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인기상!”
노린 건 맞다.
뭐라도 수상만 하면 조합비 면제에 기타 해택들이 많으니 선택과 집중을 한 거다.
실제로, 인기상이 제일 흥행이 잘된다고 들었다.
“더 물어보지 않겠네.”
오송해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아저씨, 정말 능글맞다.
실제로 새우라면 스프는 개인이나 업자가 입수할 수 없었다. 그냥 라면 스프에 건새우를 갈아서 추가하는 건데, 그 비율은 비밀이었다.
그걸 알면서 주변 식당 사장들 들으라는 듯 이야기한 거다.
나름의 실드라고나 할까.
“제4회 전포제 요리 대회 수상을 진행하겠습니다.”
사회자가 능수능란하게 상황을 정리하는데, 당황스럽게도 주변 사장님들이 몰려들었다.
“대상은 모르겠지만, 자네가 하나는 받을 거야.”
오송해가 웃으며 이야기하는데 오히려 불안했다. 친한 척하는 거야 그려려니 하는데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근데 갑자기 정색을 하더라.
“사실 이거, 6,000원이었으면 다 씹어 먹었을 거야!”
“예? 갑자기요?”
“아니야. 이건 생태계 교란종일세.”
오송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평균 가격, 저기 핫도그 빼면 7,400원 선이라네. 계속 가게에서 팔아야 한다는 전제를 걸면 원가나 운영비를 무시 못 하지. 그 규격 안에서 새로 음식을 만들어낸다는 건 모험이야. 실패로 인한 손해와 버려야 되는 식자재 가격을 생각하면 사실 어려워. 제일 웨이팅이 긴 대창 덮밥집이나 우육면 가게들이 왜 참가를 포기했겠나.”
공감이 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 말이 길면 잔소리가 되는 법. 하여간 자네가 이 가격을 맞춰줬기에 고맙네.”
“정말 그런가요?”
“여기서 7, 8000원에 파는 가게들이 자네 음식과 비교했을 때, 어떤 평가를 받겠나?”
“저야 모르죠.”
“아마 욕 좀 제법 먹었겠지. 가격이 2,000원이나 비싼데 퀄리티가 비슷하니까. 이게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결이 다르다는 거야. 데이트나 이벤트로 와서 먹는 식당과 일상적으로 들르는 곳은 다르다는 거지. 자네는 딱 그 경계를 맞췄어.”
“당연히 분식집이니까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오송해는 갑자기 파하! 하고 웃었다.
“맞아. 정답이야. 자네는…… 잘 컸군.”
“저…… 본 적 있으세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행사 시작 됐군.”
슬쩍 말을 돌리는데 일단 모른 척 정면을 쳐다봤다.
“인기상부터 발표하겠습니다. 다들 음식 드신 식당에서 쿠폰을 가져오셨죠?”
“예~”
“예. 그걸 저기 안에 넣으면 그걸로 집계되는 겁니다. 이건 순수하게 심사랑 상관없이 표수로만 뽑는 겁니다. 물론 부정도 있을 수 있겠지만, 또 저희가 그런 부분도 체크하거든요.”
사회자…… 박명수 짝퉁인 백명수인가, 하여간 사회지가 심통 가득한 표정으로 표를 몇 개 꺼냈다.
“다 확인해요. 걸리면 확!!”
아, 어설프네.
어쨌든, 내 쿠폰의 첫 표는 폭식 자매들이 들고 갔다.
이후 손님들이 하나씩 가져갔고 마지막으로 근처 사장들이 챙겨가서 넣었다고 하더라.
그 결과, 음식점 사장들이 뽑은 올웨이즈란 거에 뽑혔는데 솔직히 뭐가 뭔진 잘 모르겠다.
웃긴 건, 나보다 주변 사장들이 더 긴장하면서 보고 있다는 사실.
“이거 예상 밖인데요! 제가 못 먹어본 식당이 걸렸습니다. 저는…… 아, 말하면 안 되죠.”
그러고는 잠시 뜸을 들이는데, 조마조마하기보다 짜증이 났다.
방송이면 채널을 돌려 버리겠는데.
“1인당 여러 표 행사가 가능하죠. 하지만 한 가게당 한 표라는 건 맞습니다. 최종 864표 중 당당히 93표를 받은 가게! 식사를 하신 분들 중 거의 90%가 다시 방문하겠다는 식당이 인기상에 올랐습니다!”
사회자는 다시금 시선을 끌어모은 뒤, 소리쳤다.
“메뉴는 장어-묵 덮밥. 행복 분식이 인기상 수상입니다!!”
될 거라 생각은 했다.
하지만, 막상 발표가 나니 역시 느낌이 달랐다.
“아, 올라오지 마세요. 인기상이 뭐라고 올라옵니까. 대신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면서 허겁지겁 내려오는 사회자의 재치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저기 사장님 맞으십니까?”
“예. 행복 분식을 운영하고 있는 유현성이라고 합니다.”
“여친은요?”
“예?”
“제 주변에 괜찮은 처자들이 많은데, 소개받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너무 훅 들어와서 당황스러웠다.
대답 못 하고 있는데 사회자가 씨익 웃었다.
“이거 큰일 날 사장이네. 잘생겼지. 키도 크고, 장사도 잘해. 여친 소개시켜 주면 양복이 아니라 맞춤 정장까지 하나 얻어가겠네. 진짜 생각 있으면 따로 연락해요.”
그러면서 종이 쪽지를 대놓고 주는데, 정말 아무 것도 안 적혀 있었다.
방송용이라 생각하자. 하하하하.
“인기상의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냥 열심히 만든…….”
“에이, 그런 뻔한 이야기 말고요. 이거 부산 지역 방송이랑 유튭 올라가는데 재밌는 이야기를 하셔야죠.”
“그게 장사하다 보니…….”
“예.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남자친구가 좀 재미없어도 잘생겼다, 보고만 있었고 괜찮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돈 잘 번다! 만족하시는 분들은 연락 주세요~”
이런 한 것도 없이 기 빨리는 기분이라니.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는 것!
“우수상은, 아~ 인기상 바로 아래라고 하네요. 87표 받았다고 합니다. 아 이건 저도 맛있게 먹었는데. 그럼 장어-묵 덮밥이 더 맛있었다는 건데, 못 먹어봐서 아쉽네요. 어쨌든 우수상은~!!”
왜 자꾸 걸고 넘어가는지 모르겠네.
하지만 주변 사장님들이 박수 치고 있으니, 나 역시 환호하는 척했다.
“오징어 찹쌀 핫도그! 우수상입니다! 일단 단일 메뉴 최대 판매 기록인데, 호불호가 있네요. 둘 중 한 명이 다시 방문해 무조건 먹겠다고 했답니다. 개인적으로 쫄깃한 식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수상 축하드리고요. 아, 시간 없다고 빨리 진행하라고 하는군요.”
맞은편 핫도그 가게가 우수상을 받았다.
아주 미친 듯이 팔았으니.
솔직히 축하해주고 싶었다.
잠시 장사 마무리 후, 메뉴 교환하면서 들었는데 사장님이 명퇴하고 아들과 함께 장사하기로 했단다.
그러다 큰돈을 물렸음에도 프랜차이즈 본사가 지원을 끊어서 개발한 거라고 했다.
살짝 울컥했던 건.
“장어-묵 덮밥, 하나만 포장해 주시면 안 됩니까?”
“예. 해드릴 순 있는데…….”
“아내가 병원에 있어요. 꼭 이 맛을 전해주고 싶어서요.”
“아, 잘 포장해 드릴게요.”
표정이 어찌나 진지해 보이는지, 진짜 꼼꼼히 만들어 주면서도 미안한 느낌까지 들었다.
심지어 슬쩍 아저씨 눈망울이 물드는 걸 보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오더라.
“이건 저희가 만들어보는 건데, 나중에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잘 먹겠습니다.”
그 후 신제품이라고 핫도그 몇 개를 조심스레 줬는데 생각 이상으로 퀄리티가 높았다.
‘그래도 신김치 핫도그는 아니었지. 음.’
어쨌든 열심히 박수를 치는 중, 핫도그 사장님이 갑자기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축하드립니다.”
“여기 식당 줄 서서 기다리면서 판 게 40개 가까이 됩니다. 그러다 입소문이 나면서 확 늘었어요.”
“아, 아. 그런가요?”
“주변을 보세요.”
당황해하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그러고 보니 왜 근처 사장들이 다 몰려 있는 거지?
“허, 젊은 사장님. 그냥 사장님 가게 먹으러 왔다 기다리면서 주변도 다 잘된 거죠.”
“아!”
이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이 달궈지는 민망한 느낌이랄까.
묘하게 몸이 간지럽다는 기분이 들 정도.
“자, 최우수상입니다. 전 이렇게 나누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입금하시는 분들이 해달라고 하니 하는 겁니다. 저한테 뭐라 마세요!”
사회자는 피식 웃더니, 날 쳐다봤다.
“최우수상은…….”
* * *
우걱우걱, 허걱허걱.
찹찹!
분명히 단골손님이 왔다.
평소처럼 시키고, 고맙게도 추가 주문까지.
매출은 확실히 올라가고 있다.
근데 왜 무섭지?
네 명이서 라면 여덟 그릇에 김밥 네 줄, 여기에 무료 밥까지 한 가득 퍼다 가면, 당연히 사장으로서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흐음, 일단 최우수상은…… 저 손님들, 즉 폭식자매들이 탔다.
메뉴는 조리퐁 크레페.
펑!
하는 소리로 뻥튀기를 터트리면서 시각과 청각을 잡고, 가마솥 넓이의 크레페를 만들어 손님을 끌었다.
대충 큰 프라이팬으로 펼쳐서 구운 뒤, 크레페에 생크림을 바르고 조리퐁을 뿌린다. 거기에 딸기, 바나나, 키위를 올리고 특제 상큼 소스를 올리면, 묘하게 환상궁합.
아삭 바사삭 쫄깃 상큼.
심지어 6,000원이란 가격에 2인분이었다.
장어묵 덮밥 가격을 올려달란 게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
디저트랑 식사는 엄연히 다른 부분이니까.
물론 최우수상 타고 괜히 오지랖이었다며 사과하러 왔지만…… 그게 의미가 없어졌다고나 할까.
“후우, 저거 어딜 놔야 되나?”
심플한 가게 구조상 딱히 상패를 놓을 자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족사진 밑에 놓을 수도 없고.
“우움,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다 씹고 말해요.”
꿀꺽.
“맛있어요!”
“예. 최우수상 축하드립니다.”
“사장님도요.”
폭식 자매들은 진짜 미안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틀에 한 번씩 들렀다.
매출, 매상.
인당 계산으로는 두 번째로 팍팍 올려주더라.
1위는 당연히 강한덕 선생님.
아무리 헌터라지만 혼자 와서 기본 두 그릇에, 요즘은 지인들도 끌고 와서 엄청 올려주고 있었다.
“근데 장어묵 덮밥은 언제부터 돼요?”
“글쎄요. 일단 이번 주말 공사를 좀 해야 해서 다음 주면 정식으로 판매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약 안 되죠?”
“줄 서세요.”
이제 폭식 자매들과 많이 친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어느새 혜리랑 언니 동생 하더니, 현지가 피식 하며 욕까지 할 정도가 됐으니까.
“근데 오빠는 진짜 여친 사귈 생각 없으세요?”
“쓸데없이 눈만 높아서요.”
“제가 눈 찌르면요?”
“찔리지도 않겠지만, 안 찔러도 안 됩니다.”
“음, 사장님. 너무 철벽이다. 우리 언니 정도면 어디 가도 꿀리지 않는데.”
밥솥 해치우는 양으로는 꿀리지 않겠지.
“하하, 공사 구분은 해야죠.”
일단 그렇게 폭식 자매들을 보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넘치다 못해 죽을 정도였다.
전포제 요리 대회.
여기서 받은 명함만 스무 개가 넘었다. 일단 근처 식당 사장님들 건 거의 다 받았고, 음식 교환하면서 받은 업체들까지 넘쳐났다.
문제는 핫도그 사장님.
우수상인데…… 폐업 준비한다고 들었다. 적당한 가게 자리 못 구하면 정리해야 한다나.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외 기타 등등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살짝 떠밀리듯 대회 참가를 결정했고, 메뉴를 고민해서 만들었으며, 어쩌다 보니…….
대상을 탔다.
* * *
“예. 제 4회 전포제 요리 대회, 대상은…… 장어-묵 덮밥!! 행복 분식입니다!! 놀랍게도 인기상과 대상을 함께 받은 최초의 식당이라고 하네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일찍 와서 먹어볼 걸 그랬습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행사도 자주 없는데 왜 늦게 왔는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행복 분식~!!”
사실, 덤덤할 줄 알았다.
이게 뭐라고.
근데 대상 발표가 나자마자,
“우아아아아아아!!!”
자연스레 함성이 튀어나왔다. 임혜리와 임수원을 끌어안고 막 괴성을 내질러 버린 것이다.
이후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꽃목걸이를 걸고, 상패를 받고, 어이없게도 김요성과 웃으면서 악수를 나눴다.
덕담과 명함이 오가고 축하 인사도 엄청나게 받았다.
근데 너무 정신없었다.
“아, 민망하네.”
그 뒤에 만난 이예지는, 당분간은 정신없을 거라 했다.
대회 중엔 조합 대표라 형평성 문제 때문에 못 들렀다면서, 조만간 이야기하잖다.
그 외에도 정리할 게 있었는데 좀 얼떨떨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다음 주 장어묵 덮밥을 정식으로 준비하기 위해 공사를 한다고 입구에 써 붙이고 있는데.
“찾았다!”
“엥?”
고개를 돌렸다가 기겁하고 말았다.
왜 네가 여기 있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