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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3화 (13/156)

13화

행복 분식 임시 오픈.

하루 한정 라면, 50그릇만 판매합니다.

가격은 4.000원.

당분간은 점심 영업만 합니다.

곽준열이 서비스로 뽑아준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였다.

그걸 문 옆에 크게 걸었더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더라.

하긴, 가게 벽의 컬러부터가 이 동네에서 보기 힘든 색상이었으니 눈에 안 띄일 수가 없겠지.

“사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으음, 좀 오글거리는데. 다른 적당한 호칭은 없나? 이 나이에 사장님 소리 듣는 건 좀 그래.”

“보통은 부장님. 실장님으로 부르기도 한대요.”

“그건 더 늙어 보인다.”

“어차피 요즘 젊은 사람들도 창업 많이 하니까, 사장님 호칭도 괜찮을 걸요?”

혜리야 알바 경험이 있으니 사장님 소리가 쉽게 나왔지만, 듣는 입장에선 좀 그랬다.

실제로 제일 많이 불렸던 건, 야, 너, 인마로 시작해서 병장님, 조장님…… 등등이었으니까.

“익숙해지시면 괜찮아요. 요즘 개나 소나 사장님 소리 듣는데…….”

아니, 개는 니 동생이고.

가만, 이거 내가 개나 소라는 건가? 은근히 먹이는 건가?

그렇다기에는 혜리의 눈빛이 너무 맑았다.

“그래, 그냥 사장님이라 불러. 습관이 되면 괜찮겠지. 근데 뭐가 궁금한데?”

“라면 한 그릇 4,000원, 이거 너무 저렴한 거 아니에요? 들어간 재료 생각하면 많이 안 남는 것 같은데.”

아마 혜리 생각이 맞을 거다.

제일 저렴한 수입 파지 베이컨.

그것도 업소용으로 10㎏ 단가가 70,000원이 조금 넘었다. 물론 4, 50㎏ 이상을 구입했을 때 저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게 대충 한 그릇에 100g 전후. 그러니 베이컨만 원가에서 700원이 넘는 셈.

대패 삼겹살이 더 저렴하지만, 근처에 그걸로 만드는 유명 라멘집이 있었다. 거긴 한 그릇에 7,000원인데 따라해 봐야 짝퉁 소리만 듣겠지.

또 베이컨만의 특유의 기름 맛과 향, 짭쪼롬함이 있지 않는가.

여기에 육수 한 통 우리는 데 재료만 2만 원이 넘게 들어간다.

즉, 라면 한 그릇당 국물만 400원 꼴인 셈.

또, 야채 고명도 볶아서 올리고 온천 계란까지 더해지면 한 그릇 원가율이 50%가 넘는다.

전기세, 수도세, 혜리 인건비, 김치, 단무지까지 더하면 오히려 적자일지도.

“한 그릇 팔면 대략 1,000원 정도 남을 거야.”

“예? 그럼 50그릇 팔아봐야 5만 원 밖에 못 번다는 거잖아요.”

“맞아. 주5일, 한 달 평균 23일 잡으면 백만 원도 안 되지.”

“헐! 그럼 우린 뭐 먹고 살아요?”

“계속 그렇게 팔 건 아니니까. 지금은 임시 오픈으로 점심 단골부터 확보해 놓고, 충분히 손님들이 들어오면 그릇 수를 늘릴 거야.”

혼자 만들어도 하루 200그릇까지는 무리 없었다.

물론 브레이크 타임도 없고 저녁 늦게까지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체력 면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혜리가 서빙을 본다는 가정하에 점심 테이블 두 번 회전하고 저녁에 두 번만 해도 120~130 그릇은 나갈 거다.

무엇보다 저녁에는 개코가 오질 않는가.

이제 임수원도 나와 비슷하게 끓이니 저녁은 맡겨도 되겠지.

암, 그렇고말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도 주는데, 그 정도는 부려먹어도 괜찮을 거다.

“사장님, 왜 갑자기 음흉하게 웃어요?”

“엥? 내가?”

“막 갑자기 가격 올릴 것 같은 악덕 사장 느낌이 들어서요.”

“확실히 그 생각도 해보긴 했는데…….”

지금의 퀄리티라면 5,000원까진 무리가 없을 거다.

실제로 골목 꺾으면 나오는 유명 라멘집은 한 그릇당 무려 10,000원이었다.

5,000원이면 반값이니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보일 터.

물론 일본식 라멘과, 행복 분식의 라면은 엄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 역시도 충분히 인정하고, 인지했다.

일단 라멘은 자가 제면에 사골 육수, 두툼한 고기 고명, 그리고 재료의 퀄리티가 훨씬 좋았다.

조금 비싸지만 한 번씩 정도는 먹어볼 만하다는 것.

하지만 행복 분식의 라면은 베이컨 말고는 그리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어마어마한 강점이 있었으니, 호불호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내가 첫 음식으로 라면을 선택한 건 그래서였다.

엄연히 아버지가 운영했던 행복 분식의 시그니처 메뉴에 가깝기도 했고.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임시 오픈은 일종의 시험대야. 어디까지 어떻게 할 수 있느냐를 보는 거지. 그다음 상황에 맞게 조금씩 조절하면 돼.”

“그치만, 손님 안 오면 어떻게 해요?”

혜리가 울상을 짓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손을 움직여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줬다.

“다 알아봤어. 그리고 그건 네가 고민할 일이 아니란다.”

장사 전 상권 조사는 필수다.

이 부분에서 정태수의 조언이 있었는데, 요즘 이 동네가 아주 난리라고 했다.

-형, 딱 여기까지가 구역 안쪽이거든요. 근데 재개발이 무산됐어요.

싹 밀고 대규모로 지어야 하는데 건설사에서 부담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구역 안쪽이지만 거의 경계 부분이라 사고 한 번 터지면 다 박살 난다고, 그래서 땅주인들이 재건축으로 돌아선 거죠.

형도 아시잖아요. 이 동네 원룸, 투룸 수요가 제법 많다는 거.

그 결과, 오래된 식당들이 하나둘씩 없어지고 있다고 했다.

땅 주인들이 낡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 짓기를 원해서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분식집 뒤에도 건물 올리고 있었지?

-형, 조만간 여기 위쪽으로, 학교 앞까지 싹 밀릴지도 몰라요.

정태수의 조언은 여기까지였다.

그로 인해 상권이 어떻게 변하는지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식당이 줄고 인부가 늘어나면 아무래도 이전보다는 사람들이 북적이겠지.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요즘 정태수는 저녁마다 정신없이 바빴다. 평소보다 손님들이 늘었는데 졸업 이후를 대비해 받을 수 있을 만큼 받기로 해서였다.

덕분에 금치수랑 임민혁도 거의 살다시피 하게 된 것이고.

이거 내가 구박한 효과인가?

하여간 틈나는 대로 도와주고 있다고 하니 괜히 흐뭇하다.

“사장님!”

“어? 왜?”

“첫 손님 왔어요!”

오!

드디어 첫 손님이구나! 하면서 입구로 고개를 돌렸다.

아쉽게도, 아니었다.

* * *

“야 이 미친놈아!”

-상사 이상도.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화환!”

-아, 그거 제가 힘 좀 쓴 겁니다. 오늘 오픈 날이라 들어서 신경 써서 보냈습니다.

“어떻게 안 거냐?”

-안부차 어머님께 연락드렸더니 오늘 오픈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따지면 자신의 부관이나 마찬가지인 이상도였다.

당연히 휴가 때도 여러 번 데리고 다녔고, 가족들에게도 소개시켜 줬다.

강 여사는 그 나름의 싹싹함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런저런 걸 챙겨줬고, 이상도 역시 나를 대신해 종종 안부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뭐, 그래. 거기까지야 그럴 수 있지.

근데 이놈이 날 또 물 먹이네?

화환은 모두 네 개였다.

-조장님. 대박 나세요.

전우 대표 이영환.

-개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특군단, 군단장 강박수.

-망해라. 망해라. 아니, 망하지 마라.

부청장 고요환.

-진심으로!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주경호.

“하아…… 미친 새끼.”

그래…… 처음은 생사를 같이한 놈들이니 그렇다 치자.

두 번째도 나름 입이 무거운 삼촌이니 적당히 넘길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친구지만 하필 원수나 다름없는 놈이었고, 가능하면 몰랐으면 했다.

고환 새끼.

나중에는 이걸로 무지하게 놀려먹겠지.

문제는 마지막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아니, 어떤 미친 대통령이 분식집 개업에 화환을 보내냐고!

“너, 후우…… 나 물 먹이려고 한 거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솔직히 말해. 누가 어디까지 알고 있어?”

-딱 저분들까지만 아십니다.

“정말이지?”

-정말입니다. 마음 같아서야 특무부 장관부터 쫙 돌리고 싶은데 많이 참은 겁니다.

순간 두통이 치밀었다.

이 새끼 이거, 고의네. 고의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다들 그냥 웃고 넘어갈 건데요. 대통령이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동네 분식집에 화환을 보내겠습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잖아.”

-그쪽은 절대적으로 모르게 했습니다.

일단 심호흡을 했다.

확실히 녀석의 말대로, 이 화환들을 진짜로 믿는 사람은 없겠지.

“아하하하하!”

당장 혜리만 해도 빵 터져서 웃고 있었으니까.

“확실해?”

-예. 확실합니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렇다고 이걸 소각시키거나 바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무려, 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었으니까.

“번거로운 일 생기면 너부터 찾아간다!”

-그러시든가요. 아! 깜빡 잊은 게 있습니다.

“뭔데?”

-부청장님이 화환 앞에서, 크흠. 인증 샷 하나만 찍어서 보내달랍니다.

“야 이 미……!”

뚜뚜뚜뚜뚜~

이 새끼 또 끊었네?

혈압이 대기권 돌파할 기세로 치솟는 게 느껴졌다.

그때, 혜리가 다가와 툭 쳤다.

“사…… 큽, 파하하하하! 어우, 못 참…… 프하하하! 헤헤.”

애가 웃다가 사레가 걸렸나, 아니면 뇌에 브레이크가 걸렸나?

“하아, 큭…… 사장님. 이거, 이거 진짜 아니죠?”

“설마 진짜겠니?”

“역시. 친구들이 장난친 걸 거야. 그래. 그럴 리가 없지. 그럴 리가 없어.”

“그 표정은 뭐지?”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리는 걸 보니 억지로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감히 하늘 같은 사장님한테.”

꿀밤이라도 한 대 먹이려는데, 미리 눈치 깠는지 임혜리가 가게 안으로 잽싸게 도망쳤다.

하아.

절로 한숨이 나오는데.

“저기 아저씨. 여기 장사해요?”

“예? 아, 합니다. 들어오세요.”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돌아보니, 보기 드문 미인이 가볍게 웃고 있었다.

문제는 그 뒤에 보기 드문 덩치가 있었다는 거지만.

“자자, 첫 손님. 환영합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 * *

“자, 라면 두 그릇.”

“예!”

금세 뚝딱뚝딱 끓이자 혜리가 그걸 받아 서빙했다.

테이블에 놓인 두 개의 그릇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와, 예쁘다.”

“확실히 그렇군요.”

여자가 보기에도 보통 퀄리티가 아니었다.

가장 맛없는 라면의 대명사, 한강 라면.

얼핏 잘못 보면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큰 그릇 가득 라면과 국물, 고명이 꽉 찼다.

신기한 건, 그럼에도 맛이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고명들 때문인가?”

왼쪽에는 엄지손가락 크기의 베이컨 조각이 일고여덟 개 정도 보였고, 그 위쪽으로 잘게 썬 파들이 가득했다.

오른쪽에는 볶은 당근, 그 아래 삶은 달걀 하나가 자리했고, 바로 앞쪽은 쪽파가 뿌려졌다.

일단 그것만 봤을 때, 비주얼은 합격이었다.

아니,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분명히 그냥 라면을 넣는 걸 봤는데…… 왜 향이 다르지?”

“아마 육수를 쓴 것 같습니다.”

“고작 사천 원짜리 라면에 육수를 쓴다고?”

“일단 드셔보시죠.”

덩치 큰 사내는 그렇게 재촉한 다음, 젓가락으로 고명을 슬쩍 들쳐 냈다.

면은 딱 봐도 그냥 라면이었다.

주방에도 제품이 쌓여 있었으니 다른 걸 쓰지는 않을 터.

사내는 일단 숟가락으로 국물부터 떴다.

일단 매운 찐라면 그대로의 맛이…….

아니었다.

“확실히 육수입니다. 고기 계열은 아니고, 간간한 해물 계열입니다.”

“정말? 난 전혀 못 느끼겠는데?”

“밸런스를 잘 잡았습니다. 멸치가 40% 정도, 야채가 20% 정도 되겠습니다.”

“나머지는?”

“아무래도 건어물 계열 같습니다만,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흐음, 그럼 겹치…….”

“마저 먹고 이야기하지요.”

사내는 이후 말이 없이 라면을 음미했다.

정말 정성스럽게 면발 하나하나를 느끼겠다는 듯 신중히 말이다.

여자는 그런 사내를 보고 가볍게 웃더니 라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후루룹, 후루루룹.

면발이 입속으로 사라지고, 숟가락에 올린 고명과 국물이 그 뒤를 쫓았다.

“으음. 맛있기는 하네.”

“국물도 깔끔하고.”

“식감이 좋아.”

몇 번의 감탄사가 이어진 후, 여자는 화들짝 놀랐다.

“어머?”

순식간에 사라진 라면 한 그릇.

당황한 여자가 고개를 들자마자 사내와 눈을 마주쳤다.

아직 그의 그릇에는 라면이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즉, 정신 놓고 먹었다는 뜻.

“크흠, 큼…… 맛있네.”

“예. 상당한 퀄리티입니다. 이 가격은 확실히 무리수 같습니다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 그래.”

여자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주방을 쳐다봤다.

그러다 유현성과도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눈빛이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았다.

어때?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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