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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19화 (19/156)

19화

“여어, 현성이 왔어?”

“예, 왔습니다. 골라도 되죠?”

“하아~ 좀 살살해.”

“에이, 어차피 거기서 거긴데요.”

“나 이 자리에서만 50년이야. 자네처럼 눈 좋은 사람 얼마 못 봤어.”

살짝 웃음이 나왔다.

딱히 비결이라고 할 만한 건 없고 그냥 스윽 보면 괜찮은 게 눈에 띄었다.

직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빛깔이 드러나는 생동감이 다르다.

그러면서 사장님 표정을 스윽 보면 제대로 골랐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딘가 조금 불편해 보이거든.

“이거 하고, 이거…… 가 아니라 이 옆에 이걸로 한 박스 주세요.”

사실, 단골이라고 해서 잘 알려주는 건 아니다. 사는 사람이 알아서 잘 골라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눈치전이 벌어지는 거지.

“왜? 더 필요한 거 있나?”

“아뇨. 좀 볼려고요.”

슬쩍 돌아보니 가게 한쪽에선 열심히 분류 중이었다.

양파 껍데기에 틈을 내고, 에어 브러시로 쏴서 껍질을 날리는.

그렇게 뽀얀 속살을 드러낸 생양파는 업체로 넘어가 마트 납품용으로 둔갑하겠지.

이건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과정.

“사장님 양파 껍데기 좀 들고 가도 됩니까?”

“와? 육수 내게?”

“장사용은 아니고, 그냥 해 먹을라고요. 좀 있으면 좋죠.”

“하, 알아서 가가라.”

“감사합니다.”

창용상회 사장 정갑용은 거의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 그러니까 후배가 아들이라고 데려왔을 때, 저놈은 키가 딱 허리 조금 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군대 갔다고 하더니, 이젠 고객이 됐다.

제 놈 애비 장례식 갔던 기억 때문에 원래는 안 되는데 뿌리치지 못하겠더라.

이제 개인 손님 안 받은 지도 꽤 됐건만.

해서 알아서 골라가라 했다.

그게 실수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상, 상상도 아니고, 특상 기준으로만 쏙쏙 골라가는 게 아닌가.

“대파는 이거하고 이거요. 양파는 이거 한 망하고, 사장님, 마늘 있습니까?”

“그건 저 옆에 창녕상회 가봐라.”

“소개시켜 주는 거죠?”

“하아~ 전화하꾸마.”

“감사합니다.”

“근데…… 궁금한데 우찌 그리 잘 고르노?”

정갑용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었다.

“하하, 그냥 감이죠.”

“진짜 감이가?”

“아버지한테 배운 게 있는데, 사실 기억은 잘 안 나고요. 상식적으로 상처 안 나고 흠집 없고 뭐 그런 기준입니다.”

“니, 야채 선도가 보이나?”

“그게 뭡니까?”

정갑용은 순간, 이마에서 뭔가 빠직했다.

보는 것도 모르는 놈이 저리 좋은 것만 골라간다니!!

“됐다! 고마 들고 가라!”

휘휘 손을 내저으면서도 한숨이 푹푹 나왔다.

“아주 그냥…… 좋은 건 다 쓸어가네!”

* * *

“일단 다 챙겼고.”

현성은 장 봐올 목록을 쭈욱 살피면서 빼먹은 게 없나 확인했다.

고기, 반찬, 고기, 풀…… 여기서 고기가 좀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대충 동일식품부터 젓갈 라인 쭉 돌고, 다시 아래로 내려가서 어묵 라인도 돌고, 바나나 아저씨 오늘 다 팔았나 쉬고 계시네.

그럼 올라와서 박스 쪽을…….

부다다다당-!!

“어웃……!”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어떤 미친놈이 좁은 시장 바닥에서 오토바이로 드리프트를 하고 있었다.

저거 성질 더러운 아저씨한테 걸리면 냉동 명태 대가리로 대차게 까일 텐데.

하여간 어디서 본 것 같은 놈을 무시하고 옆으로 도는데, 정육점 삼촌이 갑자기 불렀다.

“야, 현성아! 목살 싸게 줄 테니 들고 가라.”

“얼마나요?”

“이만큼. 만 원에 준다.”

“주세요.”

목살이 아주 목덜미 통째가 됐다.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나 끓여 먹어야지. 우리 강 여사랑 동생들도 부르면 퍼지게 먹을 수 있…….

“어어. 어~~~!!”

다급히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휙 돌리자, 바로 옆 상가 입구에 있던 오토바이가 크게 휘청거렸다.

짐까지 잔뜩 실려 있는데 어떤 할머니가 그걸 간신히 붙잡고 있었던 것.

저거 넘어가면 크게 다칠 텐데!

휘익!

“할머니, 놓으세요!”

급하게 할머니를 잡아당기자 오토바이가 내 쪽으로 크게 쏠렸다.

“어엇!”

쿠웅!!

당황해서 그냥 냅다 걷어 차 버렸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말이 잘 나오지 않는지 할머니는 몇 번이나 신음만 내뱉었다. 다행히 크게 놀란 걸 빼면 다친 건 없는 것 같았다.

“어우~ 괜찮어, 괜찮어.”

할머니가 안 다친 건 좋은데.

‘문제는 오토바이가 박살 나버렸네.’

발로 걷어찬 부분이 움푹 들어갔고, 옆으로 넘어지면서 짐 실은 부분도 뒤틀린 것 같았다.

때마침 상가 입구로 나오던 근육 돼지가 다급히 뛰어왔다.

황당하게도 내 돌돌이를 무시했던 바로 그 남자였다.

“아이고, 엄마! 안 다쳤나? 괜찮아?”

근육 돼지는 내가 챙겼던 할머니를 뺏듯이 끌어안고 살피기 시작했다.

“무겁다고 손대지 말랬잖아!”

“아니, 넘어갈 것 같아서…….”

“넘어가도 괜찮다! 어데 안 다쳤지?”

“어, 저 총각 때문에 안 다쳤다.”

“진짜?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근육 돼지는 생각보다 심하게 호들갑을 떨었고, 할머니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분위기상 슬쩍 빠져야 할 것 같은데?

무엇보다 내가 걷어찬 부분이 심하게 구겨진 상태였다.

당황해서 생각보다 힘이 과하게 들어간 것이다.

덥썩!!

근데 잡혔다.

“아재요. 고맙습니다.”

“예? 아, 아뇨. 어머님, 괜찮으…….”

“내 심장이 덜컥했다 아입니까. 여~ 잠깐 지갑 좀 찾는다고 가게 들어갔다 나온다고 걸쳐놨는데!”

간판을 보니 형님네 냉동식품이라 적혀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이 아저씨네 가게인 모양이다.

“하이고, 이거 제대로 찌가짔네.”

근육 돼지가 오토바이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사람 안 다쳐서 다행이죠.”

“아~ 예. 그게…….”

“어머님, 괜찮으시죠?”

“아, 엄마!”

“나는 괜찮다. 근데…….”

근육 돼지 아저씨가 하도 말을 정신없게 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어차피 시장도 다 봤으니 오래 있을 필요는 없겠지.

“그럼, 수고하세요.”

잽싸게 할머니한테 고개를 숙인 다음 후다닥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쪽 길로는 오지 말아야겠다.

* * *

다음 날.

“아, 어색하네.”

제대하고 처음 입는 정장이라 그런지 영 갑갑했다.

무엇보다 급하게 머리 깎는다고 단골 이발소를 갔는데, 거기 사장님이 아직도 내가 군인이라 착각했는지 확 밀어 버렸다.

그러고 나서, 아차! 하더라.

어쨌든 맞춰서 정리하다 보니 아주 짧은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에휴, 이등병도 이렇게 바짝 자르지는 않는데.

“오빠, 진짜 조폭 같은…… 커흡.”

“아니거든?”

“그, 그래도 자꾸 보다 보니 잘 어울리는데요?”

임혜리는 그렇게 말한 다음 코트를 내밀었다.

대충 걸치고 거울을 보는데 올 블랙 패션이었다. 운동도 빼먹지 않았기에 여전히 체구가 건장했으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위압감 좀 느끼려나…….

“하, 이러니 조폭 소리 들어도 별수 없지. 근데 가서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형식상 하는 거라고 들었어요. 진로 상담이긴 한데, 어차피 졸업하면 바로 일할 계획이라서요.”

임혜리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다.

원래라면 고등학교 과정이 기초였다.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면 대학 과정, 즉 헌터 아카데미 취업반으로 가게 되는데, 임혜리와 임수원은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반대로 임민혁 같은 경우는 뒤늦게 각성해서 바로 진학하게 된 케이스고.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형편도 안 되고 각성자라고 다 취업이 잘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능력 키워볼 생각은 있어?”

“그게 마음대로 돼요?”

“안 될 거 있나.”

지금이야 분식집에 집중하니 시간을 못 낼 뿐, 임혜리나 임수원 정도라면 어느 선까지는 성장이 가능했다.

물론 본인들의 의지가 제일 중요하지만.

“일단 다녀올게. 나 없다고 몰래 치킨 시켜 먹지 말고.”

“현지 언니가 피자 사 온다고 했어요.”

“피자에 소주?”

“요즘 거기에 맛 들렸다고 하더라고요.”

“참 취향도 독특하다…… 하여간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저번처럼 취해서 변신하고 옥상 올라가면 진짜 죽는다.”

임혜리는 내심 찔리는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그날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변신 풀리기 직전에 현지랑 현아가 달려들었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늦었으면 노출광년 하나가 옥상을 마구 뛰어다닐 뻔했다.

“수원이 데려올 때까지 얌전히 있어. 현지 술주정도 너무 받아주지 말고, 취하면 그냥 마당에 버려놔.”

“너무 냉정한 거 아니에요?”

“여긴 내 집이거든.”

현지랑 서로 죽이 잘 맞는 것도 좋긴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 하는 법.

술친구 하나 생겼다고 툭하면 술판을 벌리는데, 그때마다 안주 만들어 바친다고 임혜리의 요리 실력이 부쩍 상승했다.

뭐, 덕분에 저녁 메뉴도 몇 가지 정해졌지만.

“하여간 나 갔다 온다.”

* * *

“흐음, 많이 변했군.”

다녔던 고등학교는 맞는 것 같은데 기억과 차이가 컸다.

애초에 입구부터 초소하고 비슷해서 아카데미라기보다 군부대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신분증 보여주고 들어가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는데, 조금 묘한 기분이랄까.

“이거 꼭 다시 입대한 것 같은데…….”

진짜 삭막함이 딱 군대 신병 훈련소 같았다. 게다가 저쪽에서 거친 사내놈들이 자꾸 힐끔힐끔 보는 것이 영 불편하기도 했고.

그렇게 5분 정도를 기다리는데, 머리 위로 그늘이 졌다.

커다란 체구를 가진 서른 중반 정도의 사내.

아무래도 술 한잔 걸친 것처럼 코가 벌게져 있었다.

“어디서 왔습니까?”

“예? 저요?”

“또 누가 있습니까? 딱 보니까 학생은 아닌 것 같고. 옷 입은 거나 스타일이나, 좀 그렇네? 어째 주먹 좀 쓰시나?”

“아닙니다. 싸움 못합니다.”

“여긴 아카데미거든요. 조폭들이 들락날락하는 데가 아니라고.”

복장 때문인지 단단히 오해한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걸 입고 올걸.

“저, 학부모 상담 때문에 왔습니다.”

“학부모? 한참 어려 보이는데?”

“아, 동생 때문에 온 겁니다. 고지원 선생님 뵈러 왔습니다.”

“그 어정쩡한 늑대?”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건지 명백히 비꼬는 말투다.

진심으로 한 대 까버릴까 고민하는데, 마침 안쪽 문이 열렸다.

“충성! 상사 고지원.”

습관적인 경례에 사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가 아직도 군대인 줄 아시나?”

“아, 강한덕 선생님도 계셨군요.”

고지원이 살짝 고개를 숙이는데, 강한덕이란 사내는 시비를 그치지 않았다.

“선생이면 선생답게 처신하세요. 조폭 같은 사람 들락거리는 거 보기 안 좋아요. 안 그래도 요즘 말이 많은데.”

“학부모 상담 때문에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크흠, 큼. 오늘 정장이 좀…….”

……검은 정장이 그렇게 이상한가?

아니면 머리 스타일이 문젠가?

어쨌든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였다.

“뭔가 오해하시는 모양인데, 저 이 앞에서 분식집 운영합니다. 싸움과 아주 거리가 먼, 지극히 평범한 식당 주인입니다.”

“풋.”

“웃어?”

“아아, 아닙니다. 그냥 옛날 기억이…… 어쨌든 교장 선생님께서 기다리십니다.”

고지원이 깍듯이 대하자 강한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학부모 상담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교장 선생님이?”

“저분과 인연이 조금 있습니다.”

“아~ 그럼 군부대 쪽 사람이란 거네?”

“예. 일단은…….”

고지원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모양이다.

그때,

휘익!!

갑자기 강한덕이 움직였다.

다짜고짜 주먹을 쥐더니 대놓고 크게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슬쩍 상체를 기울여 피하자 강한덕의 눈빛이 바뀌었다.

“호오, 한 수가 있으시다?”

“뭐 하시는 겁니까?”

“뭐 하긴, 이런 거지.”

강한덕은 갑자기 고지원을 옆으로 밀어 버리더니 기습적으로 손을 뻗어왔다.

퍼엉!!!!

주먹에 어린 기운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솔직히 난,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순순히 맞아줄 정도로 얌전하지도 않고.

가볍게 반격했다.

치고받고 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냥 다리를 툭 걸어 버린 것이다.

강한덕이 풀썩 주저앉았다.

“어? 어?”

강한덕이 다시 일어나려는데, 순간 또 다리를 걸어 버렸다.

방금보다 강하게.

털썩!!

“어? 이게 무슨…… 윽!!”

“계속하실래요?”

퍼억!

“너, 무슨 수작을 부린 거…… 큭!!”

“크윽!!”

“아이고!!”

강한덕은 무려 다섯 번이나 연속으로 주저앉은 뒤에야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 그만!! 그만하라고!”

“의외로 깡이 없으시네요. 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이 씨……!!”

“한 번 더 갈까요?”

강한덕이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든 순간,

‘무, 무슨 눈빛이…….’

덜컥 겁이 났다.

분명 평범하게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건, 명백한 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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