움으로 탁자를 바꾸고, 낡은 의자에 못질을 하고, 얻어온 중고 판넬로 창고를 짓고, 조금씩 돈이 모일 때마다 수리를 하고.

그러다 덩어리가 부족할 때면, 단골 고물상 아저씨가 툭하니 뭔가를 던져놓기도 했다.

이 행복 분식은 그렇게 수명을 이어나갔다.

그런 흔적들이 고스란히 사라진다고 하니, 어찌 아쉬움이 없겠는가.

강 여사가 가게 들어서고 나서 말을 잊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일 터였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흔적이 남았으니 묘한 감정까지 들었던 것이고.

“안 그래도 리모델링하면서 가게를 너무 바꾸는 것 같았는데…… 전 좋네요.”

솔직한 대답에 현지도 현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강 여사가 말했다.

“고마워, 아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