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설마…… 모르고 계셨어요?”
“예?”
“저희는 당연히 아는 줄 알고 있었는데.”
엥?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올해 대회가 벌써 네 번째죠. 그리고 이 일대 식당들은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요.”
“그, 그런가요?”
“당연하죠. 이만한 기회가 또 어디 있는데요. 생각해 보세요. 한 달에 세 개의 가게가 생긴다는 건, 세 개의 가게가 망했다는 의미죠.”
이예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골목 쪽을 가리켰다.
“여기서부터 200미터 안에, 그리고 저쪽 지하철역까지만 해도 한 달에 가게 하나씩 폐업하고, 하나씩 새로 생겨요.”
“으음.”
“카페 거리라고 하는데, 저희 쪽 기록을 확인하면, 정확하진 않지만 카페 쪽만 포함해서 지난 삼 년 동안 오십 군데 이상이 새로 생긴 걸로 나오거든요.”
그럼 오십 군데 이상이 망했다는 거네.
“근데 식당은 그 두 배가 넘고요. 요식업을 제외한 다른 창업까지 치면 세 배 정도가 될 겁니다.”
끝에서 끝까지 느긋하게 걸으면 30분도 안 걸리는 이 동네에서, 불과 삼 년 사이에 백 오십 개의 가게들이 망했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여기가 가장 치열한 격전지라 보면 돼요. 그러니 식당 홍보가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려고 하죠. 당연히 이번 대회 신청도 엄청나게 들어왔고요.”
“공식적으로 열 곳의 식당이 지원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그 두 배 이상 될 겁니다.”
박종후까지 진지하게 거들었다.
그럼 서른 곳 넘는 식당들이 대회 참가를 하겠다고 한 건데, 정말 그 정도나 되나 싶었다.
“궁금한 게, 왜 이 동네가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겁니까?”
“왜냐하면 부산 최고의 중심가에서 월세가 가장 저렴하니까요.”
한마디로 가장 부담 없이 창업할 수 있는 동네.
여기서 자리 잡고 성공하면 보다 아래쪽 번화가로 간단다.
거긴 유동 인구는 한 배 반인데, 월세는 두 배 이상이다.
또, 그 자리에서 성공하면 보다 중심가까지 접근할 수 있다고 했다.
“보통 거기까지 가는 식당들은 얼마나 됩니까?”
“이 골목을 기준으로 하면 식당 서른 곳 중에 하나가 중심가까지 가요. 빠르면 오 년, 늦으면 십 년 이상? 보통 평수는 네다섯 배 이상 넓히는 대신 월세는 최소 열 배 이상이죠.”
“그렇게 비싸게 주고 갈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예지는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산 최대의 번화가에서 성업 중인 가게. 그럼 딱 느낌이 오지 않나요?”
“창업 문의가 들어온다는 건가요?”
“예. 그렇게 가게를 하나둘 확장하다가 어느 순간 프랜차이즈까지 성공하면…….”
“돈을 많이 번다?”
“많이 버는 정도가 아니죠. 기업으로 성장해서 만약 상장까지 하게 된다면 단숨에 수천억 자산가가 되는 거예요.”
“흐음, 수천억이라.”
“그게 꿈이라면 꿈인 거죠.”
이해가 갔다.
허름한 동네 구멍가게 식당에서 시작해 갑부가 되는 코스.
당연히 요식업에 진출한 이들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리라.
“우린 그걸, ‘만에 하나’라고 표현하죠.”
“만에…… 하나요?”
“그만큼 어렵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확률을 뚫을 가능성이 보인다면, 그리고 그런 이들과 일찍부터 인맥을 쌓아놓는다면 우리로써는 결코 손해는 아니니까요.”
“아! 그렇군요.”
이 아가씨도 분명 한 기업의 대표였다.
최정상의 자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관련 일을 주도할 만한 권한이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큰 그림을 그리는 게 맞겠지.
“또 궁금한 거 있으세요?”
“아니요. 됐습니다.”
“뭔가 저희 쪽에서 오해의 여지를 만들게 된 건 미리 사과드릴게요. 딱히 그런 부분은 비밀도 아니었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라서요.”
“하하, 그게…… 저 전역한 지 반년도 안 됐습니다.”
이예지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박종후가 끼어들었다.
“군대 갔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 그…… 그럼, 제가 더 사과해야겠군요.”
뒤늦게 상황 파악을 했는지 이예지가 허둥거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를 상대로 기초적인 것도 몰랐다고 잔소리한 상황이니까.
한발 빠른 건 유현성이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사회 물정을 잘 몰랐던 겁니다. 그냥 가게 차리는 데 급급했었죠.”
“그게…… 제가 알기로 행복 분식은 오래된 걸로, 그래서 리모델링하면서 바뀐 걸로 알고 있어서요. 딱히 건물주가 바뀐 것도 아니고.”
“예. 원래 아버님이 오래 하셨는데 제가 물려받았습니다. 이후 제가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인수한 거죠. 하하하.”
이예지는 잠시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직원을 시켜 알아본 결과, 행복 분식은 그냥 동네마다 흔하게 있는 가게에 불과했다.
건물주도 사장 이름도 그대로였는데, 리모델링 후 라면 하나로 대박이 나 버렸다.
오해한 게 그래서였다.
최소 반년에서 일 년 이상, 그것도 상당한 실력의 요리사가 철저히 라면을 연구한 다음, 상권 분석해서 가격을 정하고 오픈한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랬는데, 고작 군대 제대하고 다섯 달이 조금 넘었다니.
“대단하시네요.”
“그냥 운이 좀 좋았습니다.”
간단히 말했지만, 진짜 어려운 과정이긴 했다.
서로 잠시 말이 없다가, 결국 이예지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아까 물어보신 부분 말고 더 궁금하신 건 없으신가요?”
정말 물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로 갈매기 길드, 그리고 기업들의 싸움 같은 부분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반인의 시각으로 대화를 했으니 거기까지는 갈 것 없겠다 싶었다.
난, 분식집 사장이니까.
“그런데 보통은 따로 조합 내에서 예선 같은 거 치르지 않나요?”
아까와 다르게 이예지의 목소리가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원래라면 그렇죠. 최소한도 안 되는 기준으로 뽑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일반 참가는 달라요.”
“일반…… 참가요?”
“모르셨구나. 제가 분명히 조합 대표라고 했는데.”
확실히 4구역 대표로 요리를 내달라고 하긴 했었다.
근데 그게 이런 의미였나?
“일반 참가는 각 조합마다 열 곳 정도를 공개 추첨으로 뽑아요. 사실 거기에만 걸려도 복권 당첨급의 행운이죠.”
“그 식당들도 참가한다는 거군요.”
“축제 구경 오는 손님들을 상대로 부스 형식으로 홍보와 할인된 금액으로 판매하는 거죠. 하지만 이들은 심사 위원 평가 대상이 아니고요. 오로지 대표 식당들을 기준으로만 수상을 결정해요.”
“으음, 그렇군요. 그래서 따로 심사니 이런 게 없는 거군요.”
“예. 다시 이야기드리지만, 가게에서 파는 메뉴, 혹은 새로 출시하는 신 메뉴로 제한되고요. 평가 기준에 가격도 들어갑니다.”
“가만? 가격도요?”
“라면 한 그릇이 십만 원씩 하면 누가 찾아와서 먹겠어요. 애초에 이 대회는 최대한 손님들을 많이 끌어서 인근 상권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거라니까요. 당연히 합리적인 가격도 중요하죠.”
“아! 그래서 우리 가게를 추천한 거군요.”
이예지는 미소를 지은 뒤 박종후를 쳐다봤다.
그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사실 4,000원이란 가격으로 지금 퀄리티의 라면을 낸다면 거의 우승권에 가깝습니다만, 식당에 희생을 요구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배려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의심한 게 미안해졌다.
또 방금 전의 대화를 생각해 보면 이들의 목표도 확실해 보였다.
한마디로 믿고 손잡을 만한 이들이라는 것.
그럼 그 기대에 부응해야겠지?
* * *
“혜리야, 마감 준비!”
“몇 명까지 받을까요?”
“흐음. 앞으로 열두 명 정도만 받으면 될 거야.”
“예!”
임혜리가 바깥으로 나가는 걸 보다가 유현성은 다급히 소리쳤다.
“다섯, 다섯!”
“아! 다섯 명까지요. 알겠습니다!”
곧 임혜리는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마지막 손님들도 예상했다는 듯 미련 없이 돌아갔다. 그들의 손에는 꿀차, 무료 쿠폰이 들려 있었으니까.
이건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이전까지는 줄 서 기다리다가 재료 소진으로 못 먹는 손님들을 그냥 보냈다.
하지만 박씨 아저씨 일행분들한테 매실꿀차를 선물로 주고 나서 생각났다.
기다렸던 손님들은 그냥 보내는 게 아니라고.
마침 매실꿀차도 경쟁력이 될 것 같았다.
행복 분식만의 특색 있는 음료도 하나 정도는 필요하다 싶었고.
이후 창용상회 정갑용 사장님을 통해 약재 도매상을 소개받았고, 제법 적당한 가격에 매실 액기스를 구입했다.
꿀 역시 인맥을 통해 괜찮은 물건을 가져왔다.
이게 의외로 효자 상품이 됐다.
원가는 대충 400원 정도인데, 무난하게 1,500원 정도에 내어놨다. 특히 불라면 먹고 마시는 꿀차는 말 그대로 꿀조합이라고 입소문까지 난 것이다.
그때부터 기다렸다 돌아가는 손님들에게 꼭 쿠폰 하나씩 들려줬다.
이후, 간간이 왔던 불만들도 쏙 들어가고 말았다.
“사장님. 마지막 두 팀요.”
“주, 주문 받아.”
가끔 마감 아슬아슬할 때 와서 날 긴장시키는 손님인 일명 대식 자매들.
첫 방문 때는 자매 둘씩 네 명이 한 팀으로 왔는데, 인당 라면 두 개에 공깃밥도 두 그릇씩 먹었다.
더 황당했던 건, 그게 내숭이라는 것!
따로따로 친자매끼리 왔을 때는 정말 그런 거 없었다.
두 명 기본이 다섯 그릇.
여기에 김밥 두 줄, 공깃밥 두 그릇에 꿀차도 두 잔이었다.
김밥이 떨어지면 당연히 한 사람이 라면 세 그릇씩 먹고 갔고.
다급히 사람 숫자를 줄인 게 그런 이유에서였다.
특히 마지막 손님도 그에 못지않았다.
“가, 강 선생님. 오셨습니까?”
“그래. 왔수. 보자, 오늘은 얼마나 먹어보나.”
강한덕은 오픈 주방 앞의 바에 자신의 전용석이 있다는 듯 턱 자리에 앉았다.
“가볍게 라면 두 그릇에 불라면 하나. 되겠소?”
“되, 됩니다.”
“흐음, 이 시간이면 김밥은 안 되겠네.”
그러더니 손을 턱 내밀었다.
당연히 나도 익숙하게 라면 그릇을 건네줬다.
강한덕은 밥솥 옆의 밥그릇이 너무 적어서 성에 안 찬다고 몇 번 투덜거리더니, 그 이후부터는 큰 라면 그릇을 받아 갔다.
그걸로 세 공기는 될 듯한 양의 밥을 퍼 갔고 말이다.
대체 얼마나 먹는 건지.
‘으으, 그때 발목 나간 거에 대한 복수 아냐?’
“사장님. 7번 테이블요. 오늘은 라면 네 그릇만 달래요. 라면 둘 불라면 둘이요.”
“오, 다행이네.”
“다이어트 중이래요.”
“그래, 손님이 원하신다면야.”
냄비 일곱 개가 동시에 화구에 올라가고, 그렇게 마지막 손님들을 향한 열기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늘 점심 장사는 평화롭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때, 갑자기 가게 문이 열렸다.
분명 밖에는 ‘재료 소진으로 금일 영업은 마감합니다’라고 적혀 있을 텐데?
안으로 들어선 건 오십 줄의 아저씨와 서른 초중반 정도의 사내였다.
아저씨는 딱 산타클로스 체형이었고 반대로 사내는 근육질이었는데, 딱 체구만 봐도 강한덕에 못지않을 정도로 컸다.
“손님, 저희 영업 끝났습니다.”
“아? 그래? 근데…… 재료 남았으면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을까?”
이 아저씨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그리고 둘이 와서 왜 한 그릇!
막, 한 소리 하려다가 사내와 시선을 마주쳤다.
‘이거 보게. 기 싸움을 거네?’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그냥 유명한 라면집이 있다고 해서 한 번 들러봤네. 나 이런 사람일세.”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명함이 전해졌다.
전포 남부 요식업 조합.
대표 김요성.
슬쩍 산타클로스처럼 배 나온 아저씨를 쳐다봤다.
확실히 체형만 보면 먹을 거 좋아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살을 보니 탐욕도 상당하게 보였고.
하지만 그냥 내쫓으면 피곤해질 것 같은 느낌.
“예. 라면 먹고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