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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2화 (12/156)

12화

“확실히 잘된 것 같은데요.”

강 여사와 현지, 현아는 이 가게의 메인이 되는 그림에 한참이나 빠져 있다가, 새로 지은 화장실에서 탄성을 터트렸다.

쪼그려 앉아서 봐야 했던 구식 화장실이 최신식으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한쪽에는 커튼만 치면 샤워까지 가능할 정도로 공간을 만들어놔서 활용성도 괜찮아 보였다.

마지막으로 창고 안쪽의 계단을 통해 들어간 2층 다락방에서는 환호까지 했다.

넓은 복층 원룸 2층 정도의 크기였는데 남쪽으로 큰 창까지 달려 있어 개방감도 훌륭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게 밖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유일하게 불편한 건, 곽준열의 수다였다.

무슨 미술관 큐레이터도 아니면서 설명에 설명을 이어 자화자찬이 극찬에 이르니 피로가 가중되었던 것이다.

“이제 주방기구 들여놓고 마무리만 하면 끝납니다.”

곽준열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지가 내 팔을 붙잡았다.

“다 끝났으면 우린 간다.”

“어? 어…… 그래.”

돌변한 태세에 당황해서 어, 어 그러는데, 현지는 잽싸게 강 여사와 현아를 데리고 나갔다.

하긴 원체 갑갑한 걸 싫어하는 성격인 녀석이다. 곽준열의 과도한 친절 해석에 질린 거겠지.

그렇게 폭풍 같은 반응을 보였던 세 여자가 사라지고 나서야 고요가 찾아왔다.

난 그제야 궁금한 걸 묻기로 했다.

“삼촌, 왜 저 나무 도마가 벽에 있는 거예요?”

“아! 그게…… 인테리어는 세련되게 나왔는데, 이 가게만의 맛이 없더라고. 그래서 철거 전에 쓸 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빼놨거든. 그때 이야기한 것 같은데?”

분명 적당한 걸 찾으면 재활용해도 되냐고 묻기는 했었다.

당연히 내 대답은 알아서 하라는 거였고.

하지만, 그게 아버지의 도마일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저거, 이 층 다락방 구석에서 찾은 거야. 신문지로 몇 겹이나 감겨 있기에 뭔가 싶었거든. 뜯어보니 그냥 나무판이더라고.”

“이거 도마예요.”

“그래? 근데…… 일반적인 사이즈는 아니지 않나?”

그 말이 맞기는 했다.

저 커다란 나무 도마에는 사연이 있었다.

분식집을 차리기 전.

아버지는 친했던 상사를 통해 귀중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그분의 지인이 음식점을 했는데, 잠깐이라면 일손도 거들 겸 배우고 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 것이다.

아버지는 거기서 한 달 정도를 일했다.

거기 사장도 아버지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아쉽게도 계속 고용할 수 없었다.

거긴 이름난 고급 일식집이었으니까.

제일 막내 보조조차 일식 자격증을 가졌고, 심지어 3년 차 경력자였다.

그러니 직장 생활 하던 아버지가 쉬이 주방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는 거다.

이른바 보이지 않는 텃세라는 거겠지.

그렇게 한 달을 채우고, 그만둘 때 받은 선물이 이 나무 도마였다.

거의 일식이나, 전문 초밥집에서나 쓸 것 같은 크기였던 게 그래서였다.

두께도 그랬고, 무게 역시 상당했으니 충분히 착각할 만도 했지.

“뒤져봤는데 그다지 쓸 만한 게 없더라고. 전자 제품들은 고장 났고, 10년도 넘은 액정 깨진 폴더 폰에…… 개인 물품 같은 건 보이지 않더라.”

이미 자잘한 건 강 여사가 다 정리한 걸로 들었다.

혼자 치우기 힘들어 놔둔 것들과 별 의미 없는 것들만 남은 거겠지.

“근데 이건 딱 보는 순간 느낌이 오더라고. 그래서 따로 빼놓은 거지. 근데 도마일 줄은 진짜 몰랐어.”

곽준열은 그렇게 말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곧 두 손을 올려 엄지와 검지로 네모를 만든 다음, 이쪽 벽면 전체를 한 번에 살핀 뒤 팔을 내렸다.

원래라면 기둥으로 쓰던 나무들로 살려볼까 했단다.

하지만 활용하기 어려울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분식집이라 잦은 습기와 열기로 인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이걸 찾은 거지.”

곽준열은 손가락으로 도마를 살짝 두드렸다.

“새것에 옛것을 더해 고유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그걸 아이덴티티라고 한다.”

독자성, 고유성, 남들과는 다른 우리만의 정체성.

거의 그런 의미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저 나무 도마가 만들어낸 세월이, 이 행복 분식이 그저 그런 분식집과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거지. 그 옆에 이 정도 사이즈의 액자라면 두세 개 정도 붙여도 괜찮을 거야. 그리고 또 하나.”

곽준열은 프로였다.

폰을 꺼내 행복 분식 폴더 내의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그 안에 의외의 것이 있었다.

이전의 행복 분식, 그걸 정면에서 찍은 시진이었다. 심지어 원래의 간판 글자가 떨어지기도 전의 모습으로.

“우리 같은 사람은 자료가 재산이니까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찍어두거든. 이것도 사이즈에 맞게 출력해 줄 테니까 같이 붙이면 괜찮을 거야.”

곽준열은 액자 사이즈와 붙이는 위치까지 지정해서 벽에 표시까지 해줬다.

확실히 전문가에 능력자였다.

덕순 할머니의 소개, 거기에 아버지와의 인연과 내 직감이 더해져서 믿고 맡겼더니 행복 분식이 새롭게 탈바꿈했다.

소소한 하나하나가 다 의미를 가질 정도로 완벽하게.

다만.

“오픈 주방과 벽의 비율이 2 대 1.7 정도니까, 도마를 중심으로 우측으로 1.6까지는 잡아도…….”

뜻 모를 설명을 한참이나 이어갈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사람이 정말 기가 질릴 정도로…….

* * *

“됐어요! 완벽해요!”

임수원의 환호성이 약간은 가식으로 들렸다.

역시나 팔짱을 끼고 말없이 쳐다보자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 이어졌다.

더 황당한 건 지금은 멀쩡한 인간의 모습인데도 귀까지 살짝 안으로 접혔다는 것.

너무 기를 죽이지 않게 일단 틈을 두기로 했다.

“일단 나도 맛 한 번 볼게.”

젓가락을 들어 면과 고명을 접시에 덜었다. 거기에 국물 두어 숟가락 넣은 다음 단숨에 들이켰다.

후루룹, 후루루룹.

몇 번 오물거리며 집중하자 익숙하면서도 미묘한 복잡함이 미각을 자극했다.

베이컨의 짭쪼롬함과 기름기를 파의 아삭함과 깔끔함으로 잡았다. 면발이야 일반 라면하고 차이가 없었지만 국물은 감칠맛이 더 강해졌다.

한 젓가락을 더 들어서 맛을 보고 나니, 속이 울렁거렸다.

오늘 맛본 라면만 스무 개다.

확실히 미각도 힘들어할 만하지.

심지어 임혜리는 열두 개째에 헛구역질까지 할 정도였다.

사실, 한 젓가락씩만 맛본다지만 갈수록 맛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속이 더부룩했고 느끼했으며 물로 입가심을 해도 여전히 향은 남았다.

특히나 후각이 예민한 임수원이라면 더욱 그렇겠지.

“이건 몇 점 정도로 할……?”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임수원이 손가락 여덟 개를 들었다.

그래도 기준점은 넘는 맛이라는 거구만.

확실히 내가 너무 욕심 부리는 건가 싶었다.

솔직히 라면 대부분은 내가 정한 기준을 넘었다.

간도 적당했고 고명도 넉넉했으며, 가장 중요한 국물 맛이 색달랐다.

다만 맛의 중심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일단은 스프를 다 쓴다는 전제하에 육수의 농도를 잡아야 했다.

졸이고 섞어서 맛을 보고, 물을 타서 묽게 만든 뒤 다시 확인하고 하는 과정들을 수십 번 이상 거쳤다.

그렇게 육수 베이스는 완성.

여기에 올라가는 여러 고명의 조화가 더해졌다.

메인은 역시 고기를 대체할 베이컨이었다.

이 짭짤한 녀석을 어느 정도까지 바삭하게 만들 것이냐, 또 여기에 뭘 어떻게 올려야 되느냐를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계란프라이는, 반숙으로 삶은 계란으로 대체되었다. 흔히들 온천 계란이라 불리는 녀석의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 외에도 야채를 어느 정도 넣을 것이냐, 색감은 어떻게 할 것이냐 등등으로 며칠을 고민했다.

일단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해보고 싶어서.

오픈이 바로 코앞에 이르렀으니까.

“그런데 혜리는 괜찮아?”

“예…… 더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아냐. 내가 정리할 테니까 올라가서 쉬어.”

일단, 남은 라면을 개수대에 붓고 주변을 정리했다.

그때 임수원이 나섰다.

“저, 저!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됐고, 올라가서 먼저 씻고 내일 학교 갈 준비해.”

“괜찮아요. 도와드릴게요.”

임수원이 소매까지 걷으며 다가서자, 난 일부러 인상을 찌푸렸다.

보통 유현지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만! 야! 쓰읍!

이 삼연타면 임수원은 깨갱이었다.

여기에 임혜리까지 동조하면 진짜 순한 양, 아니, 개가 되는 거다.

그런데, 유독 유현성에게만은 어리광을 부렸다.

그 이유가 짐작 가지 않는 것은 아닌데, 가게 오픈이 중요하니 일단 미뤄두기로 했다.

어차피 천천히 훈련, 아니…… 조련에 들어가면 고쳐질 거라 봤으니까.

“헤헤.”

임수원이 웃으며 싱크대에 바짝 붙었다.

진짜 꼬리라도 났으면 마구 흔들어대고 있었겠지.

“어휴.”

결국 이번에도 그 어리광에 지고 말았다.

“그럼 설거지만 해. 나머지는 내가 치울 테니까.”

“예!”

“혜리는 내일도 바쁠 테니까 올라가서 쉬고.”

잠시 주저하던 임혜리는 결국 비척대며 일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샤워해야 한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이게 우리가 정한 규칙이었다.

아무래도 여자가 임혜리 혼자다 보니 먼저 씻는 게 마음이 편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물 속성 목욕냥이 스타일이라는 거?

그렇게 임수원이 설거지를 하고, 그 그릇을 내가 닦아 선반에 정리해 넣었다.

“저기, 형…….”

“어? 왜. 무슨 할 말 있어?”

임수원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코가 벌렁거렸고 귀도 쫑긋 서는 것도 같았다.

아무래도 뭔가를 경계하고 있는 느낌인데.

“무슨 일인데. 말해, 편하게.”

“그게…… 아카데미에서요.”

“어.”

“형을 좀 모셔오라고 해서요.”

“그래…… 뭐. 가지. 근데 왜?”

대수롭지 않게 마지막 접시를 닦는데,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렸다.

“학부모 상담요.”

* * *

“이상도. 이 ㅆ…….”

아니지.

아무리 열받아도 일요일 밤에 전화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니, 아닌 건 재껴둬야지!

어차피 근무지에는 없을 시간이니, 바로 개인 폰으로 연결했다.

뚜뚜뚜뚜-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으으으, 이……!!”

위에 애들이 있으니 억지로 화를 삼켰다.

하지만 머리에 열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일단 바깥으로 나왔다.

사실 임수원의 말은 별거 없었다.

곧 겨울이니 이제 졸업까지는 고작 서너 달. 방학을 제외하면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문제는 아카데미가 학생들의 취업에 민감하다는 점이었다.

최대한 한 명이라도 더, 보다 좋은 회사에 넣는 것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아…… 이 나이에 학부모이라니.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심정적으로 타격이 크네.”

결혼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도 못 해 봤다.

아니, 애초에 그럴 시간도 없었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군대 갔다가 전역 몇 달을 남기고 게이트가 터지면서 각성을 했으니까.

이후에는 각성자 부대 소속으로 특수 임무를 뛰었다.

아마 공식 기록상 나보다 투입 숫자가 더 많은 군인은 없을 거다.

거의 모든 게이트를 다 돌았다고 보면 될 테니까.

잠시 과거를 돌아보니 한숨이 나왔다.

“모쏠한테 학부모…….”

그때, 전화가 울렸다.

자신이 익히 아는 그곳의 전화였다.

-조장님, 호출하셨습니까?

“너, 번호 바꿨냐?”

-업무상 돌 때, 없는 번호로 나오도록 작업한 겁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생각해 보니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네.

물론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방금 전의 일을 설명했다.

그러자 갑자기 이 녀석의 목소리가 이전과 달라졌다.

어딘가 씩씩해진 느낌이랄까.

-게이트 고아 중에 각성 미성년자의 경우, 최우선으로 국가 등록 각성자 중 희망자가 보호자가 됩니다.

“그래서?”

-조장님이 신청하셨으니 당연히 보호자가 조장님으로 바뀐 거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래,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 이전까지 보호자는 누구였는데?”

-일단 보육원에서 시작해서, 아카데미 관할로 넘어갔다가 누나로 되어 있네요. 어…… 근데 임혜리 역시 조장님이 보호자네요.

“그야 그렇지.”

-이거, 상위 권한 문제라 자동 소속된 모양입니다. 조장님 코드가 아직 살아 있어서 생긴 문젭니다.

윽! 순간 뒤통수가 땡겨 왔다.

특수 신분이라 생긴 문제라니.

물론 상황은 이해가 되었다.

자신은 인근에 게이트가 갑자기 생기면 자동 투입이었다.

또 군인과 각성자, 헌터들이 모여들게 될 테니 통제가 필요했다.

그럼 그걸 누가 하느냐?

당연히 권한 높은 사람이 하는 거다.

그리고 내 경우…… 권한이 아주아주 높았다.

“……그거 말소 안 됐나?”

-말소시켜 드립니까? 그럼 민간 전환되면서 자동으로 정보 공개…….

“스탑!”

-예. 외통수라는 겁니다. 고로 이 경우에는 제 잘못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학부모 상담하러 직. 접. 가시면 됩니다. 모쏠 조장님.

“이 ㅅ…… 너부터 상담하러 가주…….”

뚜뚜뚜뚜뚜-

이상도가 통화를 끊어 버렸다.

순간 빡침이 올라왔지만, 참았다.

녀석의 말대로 이건 외통수였다.

더한 귀찮음을 피하기 위한 작은 귀찮음이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이 새끼…… 언젠간 갈아 버리고 말 거다.

* * *

쾅쾅쾅쾅!!

분노를 담은 절구질에 마늘이 처참히 다져졌다.

탕탕탕탕!!!

파가 썰리고, 양파가 뿌려졌다.

스악스악스악-

당근이 채칼을 스치며 줄기줄기 갈가리 흐트러졌다.

“고명 준비는 끝났고.”

이번에는 가장 중요한 육수였다.

후루룹, 후룹.

쩝쩝.

역시나 준비한 대로의 맛이 나왔다.

육수를 약간 넉넉하게 잡고 끓이면 원하는 라면 국물 맛이 나올 거다.

이후 난, 주방을 꼼꼼하게 점검했다.

그렇게 한 바퀴 돌아본 뒤, 임혜리를 쳐다봤다.

얘도 단단히 준비를 한 건지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혜리야. 준비해.”

“예. 사장님!”

난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이제 오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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