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우와~”
진심으로 탄성이 터졌다.
고작 생선(?) 덮밥 세 개를 시켰는데, 한 상 가득 펼쳐졌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플라스틱 도시락을 열었다.
잘 구워진 두툼한 민물장어가 적당한 크기로 잘린 채 무려 2단으로 쌓여 있었다.
그 옆으로 알록달록 계란찜과 잘 삶은 모밀, 은은한 향의 미소 된장국이 자리 잡았고, 상큼한 샐러드도 제법 양이 많아 보였다.
그 외 고추냉이, 차가운 녹차, 김 가루 등등이 있었는데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서까지 딸려 있더라.
“와! 이게 다 얼마야.”
“수원아, 네가 김밥 53줄을 말아야 살 수 있는 가격이란다. 김밥 원가 생각하면 최소 100줄 이상이지.”
“컥.”
“이게 무려 1인분에 35,000원짜리 세트란 말이야.”
“죄송합니다. 월급에서 까…….”
“어, 깔 거야.”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럴 생각이 없다는 건 둘 다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 갈궈야 조금은 분이 풀리지 않겠는가……!
하아, 세상에 라면 21그릇 가격이라니.
화려하고 푸짐해 보였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초라해 보이네.
“그래도 일단 왔으니 맛있게 먹자.”
“예!”
임혜리와 임수원은 분명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입꼬리가 살살 올라가는 걸 보니, 식탐이 우선인 것 같았다.
“으음. 확실히 맛있네.”
두툼한 살 하나를 입에 넣고 눈을 감았다.
혀를 움직여 입천장 사이에서 부드럽게 풀어보며 맛을 분석했다.
확실히 소스가 일품이었다.
강하지도 않으면서 혀에 짝짝 달라붙는데 뭔가 조미료를 넘어선 감칠맛이 있는 것 같았다.
살짝 짭쪼름하다 싶으면 담백한 장어살이 씹혔는데 그 안에도 미묘한 간간함이 있었다. 게다가 얼마나 꼼꼼하게 손질을 잘했는지 가시 같은 이물질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비싸게 받을 만…… 너네, 뭐 하냐?”
황당하게도 임혜리와 임수원은 반쯤 굳어 있었다.
손으로 얼굴 앞을 휘저어 봐도 눈 한 번 돌아가지 않더라.
그러다 갑자기 서로를 쳐다보더니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맛은 진짜 처음 먹어봐.”
“누나, 우리 성공했어요. 장어구이 덮밥도 다 먹어보고.”
“그래, 이건 트럭 닭꼬치 소스랑 비슷한데 깊이가 전혀 달라.”
“향도 그냥 철판에 구운 게 아니라 고급 소고기집 지나가면 나는 그런 냄새에요.”
“그걸 숯불 향이라고 한다고 들었어.”
“편의점 도시락, 숯불구이 고기하고 차원이 다른데요?”
“바보야. 3,500원짜리 도시락 숯불향이랑 35,000원짜리 장어 숯불향이 같을 순 없잖아.”
“역시 누나는 똑똑해.”
한 점 먹고, 감탄하고, 또 한 점 우물거리며 놀라더니, 이제 한 점 더 씹으면 울 것 같았다.
이게 과연 그렇게 충격받을 맛인가?
확실히 비싼 감은 있어도 맛은 충분했다.
애초에 민물장어가 비싼 것도 있지만 이렇게 잡내 없게 손질하는 것도 기술이었다.
또, 전체에 은은하게 숯불 향을 입히면서도 탄내가 나지 않게 골고루 익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소스였다.
그냥 이것저것 섞어서 만드는 수준이 아닌 무언가 그들만의 비법이 있을 터.
무엇보다 소스를 바르고 굽고, 또 바르고 굽는 과정을 반복한다. 거기에 최적화된 농도와 간, 비율을 뽑아내는 건 결코 짧은 시간에 나오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그 과정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기에 그 가게만의 비법이라 할 수 있었고, 때문에 외부인은 쉽게 배우기 어려웠다.
막말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을 누가 선뜻 전수할 수 있으랴.
솔직히 가족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가만. 아까 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서가 있었지?”
앞면에 가게 이름이 적혀 있었고, 그 아래 주방장 약력이 보였다.
일식 자격증을 딴 뒤, 일본 현지 초밥집에서 8년 근무.
추천을 받아 일본에서도 50여 년 역사와 전통을 가진 장어구이집에 수련생 신분으로 들어갔다.
이후 10여 년의 배움 끝에 허락을 받아 비법을 전수받았다, 라고 적혀 있었다.
“배우기까지 어림잡아 20년이라니, 그래서인지 맛이 고급지기는 하네.”
비슷하게 흉내 낸다고 작정하면 한 80% 정도는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서너 달 정도 여기에만 매달리면 90% 정도도 가능하리라.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손님을 끌어 들일 수 있는 맛의 차이는 고작 5% 내외.
더군다나 이 수준에서 겨루려면 1% 이하의 미묘한 정도에서 승부가 갈리는 법이었다.
최상위급들의 경쟁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행복분식과는 결이 다르다.
행복분식은 많은 사람들이 와서 부담 없이 즐기고 갈 수 있는 분식집을 추구하니까.
“형, 진짜 맛있어요. 살이 탄탄한 건 없는데 그렇게 무르지도 않고, 찐 생선살을 먹는 느낌이에요.”
“찐, 생선살?”
“음…… 그러니까 양념하고 숯불 향 때문에 좀 다르기는 한데, 순수하게 그런 맛을 빼면 동태전의 상위, 아니 초초상위급 느낌이요.”
“가만 동태전 살이 장어와 결이 비슷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나온 말은 아닐 테지. 따지면 같은 어류에 흰살 생선이긴 하니까.
물론 같은 회라고 해서 다 같은 맛은 아니었다.
“잠깐, 찐 생선살?”
뭔가, 직감이 왔다.
이쪽으로 한 번 알아볼까?
* * *
“확실히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한 게 아닌데.”
이틀날 새벽까지 고민은 계속되었다.
인터넷과 우튜브를 찾아보고 인맥을 통해 통화도 해봤는데,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결과에 이르기 까지인데.
“하, 열흘도 안 남았는데 가능하려나?”
축제는 목금토 삼 일이었다.
요리 대회는 토요일 단 하루 참가였으니 그 주에는 월화수만 영업한다치면 이틀은 바짝 매달릴 수 있었다.
“필요한 자재를 먼저 질러야 하나, 아니면 대략적으로 만들어 보는 게 먼저려나.”
만약 음식이 생각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치더라도 그걸 조리할 수 있는 기계가 없다면 꽝이었다.
물론 사람 손으로 만들면 가능하겠지만, 글쎄?
세 시간도 안 되는 대결 시간을 생각하면 20인분도 안 나올 것 같았다.
“자, 지금이 고비다. 지르느냐 마느냐.”
“뭘 질러?”
“아! 깜짝이야. 아, 아저씨. 이 시간에 여긴 또 어떻게…….”
범인의 정체는 바로 박문수 아저씨였다.
“쯔, 출근하다가 자네가 청소하는 게 보여서 말 한 번 걸어보려 왔더니, 뭐가 그리 고민이 많아서 사람이 오는데도 몰라.”
“아, 그냥 이것 저것 생각할 게 많아서요.”
“거, 요리 대회 때문에 그래?”
“예. 솔직히 신메뉴 고민 중이거든요.”
그때 아저씨네 고물상 식구들을 초대하면서 만든 음식들은, 사실 덮밥에 응용할 생각으로 한 거였다.
매운김치 제육 덮밥, 핫닭불고기 덮밥. 여기에 자극받은 혀를 달래 줄 요거트 소스 계란말이와 부족한 식감을 달래주기 위한 물만두를 튀겨낸 탕수 만두까지.
모든 게 계산된 수였다.
물론 ‘덮밥 한 상’ 메뉴와 다르게 간이 바뀌었다.
식사와 술안주가 같을 순 없으니까.
“머리가 복잡한 모양이군. 그럴 땐 좀 여유를 가져. 뜨뜻한 차나 한 잔 마시면서 창밖도 좀 보고.”
슬쩍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그럼 잠시 가게 안으로…….”
“난 출근해야지. 아 여편네한테 새벽 집차 잡지 말랬는데, 글쎄~ 근처에 오피스텔 공사한다고 먼저 움직이라네.”
“아,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유현성은 재빨리 가게 안으로 들어가 매실 꿀차를 큰 패트병에 담아왔다.
“허허, 뭘 이런 걸 다…… 크흠. 잘 마실게.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괜찮습…… 아니, 잠시만요.”
순간, 머릿속을 번쩍 스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꼭 큰 걸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꿩 대신 닭.
사실 꿩고기보다 닭이 더 맛있긴 하니 반대인가?
“혹시 아저씨네…… 이런 틀 있습니까?”
“그건 구하기가 어려울 텐데? 지금이 한몫인 시기라서.”
“아! 그렇긴 하죠.”
“찾아보면 온전한 거로는 없지만, 틀 정도는 구해다 줄 순 있을 것 같네만.”
“정말요?”
“허허, 고물상이 만물상 아닌가.”
와, 이 아저씨.
진짜 전생에 암행어사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평범한 민초에게 스윽 와서 툭하니 고민 해결을 해줬으니까.
“그럼, 찾아보고 연락 주지.”
“옙. 감사합니다.”
* * *
이제 필요한 건, 식재료였다.
사실 수제로 다 작업할 순 있지만 뒤를 생각해야 한다.
요리 대회에서 만드는 걸 보여줘야 하고 그 과정 그대로 만들어서 실제 식당에서 판매해야 하니까.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손으로 등심을 두드려서 만든 돈가스로 상을 탔는데, 막상 식당에 들려 보니 공장제 돈가스를 쓰더라.
특히나 요즘같이 손 소문이 빠른 시대에는 정말 치명적이었다.
SNS에서 한 번 터지면, 말 그대로 식당도 터지고 사장 통장도 터진다.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까고, 우린 공장제 돈가스를 쓰지만 직접 만든 소스와 비법 기름, 조리 과정에서 차별화를 줍니다, 라고 하는 게 낫다.
특히나 기존에 없는 음식이라면 의혹은 해소하고 가는 게 옳은 법.
“그래서, 알려달라고?”
정갑용은 연신 한숨을 내쉬며, 유현성을 쳐다봤다.
아니, 저놈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한지 올 때마다 좋은 야채를 우선적으로 털어가더니, 요즘은 인맥까지 털고 있었다.
매실 액기스도 그렇고, 꿀도 그랬는데 이제는 공장장까지 소개시켜 달라니.
“맨입에?”
“여기 있습니다.”
유현성은 준비한 박스를 열었다.
거기에 2ℓ 패트병 가득 매실 꿀차가 들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여섯 개나.
“이게 그거야?”
“옙. 사장님 덕분에 좋은 거래처를 알게 되어서 만들게 됐습니다.”
“들어보이 사 가는 양이 제법 된다 하던데.”
“예. 이게 제법 효자 상품이더라고요. 왜 진작 생각 못 했는지. 하하하.”
매주 꾸준히 찾아주는 단골 손님들을 제외하고, 멀리서 열 명이 오면 보통 8잔 정도가 팔렸다.
말 그대로 십중팔구.
아직 얼마 안 돼서 정확히 통계를 내진 않았지만 한 달에 대략 2,000잔 정도가 나간다고 보면 된다.
또, 하루 적당량 포장 판매도 했는데 합치면 월매출로만 최소 400만 원이었다.
원가를 넉넉히 빼고 서비스나 쿠폰으로 나가는 것까지 제외해도 최소 200만 원 이상은 남는 셈.
덕분에 임혜리와 임수원의 인건비는 상당수 해결된 상황이었다.
“제법 쏠쏠합니다. 그리고 그냥 시원하게 드셔도 좋고요.”
“이 겨울에?”
“렌지 1~2분 돌리면 따뜻한 꿀차가 됩니다.”
정갑용은 유현성을 가만히 쳐다봤다.
분명 얼굴은 지애비를 닮았는데, 거기에 철판 코팅에 선팅까지 한 느낌이다.
100% 차단급으로다가.
“하아, 내 전화해 주꾸마. 그래도 오늘 당장은 안 되고, 날은 잡아야 할 끼다.”
“언제면 가능할까요?”
“보통 11시 정도에 물건이 나오니까, 못해도 새벽 5시 전후로 재료는 받겠지. 그때라면 잠시 보는 것 정도는 가능할 끼다.”
“감사합니다.”
유현성이 냅다 고개를 숙이고 튀려는데, 정갑용이 손짓으로 불러세웠다.
“담에는 이런 걸로 어물쩡 안 넘어간다?”
“옙, 더 좋은 걸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라지 말고. 노하우 배우고 나믄, 그거 만들고 바로 가 온나.”
“예?”
“먹어보고, 앞으로 니 하는 거 봐서 해줄 끼다. 장사꾼은 밑 빠진 독인지 확인하고 물을 붓는 기니까.”
정갑용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다.
그저 아버지 지인이라는 이유로, 더는 돕지 않겠다는 의미였으니까.
물론 유현성도 잘 알고 있었다.
“예. 제대로 만들어서 가져오겠습니다. 그럼 사장님, 저는 이만.”
그렇게 잽싸게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정갑용은 피식 웃었다.
그 직후, 매실 꿀차를 한 입 맛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내 입맛에도 제대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