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헐!
올라가니 이미 소주, 맥주에 막걸리까지 놓여 있었고 벌써 서너 병은 빈 듯 보였다.
저게 매출로 치면 얼마냐 되려나?
음식 나오기도 전에 벌써 만 원 넘게 수익이 오른 셈이었다.
역시 술을 팔아야 많이 남는다는 말이 맞네.
물론 오늘은 공짜지만.
“어따, 음식 나왔네.”
“저희 가게가 밑반찬이 별로 없어서요. 먼저 급한 대로 드시라고 감자전을 했습니다.”
김치와 단무지, 부추 겉절이를 놓고, 감자전 두 접시를 올렸다.
다섯 명이 서너 젓가락씩 놀리면 없어질 양이었지만 서비스라는 걸 감안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아따~ 메인 안주 나오기 전부터 눈이 호강해 버리네.”
“그래. 이렇게 예쁜 감자전은 처음 봐.”
감탄을 내뱉은 건, 박씨 아저씨의 아내 분이시자 고물상의 살림을 맡고 있는 이복희 이모였다.
칼국수 할머니집 고스톱 멤버이시기도 하고.
사실 일반적인 감자전이 아니라 약간의 솜씨가 더해진 거였다.
실파를 역시 잘게 썰어 테두리를 돌렸고 당근을 데쳐서 다진 다음 전체적으로 무심한 듯 뿌렸다.
중심에 자리 잡은 건 역시 피자 치즈였다.
한때 유행했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포차의 치즈감자전 비슷한 걸로 보면 될 거다.
여기에 당근과 실파로 색감을 더한 것뿐.
“이거 신경 많이 쓴 것 같은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아니에요.”
소금 뿌리듯이 서너 번 한 게 전부였으니까.
어쨌든 반응이 좋으면 저녁 메뉴의 한 가지로 내놔도 되겠지.
실제 원가도 많이 안 드는 편이니까.
“다음 음식 금방 나올 테니까 먼저 드시고 계세요.”
“그려, 그려.”
유현성이 다시 주방으로 내려가자 잠시 시식평이 이어졌다.
“이거 바삭바삭하니 맛있네.”
“형수, 당근 씹히는 것도 의외로 괜찮아요. 심심하지 않아서 좋네.”
“그럼 빨리 막걸리나 따라줘.”
“예입, 모시겠습니다.”
“자네도 한잔하고.”
“감사합니다. 허허허.”
유현성은 밑에서 대화를 들으며 씨익 웃었다.
일단 메뉴 하나는 합격이었다.
아래로 내려오니 마침 고기가 적당히 데워졌다. 두툼한 오겹살에서 기름이 잔뜩 나왔던 것이다.
“역시 고기는 기름에 튀긴 게 최고지.”
팬을 기울여 기름이 한쪽에 고이게 한 다음 미리 준비한 양념장을 세 숟가락 가득 넣었다.
간장, 고추장, 된장과 매실액, 다진 마늘 등을 섞어 약간 간간하게 만든 것.
이걸로 기본 간과 색을 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진짜 맛의 비법은 따로 있었으니까.
“자, 다음 요리 나왔습니다.”
“이건 또 뭐냐?”
“김치제육볶음입니다.”
어디 가나 있다는 바로 그 메뉴였다.
하지만 불라면에 들어가는 매운 김치를 돼지기름에 튀기듯이 볶아서 섞어 차별화를 뒀다.
“커, 크흠. 이거 칼칼하네.”
“으허~ 맵다.”
역시나 첫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근데, 첫 맛은 매운데 이상하게 달달하기도 하고 그러네.”
“묘하다. 묘해. 뭔가 흔한 것 같은데 또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바삭한 오겹살. 그 기름에 구운 매운 김치.
마지막에 꿀을 넣어 윤기를 더했으니 당연히 매운 맛이 전부가 아니다.
“혹시 콩가루 뿌렸나?”
“아뇨. 그냥 참깨를 바로 빻아서 넣었습니다.”
맵고 달기만 하면 금방 물리지만 고소함이 더해지면 그런 부분을 적당히 중화시킬 수 있었다.
“그럼 다음 음식 가져오겠습니다.”
그렇게 나온 음식은 감자전을 제외하고도 네 가지나 됐다.
매콤한 김치제육볶음.
계란말이에 떠먹는 요구르트를 넉넉히 뿌려 달달하고 상큼한 것 하나.
그다음은 옛날식으로 케첩을 더한, 탕수 소스를 뿌린 일명 탕수만두였다.
마지막으로 불닭소스로 만든 닭불고기까지 내니 다들 좋아하더라.
사실 몇 가지를 더 시험해 보고 싶었는데 다들 배가 부르다고 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음식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니 맛 평가도 정확하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끝으로 속을 달래라고 매실 음료와 꿀물을 섞은, 매실꿀차를 내왔다.
이만하면 충분히 대접한 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지?
* * *
“으음, 요리 대회가 궁금하다고?”
“예. 아직 전역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아는 게 별로 없어서요.”
박씨 아저씨는 매실꿀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약간 새콤한데, 이거 참 묘하게 맛있네.”
“안 그래도 패트병으로 하나 준비해놨습니다. 나가실 때 가져가시면 됩니다.”
“하나만?”
“당연히 인당 한 병씩이죠.”
유현성이 씨익 웃자 박씨, 박문수도 마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장사는 그렇게 하면 된다. 하긴 보고 겪은 게 있으니 이 정도는 하겠지만, 중요한 건 꾸준해야 한다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요리 대회라고는 하지만, 뭐 엄청 크거나 거창한 건 아니야. 이제 3년, 아니, 4년째인가 되는데 처음에는 아주 소박하게 시작했거든.”
대충 그 시기라면 이해는 되었다.
당시 게이트가 안정화되면서 정부는 경기 부흥에 많은 예산을 쏟았다. 그게 여러 이권단체에 전해지면서 각 지역마다 있던 축제 같은 게 부활했고, 소규모 대회가 늘어났다.
“처음에는 운영이랄 것도 없이, 그냥 여러 가게들이 자기들 음식 맛보라면서 나눠주기만 했거든. 일종의 홍보용 자리였지.”
“그럼 딱히 겨루거나 하는 건 아니네요?”
“맞아. 그런데, 크흠. 그게 대박이 난 거야. 아니, 초대박이 터진 거지.”
홍보를 위해 참가한 가게 수만 서른 몇 곳이었다.
무려 천인분이 넘는 음식이 공짜였고, 여기에 가게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20% 할인쿠폰이 뿌려졌다.
당연히 할인 비용은 협회에서 부담한다.
사장이 쿠폰을 모아서 주기만 하면 바로 입금해 주는 방식이었으니까.
“당시 석 달 동안, 전포동 상권 전체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더군. 문제는 당시 협회가 망하기 직전까지 갔다는 거지.”
“예? 그게 좀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쿠폰을 너무 많이 뿌린 거지. 급하게 만들다 보니 가짜 쿠폰도 많아졌고, 또 인쇄 골목 쪽에서 몰래 더 찍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허, 그게 그렇게도 되는군요.”
모순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주먹구구식 운영으로 인해 벌어지는 저런 경우도 종종 있을 법하지.
“하지만 가능성이 보였던 거지. 이게 돈이 된다는 걸 눈치챈 이들도 있었고.”
“설마, 누군가 인수한 겁니까?”
“맞아.”
처음에는 몇 개의 중소기업들이 돈 냄새를 맡았다.
여기에 제법 이름난 회사들이 군침을 흘렸고, 소문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협회에서 신설 조항을 걸어서였다.
앞으로는 협회비를 낸 식당들에 한해서만 대회 참가 자격을 부여하겠다.
할인 쿠폰이 적용되는 곳도 마찬가지.
“당시 대회에 참가했던 식당들 상당수가 엄청나게 벌었다고 하더군. 특히 아이스크림 꿀호떡을 낸 가게는 반년 만에 가게 세 개를 더 냈어. 그리고 지금까지 유명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들었네.”
“그래서 다들 협회비를 내기 시작했겠군요. 확실히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니까요.”
많은 식당 사장들은 홍보에 골머리를 앓았다.
소정의 비용만 내면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마다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서면 전체를 다 아우르지 않더라도 전포동 아래쪽 일대에만 식당들이 수천 곳이었다.
매달 십만 원씩만 거둬도 수억은 그냥 떨어지는 셈.
부전 시장 라인을 제외하고 이 범위가 서면 전체로 확대되면 한 달에 수십억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럼 그 협회를 어디에서 인수한 겁니까?”
“갈매기 길드라는 곳이라네.”
“예? 기업이 아니라, 헌터 길드에서 인수를 했다고요?”
박문수는 쓰게 웃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힘 앞에서 누가 버틸 수 있겠나.”
* * *
“다락방에서 자자.”
결론을 내린 다음 대충 자리를 치웠다.
그다음, 채 썬 어묵을 살짝 튀겨 다락방으로 올라왔다.
갑자기 술이 당겨서였다.
“갈매기 길드라.”
부산에서 거의 처음 생긴 헌터 길드라고 했다.
더군다나 부산의 상징인 갈매기를 이름으로 걸 정도로 시민들과 친근하기도 했고, 소문으로는 권력층하고도 닿아 있다더라.
특히 이미지가 아주 좋은 편이었다.
게이트 사태 초창기부터 부산시와 협력해 많은 희생과 공헌을 했다고 했으니까.
“딱히 그런 부분에선 불만이 없는데…… 이게 기분이 싸하단 말이지.”
갈매기 길드가 인수한 명분은 분란 방지였다.
협회 인수로 인해 여러 기업들이 경쟁을 심하게 벌였고 이 과정에서 일부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는 것.
“대충 말이 되기는 하는데, 헌터 길드가 이 정도로 일반인 사이에 깊숙이 관여한다는 게 좀 걸리는걸.”
이후 갈매기 길드는 괜한 구설수를 예방하기 위해 한발 물러섰단다.
구역을 쪼개서 각각의 조합을 만든 다음, 그 운영을 기업들에게 맡겼다.
또 하나.
정당하게 대결하라는 조건을 걸었다.
결국 각 조합장들은 협의를 했다.
요리 대회 성적을 기준으로 서로의 구역을 조금씩 가져가는 것으로.
“황당하네. 아니, 나름 평화로운 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그 결과, 동부 조합장이 2년 연속 패배를 당했고 구역의 4분의 1을 넘겨줬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문수가 조언을 해줬다.
“사실 이건 비밀이랄 만한 이야기도 아니야. 아는 사람은 다 알지.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겐 하등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니 현성아, 넌 네 장사만 집중하면 된다.”
유현성은 명함을 하나 꺼냈다.
전포 동부 요식업 조합.
대표 이예지.
“그렇다면 이 아가씨도 한 기업의 대표라는 거잖아.”
전직 헌터를 경호원으로 데리고 다닐 정도니 뭔가가 있을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다소 어리숙한 모습 때문에 그렇게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가게가 딱 경계라는 거지?”
원래라면 동부 조합에 속하는 게 맞았다.
문제는 뺏긴 구역에 교묘하게 걸쳐 있다는 거였다.
즉, 다른 조합 대표로 나가도 된다는 것!
“크흐, 소주가 쓰네.”
다행히 설탕 뿌린 어묵튀김이 적당한 안주가 되어줬다.
그렇게 소주 반 병 정도 비웠을 무렵.
“이 부분에 대한 딜도 생각해 보고. 뭐, 길게 생각할 필요 있나. 해보고 안 되면 마는 거지.”
보통의 식당 주인이라면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다.
소정의 조합비를 내고, 그중 조합장의 추천 혹은 자체 대결에서 이기면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여기서 많은 득표를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상금도 상금이지만, 협회에서 비용을 내주는 쿠폰을 거의 무한정으로 뿌릴 수 있었다.
물론 규정이 조금씩 바뀌면서 지금은 석 달밖에 적용되지 않지만, 소모되는 만큼 지급해 주는 조항이 있어 한계는 없다고 보면 된다.
한마디로 무척이나 좋은 기회라는 것.
“내 경우가 그저 조금 특별한 케이스란 거지. 하지만 박씨 아저씨 말대로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거잖아.”
은퇴한 헌터.
지금은 행복 분식 사장.
딱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 * *
“대회 참가하겠습니다.”
“정말요?”
이예리의 눈빛이 밝아졌다.
“그 전에……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뭔데요? 다 알려 드릴게요.”
“왜 저한테 이야기 안 해주신 겁니까?”
“어떤…….”
이예리는 당황한 듯 박경후를 쳐다봤다.
그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난 전날 들었던 이야기를 최대한 요약했다.
이번에 4회째라는 것, 여기에 각 조합이 가지는 구역이 달라진다는 점.
마지막으로 그 구역에서 나오는 조합비도 상당하다는 것까지.
“분명 이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