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4화 (14/156)

14화

화끈. 화끈.

이예지는 갑자기 달아오르는 얼굴을 양손으로 덮었다.

사실, 별 기대하지 않았다.

고작 4,000원짜리 라면.

그것도 단일 품목이다.

한마디로 이유가 없었다면 들르지 않았을 가게였다.

그런데,

그런데…….

라면 하나에 이렇게 집중할 줄 몰랐다.

아니, 그냥 모르겠다.

별것 아닌 건데, 이상하게 후루룹 먹게 되더라.

이게 정답이겠지.

“입맛은 정직한 겁니다.”

사내, 박종후의 말에 이예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아차 했지만.

“그냥 인정하십시오. 이건, 그러니까 MT 갔을 때 밤새 술 마시고, 아침에 남은 해물 넣고 그냥 막 끓인, 하지만 횟집에서 나오는 매운탕 라면의 경량화 버전에 가깝습니다.”

“그, 그래요?”

“왜, 흔히 말하길 먹다 남은 게 껍데기만 넣어서 우려도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진하지 않아도 개운한…… 하여간 그 밸런스가 잘 맞는 라면입니다.”

이예지는 국물까지 들이켜 버린 빈 그릇을 보다, 다시 박종후의 그릇을 쳐다봤다.

아까운지 음미하듯 숟가락으로 맛을 보고 있는데, 그조차도 탐나는 것이 아닌가.

“사실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라면이죠. 다만, 짠맛.”

그러면서 박종후는 한 조각 남은 베이컨을 들었다.

그걸 입안으로 가져가더니, 평소의 무표정함이 깨졌다.

“그리고 단맛.”

이번에는 숟가락으로 당근과 야채를 가득 담았다.

아삭아삭.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이예지의 귓가에는 아삭한 소리가 울렸다.

“이 단짠 단짠의 균형을 맞추는 건…….”

후루룹. 후룹.

실제로는 조용히 마셨지만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역시나, 그냥 라면입니다. 다만 아주 절묘하다는 거고요.”

박종후는 그렇게 말한 뒤, 두 손으로 그릇을 붙잡고는 나머지를 단번에 입속으로 직행시켰다.

“후우~ 하아~”

“아! 대체 뭐야!”

“그냥. 좋네요.”

박종후의 평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베이컨을 선택한 건 조금 의아했지만 나름 잘 어우러집니다. 오히려 순한 라면이었으면 이 맛이 안 살았을 테죠. 한마디로 강 대 강의 충돌이기는 한데…… 반숙란을 바로 가르느냐, 마느냐에 따라 여지가 있기는 합니다.”

“으음,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손님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죠. 초반에 반숙란을 갈라서 퍼지는 노른자와 국물을 섞으면 보다 부드럽게 먹을 수 있습니다.”

“뭐, 그런 부분은 인정!”

“뿐만이 아니라, 베이컨을 은근히 볶았습니다. 그것도 두 종류로요.”

“응?”

“아마 바짝 구운 베이컨으로 바삭한 식감을, 살짝 익히기만 한 건 면과 씹기 좋도록 부드럽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 결과 식감과 맛의 다양함을 노렸고요.”

이예지는 조금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박종후를 쳐다봤다.

자신은 전혀 그런 부분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아직도 맛의 충족감을 이어가려는 듯, 박종후는 오히려 눈을 감을 뿐이었다.

“아니…… 무슨 라면 하나에 그렇게 감상이 오케스트라야?”

“가격이 4,000원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이건 노벨상 감이죠.”

타박을 줬지만, 박종후의 평가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비록 사고(?)로 인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그의 미각은 대단했으니까.

문제는 뇌 용량이 아쉽다는 것.

“그래서?”

“아가씨께서 명함을 드려도 부족함이 없다는 겁니다. 이 정도 퀄리티를 유지한다는 가정이 붙기는 합니다만.”

이예지는 다시 주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젊은 사장인지 주방장인지가 이번에는 아예 활짝 웃고 있더라.

설마 소곤소곤 했던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일어나시죠.”

박종후가 권하자 이예지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릇이 깨끗했다.

라면도 그렇지만 김치도, 단무지도 깔끔하게 비웠고 오히려 양념통에 손을 안 댄 게 아쉬울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서빙 알바가 분명 설명했다.

옆에 다진 마늘하고 고춧가루, 통후추가 있으니 취향대로 넣어 드시라고.

하지만 그걸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훅 빠지고 말았다.

“으음. 확실히…… 다음에는…… 어?”

이예지는 다시 당황했다.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솟아 또 오고 싶다는 감정이 들어서였다.

고작 4,000원짜리 라면인데.

“맛있게 드셨습니까?”

사장인지 주방장인지 모르지만,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 살짝 얄밉게 느껴졌다.

아까 분명 눈으로 묻지 않았던가.

맛있지 않냐고.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던 기억이 떠오르자 이예지는 입을 악다물었다. 그리고 원래의 목적을 억지로 떠올려 명함을 꺼냈다.

“이거…….”

“예?”

유현성은 엉겁결에 명함을 받아 들었는데,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포 동부 요식업 조합.

대표 이예지.

“이게 뭐죠?”

“보시는 대로 명함입니다. 그러니까…….”

그리고 서로 명함을 멀뚱멀뚱 쳐다만 볼 뿐이었다.

잠시 뒤, 유현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거였다.

“카드는 환영. 명함으로는 결제가 안 됩니다.”

다들 그대로 굳어졌다.

그나마 박종후가 먼저 상황을 파악했다.

“크흠, 계산은 이걸로 하시면 됩니다.”

카드를 받은 유현성이 그걸 임혜리에게 건넸다.

곧 지잉 하면서 결제가 마무리됐고, ‘영수증 드릴까요’가 이어졌다.

“아, 괜찮습니다. 카드만 주시면 됩니다.”

박종후가 그걸 받자마자 이예지가 말을 이어나갔다.

“잠시 시간 되시나요?”

유현성은 망설이지 않았다.

“당연하죠.”

* * *

사실 좀 이상하기는 했다.

화환은 오픈 직후, 아니, 그 시간에 딱 맞춰서 왔다.

그걸로 이상도 상사와 잠시 옥신각신하는 사이 들어온 손님들이었는데, 어쩐지 느낌이 참 거지 같았다.

그냥 라면이니 적당히 먹고 갈 것이지, 별의별 평가를 가장한 뻘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막말로.

내가 만든 라면이 대단한 요리는 아니다.

그냥 몇 가지를 더한, 다른 분식집은 흉내 내지 못하는 요소를 쫌 가진 것뿐이지.

그걸 가지고 이러니저러니 분석을 하는데, 솔직히 웃음만 나오더라.

특히 아가씨는 눈이 마주친 게 부끄러운지, 아니면 나한테 반한 건지 바로 고개를 돌리기까지 했다.

……하긴, 내가 좀 생기긴 했지.

“도와주세요.”

“예?”

“그러니까…… 다른 이유가 아니라 혹시…… 제의를 받으신 적이 있나요?”

“제의요?”

“예. 안 그래도 이쪽 구역은 저희 관리 라인이기는 한데, 최근에는 그 구분을 넘는 경우가 많아서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둘러 가는 건 질색이다. 그래서 바로 찔렀다.

하지만 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오히려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전혀 모르시나요?”

“모르니까 묻는 겁니다. 아직 영업시간이니 용건만 간단히 해주시죠.”

“그러니까…….”

전포 카페 거리,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전포역을 중심으로 구역이 나눠져 있단다.

1구역, 서부 번화가 거리.

2구역, 북부 시장권 라인.

3구역, 남부 아파트 빌라 상권.

그리고 마지막 4구역 동부 경계선 구상가.

일단 1구역은 서면역 번화가 쪽이라 큰 상관이 없다고 했다. 부산 최고, 최대의 상권이기 때문에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거라 이쪽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다고.

그리고 나머지 세 구역은 나름대로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 중이었다.

어차피 도로 하나 건너면 거기서 거기인 동네였으니까.

먼저 전포역 북부는 오래 장사한 터줏대감이 확장한 터라 손을 못 댄다고 했다.

남부는 대단지 아파트와 고층 오피스텔이 있어 핫한 가게들뿐만 아니라 필수 요소, 즉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리 숍들이 전부 자리했고, 반찬 가게부터 부식, 거기에 프랜차이즈 버거집들까지 즐비하단다.

특히나 오래된 집들을 개조한 카페들이 넘친다고 했다.

하긴, 돌아보니 그런 가게가 제법 많았던 기억이 있다.

“문제는 여기 동부 쪽이죠.”

음식 격전지.

진짜 전 세계 별의별 요리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곳이 동부라는 것이다.

“그래서요?”

“저희가 하는 일은 서로 상생하는 겁니다. 만약 같은 업종이 많이 들어서면요. 불필요한 가격 경쟁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는 겁니다.”

“으음, 가령…… 똑같은 베트남 쌀국숫집이 서너 개 붙어 있잖아요. 그런데 새로 개업한 가게가 확 가격을 낮춰요. 그럼 다른 가게들은 불만을 가지겠죠?”

“글쎄요?”

“일종의 예시라 보면 돼요. 하여간 그런 부분을 서로 조율하는 회사라 보시면 될 거예요. 서로서로 원만하게 조금은 양보하고 이해하고…… 그런 걸 하는 거죠.”

슬쩍 어딘가에서 맡았던 개씹쓰레기 같은 향기가 나는데.

“결론은 뭡니까?”

“가입하시겠어요?”

“하면 뭐가 좋습니까?”

“일단 불필요한 경쟁을 막아줄 수 있어요.”

“그니까 그게 뭐냐고요?”

“바로 옆에 분식집이 생기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이 역시도 의미 없는 말이었다.

“전혀, 네버, 상관없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바로 옆에 킹버거나 돗데리아 같은…….”

“저는 라면 팝니다.”

“그, 그럼 김밥 왕국 같은…….”

“거기는 이런 라면 못 팔죠.”

솔직히 원가가 얼만데 이런 걸 하겠는가.

애초에 그걸 생각해서 만든 메뉴인데.

“아니 아니, 그게…… 위에 건즈 라멘집 같은 게 옆에 서면…….”

“거긴 만 원, 우리는 사천 원입니다.”

“그래도……!”

“거, 쓸데없이 말이 기네요. 그래서, 뭘 도와달라는 겁니까?”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박종후가 갑자기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직 아가씨가…… 크흠.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뭐, 제가 사과받을 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닙니다. 무릇 영업하는 가게에 와서 시간을 뺏은 것도 그렇고, 이렇게 오해를 만든 것도 저희 측의 실수입니다.”

이렇게까지 하니 조금 곤란했다.

사실 약장수도 아니고, 뭔가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도 계속 본론이 안 나오니 그저 답답했던 거고.

“제가 참 라면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박종후가 내 라면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데, 아니, 동네 분식집 라면을 왜 미슐랭급으로 분석을 하냐고!

“간단히 말하면,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 * *

“하! 새로운 퀘스트도 아니고.”

대충 요약하면 이러했다.

구역끼리 대회……를 빙자한 요리 대결을 한단다.

가격대별로 구분해서 대상과 최우수, 우수상을 뽑는다는 것이다.

수상만 하면 조합비 면제.

상금 + 부가 혜택이 있다고.

문제는 이 지역 최강자인 송씨네 분식집이 가게 이전을 이유로 갑자기 참가를 거부했다는 거다.

그 집 참 맛있기는 하지.

어쨌든 공백이 생겼으니, 대신 참가해 달라고 온 거였다.

‘아오, 이제 겨우 라면 하나로 장사 시작했는데 대회라니.’

근데 속사정을 들어 보니 참 욕이 나오더라.

“뭐, 아무래도 상관없긴 한데…….”

옵션이 썩 내키지 않았다.

무슨 조폭도 아니고, 지켜줄 테니 길드 상납비를 내라니.

하기야, 워낙 치안이 거지 같으니 헌터 길드가 개입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후우, 말하면 길다.

그냥 내 기준으로 봤을 때는 삥 뜯는 거에 가까웠다.

‘아니지…… 그냥 쓸어버릴까?’

약간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곧바로 막힌 둑이 터진 것처럼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12시하고도 35분이 넘자 가게가 순식간에 꽉 차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점심이 늦어버린 손님들이 다급히 한 끼 해결하겠다고 오는 것 같았다.

“크하~ 이거 진짜 개운하네.”

“국물이. 끝내줘요.”

“음, 원래라면 느끼해서 라면 하나 다 못 먹는데, 이건 이상하게 속이 편안해.”

“라면 하나는 이 동네 탑이다.”

“인정.”

“맛을 위해 한정 판매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되네.”

착착 라면을 만들면서도 귀는 열어뒀다.

평가의 대부분은 극호에 가까웠고, 일부는 다른 가게들과 비교까지 하더라.

“이 밑에 라멘 전문점보다는 나은데?”

“그러게. 솔직히 거기도 맛있기는 한데, 너무 비싸.”

“고기 육수라 좀 물리는 것도 있어서 국물까지 다 못 마시거든. 근데 봐.”

남자가 텅 빈 그릇을 보여주자, 여친으로 보이는 상대가 살짝 놀랐다.

“와~ 오빠. 살다 살다 별걸 다 보네. 오빠처럼 입 짧은 사람이 라면 한 그릇을 다 먹다니.”

“꼭 갈비탕에 라면 끓여 먹는 느낌이더라고. 생각보다 속이 편해.”

“하긴, 처음에는 국물이 많아서 걱정했는데…….”

확실히 그 부분은 보완해야 할 것 같았다.

스프 하나를 온전히 넣는 게 조리가 훨씬 편했다.

때문에 육수를 연하게 했어도, 스프의 간을 맞추기 위해선 물이 더 들어가야 했다.

지금은 몇 없는, 오래된 슈퍼에서 끓여주는 그런 국물 많은 라면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일단 여기까지는 일반인들의 평가고.

“오~ 예쁘다.”

“그러네. 4,000원이라 별 기대 없이 왔는데, 베이컨이 이 정도나 되고, 위에는 파, 밑에는 쪽파네.”

“계란도 그냥 삶은 거 반쪽이 아니라 온천 계란처럼 해놨어.”

“당근하고 야채가 파 사이에 있으니 색감도 괜찮고.”

“일단 국물부터. 으음, 깔끔하네. 특히 베이컨이 맛있어. 이게 라면하고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집에 가서 한번 해 먹어봐야겠다.”

“야.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베이컨 가격이 얼만데.”

“집에 남는 거 있으면 해 먹어본다는 거지. 잘만 만들면 안스타에 올릴 정도의 그림도 나올 테고. 일단 메모.”

“확실히 조합이 좋은 것 같아.”

이런 식으로 각자의 취향대로 분석하기도 했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입에 맞지 않는다는 손님들.

아무래도 맵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지 표정들이 영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다 방법이 있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