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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22화 (22/156)

22화

분명 듣긴 했다.

‘근데 왜 그걸 잊고 있었지?’

아마 정신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제대하고 나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으니까.

집 사고, 리모델링하고, 동네 주민들한테 인사도 하고, 혜리랑 수원이도 거두고, 가게 오픈에, 개업식에, 며칠 전에는 아카데미도 갔다 왔다.

그 외에도 직접 해야 하는 일들도 적지 않았다.

정말 하루하루가 바쁘고 충실한 생활이었다.

군대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시간의 흐름과 변화가 미치도록 빨라진 것이다.

“치수야. 잠깐 앉아봐.”

“예.”

“너네 어떻게 납품하니?”

“저희야 간단하게 말하면, 절반 정도는 인력으로 때우는 거죠. 물론 기계도 많이 쓰고요.”

대충 정육점에 있는 파채 절단기 같은 기계 중 큰 것들로 여러 대가 있다고 했다.

그걸로 단무지도 일정한 두께로 썰고, 당근이나 우엉, 어묵 같은 것도 한 번에 쑥 잘라서 납품한다.

“보통 메뉴가 많은 분식집들은 대부분 식재료를 받아 쓰거든요. 김밥 천왕 같은 데요. 그렇게 받은 재료에 참치나 매운 고추, 치즈 같은 걸 추가해서 파는 거죠.”

“그럼 재료는 어디에서 어디까지 납품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정말 중요했다.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많을수록 손님들에게 낼 수 있는 폭도 넓어지니까.

“보통 밥 빼고 전부라고 보시면 돼요. 김도 저희 쪽에서는 대량 구매하니까 단가도 시중보다는 조금 저렴한 편이고요.”

“중요한 건 품질이지. 어때?”

“팔이 안으로 굽는 부분은 이해해 주셔야…….”

“알아서 듣는다.”

“그럼…… 크흠, 금액에 따라 다릅니다. 요즘은 상품부터 하품까지 다섯 종류 정도 취급하고 있어요.”

“오~ 잘 됐네.”

처음 서른 줄 정도로 잡은 건, 가내 수공업(?)이란 현실 때문이었다. 저녁에 퇴근하고 다 같이 재료 손질해서 다음 날 팔려고 한 거니까.

물론 김밥은 즉석에서 만들겠지만.

“혹시…… 따로 주문 제작 같은 건 안 되겠지?”

“당연히 안 되죠. 이건 김치랑 깍두기 같은 거랑은 다르거든요. 완성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에요.”

“그럼 재료 종류는 많은데, 직접 만드는 건 없다는 거네?”

“예. 아무래도 재고 문제도 있고, 위생법 때문에 좀 복잡해요.”

대충 이해는 됐다.

보다 저렴한 가격에 위생적인 식재료라면 이것저것 시험해 보기도 좋을 터.

들어 보니 단무지는 절단 후 진공 포장해서 납품.

당근이나 야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세척하고 잘라서 반조리도 가능하다는데 그건 대량 주문일 때만 된단다.

역시 행복 분식이 영세 규모의 분식집이라 안 되는 게 많네. 이거 빨리 체급을 키우든가 해야지.

이후에도 한참이나 대화를 나눴다.

주로 물은 건 다양한 조리 방식과 응용 범위였다.

어차피 전부 가져다 쓸 수 없으니 기본 재료만 받아 가게에서 추가하는 방식이 최고였으니까.

“내가 원하는 건, 일반적인 왕김밥 정도가 아니거든. 진짜 더 큰 김밥으로 하루 최소 50줄 정도를 보고 있어.”

“식자재 재료비는 어느 정도로 보세요?”

“절반 정도?”

밥을 빼고, 조리 과정의 인건비를 빼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금치수의 말은 달랐다.

“형. 솔직히 이야기하면 2,000원짜리 김밥 원가는 1,200원이 넘어요. 좀 괜찮은 건 1,400원까지도 하고요.”

“박리다매라서 그런 거지?”

“예.”

금치수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부분의 분식점에서 파는 김밥은 미끼 상품에 가까웠다. 라면이나 쫄면, 떡볶이 같은 걸 팔면서 김밥을 끼워 팔아 몇백 원 정도를 더 남기는 거다.

직원을 쓰는 경우는 그게 맞기도 했다.

아주 바쁘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더 일을 시켜야 그만큼 벌어 가니까.

솔직히 김밥으로 수익을 올리는 가게들은 대부분 전문점이었고, 가격도 상당했다.

특히 요즘 유행은 건강 다이어트 김밥이었다. 밥 대신 계란 지단을 잘게 썰어 넣어 한 줄에 5~6,000원 씩 받기도 하는 것이다.

즉, 그런 콘셉트와 특징이 없다면 김밥으로 큰 수익을 남기는 건 포기하는 게 좋았다.

“문제는, 김밥은 재료 준비만 되면 거의 끝이거든요. 인건비를 크게 계산 안 해요.”

“그건 인정. 김 놓고, 밥 펴고, 재료 올리고 말면 끝이니까, 전문 조리사처럼 요리에 대한 센스나 고급 기술이 필요하진 않지.”

듣는 사람은 불쾌하겠지만 이게 진실이었다. 거의 라면 수준의 단순한 과정에 불과한 것이다.

역시 눈치 잘 보는 녀석답게 금치수의 어조가 오히려 바뀌었다.

“그래도 약간의 숙달은 필요해요. 미묘한 차이에서 맛이 크게 달라지거든요.”

“그건 처음에 전자저울로 연습하면 돼. 김치나, 참치 같은 거 올리는 양도 몇 번 말아보면 금방이고 소스도 마찬가지지. 한 이삼 일만 하면 감이 올 거야.”

못하면 강제로 하게 만들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씨익 웃으니, 치수 녀석이 당황해했다.

“그, 그렇게 쉽지는 않을걸요?”

“그건 누가 어떤 식으로 가르치고, 시스템을 만드느냐의 차이지. 애초에 킹버거나 도날드 버거 알바들도 다 요리 자격증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매뉴얼을 최대한 지키면 거의 맛이 비슷하니 숙련의 차이일 뿐이야.”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사람 잘 없어요. 나름 기술이라고 그러던데.”

“진짜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건 공정의 이해도 차이라고.”

솔직히 말하면 이건 금치수와 나와의 시야의 차이 때문이었다.

납품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많은 걸 경험하겠지만, 결국 녀석은 식품회사 직원이었다.

반대로 나는, 직접 분식점을 운영하는 사장이었고.

“됐고, 어쨌든 기본 재료는 단가에 따라 납품이 다르다는 거지?”

“옙!”

“김은 최상품하고 하품 차이가 많이 나니?”

“최상품하고 상품은 단가 차이는 크게 안 나는데, 향이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그건 우리 귀여운 강아지가 해결해 줄 터.

어쨌든 임수원은 이런 쪽으로 써먹기에 아주 좋았다.

“지금 신청하면 언제 가능할까?”

“저희는 주문 예약에 맞춰서 하거든요. 그래서…….”

“금요일 오후까지.”

“예?”

“식재료. 스무 줄 정도 분량만 가져와 봐! 영업 사원이니까 그 정도 재량은 있을 거 아냐?”

“전 영업 사원이라고 말한 적이 없…….”

하지만, 난 그대로 못 박아버렸다.

“그래. 미래의 영업 사원. 아니, 미래의 거래처 사장님. 진심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 *

“라면 지옥 다음은…… 김밥 지옥인가요?”

임수원은 올 게 왔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열몇 줄밖에 안 되거든? 그냥 맛있는 거 고르면 돼!”

“김밥은 두세 줄 정도만 먹으면 배부르지 않나요?”

“일이라 생각하면 다섯 줄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형…… 이거 다 왕김밥이잖아요.”

하긴, 우리 현지의 튼실한 손목 두께 정도였으니 결코 작다고 할 순 없겠군.

“종류별로 두세 개씩만 먹어보면 될 거야.”

“그런데 형, 뭐 하려고 앞치마를 입는 거죠?”

“당연히 라면도 함께 먹어야지.”

“웁, 제발 그것만은……!”

정식 오픈하고 한 주간 장사하면서도 한동안 라면 테스트는 계속했다. 몇 가지 재료를 더 생각하고 시험해 본다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라면은 저녁 혹은 야식으로 대체되었다.

당연하게도 실험체(?)는 임수원이었고.

물론 나 역시 사장으로써 녀석과 아픔을 함께했지만, 비할 바는 아니었지.

요 녀석만큼 섬세하진 않으니까.

“그럼 다른 거 해줄까?”

“어떤 거요?”

“짜장 라면, 비빔 라면, 매운 라면, 우동맛 라면, 쌈장 라면, 조미료 라면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와……! 마왕도 형님 하겠는데요?”

“그런 조무래기가 형님이라 불러도 별로 안 기쁜데?”

그렇게 말한 후 싱크대 선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약간의 고민 끝에 꺼낸 건 골뱅이 통조림.

비빔 라면 확정이라는 거지.

“그래도 다행이네요. 국물 라면이 아니라서.”

“응, 아냐. 이건 우리 현지 술 안주. 넌 오늘의 특제 멸치 칼국수 라면이다.”

“흐엉, 왜요?! 왜 저만…….”

굳이 이유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지만, 난 친절한 사장이니까.

“어, 낮에 육수가 좀 남았거든.”

* * *

“역시 고기는 이길 수 없나?”

다 같이 모여서 냉정히 평가한 결과.

1위가 유부 김밥, 2위가 어묵 김밥.

유부를 잘 조리했는지 일단 고기 식감이 많이 났다. 게다가 설탕을 적절히 넣은 간장 조림으로 만들어 불고기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게 소고기 김밥보다 낫다는 거지. 담백, 달달, 짭짤. 그러면서 감칠맛까지 있으니 라면하고 잘 어울려.”

가장 중요한 건, 잘 다져 넣으면 고기로 충분히 위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손님들은 말 안 하면 모를 테니까.

“그다음이 어묵 김밥이라…….”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다.

제일 저렴한 사각 어묵이 엄지손가락 두께로 들어가 있었는데, 의외로 쫀득했다. 거기에 맞춘 듯, 단무지는 아주 얇게 들어가서 간도 아주 적당했던 것이다.

한 번 더 확인을 위해, 어묵 김밥을 입에 넣었다.

오물, 오물, 우물, 우물.

“역시 2위 한 이유는 기름 맛 때문이구나.”

아무래도 대량으로 서둘러 만들다 보니 데쳐서 기름 빼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조리 과정에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웰빙 야채 김밥인가?”

고기고기주의자가 선뜻 고르기는 어려운 김밥이긴 했다.

일단 크기가 큰 건 둘째 치고, 채 썬 당근이 엄청나게 들어가 있었다. 거의 김밥의 3분의 1, 특히 중심부에는 거의 절반 정도가 넘었던 것이다.

“그래도 한 번 더.”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아삭, 아사삭. 우득, 뿌드득.

“……야채의 단맛을 볶아서 끌어낸 건 좋은데, 기름 맛이 강하네. 계속 먹기는 좀 느끼해.”

분명 단무지의 짠맛과 계란 지단의 담백한 맛이 당근에 코팅된 기름 맛을 상쇄해주기는 했다.

하지만 웰빙 김밥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진 않더라.

그 외 나머지 김밥은 점수가 대체로 비슷했다.

맛에도 크게 차이는 없었지만 호불호에서 탈락했던 것이다.

“참치 김밥은 좀 아쉽기는 하네.”

기름 꽉 짠 참치에 청양 마요네즈 소스를 올린 김밥이었는데, 순수하게 맛만을 따지면 세 손가락에 들 만했다.

아쉬운 건, 우리 가게의 라면과 칼국수 계열의 국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참치와 매운 고추, 마요네즈의 고소함이 섞인 맛은, 비빔라면이나 매운 라면에 잘 맞았다.

강한 맛끼리의 부딛침에서 오는 묘한 조화 때문이랄까.

“확실히 참치 김밥도 리스트에는 넣어두자.”

선택받지 못한 이유는, 현지와 혜리의 강렬한 반대 때문이었다.

여성의 적은 다이어트!

다이어트의 큰 고비 중에 하나가 막 끓인 라면이란다. 특히 ‘한 입만’을, ‘하나 더 끓이자’로 만드는 현혹마법까지 부린다는 것이다.

그런 라면에 마요네즈 범벅인 기름진 참치 김밥을 먹는다면?

한동안 죄책감을 피하긴 어렵다나.

한마디로 여자 손님이 상당수인 우리 가게를 생각하면 판매가 저조할 거라고 했다.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데…… 정말 그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네.”

아이러니한 건 따로 있었다.

이미 현지와 혜리가 소주 댓 병 하나를 비운 상태였다는 것.

여기에 골뱅이 비빔면 한 접시를 작살 냈고, 물만두 한 봉지로 만든 탕수만두까지 거덜 내버렸다. 마지막에는 해장이 필요하다며 임수원에게 먹였던 칼국수 라면까지 한 냄비를 비운 것이다.

다이어트는 개뿔! 아마 지옥에 가서나 하겠지.

적어도 현생에선 없을 일이겠더만.

고개를 저으며 잠시 그런 생각을 털어냈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 김밥이이니까.

“흐음, 유부랑 어묵이란 건데…….”

아쉬운 건, 하필 두 재료가 금치수가 이야기했던 재료에는 없다는 점이었다.

그건 뭐,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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