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사장님, 재료 돼요?”
자리를 안내하고 돌아온 임혜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두 그릇은 충분히 나오지.”
폭식 자매의 다이어트 덕분(?)에 그 정도 육수는 여유로웠다.
마지막 두 그릇이 나왔다.
하나는 라면, 하나는 불…… 아니, 지옥불라면이었다.
속에 불이나 제대로 나라고 작정하고 끓여봤다.
어우, 내가 눈물이 다 날 것 같네.
“유 사장. 거~ 사람 너무한 거 아니요?”
“예?”
“내가 콧구멍이 다 아파.”
강한덕의 말에 옆에 있던 임수원도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심지어 코를 휴지로 막고 있음에도.
“하하, 손님이 아니니까요.”
“그야 모르지. 나처럼 단골이 될지도.”
“그래도 하나는 제대로 끓였습니다만.”
“하긴, 맛보러 왔으니 제대로 맛을 봐야지. 근데 내가 도울…… 아~ 없겠군. 잘 먹었소.”
강한덕은 그렇게 계산을 마치고 서두르면서 밖으로 나갔다.
기침 소리가 들리는 건 착각이다.
암, 그럴 거야. 그렇고말고.
“커헉, 크헉…… 쿨럭! 끄어어업……!”
바깥이 아닌, 안쪽 자리에서 굉음이 들렸다.
덩치가 크니 소리도 우렁차네.
“야! 사장~!!”
“부르셨습니까?”
“이걸 음식이라고 내놔? 지금 장난해?”
“분명히 메뉴판에 있는 음식입니다만.”
“이, 씨바!!”
사내가 멱살을 잡으려 하는데, 산타 아저…… 김요성이 소리쳤다.
“앉게.”
“크흡, 사장님. 그래도 이건…….”
“메뉴판에 아주 맵다고 적혀 있으니 제대로 나온 건 맞아. 하지만, 3단계까지인데…… 그 두 배는 되어 보이는군.”
나름 예리한 평가였다.
하지만 거기에 맞춰줄 필요는 없었다. 이들은 손님이 아니니까.
“가끔 찾으시는 손님들도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3단계 아래 ‘취향에 따라 더 맵게도 가능합니다’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그 밑에 하나 더 있군. ‘경고! 임산부나 아이, 심신노약자에겐 권하지 않습니다’라고.”
“두 분은 거기에 해당 안 되지 않습니까?”
김요성은 슬쩍 눈살을 찌푸리더니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 뒤, 지옥불라면 국물을 보란 듯 입으로 가져갔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이다.
“확실히 그런대로 먹을 만하군. 내가 아는 맛 중에선 이보다 매운 것도 여럿 있으니까.”
헐, 진짜 사람 여럿 잡을 매운맛이겠네.
“맛은 다 보셨습니까?”
“충분히.”
라면은 절반도 남지 않았고, 지옥불라면은 절반도 넘게 남아 있었다.
물컵 대용으로 놔둔 종이컵을 쓴 걸 보니 처음부터 나눠서 맛을 본 게 분명했다.
“어떻습니까?”
김요성의 시선이 행복 분식을 천천히 훑었다.
“이예지와 손을 잡았다고 들었네.”
“일단은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나와 악수하지 않겠나?”
배신하라는 의미겠지.
당연히 모르는 척 되물었다.
“왜요?”
“확실히…… 자네, 따로 원하는 게 있나?”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아시죠?”
“내가 뭘 묻고 있다고 생각하나?”
“제가 남 뒤통수칠 사람인지, 아닌지?”
김요성은 가만히 나를 보더니 씨익 웃었다.
“재밌군. 요즘 보기 드문 친구야.”
“칭찬으로 들리진 않습니다만.”
“말 돌리는 능력도 제법이고.”
“말 피하는 능력도 제법이시군요.”
그때 발끈한 사내가 다시 움직였다.
위력 시위라도 보이는지 벌떡 일어서는데.
“앉으시죠.”
털썩.
김요성의 눈빛이 달라졌다.
단순히 솜씨 좀 있는 요리사 같았는데, 아니었다.
현직 헌터가 일어서려는 걸 고작 어깨에 손 하나 올리는 걸로 완전히 무마시키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경호원 조일섭은 근력으로는 발군이었다.
근데 꼼짝도 못 했다.
얼굴이 벌게진 걸 보면 지금도 충분히 힘을 쓰고 있을 텐데도.
“애써 힘쓰지 마시죠.”
“그거 나한테도 해당되나?”
“예. 두 분 다.”
“흐음.”
김요성이 눈짓을 하자 조일섭도 체념하고 말았다.
동시에 유현성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졌다.
“제안을 하나 하지.”
“들어는 보겠습니다.”
“이 앞에 한라산 아파트 아는가? 500세대가 넘고 대략 인구 천육백 이상이 사네. 그 옆으로 초등학교가 있고 아카데미 후문까지 바로 연결되어 있지.”
“저 이 동네 오래 살았습니다.”
“아파트 상가 1층, 50평대 가게를 내주겠네.”
그 바로 맞은편에 맛자랑 식당이 있었다.
손강희에게 듣기로 아파트 상가가 월세는 두 배로 비싸다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예 매물이 없다는 것.
즉, 권리금 얼마 이런 수준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끼리만 넘긴다는 정말 목이 좋은 자리였다. 심지어 농담으로 거기서 미끄러지면 지하철 입구라고도 할 정도로 교통도 좋았고.
“조건이 후하시군요. 고작 라면 몇 젓가락 드시고 이야기하시는 건 제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만.”
“난 음식 장사만 삼십 년을 한 사람이라네. 그 치열한 지옥 같은 경쟁에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지.”
이보세요, 아저씨.
난 진짜 지옥에서 돌아온 사람입니다.
“자네에게 가능성이 보여. 일종의 투자라 생각하면 될 거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정도 퀄리티로 메뉴를 좀 더 늘리고 가게를 하나씩 확장하다 보면…….”
“죄송한데, 그만하시죠.”
“더 원하는 게 있나?”
“아까 분명히 제 의도를 전했습니다. 애써 힘쓰지 마시라고.”
김요성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네도 헌터인가?”
“은퇴했습니다.”
“힘의 무서움을 알겠군.”
“예. 무서워서 은퇴했습니다.”
“알겠네. 아무래도 박종후와의 인연 때문에 그런 모양인데, 곧 후회할 거야.”
어라? 이야기가 왜 그쪽으로 흘러가는 거지?
좀 어이없어하는데, 또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검은 정장의 사내 세 명이 가게 안으로 들이닥친 것이다.
그때 조일섭이 비릿한 얼굴로 웃었다.
아무래도 이놈이 호출한 모양이다.
세 명 중 가장 위압감을 풍기던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마자,
“헉!”
“어? 너…….”
“서, 설마, 네임드?”
“나 알아?”
“죄송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 말이 끝이었다.
남자는 바로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같이 왔던 두 녀석의 멱살을 잡아끌고 밖으로 나갔다.
“뭐, 뭐야!”
조일섭의 황당한 비명이 터지고, 김요성은 턱이 빠질 듯 입을 떠억 벌렸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유현성도 물었다.
“쟤들 뭡니까?”
* * *
“소금 뿌려. 아주 그냥 팍팍 뿌려. 나 원, 재수가 없으려니까.”
“예. 사장님!”
“수원아. 그래도 적당히 해라.”
“왜요?”
“한 포대 다 쓸려고?”
“죄송합니다…….”
임수원이 대충 정리하고 들어가자 임혜리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오빠. 근데 아까 그 아저씨들 뭐야?”
“나도 몰라.”
같이 게이트로 들어간 수많은 녀석들 중 내 얼굴을 아는 놈이겠지. 그 숫자가 수천 명은 족히 넘어가니 나도 다 기억하지 못했고.
솔직히 학교 선생 고지원만 해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먼저 특성을 밝혀서 겨우 기억했던 거다.
“가만? 분명 네임드라고 했었지.”
그렇다는 건, 초기는 아니고 4년 차 정도에 같이 뛰었던 놈이라는 건데.
아까 김요성이 길드 소속이라 했으니까…… 이상도에게 물어봐야 하나?
‘에이, 귀찮아.’
알아서 꺼졌으니 딱히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당장 요리 대회에 낼 메뉴만 생각하기에도 머리가 복잡했으니까.
“근데 아까 그 아저씨 조건이 아주 좋던데요. 왜 거절했어요. 그 상가 정말 으리으리하던데.”
“가봤어?”
“유리창 닦는 알바 삼 일 했거든요.”
“너도 참 고생 많이 했네.”
“일당 이십만 원짜리라 덜컥 지원했는데, 나중에는 고소공포증 걸릴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하아, 고양이가 고소공포증이라.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근처에 오피스텔 건물하고 은행도 있고 해서 거기 1층 상가 진짜 사람 많더라고요.”
“알아.”
“근데 왜…….”
“기분이 더러웠거든. 생긴 것도 재수 없었고.”
“헐. 그래서?”
“혜리야, 잘 들어. 예의 없는 것들한테는 예의 없게 대하는 게 맞더라고. 영업 끝난 남의 가게 와서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는데, 사장 입장에서 기분 좋겠니?”
“그, 그래도…….”
“참고로 나, 세 번이나 참았다. 또 세 번이나 예의를 지켜서 안 된다고 했고.”
가게 들어왔을 때, 라면 끓여 줬을 때, 조일섭이 무력을 쓰려고 했을 때.
또 있는 것 같은데…… 숫자 세기도 귀찮았다.
“중요한 건, 한 번 배신한 놈들은 두 번, 세 번도 할 수 있다는 거야. 어? 너 왜 움찔거리냐?”
“아, 아니요. 날이 추워서 그냥…… 헤헤헤.”
“크흠, 어쨌든 몸 성히, 고이 보내 줬으면 충분히 예의를 지킨 거야.”
“확실히 몸은 멀쩡해 보이더라고요. 정신은 나간 것 같지만.”
“크흠, 큼. 하여간 세상에는 몰라도 좋은 일이 있는 법. 자, 오늘의 테스트는…….”
“사장님. 몸이 아파서 조퇴, 아니, 퇴근하겠습니다.”
“어딜 도망가려고!”
임혜리가 자꾸 장난치는 건 아무래도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얘는 몰라도 좋을 이야기였다.
사실 박종후를 통해 이런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미리 들었다.
남부조합대표인 김요성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두 번이나 우승한 김요성은 서부가 아닌 동부 영역을 가져갔다.
자신의 구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하지만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다. 조합 하나를 더 흡수해 3강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제일 영역이 작은 동부로 향한 것이다.
그 정도야 당연한 경쟁이니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문제는, 작년 우승자가 원래 동부 대표로 나가기로 약속했던 식당이라는 것.
그 대가로 사장은 원래 가게를 제법 목이 좋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궁금해서 거길 직접 찾아가 봤다.
로제 소스 아귀찜이라고 이 무슨 괴팍한 음식인가 싶었는데, 의외로 손님도 많고 장사도 잘되더라.
다만, 탁기가 가득했다.
아무래도 오래 영업할 수 있는 식당은 아니라는 거겠지.
호기심에 살짝 포장해서 먹어봤다.
소스가 연해서인지 생아귀의 식감이 살아 있었고 은은한 크림 맛과 적절한 매운맛이 조화롭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귀찜이라기보단 양식의 생선 스테이크에 가깝네.’
아마도 그 고급스러움을 아귀찜 가격으로 낸다는 것에서 호평받은 것 같았다.
그 뒤 예상대로 김요성이 진짜 포섭하러 오자 짜증이 났고, 감히 라면을 남긴 것에 성질이 났으며, 메뉴를 늘리라는 것에 살짝 울컥했다.
단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꾸한 게 그래서였다.
누군 성질 없는 줄 아나.
마지막에 좀 황당해서 고이 보내줬지만, 한동안 근방에는 얼씬도 못할 것이다.
잠깐이지만 머릿속으로 진짜 지옥을 보여줬으니까.
“하아~ 그나저나 머리 아파 죽겠네.”
“저도 속 아파 죽겠어요. 대체 덮밥만 며칠을 먹는 건지.”
“처음에는 니들도 좋다고 했잖아.”
“그야 면이 싫으니까 그렇죠. 불라면 때도 새벽에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는데.”
“크흠. 미안하다.”
매운맛의 정도를 찾기 위해 수십 번 테스트를 했다.
당연히 그 대상은 나와 임혜리, 임수원이었고, 현아는 냅다 욕을 처하고는 젓가락을 던지고 나갔다.
결국 백화점 상품권 하나로 달래야 했지.
“오빠, 우리 좀 색다른 덮밥 먹어보면 안 돼요?”
“색다른 거? 그게 뭔데.”
“그게…… 태어나서 한 번도 못 먹어봤는데요. 좀 비싸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임혜리 기준에서 비싸다는 건, 딱 만 원 수준.
사실 월급도 제대로 줬는데 궁상맞게 지내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물어보니, 그동안 도움 준 사람들에게 뭐라도 갚는 데 썼단다.
앞으로 두어 달은 더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고도 했고.
“비싸다고 해봐야 뭐 얼마나 비싸다고. 그래, 기분이다. 오늘 맛있는 거나 먹자.”
“정말요?”
“한번 시켜봐.”
그러면서 폰 결제를 풀어줬다.
잠시 후 문자를 확인한 나는 충격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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