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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24화 (24/156)

24화

“뭐냐?”

“아! 사장님.”

임혜리가 당황스러워하는데, 시선이 자연스럽게 맞은편으로 움직였다.

딱 봐도 껄렁한 세 명.

한 놈은 백금발에 귀에 피어싱 같은 걸 네 개나 박았고, 목덜미에 타투인지 문신인지를 하고 있었다.

다른 한 놈은 모히칸도 아니고 스포츠도 아닌 묘한 머리에 다소 근육질 체형.

남은 한 녀석은 그나마 평범했다.

한때 유행하던 초록색 추리닝에 핑크색 패딩, 하늘색 삼선 슬리퍼라는 괴랄한 패션만 아니면 말이다.

하지만 특별한 기운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임혜리 이하의 수준이라는 건데?

그중 백금발이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어유~ 사장님이세요? 상당히 젊으시네. 그런데 여기 라면을 그렇게 맛있게 잘 끓이신다고 해서…….”

“무슨 일입니까? 손님.”

“얘요. 얘~ 설마 모르시나?”

백금발이 임혜리를 가리키는데, 앞으로의 상황이 뻔히 예상되더라.

모르는 척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뭘요?”

“얘, 각성자예요. 물론 능력은 보잘것없지만.”

“그래서요?”

“각성자라고요. 식당에서 쓰기에 불편하지 않아요? 언제 괴물로 돌변할지 모르는데?”

“어쩌라고요?”

“어허, 참 아저씨 잘 모르시네. 전에 일시켰던 사장님도 그러더라고요. 뭐 말할 때마다 묘하게 섬뜩했다고. 뭐,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백금발의 말에 임혜리가 발끈하는 듯했으나 이내 입술을 다물었다.

주먹을 꽉 쥐는 걸 보니 분명 뭔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거참, 좋은 마음으로 신경 써서 이야기해 주는데.”

그때, 백금발이 갑자기 한 걸음 물러섰다. 당황한 듯 흔들리는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였다.

크흠.

급한 마음에 튀어나오다 보니 손에 중식도가 들려 있었다.

“하여간, 줄 선 거 안 보여요? 예? 손님 안 받아요?”

“흐음.”

“아~ 장사 안 하냐고오?”

백금발이 묘하게 신경을 거스르는 중에, 근육질과 거지 패션이 다가왔다.

같이 위협이라도 할 모양인가?

슬쩍 임혜리의 표정을 보니 뭔가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가까스로 억누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게, 기분이 좀 더럽네.

“사, 사장님…… 손님은 받아야죠.”

“그래, 혜리야. 손님은 받아야지.”

“네.”

“손놈은 예외다.”

“네?”

고개를 돌려 가게 안으로 소리쳤다.

“수원아! 굵은 소금 가져와라!”

“옙!”

주방 안으로 들이기 전에, 나름 임수원을 호되게 교육시켰다.

일단 내가 지시하면 토 달지 말고 무조건 할 것.

그에 대해 궁금한 건 끝나고 물을 것.

단, 위험하다 싶을 때면 반드시 물어보고 확인할 것…… 등등.

역시나 효과가 바로 나왔다.

임수원이 작은 바가지에 굵은 소금을 가득 담아왔다. 소금 가마니에서 급하게 꺼내 온 것이다.

들고 있던 중식도를 임수원에게 건네주고 바가지를 받았다.

“뭐, 뭐야? 그걸로 뭐 하려고?”

백금발이 잠깐 당황해하는 걸 보며 세 손가락으로 소금을 약간 움켜쥐었다.

“헐, 설마 뿌리려고? 그게 아프기나 할까?”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고작 소금 가지고 뭘…… 아악!”

분명 찌개에 넣을 정도도 안 되는 작은 분량의 소금일 뿐이다.

“훠이, 재수 없다. 물러가라!”

그러면서 조금씩조금씩 툭툭 뿌렸다.

하지만 양아치 셋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악! 씨발!”

“앗 따거. 아오 따갑다고!”

“컵, 퉤퉤. 왜 나만…… 압, 얼굴에…….”

줄 서서 기다리던 손님들은 그걸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점장이 가볍게 손가락으로 소금을 뿌릴 뿐인데, 양아치 셋이 경기를 일으키며 팝핀 댄스를 추고 있었으니까.

“훠이~ 악귀는 물러가라!”

“따따따, 따갑다고! 아윽!!!”

“악귀는 재수 없다!”

“아파요, 아파!!”

“물러가라!”

“그만하라고!!!”

결국 날 말린 건 임혜리였다.

“사, 사장님. 그만하세요.”

“응? 왜?”

“손님들 보잖아요…….”

“아! 손님들. 죄송합니다! 제가 못 볼 걸 보여 드렸네요. 죄송한 마음을 담아 못 볼 걸 보신 손님들을 위해 악귀 퇴치를 빨리 끝내겠습니다.”

“아니, 그래도…….”

“훠이~ 물러가라 했는데 안 가니까 갈 때까지 해야지!”

그제야 세 양아치의 표정이 달라졌다.

왜 계속 소금으로 두들겨 맞게 됐는지 깨달았으니까.

“차암 독한 악귀네. 이래도 가지 않으니. 아무래도 더 강력한 주술을 써야겠어.”

똑똑히 보이도록 소금을 한 손 가득 쥐고 팔을 크게 뒤로 당겼다.

“히이엑!! 튀, 튀자!!!”

“가, 가요!!”

근육질이 제일 먼저 몸을 돌리고, 백금발도 도망쳤다.

마지막으로 거지 패션이 하늘색 슬리퍼 한 짝을 허공으로 날려 버린 채 맨발로 허겁지겁 튀었다.

헹, 한 5분만 지나 봐라. 소금으로 맞은 부분이 벌겋게 달아오를 거다.

가려워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쓰라릴 테지!

“사장님…….”

“괜찮아. 괜찮아. 사장은 손님은 받는데 손놈은 싫어하거든.”

그렇게 말한 뒤, 손님들한테 고개를 숙였다.

“잠시 사고가 있었습니다만, 다행히 정의는 이겼고 악귀는 퇴치되었습니다. 이제 걱정 마시고 입장하시면 됩니다.”

씨익.

그러면서 미소를 짓자, 그 직후 손님들, 특히 여성분들이 속닥거리는 게 들렸다.

“진짜 재수 없어. 자꾸 찝적거리고 시비 걸고.”

“늦게 와놓고 반쯤 끼어들기 했잖아. 바닥에 침 찍찍 뱉는데, 어우~ 더러워서 정말!”

“꼴 뵈기 싫었는데 잘됐지. 솔직히 속 시원하더라.”

따지면 그 양아치들도 손님이나 다름없었지만, 다들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소금으로 처맞는 동안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으니 얼마나 진상이었으면, 싶기도 했고.

유현성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거듭 사과드립니다.”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사장님 멋졌어요!”

약간의 응원에, 보란 듯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전 손 씻고 라면 끓이러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몸을 돌리는데, 임혜리가 다급히 말했다.

“사장님, 쟤들요. 클랜이에요.”

* * *

“클랜?”

나도 이게 무슨 뜻인지는 안다.

보통은 일종의 소규모 모임이겠지만, 헌터들 사이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파티보다는 크고, 길드보다 작은 일종의 목적 단체.

하여간, 이후 바쁘게 점심 장사하는 동안은 궁금해도 묻지 않았다. 모두의 집중력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다행히 예상보다 밥이 빨리 떨어진 걸 제외하면 실수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점심 마감 후, 가볍게 믹스커피 타임을 가졌다.

“걔들 유명해?”

“그건 아니고요.”

“그럼 신경 쓸 필요 없잖아.”

“그게, 곧 이름난 길드로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더라고요.”

살짝 귀찮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거 알아봐야 하나?

“이름이 뭔데?”

“삼차 클랜이라고 하는데요. 스무 명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엉? 삼차? 술 마시다 1차, 2차, 3차 가서 만든 클랜이야?”

“그게 아니라, 차씨 삼형제가 만든 거라 그렇게 지었대요.”

아주 작명 센스 지랄이네.

그럼 네 명이면 포차 클랜이 되는 건가?

“헐, 근데 걔들은?”

“염색한 애는 클랜장 아들이고요. 근육 돼지 같은 애는 부클랜장 아들, 나머지 거지는 부부클랜장 아들이요.”

“병신들, 지들끼리 다 헤쳐 먹는 거네.”

어이가 없어서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너 걔들하고 어떤 사이야?”

“일단 둘은 동급생이고요. 하나는 수원이랑 같은 학년인데, 좀 그래요.”

“원한?”

“염색한 애가 차태명이라고, 작년에 저한테 고백했는데 찼어요.”

“헐, 왜?”

“그냥 보면 알잖아요. 개양아치 씹새…… 크흠.”

내가 모르는 부분이 제법 많은 모양이었다.

더 황당한 건 이어진 이야기였다.

“마지막 실기 시험도 일부러 저랑 붙게 해놨더라고요. 복수한다고. 그러다 저한테 개발렸거든요.”

“거의 전교 꼴등 수준이라 졸업 못 하는 건데 클랜에서 힘을 좀 썼다고 들었어요.”

“편의점에서 짤린 것도 걔들 때문이에요. 솔직히 걔들이 가게 와서 깽판 친 것도 있고, 사장님도 반쯤 협박당했다고…….”

“알바 자리 못 구한 것도 사실 그래서예요. 어떻게 알았는지 집요하게 찾아와서는……!”

현지한테 물들었는지 원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혜리의 말투가 아주 저렴해졌다.

저게 욕을 빼고 최대한 걸러 들은 거니까…….

이에 대한 감상은 당연히.

“진짜 개양아치네.”

“제가 찰 때 좀 심하게 하긴 했는데,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하더라고요.”

“어? 어떻게 찼는데?”

“그냥 뭐, 싫다고 하는데도 손목 확 잡아 끌고 가려고 난리를 치길래 그냥 싸대기를…….”

“크흠.”

“우리 반 애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건 좀 잔인한데.”

“그래도 세 대밖에 안 때렸어요.”

남자로써 그런 상황을 겪었다면 정말 쪽팔리겠지.

하지만 임혜리가 싸다구를 세 대나 갈길 정도면 그만큼 질 낮은 놈이란 말도 된다.

게다가 그 뒤에 한 짓을 생각하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가 분명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게 아니라…… 쟤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거든요.”

“분명 복수하러 올 거다?”

“그렇겠죠.”

일전에도 그런 경우가 몇 번 있었다고 했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친구나 지인에게 알려 진상 짓을 하고 장사를 방해했단다. 결국 가게에 피해를 주지 않기 그만뒀고, 동네를 벗어난 곳에서 일을 찾았는데도 며칠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사장님 만난 게 그때였어요. 정말 먹여주고 재워주고 일도 시켜…… 월급도 준다고 했잖아요.”

“그, 그랬지.”

“그날 밤 꿈에 천사가 나타나더라고요. 후광이 짠 하고 피어나는데……! 심지어 수원이도 그런 꿈을 꿨대요.”

“크, 크흠.”

조금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렸다.

그저 배고픈 애들 먹이고, 직감 때문에 고용한 것뿐인데. 그런 뒷사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물론 혜리가 다 말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야 사생활이라 생각해서 묻지 않았지.

약간 과장이라고 해도, 듣는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흐음, 그럼 조만간 우리 가게에서도 진상 피울 것 같다 이거지?”

“사장님이 무척 강하다는 건 아는데요. 이런 부분은 그렇게 싸우기가 애매하잖아요. 가게를 지키면서 손님들 상대하고, 그러면서 스트레스 받고 하면…….”

“뭘 어렵게 고민하고 있어? 그냥 다 두들겨 버리면 되지.”

스물 정도가 동네 돌아다니면서 깽판 칠 정도면 클랜이 아니라 조폭 아닌가.

그냥…… 확 지워 버릴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한숨을 내쉬던 임혜리는 내 질문에 잠시 우물쭈물했다. 그러다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계속 일하고 싶죠.”

“그래! 그러면 된 거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임수원의 약점은 턱 아래, 반대로 임혜리는 정수리. 둘 다 그 부분을 살살 쓰다듬어 주는 걸 좋아했다.

임혜리의 머리에 살짝 손을 얹었다.

“당연하지. 가게를 지키는 건 사장의 업무 중에 하나니까.”

물론 수틀릴 경우, 주리를 틀어버리면 된다.

* * *

“형! 저 왔어요.”

금치수가 환하게 웃으며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커피?”

“감사합니다.”

당연하게도 행복 분식의 공식 커피는 믹스였다.

“재료 양은 얼마나 돼?”

“한 삼십인분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최소 포장 기준이 있거든요. 거기다 이제 시작하니까 로스까지 계산해서 조금 더 가져왔어요.”

“최소 포장이면 보통 어느 정도인데?”

“김밥집 같은 경우 50인분과 100인분이 있는데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거든요. 단무지, 우엉, 시금치, 당근까지는 크게 차이 안 나는데 계란지단이나 다른 게 추가되면 가격이 올라가죠.”

조금 이상했다.

우리 강 여사나 태수, 동네 아주머니들을 통해 들은 것과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으니까.

“보통 20인분, 30인분 정도의 소포장도 있지 않아?”

“물론 식품 회사마다 단가가 다르긴 해요. 저희는 주로 50인분, 100인분 단위로 포장하거든요. 그 이하는 남는 게 별로 없어서요.”

추가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대량으로 판매하는 만큼 가격을 낮췄다. 그 이점으로 보다 많은 거래처를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아니, 중요한 포인트는 남의 가게가 아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할 것인가, 거기에 얼마나 맞출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잠시 고민한 뒤, 결정을 내렸다.

“치수야. 최소 재료만 받을 거야. 괜찮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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