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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35화 (35/156)

35화

쾅!

책상 울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잘 화내지 않는 사람이 김요성이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기에 영화처럼 재떨이가 날아오거나 성질난다고 화병 같은 것도 던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일섭은 섬뜩함을 느꼈다.

고작 주먹으로 책상을 쳤음에도 정말 제대로 분노했음이 전해졌으니까.

“고작 클랜 네 개짜리 길드가, 계약을 해지하잖다. 이게 말이 돼?”

“아, 안 됩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겠어!”

“다, 당연히 보복…… 죄송합니다.”

조일섭은 재빨리 물러났다.

회사에서 직영하는 규모 있는 음식점은 모두 서른두 곳.

혹시나 있을 불상사를 막기 위해 비록 등급은 낮지만 헌터들이 한두 명씩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걸 맡고 있는 게 황무기가 속한 오가 길드였다. 당장 대체 길드를 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하게도 김요성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터.

“흐으~ 머리가 다 아프군.”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김요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에 조일섭은 침묵을 지켰다.

“그놈. 그놈에 대해 다시 보고해 봐!”

“예. 올해 스물일곱 살. 반년 전에 전역하고, 분식집을 물려받은 걸로 나옵니다. 현재 전포동에 어머님 명의의 집 하나와, 자신 명의의 집, 그리고 분식집 건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전부…… 입니다.”

“하다못해 군대에서 취사병을 했다든가 그 이전의 기록 같은 거 없나.”

“예.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아닙니다.”

뒷조사를 의뢰한 흥신소가 뜬금없는 사건에 엮이는 바람에 없어졌다는 보고는, 굳이 올릴 필요는 없겠지.

조일섭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럼 황 부장, 아니, 그 황무기 헌터와는 무슨 관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박종후 헌터 쪽으로 파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그놈은 내가 알아!”

괜히 건드리지 말라는 소리였다.

김요성의 머리는 복잡해졌다.

자신의 혀가 유현성을 원하고 있었다. 요식업 바닥에서 30년을 살아남게 한 본능이 끌렸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던진 게 그래서였다.

돌이켜 보면 미친 거지.

고작 한 그릇의 라면일 뿐인데.

순수하게 맛으로만 따지면 그보다 맛있는 음식 수백 가지를 섭렵한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미식가로써가 아니라 사업가로써 느끼는 부분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었나?”

“예. 그렇게 전해 들었습니다.”

“아무 의미 없다고도 했지?”

“예.”

“그냥 놔둬.”

조일섭은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렸다.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하는 사람이 바로 김요성 아닌가.

“고작 분식집 하나다.”

설마…… 대표가 겁먹은 건가?

“대회라 하니 라면으로 승부를 보진 않겠지. 진짜 실력을 본 뒤에 결정해도 돼!”

“아, 알겠습니다.”

“가능하면 박종후 하고도 부딪히진 말고.”

“예.”

조일섭은 조금 찝찝했다.

김요성과 달리 자신은 헌터였다. 잠시 의식이 날아간 게 수십 초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이상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좀 더 알아볼까?’

* * *

- 제4회 전포제 -

“와, 정말 사람 많네.”

이름난 축제도 아니고 규모가 조금 있는 동네 행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중심이 되는 누리마루 주변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평소 주말에도 많지만 최소 그 두세 배는 되어 보일 정도.

“진짜 입장권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예지가 직접 표를 전해줬는데 다행히 관계자용이었다.

미리 가서 분위기나 봐 놓으라는 의미겠지.

어쨌든 내부 혼잡을 피하기 위해 30분 단위로 입장했는데,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아마도 자신들뿐 아니라 대회 참가자들도 그렇게 다니는 모양이었다.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는데 뜬금없이 아는 얼굴이 보였다.

“포, 폭식 자매들?”

“어, 그 언니들이네.”

“아! 나도 알겠다.”

나와 혜리, 수원이까지 단번에 알아봤으니, 정말 확실한 단골손님이 맞았다.

문제는.

“푸, 푸드…… 파이트 중인가.”

네 명이 자리 하나 잡고 주문해서 받아온 음식을 놓는데,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

한 사람 최대 주문 가능한 분량이 4인분이라 했으니 무려 16인분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근데, 눈 한 번 깜빡할 때마다 뭔가 하나씩 사라졌다.

주변에선 다들 그 광경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얘들아, 시선 마주치면 민망하니까 고개 돌려. 현지 너도.”

“와? 난 모르는 사람인데.”

“아냐. 알게 될 수도 있으니까 돌리라고.”

“뭐, 알았다.”

일단 그들의 시선에서 멀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코스를 잡았다.

어차피 한 바퀴 빙 도는 게 전부인지라 다른 무리 뒤를 따라가기로 한 것.

듣기로 추첨을 통해 부스를 낼 수 있는 식당은 모두 40여 곳.

숫자가 딱 떨어지지 않는 건 중간에 사정으로 포기하는 식당이 있어서란다. 때문에 예비 팀도 있어 경우에 따라선 더해진다고도 했다.

저들은 이곳에서 협회에서 정한 할인 가격으로 음식을 판다.

이후, 자신의 가게에 손님들이 쿠폰을 들고 오면 같은 가격으로 내놓을 테지.

그럼으로써 상권이 활성화되니 주변 가게들도 만족할 것이다.

“그래도 많기는 하다.”

전체적으로 ㄷ 자 형태였는데, 중앙에는 편하게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테이블이 가득했다.

하긴, 축구장 크기나 되니 이런 게 가능한 거겠지.

“이야. 별의별 게 다 있네. 우리 저거 먹어보자.”

현지의 한마디에 임수원이 쪼르르 달려가자 임혜리는 내 눈치를 살폈다.

“가! 가서 먹고 싶은 거 먹어.”

“괜찮죠?”

“안 괜찮을 건, 또 뭐냐. 너희들은 좀 놀아도…… 빠르네.”

또래끼리 어울리는 걸 보니 확실히 애는 애들이다.

아니, 다들 20살은 넘었으니 성인인 건가?

“에휴~ 나는 내 일이나 해야지.”

일단 부스를 하나하나 살폈다.

이예지에게 들은 대로 가스 화구 대신 인덕션을 사용했고, 대부분의 조리는 간편식에 가까웠다.

가령 이 앞집의 볶음밥 같은 경우, 일단 한 번 볶아진 상태였다.

이걸 주문이 들어오면 철판에 각종 토핑을 추가한 다음 빠르게 볶아내며 토치로 불맛을 내 마무리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강한 불이 필요한 음식의 경우 대부분 반조리 상태라고 보면 된다. 특히 고화력이 아닌 경우만 허용되는 것이다.

하긴 행사장에서 큰 불이라도 나면 곤란하지.

대충 둘러보니 캠핑용 발전기 하나에 두세 가게가 전선을 연결해 쓰고 있었다.

장시간만 아니라면 인덕션이나 전자레인지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았다.

솔직히 약간 걱정이 앞서기는 했다.

석기찬 이 무식한 새끼가 정말 제대로, 주문대로 만들어서 기계를 보냈다.

문제는 출력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원룸 청소에 공사 현장용 청소기를 돌리는 느낌이랄까.

“뭐 출력이 모자라면 그때는 나름대로 해결할 방법이 있으니까, 임기응변으로 때우면 되겠지.”

일단 배정받은 자리를 확인했다.

입구에서 제일 먼 마지막 안쪽 자리였다.

선반 크기는 충분하고, 전기밥솥, 구이기, 인덕션 하나를 쓰니 이 정도면 전기는 큰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동선까지도 이렇게 잡고, 여기서 준비하면 되겠군.’

이제 덮밥 맛을 좀 더 손보면 끝.

그때,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바로 맞은편에서 네 쌍의 시선이 지그시 쳐다보는 게 아닌가.

“사장님, 안녕하세요.”

다가온 건, 아까 그 폭식 자매들이었다.

설마 같은 업종에서 일했나?

“예. 안녕하세요.”

“혹시 사장님도 대회에 참가하시나요?”

“그럼 아가씨들도?”

“예. 저희도 미리 확인하러 왔어요.”

아니…… 전혀 그렇게 안 보였다.

한쪽 자매들은 왕 닭꼬치를 먹었는지 입가에 소스가 잔뜩 묻어 있었고, 다른 자매들은 후식으로 주먹만 한 아이스콘을 해치우고 있었다.

크흠, 아마도 먹으러 온 게…… 분명한데…….

“사장님은 그럼 특제 라면으로 참가하시는 거죠?”

“아, 군침 도는데. 여기서 라면 조리가 되려나?”

“불라면, 불라면!”

“흐으, 라면에 김밥은 국민 조합이지.”

넷 다 정말 레이저가 튀어나올 것 같은 눈빛이었다.

마치 눈앞에 음식을 내놓지 않는다면 날 뜯어먹을 것 같은 느낌이다.

“아, 토요일 참가해야 해서 일요일까지는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신메뉴예요? 뭔데요?”

“아, 덮밥이요.”

그 대답에 네 자매들은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덮밥 종류는 한 번도 수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요.”

“예? 그게…….”

“작년에 간장 떡볶이 덮밥도 괜찮지 않았나? 찜닭 국물에 밥 비벼 먹는 맛인데. 가격이 7,000원이라 욕 엄청 먹었지.”

“그러게, 아마 제일 선방한 게 김치치즈탕수육 덮밥 정도일걸?”

뭐지? 그 상상도 안 되는 덮밥들은?

“간단히 말하면요. 덮밥은 인기가 없었어요.”

“왜죠?”

“거의 대부분 밥 따로 준비하고 그 위에 소스를 뿌리거나 뭘 볶거나 해서 올리는 게 전부인데, 한국인은 밥의 민족이잖아요.”

“그렇기는 하죠.”

“진짜 독특한 음식은 쉽게 손이 안 가고요. 대부분 익숙한 맛을 고르는데, 특색을 내기가 어려워요. 아니면 일식처럼 만드는데 가격이 무시무시하죠.”

“아, 가격.”

“그리고 야외에서 먹으니까, 가게에서 먹는 것과 다르게 소스도 강렬해야 하고 특히 비주얼이 좋아야 하거든요. 그것도 어렵죠.”

“오, 감사합니다.”

사실 그건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였다.

근처에 파는 거 몇 가지 먹어보고 참고하면 되겠지.

“사장님. 저희가 응원할게요.”

“지난 2년 동안 여기서 나온 음식 대부분 다 먹어봤거든요.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보세요.”

하지만 더 질문하기에는 덜컥 겁이 났다. 저들이 뭔가를 원하고 있음이 느껴졌던 것이다.

역시나.

“그래서, 혹시 사장님 준비할 때 저희가 시식해 볼 수 있을까요?”

“진짜 단골인데 안 돼요?”

“많이 안 먹을게요!”

결국 합의를 해야 했다.

“인당 한 그릇만입니다!”

* * *

“제대로 완성됐네.”

폭식 자매들의 조언은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도움이 되었다.

소스에 감칠맛을 더했고 장어묵 크기를 더 늘렸다.

밥에 올라가는 토핑도 화려하게 추가했으며, 가격은 딱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까지 낮추기로 했다.

이 정도면 우승까진 아니더라도 인기상 정도는 노려볼 수 있을 터.

그 덕에 만들어야 할 양도 늘어났지만 재료는 충분히 넉넉했다.

“문제는 이걸 가져가야 한다는 건데.”

어묵 구이기는 크다기보다 무거웠다. 최소 통짜 붕어빵틀 서너 배 무게랄까.

다행인 건, 내 전기 자전거 돌돌이가 그만한 파워를 충분히 낸다는 거다.

진짜 로드킬은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설마 대전차 엔진이라도 단 건 아니겠지?

직사각형의 반듯한 구이기를 돌돌이에 싣고, 그 위로 밥통과 밑반찬, 각종 조리도구와 토핑을 담았다.

“와, 이렇게 보니 한 짐이네.”

돌돌이에게 처음으로 2단 고출력 기어를 넣었다.

분명 시멘트 열 포대까진 괜찮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

가볍게 당기는데 의외로 쉽게 나가더라.

그럼에도 제한 속도는 40㎞.

다행히 도착 장소인 놀이마루는 멀지 않아서 15분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역시 내가 일착이네.”

도착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었다. 대회는 11시부터 시작하지만, 혹시나 해서 일찍 움직인 것.

애들은 밥만 시간 맞춰 가져오는 걸로 정했다.

밥에서도 약간의 변경이 생겼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솔직히 전에 쓰던 도정기는 용량이 적었지.”

앞으로 본격적으로 덮밥 메뉴를 팔려면 그 역시 필수였으니까.

조리 선반에 기계를 올리고, 인덕션을 설치하고 공간을 틔운 다음 밥솥까지 놨다.

이제 전원만 연결하면 되는데.

“이게 좀 다른데?”

발전기가 다른 가게들보다 좀 작은 느낌이었다.

잠시 기다리니까 어제 봤던 진행 요원이 보이더라.

“저기요.”

“예, 무슨 일입니까?”

“우리 가게만 발전기가 조금 다른 것 같아서요.”

“아~ 별것 아닙니다. 원래 발전기 한 대로 두세 가게가 쓰는데, 구조상 마지막 가게는 혼자서 쓰거든요. 그래서 소형이 배치됩니다.”

“혼자서 쓴다고요?”

“맞은편 가게도 같은 발전기인데요? 그게 더 편하고 좋고요.”

확인해보니 정말 그러네?

“흐음, 혼자 쓴다면 딱히 나쁠 것도 없긴 한데. 일단 알겠습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야기해 주세요. 예비 발전기 가져오겠습니다.”

“예. 그럼 수고하세요.”

진행 요원이 간 뒤, 전원을 연결했다.

약간 소음이 거슬리긴 했지만 작동은 정상적으로 됐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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