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어?
심사 위원인 줄 알았는데 조합 대표란다.
황당한 건 이예지 씨 아버님이라는 거다.
내 이름을 아는 건 이해가 되는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한 거지?
“나야 괜찮지만. 이 친구는 성미가 급해서. 궁금한 건 참지 못하는 성격이거든.”
“됐고.”
“하여간 소개는 이만하면 되겠나? 부족하면 이 친구 열네 살 때 거시기 털 처음 난 이야기부터 해줄 수…….”
“꺼져.”
말하는 쪽은 능글능글하고, 대꾸하는 쪽은 발끈발끈한 느낌이다.
“예. 충분하니까요. 더 궁금하지도 않고요. 일단 이쪽에 앉으세요. 커피는…… 믹스면 되겠죠?”
“주면 뭐라도 상관없네만. 너도 그만 흥분하고 앉아.”
그렇게 잠시간의 어수선함이 정리되고 대화할 여건이 마련되였다.
“그래서! 왜 어묵에서 장어 맛이 나는 건가?”
“거, 너무 급하게.”
“미치겠어. 미치겠다고! 딱 98% 풀었는데 2% 때문에 숨통이 막히는 기분이라고!”
“나도 아는데 그래도 순서가 있지 않나.”
“니가 알려줄 것도 아니면 아가리 닥쳐!”
말이 험했지만, 희한하게도 그렇게 안 들리는 게 신기했다.
아마, 지인 한정이란 의미겠지?
“천천히 하나씩 물어보세요. 저도 지금 상황이 뭐가 뭔지 잘 모릅니다.”
“크흠. 내가 급했던 건 인정하겠네. 저건 어묵 믹스가 맞지?”
“예. 특제 어묵 반죽입니다.”
“따로 주문 제작인가?”
“아닙니다. 시제품 중에서 좀 고급형으로 받아 씁니다.”
“거기서 이런 맛은 안 날 텐데?”
“따로 가미가 들어가긴 합니다.”
“그게 뭔가?”
“예?”
순간, ‘이런 미친놈을 봤나?’ 하는 욕이 목구멍 밑까지 차올랐다.
남의 집 가보를 얼렁뚱땅 대화로 내놓으라는 격 아닌가.
“또, 지랄철 성격 나오네. 좀 천천히 풀어가자고.”
“멍철구 같은 소리 하네. 이렇게 안 하면 말이 나올까?”
“허허, 돈이라도 내고 이야기하든가.”
“1억!”
김병철이 버럭 소리치자 이철구는 피식 웃었다.
“자네라면 1억에 되겠나?”
“안 되면 5억이다.”
“미친놈. 커피라도 마시고 정신 좀 챙겨.”
그제야 김병철은 아차 하는 표정을 드러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 상황이 황당하기만 했다.
왜 본인을 놔두고 자기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깨지게 두들기는지.
“일단 시판용은 아니고요. 받아 쓰는 것도 맞습니다. 약간의 조리가 들어갑니다만, 제가 그걸 밝히기는 어렵겠습니다.”
일단 한 발 뺀다고 이야기했는데…….
“마! 어른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너무하잖아. 얼마면 돼? 얼마면! 억!”
“좀 정신 좀 차려.”
이철구가 기어이 김병철의 팔목을 잡아 다시 의자에 앉혔다.
답답해서 결국 조금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왜 흥분하시고 그러시는지 모르겠는데, 조리 비법을 윽박지르면서 알려달라는 게 제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 됩니다.”
“미안하네. 이 친구가 좀 급한 성격이라서 그런데, 솔직히 궁금하긴 하네만.”
“그래도 알려드릴 수 없는 건 마찬가지죠.”
그때 김병철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대상!”
“예?”
“대상 받고, 구역권 말하면 찔러주마! 투자를 원하면 돈도 발라주고. 말만 해!”
아주 도박하면 패가망신할 스타일이었다.
뭘, 저리 호탕하게 다 지르다니.
문제는 이상하게 저게 마음에 든다는 거다. 능구렁이 같은 사람들보다 시원하다고 할까.
“거창하게 그러실 것까진 없고요. 정 궁금하시다면 알려 드릴 순 있는데…… 방금 한 말 무르시기 없습니다.”
“크흠, 흠. 상은, 내가 힘써보고, 구역권 할 때는 내 권리를 던져주마. 이게 전부다!”
“일단 접수했습니다. 어르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슬쩍 시선을 돌려 이철구를 쳐다봤다.
할래? 말래? 어쩔래?
딱 이런 분위기로 몰아간 것이다.
“허허, 내가 안 된다 그러면 이 친구한테 맞아 죽겠지? 좋네. 어차피 심사야 내가 하는 게 아니고, 구역권이야…… 우리 딸이 알아서 하겠지.”
그렇게 이철구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조금 기분이 풀렸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
“어묵이 뭡니까?”
“생선살을 갈은 거지.”
“맛은 뭐로 내죠?”
“그야 기본 소금 간에, 기타 야채와 부재료, 마지막으로 향미료가 들어가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걸로는 저 맛을 못 내. 아니, 비슷하게는 되지만 뭔가 질감이……!”
“예, 그겁니다. 생선 맛이 안 나면 생선을 넣으면 되는 겁니다.”
김병철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허, 생선을? 물론 장어살로 만든 어묵도 있기는 한데, 저 7,000원이란 단가를 맞출 순 없다고.”
“제가 넣은 건 다른 건데요.”
“뭔데?”
“동태살요.”
갑자기 두 사람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러더니 되냐, 안 되냐를 떠나서 그 조합이 어떤 맛을 내는지 순식간에 분석하기 시작했다.
곧 답이 나왔다.
“미친놈.”
“아니지, 나름 천재적인 발상이지.”
“맞긴 한데, 누가 이런 생각을 해?”
“저놈?”
김병철과 이철구의 시선이 동시에 꼽혔다.
“사실 별것도 아닌데요? 어묵을 씹는데 생선 느낌이 안 난다 해서 적당한 걸 고른 것뿐이죠. 향이야 뭐 소스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거고요.”
“그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렵다고.”
“예. 그 어려운 걸 제가 해냈습니다만!”
말은 이렇지만 실제론 꽤 시행 착오가 많았다.
일단 분식집이란 한계를 설정하고 이래저래 알아봤다.
조건은 가격이 안정적일 것, 수시로 수급이 가능할 것, 조리에 큰 손이 가지 않을 것 등등.
그중 냉동 동태살이 그나마 제일 부합했다. 명절 제사 시기만 빼면 가격이 안정적이고 물량도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걸 질감을 살리기 위해 해동하고 칼로 적당히 다졌더니 연육 믹스와 너무 잘 맞았다.
즉, 구운 어묵에 없는 씹는 질감과 부족한 생선살의 향이 미묘하게나마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장어구이 소스가 더해지니 진짜 미식가, 아니, 분석가가 아니면 모를 정도의 착각(?)을 심어주는 데 성공.
두 사람은 말 그대로 거기에 낚인 것이다.
“하아, 장어 도시락집 3호점까지 차리는 데 17억 넘게 들었는데, 미치겠군.”
김병철의 탄식이 이 황당한 상황의 답을 내놨다. 그 정도나 투자했으니 방금의 발끈함도 충분히 납득됐고.
이어진 이철구의 말도 어이가 없었다.
“거기 조리장 연봉이 1억 넘는다고 하지 않았나?”
“1억 4천. 그것도 세후라네.”
“그런데 발리게 생겼군.”
“흐름은 어쩔 수 없지. 인정할 건 인정하고 딛고 넘어가야 발전이 있는 거니까. 특히 이 분야는.”
김병철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툭 내뱉었다.
“약속은 지키겠네. 부디 오래 보길 바라네.”
“나 역시도.”
몹시 흥분하던 처음과 달리, 이철구는 담백하게 인사하고는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은 유현성은 좀 어이가 없었다.
“사실 다 얘기한 것도 아닌데.”
진짜 비밀은 정말 따로 있었다.
* * *
“휴우, 다 팔았다.”
솔직히 대회…… 다시는 이런 거 할 생각이 없었다.
이예지가 충분히 설명했지만, 실제로 참가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참고로 옆에 옆에 가게는 재료가 떨어졌는지 심사 위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맞은편 핫도그 가게는 상이고 뭐고 다 포기한 듯 대충 300개 넘게 팔고 마무리하더라.
확실히. 이건 뭔가 다르긴 하네.
음식 맛으로 딱 평가하고 상 주는 그런 대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랄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료 조절, 손님 응대 기타 등등이 다 포함된 리얼리티 극한 장사 체험(?)이랄까.
실제로 옆에서 싸움도 서너 번 일어났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
“장사 마무리하십니까?”
바로 옆 가게 사장님이 슬쩍 물었다.
“예. 재료 소진이라 정리하려고요.”
“아이고, 한 수저 얻어 먹어보려 했는데…….”
“아,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거 괜히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챙겨 놨죠.”
유현성은 씨익 웃으며 잽싸게 한 그릇을 뚝딱 만들어 건넸다.
그걸 직원들과 나눠서 맛을 보더라.
아까 장사하면서 잠깐씩 주변과 이야기할 틈이 있었는데, 보통은 이런 경우 영업 끝나면 서로의 요리를 나눠 먹는다고 했다.
대충 친목 도모(?) 정도라 보면 된다.
“이건 저희 음식입니다.”
분명 해물 짬뽕 만두국이라고 했던가?
짬뽕은 면이고, 짬뽕밥은 밥이다. 근데 그 자리를 물만두로 채운 게 이 메뉴였다.
“으음, 이거 맛있네요.”
짬뽕 국물을 잔뜩 머금은 만두피에, 의외로 속이 튼실했다. 아삭하게 씹히는 야채의 식감과 얼큰한 국물과 제법 잘 어울렸던 것이다.
솔직한 감상이었는데.
“졌습니다.”
“예?”
“확실히 체급이 다르네요. 저희도 단가 낮춘다고 했는데도 8,000원 밑으로는 어렵더라고요.”
“아.”
그래도 이 메뉴가 자기 가게에서 인기 메뉴라고 했다. 공깃밥 반 그릇이 서비스로 나가는데 대부분 안 남긴다고 하더라.
하지만 단가 문제는 어쩔 수 없단다.
“전 맛있게 먹었습니다. 가격이야 제가 뭐라 할 건 아니고요. 이 육수에 올라오는 향이 궁금하네요.”
“게 육수죠. 거래처 사장님이 칼 같은 규칙이 있어서 선도가 괜찮습니다. 냉동 게이긴 한데 미묘한 부분에서 다르더라고요.”
그러면서 명함을 주는데, ‘형님네 냉동’이라 적혀 있었다.
어? 이거 어디선가 봤는데?
“사실, 가서 먹어봤습니다. 퀄리티가…… 그냥 라면이라 하기에 미안할 정도로 높더라고요. 솔직히 조금 부럽기도 하고요.”
들어 보니 이 아저씨도 우리 가게 팬이었다.
대체 나도 모르는 장점을 얼마나 설명하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이, 형씨. 우리도 좀 돌립시다.”
“나도. 나도.”
“우리 가게도 맛 좀 봐주세요.”
뜬금없이 자칭 사장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대충 봐도 열 명이 넘었는데, 다들 준비한 것처럼 시그니처 메뉴라고 들고 찾아왔다.
튀김이 잔뜩 올라간 짜장면에, 카레 소스 범벅인 멸치 국수에 심지어 쥐포 볶음밥도 있었다.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메뉴들이었지만 다들 맛의 퀄리티는 일정 이상이었다.
정작 나는 맛만 보고 대접용 장어묵 덮밥만 만들어야 했지만.
“저, 밥이 다 떨어져…….”
“우리 밥 남았습니다!”
“계란 고명이 다…….”
“저희 가게 남았어요~”
“김치가…….”
“우리 가게…….”
이 무슨 미친 짓인지.
부족하다고 하면 강제로 재료가 공급됐다. 뭐가 자꾸 들어오는데 하필 어묵 재료는 많이 남아서 좀비처럼 계속 만들어야 했다.
“으아아아아!”
“추가요. 추가요. 추가요.”
“밥은?”
“대령했습니다.”
“뭐 부족한 거…….”
“없습니다.”
“이제 끝?”
“아뇨! 다섯 그릇 더요!”
“흐어어어어!!”
그렇게 3~40 그릇은 더 나갔다.
그 덕에 호강한 이는 임혜리와 임수원이었다.
아주 그냥 이 동네 맛집 투어 하는 수준으로 몽땅 삭삭 해치운 거다.
하마터면 애들 밥도 안 먹이는 악덕 사장 오해를 살짝 받을 뻔했지만, 그 역시도 다시 돌아온 폭식 자매들이 다 해결해 주었다.
“허어, 허어. 다들 감사합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어느 순간 누군가 박수를 쳤다.
짝. 짝짝짝. 짝짝짝짝짝!!
당황해서 얼떨떨해하는데 인상 좋은 아저씨 하나가 다가왔다. 머리는 다 밀어서 없었지만, 흰 수염이 한가득해서 누가 봐도 요리 장인처럼 보였다.
진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가 방송에서 봤을 정도니까.
“오송해라고 하네. 사실 이건 비밀 투표였는데, 허허허. 자네가 올해 올웨이즈라네.”
“예? 그게 뭡니까?”
“공식적인 건 아니고, 가게 사장들이 뽑는 사장이라고 보면 된다네.”
그러면서 설명하는데, 화재 대응부터 손님 응대, 거기에 맛과 서비스 부분까지 다른 가게 사장들도 인정했다, 정도로 보면 된단다.
“우리끼리 하는 거니까 그냥 서로서로 좋게 지내자고 하는 거지. 그나저나 장어묵 덮밥이 너무 인상적이었어.”
“감사합니다.”
“동태 살은 페이크였지. 진짜는 스프 육수였으니까.”
“오, 맞히셨네요.”
“허허, 호텔 조리사만 30년차인데…… 사실 나도 어묵에 속았거든. 그거, 새우라면 스프 맞지?”
“절반은요.”
“부이약국 옆집?”
“하! 못 속이겠네요.”
김병철과 이철구가 못 알아낸 진짜 비법을 이 사람이 눈치챘다.
부전시장 안쪽에 보면 멸치, 게 등등을 갈아서 천연 육수 가루를 파는 집들이 있었다.
여기에 새우라면 스프를 넣고 섞어서 반죽에 소량을 넣는다.
말은 복잡하지만 과정은 아주 간단했다.
연육 반죽에 점성을 위해 밀가루와 이것저것 섞을 때, 그냥 스프레이 식으로 뿌리면 되는 것이다.
사실 분식집 덮밥에 과정이 복잡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찾다 찾다 나온 게 이거다.
“비밀은 지켜주겠네. 대신 다음에 한 번 초대해 주게나.”
오송해의 눈빛은 정말 순수했다.
진심으로 요리 하나만 보는 느낌.
“예약하시면 알코올로 충분히 적셔 드리겠습니다.”
“허허. 우리 동네 사장단 회식해야겠구먼. 진심으로 기대하겠네.”
살짝 부담이 되려는데, 오송해가 씨익 웃었다.
“이건 그냥 우리끼리 하는 거라 보면 되네. 그건 그렇고, 곧 수상이 있을 거야.”
“아, 이제야 합니까?”
“이 대회가 나름 실전적이니까.”
더 황당한 건, 이 방식을 제안한 사람이.
“나라네. 요리 대회니 뭐니 심사 위원만의 놀이에 가깝더라고. 제안에 응하지 않았으면 손 안 댄다고 했네.”
“아, 그러시군요.”
뭔가 끌려간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대회의 취지를 생각해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됐다.
흥행으로 고객을 끌어들인다.
그로써 상권을 부흥시킨다.
당연히 방문했을 때 차이가 나면 안 되니 정말 실제 장사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오송해가 갑자기 어깨동무를 하며 속삭였다.
“아마. 자네가 인기상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