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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6화 (16/156)

16화

치수 식품!

업소용 김치, 깍두기, 단무지, 장아찌 여기에 더해 김밥용 속재료 같은 걸 제조 납품하는 회사였다.

특히, 식당에서 주문을 하면 거기에 맞춰서 만들어주기도 했다.

여길 어떻게 소개받았느냐.

사실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그런 노래가 있을 정도로 라면에 김치는 필수다.

처음에는 업소용 중국산 김치를 쓰려고 했다.

일단 부전시장 쪽에 수입업체들이 많았고, ㎏당 최저 670원이라는 단가에 혹해서였다.

하지만 내 입에 영~ 안 맞았다.

양념을 넣다가 만 건지 그냥 절인 배추에 고춧가루만 버무린 수준이더라.

이후 단가를 조금씩 올려가면서 여러 종류를 맛봤는데 최소 ㎏당 1,100원 이상은 되어야 조금 먹을 만했다.

적어도 김치란 이런 음식이다, 할 정도의 맛이 묻어나는 것이다.

물론 성에 차진 않더라.

그래서 직접 담가볼까 했는데 일이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덕순 할머니한테 물었다.

“뭘 직접 만들어? 그냥 사다 써.”

특히 소규모 식당은 그게 오히려 낫다고 했다.

직접 만드는 게 고된 것도 있지만, 매번 같은 맛을 내는 건 쉽지 않다나?

그러면서 자기도 예전에는 매일 김치 깍두기를 담갔는데, 이젠 체력적으로 힘들다며 주문 제작해 주는 회사를 소개시켜 줬다.

치수 식품, 사장 금일봉.

처음에 명함을 받고 조금 당황했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금치수 녀석의 아버님이 이 회사의 사장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 치수가 이상한 반응을 보였었지.

유독 눈치를 보기도 했고.

아무래도 거래처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칼국수를 계속 얻어먹고 다닌 게 알려지면 아버지한테 크게 혼날 테니까.

하여간, 그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런 이유가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어쨌든 할머니를 통해 소개를 받으면서 칼국숫집 김치보다 조금 맵고 간을 강하게 해달라고 했다.

라면이 자극적이니 김치가 순하면 맛이 안 난다면서.

물론 그때는 과장이란 분이 왔었다.

며칠 뒤, 샘플로 가져온 김치 맛을 봤는데 제법 괜찮았다.

단가는 ㎏당 2,400원.

납품은 주 2회.

소량 주문을 받아주는 대신 장기간 거래하는 조건이었다.

원래라면 이 정도 물량으로 따로 주문 제작은 안 되지만 특별히 해준다고.

보통은 곰탕집 깍두기 정도는 되어야 한다나?

어쨌든 가격은 몇 배 비쌌지만 그 정도는 감수하기로 했다. 적어도 직접 만드는 수고에 비하면 충분한 값어치가 있다고 봤으니까.

난 꾸벅 고개를 숙이며 금일봉이 내민 손을 맞잡았다.

“행복 분식을 운영하고 있는 유현성이라고 합니다.”

“예. 반갑습니다. 저희가 납품하는 김치, 반응이 어떻습니까?”

“여러 번 먹어봤는데, 저희 라면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아, 이건 개업식 선물입니다.”

금일봉이 공손히 내민 건 의외의 물건이었다.

“음, 업소용 염도 측정기?”

“예, 저희는 주문 제작의 경우 거의 수작업이라 간혹 실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할머님네 김치보다 조금 짜게 만드는데, 그래도 염도는 가능하면 1.5가 넘지 않게 하거든요.”

“아, 예에.”

“혹여나 맛이 이상하거나 염도 측정을 세 번 정도 해서 모두 1.7~8 이상 나오면 전량 수거해 갑니다.”

이후에도 대량과 소량의 차이, 따로 만드는 공정 같은 무슨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솔직히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결론, 김치가 많이 짜거나 시면 바로 반품 받아준단다.

‘오, 확실히 그 부분에선 믿음직하네.’

“감사합니다. 오셨으니까 식사라도 하고 가세요.”

“인사차 들른 건데…….”

금일봉은 가게를 슬쩍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저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금일봉은 나름 꼼꼼히 가게를 살펴보더라.

반대로 금치수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이번 일의 원흉이 바로 녀석이었으니까.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왔다!”

역시나 말이 짧은 걸 보니, 끔찍이 사랑스러운 현지였다.

그 뒤로 현아와 우리 강 여사님이 보였다.

“받아라.”

현지가 박스 하나를 툭 올리자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이건 뭔데?”

“개업 떡! 백설기다.”

“아~ 그렇지. 미처 생각을 못 했네.”

“이것도.”

현지가 또다시 작은 박스를 올렸다.

“이건 또 뭐…….”

“편육.”

“아!”

개업식을 겸한 자리니 라면 하나로는 부족하다 싶었다. 차슈를 준비한다 했는데, 그래서 수육 대신 편육을 사 온 모양이었다.

“혜리야, 접시 좀.”

“예. 사장님.”

개업 떡과 편육을 접시에 적당히 나눠 담았다.

동시에 찍어 먹을 쌈장을 만들기로 했다.

된장, 고추장, 설탕에 육수를 조금 붓고 잘 섞는다.

다시 양파와 마늘, 청양고추를 다져 넣은 뒤, 참기름 호로록 돌리고, 쪽파를 살살 뿌리면 끝이었다.

“이거 테이블마다 나눠줘.”

“옛썰!”

임혜리도 개업식 분위기에 신이 났는지 발랄하게 뛰어다녔다.

그렇게 떡과 편육, 쌈장이 돌아가자 더욱 분위기가 들뜨는 듯했다. 당연하게도 강 여사와 현지, 현아도 거기에 녹아 들어갔고.

“더 필요한 게 없으려나?”

미리미리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했기에 주방만 지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아마 끌려가면 주는 술잔을 피하지 못하리라.

그럴 때 또 손님이 오면 곤란하지.

“가만?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왜 뭔가 빠진 느낌이지?”

마침 끼익, 하는 미세한 마찰음과 함께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 강아지, 임수원과 처음 보는 남자가 함께였다.

“아, 여기구나.”

“예, 교관님.”

“그런데 손님이 많네.”

남자는 의외로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놀란 듯했다.

무엇보다, 이건 분식집 분위기가 아니지 않는가?

특히 소주, 맥주, 막걸리에서 풍겨 나오는 알코올 냄새들이 후각을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여기에 육수와 라면, 차슈의 강렬한 향들까지 더해지니 잠시 어지러울 정도.

“오, 수원이 왔냐? 그쪽 손님은?”

“어, 이쪽은 저희 담당 교관님이세요. 아카데미에서…….”

임수원이 말을 하자 교관이란 남자가 날 쳐다봤다.

그리고 순간 눈이 커지더니, 갑자기 차렷 자세를 하더라.

설마? 아니겠지?

“헙, 충…… 커흡!!”

경례 구호가 터지기 전, 재빨리 움직였다.

주방에서 바를 뛰어넘어 벽을 딛고 아래로 떨어지며 손으로 녀석의 입을 막았다.

빤히 보고 있던 임수원조차 뭔가 흐릿한 게 지나갔다고 느낄 정도로 빠르게.

난 녀석의 입을 막고 가게 안쪽을 쳐다봤다.

다행히 이쪽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그러고는 그 교관이란 남자의 귀에 살며시 속삭였다.

“잠시 나가지.”

* * *

“충성. 상사 고지원.”

절도 있는 동작으로 경례하는 남자, 아카데미 교관 고지원이었다.

“쉿, 목소리 낮춰.”

“옙. 코드 네임 네 번째 송곳니, 코드 네임 선…….”

“거기까지. 그건 기밀이다.”

“아!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데, 여전히 각 잡힌 자세라 한숨이 나왔다.

“하아, 쉬어.”

“쉬어.”

그제야 조금 편한 표정으로 바뀌더라.

동시에 궁금해졌다.

“날 본 적 있나?”

“예. 제 7선발대 소속으로 368회부터 24회 투입되었습니다.”

“흐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저에게 네 번째 늑대라고 하셨습니다.”

“설마, 그…… 이종 변형?”

“역시 기억하시는군요.”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생각해 보니 녀석이 인간일 때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손에 꼽을 만했다.

게이트 투입 전부터 괴수화 상태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고지원의 능력은 육체 변형 중에서도 독특한 편이었다.

탐색 시에는 늑대의 형태로 선발 정찰, 몬스터 유도, 적 진형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후퇴 시에는 미끼 역할도 맡았다.

이 정도면 일반적인 괴수화 각성자 수준.

하지만 또 하나의 능력이 있었으니, 전투 시에는 라이칸슬로프가 된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인간과 늑대의 중간 형태였다.

그때 내가 한 말이 이거였지.

삼단 변신 개돌이.

흐음, 생각해 보니 조금 찔리네.

하여튼, 듣기로 임무 중에 부상을 입어 전역했다고 들었는데, 여기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렴풋이 기억나기는 하네.”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여긴 군대가 아닌데요?”

갑자기 바뀐 내 말투에 고지원은 당황스러워했다.

“험험. 저도 방금 전에는 놀라서 습관처럼 말한 겁니다. 저 은퇴…… 아니, 전역했습니다. 이제 민간인이죠.”

“예? 헌터청 특무 이사로 가신 거 아니신가요? 소문이 그렇게 났던데요?”

“아! 그게…….”

귀찮음을 피하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리고 명분 때문이기도 했다.

그 덕에 매달 연금과 성과금(?)이 나오긴 하지만.

“아! 이번 특수 임무 때문에 내려오신 거군요. 이 분식집은 위장이고.”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안 그래도 교장 선생님께서 헌터청에 아는 사람 있다면서 지원 요청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선배님이시라니, 한시름 놨습니다.”

“아, 그 교장 선생님이란 분은…….”

“박순신 준장님이십니다. 지금은 전역하시고 아카데미 교장으로 계십니다.”

누군지 알았다.

화환을 보낸 강박수 삼촌의 친구이기도 했고, 몇 번 임무 수행을 같이한 적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지원 요청이라니.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건가?

막 물어보려는데 고지원이 웃으며 선수를 쳤다.

“어쨌든 신분 위장이니 비밀은 지켜 드리겠습니다.”

알아서 오해해 주니 고맙기는 한데, 조금 껄끄럽기도 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여긴 사회고, 장사하는 입장이니 손님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죠.”

“제가 한 살 동생인데요? 스물다섯이요.”

“예?”

딱 봐도 서른 초중반은 넘어 보이는데?

“이게 괴수화의 여러 부작용 중에 하나인데, 육체 변형을 과하게 하다 보니 피부 노화가 좀 급격히 왔습니다. 또, 저는 특수한 케이스라.”

하긴, 고지원의 전투 스타일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마나의 총량은 적지만 그 최후의 한 방울까지 알뜰살뜰 끌어 쓰는 스타일.

한마디로 한계까지 쥐어짠다고 해야 하나.

“결국 최종 성장을 앞에 두고 정체가 온 거죠. 그래도 활용 능력을 인정받아 교관 제의를 받았고, 바로 여기로 오게 된 겁니다.”

“음, 그렇군요.”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조장님.”

“으…… 그 조장이란 이야기는 좀 그만.”

“옙. 그런데 어쩌다…….”

막 뭔가를 물으려는데, 입구 문이 열렸다.

“사장님, 어머님이 찾으시는데요?”

“어. 알았어, 금방 들어갈게.”

임혜리의 호출에 잠시 망설여졌지만 고지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쪽이 급한 것 같으니 먼저 볼일 보십시오. 전 늦게까지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 알겠…… 아니, 알았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그렇게 일단락 짓고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는 정말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누군가는 라면에 대해 학술 발표를 하고, 누군가는 유부남의 인생에 대해 술주정에 가까운 토론을 하더라.

물론 마지막은 마트 아주머니의 바가지로 끝났지만.

더 황당한 건 따로 있었다.

“저, 저희 미성년자인데요. 이제 그만 마실…….”

“술은 어른들한테 배우는 거야. 그리고 다들 민증은 받았잖아. 한두 잔은 괜찮아.”

금일봉 사장님이 애들한테 연신 술을 먹이고 있었다.

그 대상은 아들 금치수와 정태수, 임민혁.

이미 금일봉은 소주가 적지 않게 들어갔는지, 아니면 조명 때문인지는 몰라도 얼굴이 벌게진 상태였다.

황당한 건, 덕순 할머니가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장님, 우리 손주 잘 부탁드려요.”

“아이고, 이모님. 오히려 제가 드릴 말입니다. 태수 만나고 나서 우리 아들이 철이 들었어요. 저거 중학교 때 얼마나 사고 많이 쳤는지 몰라요.”

“설마요. 요즘 애들답지 않게 참 착하던데요. 요새 가게 일도 자주 도와주고, 태수한테도 잘하고 있어요. 손님들한테도 싹싹한 게, 원래 손주가 둘이었냐고 하더라고요.”

“허허. 다행입니다. 사실 저놈 태어나서 회사 이름을 치수 식품으로 바꿨거든요. 아들 이름 걸고 제대로 정직하게 영업할 거라고. 근데 저놈이 아버지 반찬 가게에 자기 이름 쓴다고 난리난리를 얼마나 피웠는지…….”

“아, 아빠!”

“시꺼. 하여간 태수 열심히 하는 거 보더니 졸업하고 우리 회사 들어온답디다. 그 이야기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크흡.”

제일 취한 사람은 금일봉 사장 같았다.

가만히 들어보니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그러면서 훌쩍거리고.

아까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다는 게 이래서였구나.

술버릇이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이런 난장판 속에서 그나마 임민혁이 제일 얌전해 보였다.

막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녀석이 벌떡 일어났다.

“저, 테스트 합격했습니다. 우수반이래요!”

“어? 어, 그래.”

“제 능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저 미친놈이!

진짜 말리기도 전에 변신 모드로 들어가 버렸다.

난 다급히 손가락을 튕겼다.

딱!

동시에 임민혁이 풀썩 주저앉더니, 벽에 머리를 기댔다.

다행히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정태수는 임민혁이 취했나 하고 넘어갔고, 덕순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아이고, 피곤한갑다 하며 어깨를 두드리더라.

진짜 십년감수한 기분이군.

저 새끼는 앞으로 술 먹이지 말아야지.

하여간 그렇게 개업식은 혼돈의 도가니로 향해 가고 있었다.

앞으로 이런 개업식은 두 번 다시 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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