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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34화 (34/156)

34화

“확실히 다르긴 하네.”

왕잉어빵 틀이라길래 혹시나 했는데, 요즘 나오는 잉어빵보다 훨씬 큰 거였다.

대충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라고 할까.

미리 철근을 가져와 힘으로 용접.

Y자 형태로 네 개를 만들어 화구 양쪽에 두 개씩 지지대를 세웠고, 곧바로 왕잉어틀 역시 입과 꼬리 부분에 철근을 대고 기합으로 붙여 버렸다.

평소 조리할 때는 마력을 쓰진 않지만 이럴 땐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한 번 임수원이 묻기는 하더라.

“형은 음식 할 때 그 마법이나 이능 같은 거 왜 안 써요?”

“내가 현혹 마법 같은 걸 쓸 줄 안다 치자. 그렇게 음식 만들어서 잘 팔릴 수도 있지. 근데 너희들은 그게 가능하니?”

“당연히…… 못 하죠.”

“그것 때문이야. 내가 있을 때 없을 때 음식 맛이 다르면, 아니,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 사장이 있을 때하고 없을 때하고 손님 대하는 게 다르면 어떻게 되겠어.”

“망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래서 안 쓰는 거야. 특히 중요한 건, 마력 같은 데 의존하면 정작 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거지. 그리고 발상도 굳어버릴 테고.”

“아! 그렇게 깊은 뜻이.”

“그런 의미로, 남은 라면 서른 그릇은 네가 끓여라.”

“예?”

이후 다시는 그런 부분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어쨌든, 순식간에 왕잉어 빵틀이 생선을 구워 먹는 것처럼 만들어졌다.

옆에 테이블을 놓고 어육살과 각종 재료들을 올렸다.

“어? 오빠, 뭐 해요?”

가게 뒷정리를 마무리하고 올라온 임혜리가 묻자, 임수원이 방정을 떨었다.

“잉어빵이네요! 나 진짜 좋아하는데. 서면에 이거 하는 가게가 여덟 군데 정도 되거든요. 제일 맛있는 집이 저쪽 학교 앞인데, 틀에 바르는 기름이 다르더라고요.”

“뭐?”

“왜 잉어빵 떼고 털잖아요. 근데 그 집 이모는 붓으로 마가린 녹인 거 비슷한 걸 살짝 바르더라고요. 그다음 밀가루 반죽을 붓는데, 묘하게 쫄깃하고 그래요.”

하아, 정말이지.

소소한 것도 캐치해내는, 그런 방향의 관찰력은 나도 못 따라갈 것 같다.

“혜리야. 너 혹시 이런 거 만들어본 적 있니?”

“만드는 거 구경한 적은 많아요. 그러다 좀 타서 쓴 맛이 많이 나면 사장님이 버리는데 잽싸게 입으로 낚아…….”

“그만!”

후우, 얘들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막 군대 들어갔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엔 초코파이에 영혼도 팔았었지.

오늘 야식이나 제대로 먹여야겠다.

“됐고, 보조나 해.”

혜리는 옆에서 잡아주는 역할, 수원이는 주방까지 왔다 갔다 하며 잡심부름 시키기로 했다.

치덕, 치덕.

김은희 누님한테 배운 대로 어육살 반죽을 몇 번 치대봤다. 어차피 테스트 과정이니 처음부터 정교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농도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짤주머니.”

“여기요.”

중식도를 이용, 적당량을 덜어서 안으로 집어넣고 낚시 의자에 앉은 뒤 그걸 받아 들었다.

짤주머니로 일단 잉어빵틀 안을 어육살로 적당히 채웠다.

어차피 약한 불이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태우지 않고 맛보는 게 중요했다.

중간중간 확인하며 앞뒤로 뒤집었고, 부족하다 싶으면 어육살을 채워 천천히 구웠다.

그렇게 첫 번째 완성작이 나왔다.

잉어빵 모양의 구운 어묵 두 마리.

어차피 맛을 테스트하기 위한 거니 많을 필요는 없겠지.

“앗, 뜨거!”

“당연히 뜨겁지.”

어묵 하나를 받아 든 임혜리는 뺏기기 싫은지 잽싸게 도망갔다.

결국 남은 하나를 칼로 잘라 임수원과 나눠 먹었다.

“어때?”

“어묵 맛이요.”

“어묵으로 맞는다?”

“크흠, 그러니까요. 시장에서 바로 튀겨 파는 즉석 어묵 있잖아요. 그거보다는 깔끔하고 담백한데, 좀 뻑뻑한 느낌요.”

“기름을 안 썼으니 깔끔한 거고, 담백한 건 역시 고급품이라서 그럴 거고. 뻑뻑한 건 물이나 계란을 더 넣어 하나?”

다시 슥삭슥삭 몇 가지 버전을 만들었다.

밀가루나 계란의 경우 질감이 미묘하게 달라졌지만 물을 추가한 건 변화가 크지 않았다.

‘구워지면서 수분이 날아가서 그런가?’

아니지.

어쩌면 어육살 자체가 완성도가 높아 수분을 이겨냈을 수도 있다.

“좀 막막하긴 한데, 더 해봐야지!”

심기일전!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진다는 심정으로 잉어빵틀에 어육살을 부었다.

사실, 수제 어묵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제대로 된 어육살이 있기에 반죽을 응용하는 정도에 따라 식품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열 번 정도 해보니까 대충 감이 잡혔다.

성형에 자신이 없으니 일단 수분 비율을 높이고, 좀 탄성을 죽여야 하니 밀가루를 더 넣자 정도로.

그걸로 기본 바탕은 다 됐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대략적으로 내가 원하는 수준의 어묵이 완성되었다.

정작 문제는 따로 있었다.

“형, 근데 이거…… 장어덮밥하고는 좀 다른데요. 바스러지는 질감에서 생선 느낌도 안 나고, 어딜 씹든 다 비슷하고요.”

“그래. 거기까지는 예상했어. 일단 전체적인 건 소스로 승부를 볼 거고, 질감은…… 흐음. 좀 더 생각해 보자.”

분명 장어덮밥이라는 방향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어묵 덮밥과는 엄청난 괴리가 있는 것이다.

단순히 소스만으로 속일 수 없다는 거지.

질감…… 질감이라.

잠시 생각하는데, 눈앞에 희한한 게 들어왔다.

“너 그 자세 뭐냐?”

“예? 왜요?”

“아니…… 그게…….”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바닥을 짚고 있다.

이건 누가 봐도 먹이를 기다리는 영락없는 집 강아지 아닌가.

이거 잉어를 너무 먹어서 진짜 개가 된 건가?

“어? 가만.”

어이없게도 잉어, 잉어거리니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생선 느낌이 안 나면, 생선을 넣으면 되지!

* * *

“미친놈!”

석기찬의 호통이 폰 너머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녀석만 한 능력자는 없으니 간절히 빌 수밖에 없다.

“부탁 좀 하자.”

-끊어!

“내가 너 살려준 게 몇…….”

-로드 킬은 잘 타고 다니냐?

순간, 사고의 흐름이 끊어졌다.

“뭐, 로드 킬?”

-네가 부탁한 전기 자전거.

“아, 돌돌이. 그야 잘 타고 다니는데…….”

이름 한번 살벌하네.

아무리 헌터 전용이라지만 로드 킬이 뭐냐?

-이번 부탁 들어주는 대신 목숨 빚 한 번 까는 거다.

“아니, 그건 갭이 너무…….”

-싫음 말고.

“알았어. 알았어. 언제까지 되는데.”

-못해도 열흘은 걸릴 거다.

엥? 대회 지나서 받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잖아!

“야, 안 돼!”

-하아~ 나도 바빠. 개부랄 동생 새끼가 네뷸라를 깨 먹는 바람에…….

“우환이가 성운검을 깨먹었다고?”

-크리스탈 크레이 피쉬라고 떼로 달려드는 놈들하고 싸우면서 날이 좀 심하게 나갔어. 지금 비상이다.

“그럼 내 거부터 해줘.”

-돌았냐? 성운검과 빵틀하고 뭐가 우선인지 몰라?

“불만 있으면 내가 전화한다고 해.”

-…….

침묵은 길지 않았다.

-알았다.

“슈트도 같이.”

-사흘 뒤 받을 수 있을 거다.

뚜뚜뚜뚜--

“하아, 우환이 이 새끼 실력도 안 되는 주제에.”

칼질 하는 애들 중에 그나마 좀 괜찮아서 검을 맡겼는데, 날을 날려먹어?

“에이, 몰라.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

성검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장어묵덮밥의 핵심.

바로 간장 소스다.

* * *

“우리 강아지, 컴 온!”

임수원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처럼 곧 죽을 표정을 지었고, 실험체 2호도 울상을 지으며 나타났다.

“안 죽어, 안 죽어.”

“차라리 전의 제육 덮밥이 더 나을 것 같은데요?”

“먹어보지도 않고 평가하는 건 선입견이야. 그리고 이거 생각보다 잘됐다?”

임수원은 장어묵덮밥의 직관적인 비주얼에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크윽! 맨밥에…… 시커멓게 탄 생선 덩어리.”

“뭐!”

“솔직히 보면 그렇잖아요. 식욕이 안 생긴단 말이에요. 차라리 제육이나 닭불고기는 먹음직스럽기나 했지.”

유현성은 그 투정을 쉽게 넘기지 않았다.

얼핏 보면 하얀 맨밥에, 손바닥만 한 거무튀튀한 덩어리 하나가 턱 하니 올라가 있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썩 먹을 만한 그림은 아니었던 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자마자 인상부터 구기다니.

“아직은 토핑 추가 전이니까, 일단 맛부터 봐. 생각보다 괜찮다고.”

“생각이 안 괜찮으니까 문제죠.”

“괜찮게 만들어줄까?”

슬쩍 쳐다보자 임수원의 기가 팍 죽었다.

곧 임혜리가 제안을 내놨다.

“오빠! 뭐 없어요? 이런 분위기에선 좀…….”

눈치를 보니 임수원에게 사료, 아니, 당근이 필요하다는 신호 같았다.

“흐음, 이런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 선물을 준비했거든. 너희들한테 딱 맞는 아이템이라고나 할까.”

“예?”

“뭔데요?”

임혜리와 임수원의 눈에 순식간에 생기가 살아났다. 쏘아보면 나조차 뜨거워서 뚫릴 정도로 엄청난 열망이 피어난 것이다.

“꽤 좋은 거야. 물론 나도 가격은 얼마나 되는지 잘 몰라. 중요한 건 아주아주아주…… 비싸다는 거지.”

내 돌돌이 하나가 수억 한다니 석기찬이 싸구려는 보내지 않을 거다.

“흐음. 하여간 너네 하는 거 봐서 정해야지.”

“그냥 이야기해 주면 안 돼요?”

그러면서 임혜리가 은근슬쩍 웃는데, 어으, 징글징글했다.

하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당장의 약속이 더 효과가 있으려나.

“저녁은 숯불 바비큐 치킨!”

“오예!!”

“원하면 두 마리씩.”

“형님, 사랑합니다.”

단순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원래 주려던 선물이면 치킨집도 차릴 수 있을 텐데.

이후, 고난의 행군은 이틀이나 계속되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맛을 잡아갔고, 드디어 석기찬이 손수 제작한 기계가 도착했다.

이로써 다음 주 요리 대회 준비는 거의 끝났다.

* * *

“보고해 봐.”

“예, 부길드장님. 먼저 김요성 사장님께서 추가 계약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연락 왔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고!”

“황무기 헌터 때문입니다.”

“왜?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잖아.”

오담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제법 실력이 알려진 황무기는 길드장이 거금을 들여 초빙한 헌터였다.

게이트 사태로 뭉뚱거려 호칭하지만, 그 초반부의 혼란은 지금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황무기는 거기서 살아남은 초창기 헌터로, 현재 갈매기 길드 산하, 양현 길드 소속이었다.

하지만 모든 길드가 수익이 여유로운 것이 아니어서, 그 틈을 타 길드장이 데려왔다.

표면상 임대로.

일단 데려와 잘 구슬려서 길드의 핵심 전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이었는데…….

“경호 임무를 바로 포기했다고 합니다.”

“내가 아는 황무기 씨라면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조일섭 본부장이 바로 연락해 왔습니다. 호출에는 응했지만, 무슨 일인지 신변 보호를 포기하고 바로 물러났다고 합니다.”

“설마, 더러운 일을 시킨 건 아니겠지?”

오담비가 노려보자 박용수는 흠칫했다.

“애, 애초 계약은 신변 보호 겸 경호 임무였습니다. 경호 자체를 포기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니까 왜!”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하아, 미치겠군. 황무기 씨 호출 좀 해줘.”

“예.”

오담비는 복잡한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길드장은 좀 좋게 말하면 호인이고, 솔직히 표현하면 바보에 가까웠다.

결국 자신이 실무와 자금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김요성 사장은 나름 든든한 돈줄이었다.

“거의 20%라. 최악의 경우 배제까지 각오해야겠군.”

오담비가 골머리를 앓으며 서류를 확인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부르셨다고 연락받았습니다.”

안으로 들어온 건, 탄탄한 체구의 사내였다.

“황무기 씨, 잠시 앉죠. 박 부장은 자리를 비워주세요.”

황무기가 소파에 앉자 오담비는 그 맞은편에 자리했다.

“이번 일에 대해, 뭔가 하실 말씀 없으신가요?”

“김요성 사장에 대한 건 말입니까?”

“예. 듣기로 함께 다니던 김요성 사장 경호원들까지…….”

오담비는 조심스럽게 의중을 떠봤다.

박용수의 보고로는, 경호원들도 단숨에 제압당했다고 한다.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막다가 귀찮았는지 기절시켰다는 것이다.

한데 돌아온 대답은 기대와 전혀 달랐다.

“제가 그들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예?”

“지옥으로 돌아가자는 걸 막은 것뿐입니다. 그 덕에 김요성 사장도, 조일섭 본부장도 목숨을 건진 겁니다.”

다소 멍한 표정으로 황무기를 보던 오담비는 잠시 자신을 추슬렀다.

너무도 당당한 태도였다.

뭔가 자신이 잘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못 합니다.”

“예? 못…… 한다고요? 안 하는 게 아니라?”

“예. 못 합니다.”

황무기는 군인 출신이다.

때문에 행동이 딱딱하고 입이 무겁지만, 또한 맡은 바 일은 제대로 해내는 성격이었다.

보고만 있어도 믿음이 간다고나 할까.

그런 황무기가 신의도 없이 저렇게 대답할 리가 없었다.

‘설마? 정말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거잖아.’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알기에 해줄 수 없다는 의미다.

그의 출신을 생각하면 답이 꺼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국가 기밀.’

더 물어봤자 아무 소용없을 것 같아 오담비는 방향을 바꿨다.

“저, 아니, 저희 길드에게 해줄 조언이 있나요?”

“김요성 사장에게 이렇게 전하시면 됩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무얼 하든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해주십시오.”

“예. 그렇게 전하죠. 우리 길드와 계약이 해지되겠지만.”

“그게 제일 좋은 선택입니다.”

“더 하실 말씀은 없으신가요?”

황무기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다 뭔가 잊은 듯 한마디를 더 꺼냈다.

“길드장에게 전해주십시오. 오늘 일, 여기서 빚을 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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