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제대로 한 거 맞지?”
“예. 냉각 성능이 떨어져서 오래 못씁니다. 길어야 한두 시간 정도면 과열될 겁니다.”
“의심하진 않던가?”
“전문가가 아니면 모를 겁니다. 그리고 문제 생기면 바로 예비로 바꿔준다고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진행 요원의 설명은 깔끔했다.
사실 조일섭이 원하는 건, 큰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발전기 과열로 한창 조리하는 중에 10~20분 정도 멈추는 것.
딱 그 정도 수준의 헤프닝이 적당하다 싶었다.
기왕이면 요리를 망치면 더 좋고.
진행 요원에게 적당한 제안을 한 것도 그래서였다.
다행히 안면도 있었고, 식당 중 한 곳에 취직시켜 주겠다고 했다.
본부장인 자신이라면 그 정도는 전혀 어렵지 않았으니까.
사실 김요성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상하게 신경이 쓰였다.
의심받지 않을 수준이라면 한 번 건드려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가능하면 이 불안감도 빨리 떨쳐내고 싶었다.
“이 일을 아는 사람은 있나?”
“저밖에 모릅니다.”
“입이 무거워야 할 거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진행 요원을 바로 보낸 조일섭은 슬그머니 심사 위원들을 찾아갔다. 열 명 중 셋은 확실히 포섭했기에 약간의 언질을 주는 건 가능했다.
“가능하면 입구 쪽부터 천천히 심사하시는 게 좋으실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누구도 문제 삼지 않겠지.
이제 화살은 다 쐈다. 남은 건 결과를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 * *
“준비는 다 끝났는데, 애들은 언제 오려나.”
이제 10시가 조금 넘었다.
구이기 예열은 끝났고, 소스도 적당히 졸여진 상태.
밥만 오면 그릇에 담고 토핑과 소스를 뿌린 다음, 구이기를 작동시키면 된다.
특제 반죽도 준비 다 됐으니 딱히 손댈 것도 없었다.
“다른 가게들이나 돌아볼까?”
천천히 한 바퀴를 도는데 정말 특이한 게 많았다.
음식도 대부분 정석보다 퓨전에 가깝더라.
“으, 저건 뭐냐?”
한쪽에 뻥튀기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다.
알루미늄 형태에 크기는 작았지만 확실히 어릴 때 봤던 그게 맞았다.
“어?”
“오, 사장님 오셨어요.”
폭식 자매들이었다.
“아, 예. 근데 이거 뻥튀기 기계 맞죠?”
“예. 저희 거예요.”
“이 옆에 큰 레코드 판처럼 생긴 건요?
“크레페 구이기요.”
이건 또 무슨 조합이란 말인가?
대충 어떤 음식이란 건 알겠는데 쉽게 상상이 가질 않았다.
“나중에 저희 준비되면 가져가 볼게요. 그리고…….”
우리 가게 쪽을 스윽 보는데, 아무래도 궁금한 모양이었다.
“밥만 오면 금방 됩니다.”
“쓰읍~”
“흐읍!”
대체 뭘 상상했기에 침부터 닦는 건지.
단골손님이고 참고가 될 조언도 많이 해줬기에 딱히 무안해할 만한 표정은 피했다.
애들이 도착한 건 바로 그때였다.
“저희 왔어요!”
커다란 스티로폼 박스를 하나씩 들고 있었는데, 대충 13㎏~15㎏ 정도 돼 보였다.
햇반 기본이 210g이니 공깃밥 기준으로 치면 대충 120인분.
좀 넉넉하게 담아도 그 정도는 충분히 나오겠지.
“자, 시작하자!”
박스 하나만 뜯어 비닐 안의 밥을 전기밥솥으로 옮겼다.
일단 네 그릇만 먼저 만들기로 했다.
“혜리가 밥을 푸고, 수원이는 가르쳐준 순서 다 기억하지?”
“예.”
임수원이 소스통과 토핑이 들어간 박스들을 열었다.
그사이 난 구이기를 열고, 특제 반죽을 덜어서 올렸다.
한 번에 구울 수 있는 양은 여덟 개.
대충 붕어빵 같은 틀에 반죽을 넣은 뒤, 오다리 구이 기계처럼 위판을 눌러 상하 압축 고압으로 구워내는 방식이었다.
처음 만든 것보다 반죽은 약간 묽게, 하지만 넘칠 정도로 채워 넣었다.
틀 주변을 칼로 사사삭 매끈하게 만들고 위판을 내리눌렀다.
치이이이익-!
그러면서 임수원이 하는 걸 지켜봤다.
일단 컵 도시락 용기에 밥을 반만 깔고 매콤한 소스를 한 바퀴 돌린 뒤 다시 밥을 추가했다.
토핑은 계란 지단을 먼저 넓게 깔고 그 위에 잘게 썬 파와 후리카케, 마지막으로 장어와 잘 어울리는 생강채를 올렸다.
거의 정확한 삼등분.
그즈음 어묵 구이도 끝이 났다.
긴 젓가락으로 하나씩 때어내 옆의 중화 팬으로 넣었다.
졸인 소스에 가볍게 사사삭 휘젓고 어묵을 꺼냈는데.
“와!”
어느새 앞에 와 있던 폭식 자매들이 감탄사를 터트리더라.
“이거 진짜 장어예요?”
“방금 봤잖아. 저 기계에서 꺼내는 거.”
“근데 어떻게 모양이 이렇게 나오는 거지?”
“잠깐 그 구이기 좀 봐도 돼요?”
보는 건 상관없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뜨거워서 손대면 안 됩니다. 일단 이거 바로 드시고, 좀 식으면 보여 드릴게요.”
모양틀 아래에 닿았던 면을 위로 해서 구운 어묵을 가게 그릇에 놓았다. 크고 무거워서 가운데가 살짝 아래로 꺼지고, 거기로 소스가 조금씩 흘러내렸다.
형태는 진짜 딱 푸짐한 장어덮밥, 그 모양이었다.
“확실히 기가 막힌단 말이지.”
석기찬 이 미친놈이 틀 안을 어떻게 깎았는지 진짜 대단했다.
반죽을 구워서 꺼내면 거의 장어 살 형태와 비슷하게 보였다.
마치 잘 부푼 페이스트리처럼 살결 주름 하나하나가 다 보일 정도였던 것이다.
물론 틀로 찍어낸 모양이라 생물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지만.
또 아쉬운 건, 반대쪽이 밋밋하다는 거였다.
양면을 다 하려면 할 수 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과했다.
진짜 붕어빵 틀처럼 만들어서 조리를 해야 했던 것이다.
“사당니, 마시어여!!”
“헐, 그런가요.”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잠깐 사이에 7인치 태블릿 크기의 어묵이 절반이나 사라져 있었다.
엄지손가락 두께로 만든 걸 감안하면 엄청난 속도.
심지어 밥과 토핑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소스 부분까지 드러날 정도로 먹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네 명 다!
‘으으, 저 정도 먹성이라니. 아무래도 앞으로 밥 무료로 주는 건 고민해 봐야겠다.’
“후아. 맛있다! 진짜 모르고 먹으면 장어덮밥이라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아, 감사합니다.”
“생강채랑 계란지단도, 진짜 장어덮밥 기분 났어요. 특히 마지막에 살짝 매콤하게 마무리되는 게 오히려 깔끔한 느낌이랄까.”
“예. 조합도 많이 고민했죠.”
“근데 이거 얼마에 파실 거예요?”
폭식 자매들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이게 목적이었나?
“흐음, 조언을 받아서 무리 안 가는 선에서 6,000원으로 결정했습니다.”
“예? 이게 6,000원요? 가능해요?”
수제 어묵 반죽은 200g 전후, 대충 편의점 핫바 세 개 정도의 크기였다.
대충 추가 재료 포함하면 원가는 1,000원 선 될 거다.
동네 분식집이 사용하는 2~300원짜리 오뎅의 경우, 사각 한 장이 100g 전후였다. 그걸 대량으로 가져오면 100원이 안 되는 가격에도 가능했다.
그렇게 치면 조금 비싼 편이긴 하다.
하지만 [장어-묵 덮밥] 이란 이름을 쓰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여기에 밥, 치수 식품에서 받는 계란지단에 각종 토핑까지 친다면 원가는 2,500원 선.
애매하긴 하지만, 6,000원에 못 팔 금액은 아니었다.
아! 이거 구이기가 ‘억’ 소리 나는 가격이라고 했으니 오히려 손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 공짜로 받았으니.
“너무 저렴해요. 7,000원, 아니, 8,000원 해도 먹을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을까요?”
“이 가격에 내면 원성이 클걸요?”
그러면서 다들 주변을 둘러봤다.
폭식 자매들의 요란한 감상평 탓인지, 몇몇 식당 사장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저렴한 가격에 놀란 듯 입까지 떠억 벌리고서.
“형평성을 생각하라는 의미인가요?”
“적정 가격선이 있어야죠. 보나 마나 이것도 하루 몇 그릇 한정 판매할 거 아니에요.”
“일단 40그릇부터 시작해서 손에 익는 대로 조금씩 늘려가려고요.”
“다른 메뉴도 있는데 이 덮밥이 6,000원이면 서로 먹겠다고 가게 터져 나갈걸요? 그리고 장어덮밥 먹으려면 최소 만 원은 넘잖아요.”
“요즘은 짜장면도 5, 6,000원 하는데.”
“흐음, 확실히…….”
라면이야 이제 익숙해져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메뉴가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혼잡해질 걸 상상하면 적정한 가격도 약간의 방어력이 되는 셈이었다.
안 그래도 크지 않은 가게였다.
사이드도 아닌 신 메뉴를 내놓으면 더 혼잡해질 가능성도 무시 못하지.
무엇보다, 그때 먹은 장어덮밥 세트는 1인분에 25,000원이나 하질 않았던가.
따지면 8,000원도 상당히 저렴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어묵 덮밥인데.”
“아니요. 이건 장어덮밥이죠. 이름도 장어~묵이잖아요.”
“그럼 7,000원 하겠습니다.”
“좀 더 올려…….”
“저희는 작은 분식집이잖아요. 심리적으로 8,000원은 너무 비싸요.”
미안한 듯 웃자 폭식 자매들도 더 권하지 못했다.
사실, 여기서 정한 가격 그대로 최소 1년은 장사를 해야 한다. 이틀 전의 식당들과 다르게 여기는 맛과 실력으로 평가받는 대회였으니까.
중요한 건, 이예지와 협력 관계라는 것!
“자, 5분 남았습니다. 다들 준비하세요.”
진행 요원 목소리가 울리자 다들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 말은 일반 손님과, 그 사이에 심사 위원이 섞여서 들어온다는 뜻이었다.
“그럼 이거 네 개, 우리가 넣을게요.”
폭식 자매들은 그렇게 말하며 한쪽 선반에 있는 종이를 가져갔다.
장어-묵 덮밥이라 적힌 쿠폰이었다.
* * *
“오빠.”
“일할 때는 사장님.”
“예, 사장님. 근데 우리만 너무 바쁜 거 아니에요?”
치이이이익-
탁탁탁탁- 탁탁탁탁-
“수원아, 어묵 나왔다. 그릇 준비.”
이젠 요령이 생겨 미리미리 슥탁! 슥슥탁! 하고 준비하는 임혜리와 임수원이었다.
그렇게 한 번에 8그릇이 나간 후, 10분 휴식 팻말을 걸었다.
영업시간은 11시부터 1시 반까지.
심사 위원들도 사람인 이상 가게 열 곳 이상을 돌며 맛을 보는데, 그 정도는 걸린다는 의미였다.
‘벌써 전부 지나갔을 리는 없고.’
확실하게 티 나는 사람이 여섯.
애매한 사람이 세 명 정도 있었다.
질문이 많으면 거의 확실한 쪽이었고, 말수는 적지만 남들보다 조리 과정을 꼼꼼히 살피는 이들이 그렇게 느껴졌던 거다.
‘최소 오십 그릇이라 했던 이유를 알겠네.’
우리야 분식집 영업에 맞춰 풀 시스템(?)을 장착해서 왔지만 다른 가게들은 그렇지 않았다.
보통은 둘, 많으면 다섯 정도가 상당한 정성을 들여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심지어 중간중간 브레이크 타임을 걸면서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했고, 어떤 식당은 점심 식사도 했다.
참 황당하고 묘한 방식이었다.
사정이 생겨 포기한 가게들 제외하고 열 곳. 이들이 만드는 음식은 대략 500인분 이상이겠지.
어쩌면 우리처럼 인기상을 노리고 7~80인분을 만드는 가게가 있을지도 몰랐다.
특히 눈앞의 저 핫도그 집은, 음식 맛으로는 승부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2,500원짜리 핫도그를 두 시간도 안 됐는데, 이미 100개 이상 팔고 있었으니까.
“혜리야, 우리 몇 그릇 팔았지?”
“잠시만요. 94그릇요.”
“뭐? 그렇게 많이 팔았어?”
그럼 거의 한 시간에 50그릇 정도를 팔았다는 이야기다.
물론 한 번에 8그릇이나 나오니 그렇게 힘들진 않았지만, 이런 환경에선 애들도 지치겠지.
“사, 아니, 쉬는 시간이니까. 오빠! 아까 그랬잖아요. 우리만 너무 바쁜 거 아니냐고.”
“미안, 생각할 게 있어서 둘러보는 걸 깜빡했다.”
흐음, 재료는 충분하다지만 심사 위원이 마지막에 들를지도 몰랐다.
그럼 26그릇으로 40분 이상을 버텨야 한다는 거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앞으로 주문은 네 그릇 단위로 받고, 좀 쉬엄쉬엄하자.”
“정말요?”
“이제 거의 다 팔았잖아. 그리고 남은 양도 근처 식당들에 돌려야지.”
“오, 알았어요.”
임혜리가 신나서, 신나게 임수원을 두들겼다.
근력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사랑의 매가 참 찰지네.
“자, 일단 다시 오픈.”
“저희 주문 받아요.”
임혜리가 가게 앞으로 나가자 아까부터 우리 가게를 힐끗힐끗 보던 아저씨 둘이 다가왔다.
근데 사이가 안 좋은지 서로 불쾌하게 쳐다보더라.
한쪽은 꼬장꼬장한 반백발의 정장 신사였고, 한쪽은 동네 건달도 안 입을 것 같은 청청 패션이었다.
“두 그릇 주게.”
정장 신사가 계산을 하자마자 바로 뒤에서 다른 두 아가씨가 주문을 이었다.
“조리 때문에 주문 예약만 받겠습니다.”
임혜리가 능숙하게 네 명에서 잘랐다.
그사이 임수원이 준비를 했고, 유현성은 구이기를 작동시켰다.
그때였다.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