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아하하, 장난이 짓궂으십니다.”
고지원은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라.
“그 전에 말리셨어야죠.”
“선배님이 다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안 말린 게 그래서였나?
“그 강 선생은 다쳐도 괜찮고요?”
“보기보다 강골이라 금방 일어날 겁니다.”
글쎄다.
뼈가 부러지진 않았겠지만, 제법 강하게 걷어찼다.
적어도 내일이면 피멍이 드는 걸 피할 순 없을 텐데.
어쩌면 한동안 절뚝이며 다녀야 할지도.
“그런데 그 강 선생이란 사람. 원래 그렇게 시비 걸고 다닙니까?”
“그게 사정이 좀 있습니다.”
초창기 게이트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정부는 군대를 적극 투입했다.
강력한 무력이 필요한 것도 있었지만, 때마침 군대를 중심으로 각성자들이 등장해서였다.
아무려면 전투병과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거겠지만.
“그런 이유로, 아카데미는 절반쯤 군대라 보시면 됩니다. 문제는 민간 헌터들인데, 수요가 부족해서 고용한 거라 좀 거칩니다.”
“그걸 그냥 놔둡니까? 제대로 인성 검사해서 걸러야죠.”
“급한 건 아카데미 쪽이니까요. 반대로 그들도 우리가 자신들 자리를 뺏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막 시비를 건다?”
“그건 아닙니다. 단지 요즘 시기가 시기인지라 좀 시끄러워서요.”
요약하면, 졸업과 입학 시즌이라 자주 분쟁이 일어난다는 거다.
능력도 안 되는데 입학시켜 달라는 청탁도 빈번하고, 취업 때문에 학부모들이 자주 와서 성질을 부린다나.
“그 강 선생이 일종의 문지기라는 거군요.”
“예. 대충 견적을 내는 거죠. 그럴 목적으로 고용한 것도 사실이고요.”
“본인은 그걸 압니까?”
“경비 측에서도 큰 소란만 없으면 적당히 묻어주니, 알 겁니다.”
“쯔, 그러다 한 번 크게 당할 텐데.”
헌터 중에는 정말 성질 더러운 놈들이 많았다.
요즘에야 게이트가 안정화됐고 어느 정도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기에 큰 문제는 없지만, 상당수 ‘빌런’들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저런 어설픈 실력으로 시비를 걸다가는 진짜 골로 가는 거다.
“하하, 여긴 헌터들 키우는 아카데미죠. 큰 소란을 피우는 이들은 거의 없습니다. 같은 헌터가 아니라면요. 무엇보다 교장 선생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기는 하네요.”
박순신 준장, 아니, 이제 교장 선생님이지.
초창기부터 활약한 헌터 중에서도 좀 무시무시한 편이다.
군인 특유의 ‘안 되면 되게 하라’ 정신으로 무장한 터라, 밀어붙이는 것도 아주 잘했다.
하필 특수 능력도 그런 쪽이지.
[야전 사령관]이었나?
소속된 군인들이 많을수록 파워 업이 되는 능력이다.
덕분에 임무를 같이했을 때는 조금 편하기도 했고.
“그건 그렇고, 지원 요청이 뭐죠?”
“그건 직접 들으시면 됩니다만…… 그 전에 제대로 상담부터 하시죠?”
“아~ 그렇기는 하죠.”
“그리고 말 놓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날 하도 정신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참에 시원하게 말 놓고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였다. 실제로 임무 수행할 때도 존칭은 생략했으니까.
“저쪽에 휴게실 있습니다. 자판기 커피, 괜찮겠습니까?”
“역시 군인은…… 믹스지.”
* * *
확실히 형식적인 게 맞구나.
임수원의 성적은 애매했다.
공부는 좀 하는 편이지만 정작 헌터로써의 능력이 불안정하니, 아예 평범하게 사는 걸 선택했다.
이 경우 졸업과 동시에 돈 버는 게 목적이겠지.
당연하게도 내가 부려먹을 예정이긴 했다.
개코는 정말 쓸데가 많으니까.
“하여간 그 정도로 알고 있으면 될 겁니다. 딱히 특이사항 같은 건 없고요. 본인도 평범하게 졸업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고지원은 그렇게 말한 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조금은 아쉬운 모양이었다.
“혜리와 수원이를 아카데미로 데려온 건 접니다.”
“그래?”
“사실 괴수화 능력자는 많지 않거든요. 아직 연구가 필요한 부분도 많고, 특히 제 선생님이 수원이를 좋아하고요.”
“설마 같은 개…… 크흠, 비슷한 부류인가?”
“예. 두 아이들한테 직접 마법 방어를 걸어주시기도 했죠.”
흐음, 그거 많이 허접하던데.
“그 정도 되니까 간신히 졸업하는 거죠. 원래라면 실기에서 탈락입니다. 적어도 아카데미 이름값이 있으니까요.”
“상관없지 않나? 헌터가 될 것도 아니고…….”
솔직한 심정으로 그쪽과는 발을 끊고 싶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헌터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결코 좋은 게 아니었다.
더럽고, 위험하고, 살 째지고, 피 터지고.
결코 평범한 인생과는 거리가 멀지.
이제 그런 삶은 질색이었다.
그저 가족들과 오손도손 행복하게 분식집이나 하면서 사는 게 백배 천배 낫지.
“형식상 상담은 이걸로 끝입니다. 원래라면 끝까지 책임지려 했는데 졸업하면 제가 따로 뭘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앞으로 애들 잘 부탁드립니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적어도 굶기지는 않으니까.”
“하하, 분식집이니 그건 당연하겠네요. 그럼 교장 선생님 뵈러 가시죠.”
“그러지.”
고지원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데,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게 뭔가 엮일 것 같은 기분이랄까.
뭐…… 이미 손 씻었으니 거절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지?”
“엘리베이터로 갑니다. 교장실이 지하에 있거든요.”
“뭐?”
설마? 내가 전에 들었던…… 그거 아니겠지?
* * *
우우우우웅-
유리창 너머에 있는 건, 빌어먹을 게이트였다.
어느 정도 안정화가 된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불길한 건 불길한 거지!
“어서 오게.”
박순신은 기억하는 그 얼굴 그대로였다.
단지 흰 머리가 가득했던 자리가 훤해진 걸 제외하면.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 년…… 하고 조금 더 지났군.”
“그런데, 저 게이트 때문입니까?”
박순신은 대답 대신 창 너머를 쳐다봤다.
“일단 블랙 게이트로 분류했네. 언제 분열할지 모르는 상황이지.”
“게이트는 정의 내리면 안 됩니다.”
잠시 흠칫한 박순신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들이야 편의상 게이트 색상과 형태로 이렇게 저렇게 나누지만, 그건 잘못된 거다.
애초에 저건 인간들의 가치관으로 평가할 것들이 아니니까.
“분열이 어느 정도입니까?”
“지금은 열흘에 한 번 정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네. 아직 막아내는 건 어렵지 않고, 학생들 실습용으로 충분히 제어 중일세.”
“완전히 닫는 건요?”
“불가능하다네. 아직 내부의 코어가 충분한 여력을 가지고 있어.”
“자연 소멸을 기다리시는 겁니까?”
“아니, 저 안에는 분명 뭔가가 있어. 어쩌면 다른 종족일지도 모른다네.”
순간,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코드 네임 EX2 First.
특별한 공주님.
종족은 엘프…… 로 구분하는데 여러모로 귀찮은 존재였다.
물에 빠진 걸 건져놨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질 않나…….
사실 엘프뿐만이 아니다.
지리산 일대에는 전사 오거들도 있었고, 태백산맥에는 백곰족도 살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지를 가지고 있어서 대화가 된다는 거다.
게다가 목적도 명확해서 정부와 협력관계였으며, 때로는 헌터들을 돕기도 했다.
“헌터청에 지원 요청한 건 저것 때문인가요?”
“그렇다네. 솔직히 말하면 분석이 잘 안 돼. 지금까지의 데이터와는 다르더라고.”
“새로운 형태…… 인 겁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네만. 자네가 좀 도와…….”
“거절입니다. 전 은퇴했습니다.”
박순신은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단호하군.”
“헌터청에도 유능한 인력들이 많습니다. 정 안 되면 고요환을 부르시든가요. 그 얍삽한 녀석이라면 방법을 찾겠죠.”
“자네도 아직은 헌터청에 특무 이사로 이름 올리고 있지 않나?”
“그거야 실적 때문이죠. 국방부에서 하도 부탁을 하니 그런 것뿐입니다.”
저 게이트 너머에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지 모른다.
목숨 걸라고 하면 당연히 거절이지.
“하긴, 자네도 할 만큼 했으니…….”
그저 한 손이라도 거들어줬으면 하는 느낌이구만.
아직 게이트가 안전하게 제어되고 있으니까 박순신도 큰 미련은 없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터널 안이라면 문제없어 보였다.
어떤 마수가 튀어나오든 통째로 무너뜨려 버리면 되니까.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가끔 생각나면 놀러 오게. 믹스 커피 정도는 어렵지 않으니까.”
역시 군인 출신다웠다.
용건이 끝났으니 이만 가보라는 의미다.
그런데, 저 게이트…… 정말 안전한 거 맞나?
* * *
“라면 백 그릇, 다 팔리겠지?”
임시 오픈 이틀 동안 충분히 확인했다.
SNS나 블로그 같은 것도 제법 살펴봤는데, 정말 놀라울 만큼 반응이 없었다.
올라온 글은 달랑 두 개가 전부.
역시 정식으로 문을 열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었다.
‘뭐, 입소문은 금방 날 테니까.’
“혜리야. 준비 다 됐지?”
“예. 오픈할게요.”
혹시나 조폭으로 오해받을까 봐 재빨리 조리모를 썼다.
앞치마도 깔끔한지 확인하고 전반적으로 가게 전체를 둘러보고.
흠잡을 건 하나도 없었다.
“자! 장사 시작하자.”
힘껏 손뼉을 친 다음 문을 열었다.
아니, 다시 닫았다.
저 인간이 왜 여기 있냐!
“하~ 진짜 분식집 맞네? 근데 왜 문을…… 손님 안 받습니까?”
“아, 아닙니다. 여기 뭐가 걸리는 느낌이 나서요. 어서 오세요.”
첫 손님이 하필 그 강 선생인가 하는 사람이었다.
시비 걸러 온 거라면 골치 아파지는데.
그렇다고 손님을 가려 받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메뉴가…… 라면 하나밖에 없네. 그거 줘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괜히 말 걸까 봐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냄비를 올리고, 뜨거운 육수를 붓고, 순식간에 끓자마자 라면과 야채를 투하.
슥슥 휘저어 면이 거의 풀리면 바로 그릇으로 옮기고, 삶은 계란, 베이컨에 파를 잔뜩 올리면 끝이었다.
실로 간단한 조리 과정.
“맛있게 드세요.”
강한덕은 잠시 라면과 유현성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이상한 거 넣은 거 아니죠?”
100%네. 100%야.
분명 시비 걸러 온 게 맞네.
“손님, 음식 가지고 장난 안 칩니다. 방금 만드는 거 보셨잖아요.”
“그게 뭔가 휙휙 지나간 것 같아서…….”
“이쪽에 다진 마늘, 매운 고춧가루, 통후추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취향껏 넣어 드시면 됩니다.”
“아…… 음.”
강한덕은 주저주저하면서 젓가락을 들었다.
이후 들린 소리는, 오직 후루룹, 후루루룹뿐이었다.
아주 그릇에 얼굴을 박을 기세로 박력 있게 먹는데 진짜 이틀은 굶은 사람처럼 보이더라.
“후아…… 좋네.”
“맛은 어떠십니까?”
“으음, 나 참. 뭐라 할 말이 없네.”
“예?”
“솔직히 말합니다. 건수 있으면 시비라도 걸러 왔는데…… 하아~ 맛이 다 했네. 맛이 다 했어.”
지금 싸우자는 건가?
“사장님. 한 그릇 더 주쇼.”
“방금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저기 메뉴판에 저거, 깜빡했네요. 역시 라면에는 밥을 말아야 정석 아닙니까.”
정식 오픈 전, 식구들, 임혜리, 임수원과 머리를 맞대었다.
결국 약간의 가격 조정이 있었다.
라면 한 그릇 5,000원.
대신 공깃밥이 공짜.
이 정도 선에서 타협을 했는데 다들 옳은 결정이라고 했다. 특히 덕순 할머니네 칼국수를 생각하면 같은 가격으로 장사하는 게 조금 민폐 같기도 했고.
“거~ 시간 없으니까. 후딱 줘봐요.”
“예, 손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역시 고객이 왕이다.
아니, 지갑이 왕이다.
또다시 후다닥 라면을 끓여서 내는데, 강한덕은 그사이 밥을 한 주먹이나 퍼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주 정성스럽게 다진 마늘과 매운 고춧가루를 조금씩 추가했다.
후르르릅! 후룹! 하아!
곧 강한덕의 입속으로 면이 사라지고, 국물에 말은 밥까지 깔끔히 해치웠다.
“하~ X발!”
“손님, 욕은…….”
“나 참, 정말 욕 나오게 맛있다는 거요.”
정말 좋다는 거야, 뭐야?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에이, 맛만 더럽게 좋아 가지고. 시간 없으니 계산이나 해주세요.”
“예. 만 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혜리야!”
임혜리가 능숙하게 카드를 들고 영수증까지 내밀자, 강한덕은 뺏듯이 받아 갔다.
그런 뒤, 돌아서는데…….
절뚝, 절뚝.
진짜 많이 아픈지 다리를 절면서 나가더라.
확실히, 시비 걸러 온 게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