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뭐지? 밍밍한데?”
“이 정도면 괜찮지.”
“아냐. 찐순에 물 탄 맛이야.”
“새꺄. 난 맛있거든. 그냥 주는 대로 먹어.”
“노놉. 난 라면 한 그릇도 최선과 정성을 다하는 남자! 이런 건 용납할 수 없지.”
상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친구를 노려봤다.
“혓바닥에 사포질해도 맛도 모르는 놈이 아가리만 겁나게 놀리네.”
“야, 입에 안 맞는 걸 어떻게 해.”
멀리서 그 이야기를 듣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긴, 틈세라면도 싱겁다고 매운 땡초를 두세 개씩 썰어 넣어 먹는 사람도 있었다. 맵고 자극적이어야만 맛있게 느끼는 거다.
아마 저 손님은 그런 케이스겠지.
난 미리 정한 신호를 보냈다.
임혜리는 당연한 것처럼 그 테이블로 다가갔다.
“이쪽에 다진 마늘하고, 매운 고춧가루, 통후추가 준비되어 있어요. 취향껏 넣어 드시면 됩니다.”
“아가씨는 어떻게 먹어요?”
하루에도 라면 테스트를 열 차례 이상 했다.
물리는 게 당연했기에 이런저런 양념을 추가해서 먹은 적도 여러 차례.
“전 다진 마늘 티스푼으로 두 번 넣고요. 고춧가루는 많이 매운 거라 삭삭삭, 세 번 정도만 뿌려 먹어요.”
“오. 한번 그렇게 먹어볼게요.”
“고춧가루 많이 매우니까 조금씩 넣으면서 맛을 보세요.”
“하하, 저 매운 거 잘 먹거든요. 감사합니다.”
그걸로 임무(?)는 끝이었다.
아무리 잘 만든 음식도 식성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법.
결론은 ‘니 취향대로 해 먹어라’가 정답이다.
손님은 예상대로 다진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를 팍팍팍팍 때려 넣더라.
저 정도면 불닭급은 넘어갈 텐데?
“컥, 크헉!! 겁나 맵네!!”
“미친놈.”
“근데 맛있다.”
“돌은 새끼.”
부디 나갈 때까지 주먹다툼만은 하지 않길 빌면서 다시 라면 조리에 들어갔다.
확실히 단일 메뉴 한정판매는 편했다.
들어오는 숫자대로 끓이기만 하면 되니까.
예상보다 쉬운 난이도에 다시 계산을 해봤다.
‘이백 그릇 그냥 뚝딱이겠는데?’
* * *
벌써 46그릇.
이제 마지막 테이블만 나가면 끝이었다.
문제는, 후우~ 진상이라는 거!
“왜 소주가 없냐고!”
“마, 죽을래?”
“아니, 형님. 이런 라면 국물에 한 잔 하면, 캬아~ 아닙니까?”
“새꺄. 이해는 하는데 인마, 여서 그러면 안 되지.”
임시 오픈 첫날.
아저씨 세 분이서 돌아가며 욕과 욕을 랩으로 트리오를 짜서 곡을 연주하는데 머리가 지끈거렸다.
문제는 한 분이 잘 아는 아저씨라는 거.
“현성아, 미안타.”
“아뇨. 괜찮아요.”
“아, 저 새끼가 일은 겁나 잘하는데, 한 번 꼽히면 좀 지랄이다.”
“그럴 수도 있죠.”
“일단 계산하고. 니 근데, 진짜 점심만 이래 하나?”
“봐서요. 손님 늘고 하면 당분간은 라면 파는 것만 좀 늘리려고요.”
“그람, 저녁은?”
“생각은 있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초록색 모자, 회색에 붉은 체크무늬 남방, 거기에 갈색 조끼를 입은 백발의 아저씨.
물론 모자 안쪽은…… 크흠, 지켜주자.
어쨌든 저 아저씨는 우리 행복 분식의 10년 넘은 단골이었다.
그것도 은인이나 다름없는 분.
그러니까, 의자 다리 하나 부러지면 뚝딱 고쳐주고, 다리 두 개 부러지면 막 시파 욕을 하면서 자기 고물상에서 의자 가져와 앉는 분이다.
더 웃긴 건 뭐냐면, 그렇게 바뀐 의자가 한때 가게 의자의 절반을 차지했다는 거다.
일명 고물상 박씨 아저씨!
“저 새끼 원래 안 그랬는데, 올 초에 마누라가 갔다 아이가. 집에 가도 혼자고 해서 저녁에 홀짝 하는 맛으로 사는 넘인데. 에휴~ 근데 니 잘 끓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다. 니가 한 긴데. 여간 저놈이 맛나게 먹는 거 보니 맛있기는 한 갑다. 그래서 말인데…… 니 저녁에 장사할 생각은 없나?”
연거푸 물으니 살짝 동하기는 했다.
“니 한다 하문, 내 쏠쏠히 소개시켜 줄 수는 있다. 매상은 걱정 말고.”
“좀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랴. 라면만 팔아서 돈 벌 것나. 내가 유씨 봐서라도 좀 해줄 끼마.”
“예.”
아버지를 언급하는데, 순간 울컥 했다.
사실 고마운 분이라고 여러 번 이야기 했는데.
근데 저녁 장사라…….
‘손님만 충분하다면, 이거 나쁘지 않은걸?’
그렇게 박씨 아저씨 팀이 나가고 장사가 마무리되었다.
바로 가게 입구에 ‘금일 영업을 종료합니다’라고 써 붙였다.
고작 라면 50그릇.
한 번 불 댕기면 기본 네 그릇 정도는 그냥 나간다.
화구가 8개니 한 번에 그만큼 끓일 수도 있었고.
즉, 뚝딱뚝딱 여섯 번이면 거의 다 만들 수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정식 오픈도 아니고, 지인 찬스도 아니니 이 정도면 선방한 셈이었다.
아직 두 시 반도 되지 않았으니까.
“일단 내일까지만 임시 오픈으로 돌리고, 주말 쉬고 다음 주부터는 80그릇까지 늘려 봐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때?”
“헤헤, 이 정도 서빙은 일도 아니죠. 제가 알바 할 때 어느 정도였냐면요.”
로또 5만 원 주문과 동시에 담배만 서로 다른 걸로 열 갑 넘게.
그러면서 닭튀김과 소시지를 데우고, 심지어 군고구마까지 챙겼다고 했다.
그게 고작 10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더라.
“헤헷, 손님 더 들어와도 이 정도 흐름이면 백 그릇까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한 번에 두 배가 늘어나는데 어렵지 않겠어?”
“히~ 점심 장사만 하는 거면 네 시까지 한다고 봐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요.”
“그 정도 여유는 된다는 거지?”
“예. 돈 많이 벌면 좋잖아요.”
임혜리가 활기차게 소리쳤다.
딱히 뭐라 한 적은 없지만 솔직히 불안불안해하는 게 보이긴 했다.
일도 없이 삼시 세 끼 축내는 건 기본에,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주니 아무래도 눈칫밥 먹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
그런 차에 가게 오픈하고 처음 일다운 일을 했으니 박차를 가하고 싶은 게 당연할 거다.
“일단 너 적응하는 거 봐서. 그래도 점심 장사는 200그릇 이상은 안 할 거거든.”
육수 네 통 정도까지는 이미 예상하고 계획을 짜놨다.
하지만 그 이상은…… 솔직히 내가 귀찮고 힘들다. 우리 강아지(?)가 졸업하면 또 모르겠지만.
“근데 사장님. 정말 라면만 팔 거예요? 별루 안 남는다면서요?”
“급발진 금지. 그리고 누가 라면만 판대?”
“그럼요?”
“서서히 늘려가야지. 일단 밥도 해야 하고…….”
라면 국물에 식은 밥은 필수가 아닌 필살기.
사실 지금이라도 하면 하겠는데, 일단 장사에 적응하는 게 우선이었다.
계획은 이미 세워놨다.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조금씩 변동이 있겠지만, 라면을 기본으로 이것저것 추가할 생각이었다.
물론 점심 때 200그릇 판다는 걸 기본으로 하고.
“오늘은 이만 정리하자.”
“정리할 게 있어요?”
임혜리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 어라? 생각해 보니 치울 것도 없네.
그릇은 바로 바로 설거지 후 업소용 식기 세척기에 들어갔다 나왔고, 나도 모르게 습관처럼 마른 행주로 다 닦아서 선반에 올려놨다.
테이블 청소는 임혜리가 바로 치워서 할 건 없었고, 바닥 청소도 이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할 정도로 깔끔했다.
하긴, 손님이 얼마 안 들어왔으니 대걸레로 슥삭 하면 금방 끝나겠지.
“그럼, 잠시 집에 다녀올까?”
임시 오픈 첫날 장사가 순조롭게 끝났다.
이제 저녁은 우리들만의 시간이었다.
* * *
“확실히, 묘한 맛이네.”
곽준열의 평가, 동시에 리모델링할 때의 현장소장과 직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아아! 곽 실장님, 이거 해장되는 느낌인데요?”
“아닙니다. 소장님. 이건 술 부르는 마술 같은 라면 국물입니다.”
“그래? 난 다진 마늘 많이 넣으니까 시장 칼국수 느낌이 드는데?”
“에이. 누가 칼국수에 소주 마십니까? 이렇게 고춧가루 삭삭 넣으면 얼큰한 짬뽕라면 맛이죠.”
현장소장과 직원의 평가에 슬며시 미소가 나왔다.
두 사람은 공사할 때 안면을 튼 것도 있지만 이후에도 자잘한 보수를 해주러 왔었다.
개업식에 초대한 것도 그래서였다.
사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김밥 천당 같은 분식집이나 우동 돈가스 파는 집들은 기본 베이스 육수가 있었다.
그걸로 라면도 끓이고, 국수도, 우동도 만든다.
물론 라면은 스프, 국수는 멸치, 우동은 다시 간장 등등을 조절해서 넣음으로써 맛의 다변화를 준다.
결국 취향에 따라 뭘 추가하느냐에 따라 국물 변주곡이 가능하다는 것.
“난 그냥 기본 라면이 제일 맛있네요. 양념이 더해진 맛보다 묘한 감칠맛이라고 해야 하나, 확실히 그런 게 있어요.”
역시 우리 팬더, 아니, 곽준열 삼촌이 정확했다. 애초에 기본 라면이 밸런스는 제일 잘 맞았으니까.
실제로 난, 호보다는 불호에 집중했다.
수백 그릇 넘게 만들어가며 맛의 중심을 잡았고, 느끼함과 거부감이 드는 부분을 최대한 배제했다.
왜냐?
남녀노소, 직종에 구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가볍게 들르는 곳이 바로 분식집이니까.
한마디로 대중적인 입맛에 우선한 것이다.
“자, 이건 서비스입니다.”
한 접시 가득 내놓은 건, 차슈였다.
족발집 친구에게 얻은 레시피에 몇 가지를 빼서 삼겹살을 삶았고, 그걸 간장 소스에 살짝 졸인 뒤 토치로 표면을 구웠다.
여기에 다진 마늘을 듬뿍 올린 다음 검은 깨 토핑으로 마무리했다.
같이 먹기 좋은 묵은지까지 추가되니 다른 건 필요 없겠지.
“이거 정말 부드럽네. 바로 팔아도 되겠는데?”
“그렇게요. 식감이 굉장히 부드러운, 온족발 느낌도 드는데요?”
“그런가? 뭐 거기까진 모르겠고, 하여간 안주로는 딱이네.”
“그런 의미로 한잔하시죠.”
직원의 권유에 다들 소주잔을 들었다.
이제 이쪽 테이블은 당분간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군.
그나저나 이 정도 호평이면 저녁 안주로 내도 될 것 같았다.
이번에는 동네 지인들 자리였다.
마트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일명 고스톱 모임 멤버들과 남편들까지 테이블 두 개를 차지했다.
이미 임혜리가 라면을 내어갔는데 다들 극찬을 이어나갔다.
특히 아저씨들은 라면을 두 그릇씩 드시더라.
그것도 소주 안주로.
여기에 차슈와 묵은지까지 푸짐하게 나가니 어느 순간 막걸리 병이 등장했다.
대체 어떻게 숨겨서 들고 온 거지?
물론 범인은 마트 아주머니겠지. 유독 큰 장바구니를 들고 왔으니까.
이후로 동네 친구 서넛이 들렀고 가게에 어울리는 벽시계와 화분 두 개를 선물 받았다.
역시나 이놈들도 주당임을 증명하듯 라면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씩 비웠다.
부동산 아저씨도 직원들과 한쪽에서 라면 맛을 보더니 엄지를 척 들었다.
나가면서 다들 한마디씩 말하더라.
“정식으로 오픈하면 자주 들르겠습니다.”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진짜 맛있네요.”
“혹시 확장할 일 있으면 꼭 연락 주십시오.”
역시나 영업 일 하는 사람들다웠다.
그렇게 쭈욱 도는데, 바로 문이 열리며 덕순 할머니와 태수가 들어왔다.
“형. 개업 축하해요.”
“좀 늦었네?”
“가게 정리하고 오느라고요. 이건 선물.”
그러면서 커다란 김치통을 주방 쪽으로 들고 왔다.
“이게 뭐야?”
“내가 간만에 겉절이 좀 했다.”
덕순 할머니의 말에 끝나자마자,
“오오오!”
“이모님 최고!”
“엄마, 사랑해요!!”
가게 안쪽에서 환호성이 들렸다.
다들 할머니 손맛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사실, 덕순 할머니는 최근에 밑반찬을 거의 만들지 않았다. 자잘한 것만 하고 대부분 근처 식품 회사에 받아서 썼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요리법대로 양념을 더해 주문 제작을 하는 방식이었다.
단가는 조금 비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더는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까.
그런데 개업 선물이라고 직접 만든 걸 가져왔으니 어찌 고맙지 않으랴.
특히나 단골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난 바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에이, 겨우 겉절이 한 거 가지고.”
“그래도 이거 하나면 밥 한 그릇 뚝딱인걸요.”
“떨어지면 말해. 또 해줄 테니까. 어차피 우리도 먹는 반찬이고 하니.”
덕순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했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잘 알고 있었다.
직접 시장에 가서 좋은 알배추를 고르고.
좋은 소금을 물에 곱게 녹여 20분 정도 절인 다음.
또 그걸 깨끗하게 씻어낸다.
여기에 쪽파와 양파를 손질해 넣고, 할머니만의 비법대로 고춧가루, 다진 마늘, 갈은 배, 육젓, 액젓 등으로 양념해 무치는 거다.
김장에 비해선 쉽다고 하지만, 덕순 할머니는 그 하나하나를 전부 직접 했다.
그런 정성이 들어가야 맛있다고 여기는 성격이었으니까.
그렇게 할머니와 정태수를 안쪽으로 안내하고 나니 이번에는 두 사람이 들어왔다.
아까까지 칼국숫집에 있던 임민혁과 금치수였다.
“어? 세트에서 한 명이 빠졌네.”
“아! 호영이는 일이 좀 있어서요. 못 와서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임민혁이 그렇게 말하는데, 금치수가 주저주저했다.
“왜? 금방 라면 끓여줄 테니까 들어가 앉아.”
“저기, 형.”
“왜?”
“우리 아버지 오셨어요.”
“그럼 들어오시라 그래.”
내 말이 끝나자마자 입구 문이 열렸다. 그리고 반백발의 아저씨 하나가 들어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진작 찾아뵈었어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저씨는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정수리가 살짝 빛났지만 지킬 건 지켜주자는 주의라 모른 척하고 손을 내밀었다.
가볍게 악수를 하는데, 치수 아버지가 말했다.
“치수 식품 사장, 금일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