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거의 마무리 다 됐네요.”
행복 분식을 둘러보는데 기분이 묘했다.
생각 이상으로 깔끔하게 잘 나왔고, 약간의 확장이지만 가게가 두 배는 넓어 보이더라.
특히 좋았던 건, 길쭉한 대기실이었다.
좁게 앉으면 열 명 이상 가능했는데 주방 끝 카운터에서 바로바로 번호를 부를 수 있었다.
즉, 일일이 가게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그래도 사흘 정도는 영업하지 마. 소독 냄새가 음식에 배일 수도 있거든.”
“환기는 계속해야죠. 근데 우리 쪽 공사가 먼저 끝났네요.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
“설비 들어오는 공사가 거의 없으니까.”
철거하고, 배관 빼고, 바닥 다지고, 단열벽 세우고, 인테리어에 테이블과 의자만 놓으면 끝이었다.
물론 그 과정도 쉬운 건 아니었지만 큰 사고 없이 공사가 끝났다.
하지만 칼국숫집은 대변신이 필요했다.
입구 옆을 유리로 했는데, 거기가 정태수가 칼국수를 밀고 써는 자리였다. 그 뒤로 육수 내고 면 삶는 주방이, 그 정면으로 홀을 만든 것이다.
결국 덕순 할머니네 동네 사랑방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냥 간단히 테이블 하나 놓고, 쉬고 식사할 수 있는 공간만 남기기로.
이제 동네 아주머니들 막걸리는 다 마셨네.
가만, 이거 살살 불안해지는데?
“삼촌, 궁금한 게 있는데, 다락방 입구 안쪽에 유리 섀시 달 수 있어요? 방음창 같은 거요.”
“문? 그게 필요해?”
“소음이나 음식 냄새 때문에 혹시나 해서요.”
“그거 달면 주문 소리 안 들릴 텐데? 호출기라도 놓게? 그럼 올라가서 또 주문 받고 내려오고…….”
“인터폰 설치하면 되죠. 요즘 스마트 기능 달린 거 좌우로 두 개만 놓으면 될 것 같은데요.”
몰랐는데 현지가 구박하더라.
와이파이로 연결하면 메뉴 주문까지 한 방이라나.
“잠깐만 보자.”
곽준열과 함께 올라갔는데, 곧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여기 해놓고, 근데 음식 들고 올라갈 때가 문제네.”
“자동문 같은 건 없어요?”
“아, 발로 밟는 거 있다. 이거 이 옆으로 부착해서 손으로 치면 문 열리게 가능하지. 근데 가격이 좀 나가. 한 50~70만 원 정도?”
스마트 인터폰까지 치면 돈 100만 원은 그냥 깨지겠네.
하지만 기왕 하는 김에 과감히 지르기로 했다. 투자 좀 더 한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설치합시다.”
“정말?”
“할 때 다 해야 편하죠.”
곽준열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잘하게 하나 하고 또, 하나 하는 식이면 결국 공사 전의 칼국숫집처럼 된다. 동선이 꼬이는 건 둘째치고 사장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를 까먹는 거다.
“그건 내가 알아볼게.”
“잘 부탁드립니다.”
곽준열은 씨익 웃으며 유현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동시에 결정타를 날리더라.
“큭, 사장님! 입금만 확실하게 해주시면 됩니다.”
* * *
SNS에 공지를 올렸다.
나흘 뒤 가오픈한다고.
아무래도 가게가 확장된 만큼 하루 이틀 정도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았다. 특히 임혜리와 임수원은 칼국숫집 돕고 슈트 적응한다고 반쯤 몸살이 난 상태로 집에서 쉬는 상태였다.
“실례합니다.”
그때, 웬 산적 곰처럼 생긴 놈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얼핏 봐서는 나랑 비슷한 나이로 보였는데, 의외로 자세가 공손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여기 알바 안 구합니까?”
차라리 산에서 장작을 팬다면 또 모를까.
알바로 쓰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 외모인데.
“저희 알바 구한다고 한 적 없는데요?”
“그, 그렇죠. 가게가 확장됐다고 들어서 혹시나…….”
“잠깐!”
임혜리는 능숙했고, 임수원은 이제 라면도 김밥도 거의 완벽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호영이가 추가됐으니 딱히 사람이 부족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의 만약이 있다는 건데.
엘리스는 패스.
난 행복 분식을 남자들만 득시글한 남탕으로 만들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
“어디서 듣고 오셨어요?”
“그냥 집이 근처라서…… 들러봤습니다.”
“간단한 호구조사 괜찮죠?”
“예.”
이름, 정호석.
나이, 24살.
작년 말에 군대 마치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중!
주소는…….
“어?”
이 익숙한 숫자는 뭐란 말인가?
“집이…… 아주, 가깝네요.”
“예.”
이 부분은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다.
“언제부터 일할 수 있죠.”
“내일부터라도 가능합니다.”
“지원하게 된 동기는요?”
“근처 자주 지나다녔는데, 음식 냄새가 참 좋더라고요. 손님도 많은 것 같아서. 좀 제대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요리 경력은 있으세요?”
“말년에 취사병 반년 정도 했습니다. 취미로 집에서도 요리 좀 만드는 편이고요.”
“장사 경험은 없고, 요리는 좀 할 줄 안다는 거죠? 그럼 일단 일주일 수습으로,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습니다. 언제부터 나오면 될까요.”
“사흘 뒤, 오전 11시에 오시면 될 겁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도 대답하는 것도, 돌아가는 행동까지 외모와 달리 예의가 바르다는 느낌이었다.
좀 걸리는 건, 가게 뒤편을 멍하게 쳐다본다는 것뿐.
짐작이 맞다면, 이것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싶었다.
“얼떨결에 오라고 하긴 했는데, 일단 일 시켜보고 정하면 되겠지.”
생각해 보니 손님 중에서 일 배우고 싶다고, 알바 구하냐고 물어본 이들도 여럿 됐다.
그때는 확장 전이니 정중히 거절했지만, 지금은 또 달랐다.
장사가 어떻게 튈지는 나도 모르니까.
뚜루루루-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고지원입니다. 혹시 바쁘신가요?
“무슨 일인데?”
-교장 선생님께서 좀 뵙자고 하시더군요.
설마 그때 그 게이트 문제인가?
“아주 급한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냥 의견을 좀 듣고 싶다고…….
“게이트?”
-그건 헌터청에서 나온 분들이 조사 중입니다. 크게 신경 쓰실 건 아닙니다.
뭔가 묘하게 거슬리는데.
그때 갑자기 고지원이 다급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어? 어, 알았어.”
그렇게 전화를 끊자마자 엘리스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모자에 후드까지 확실하게 가린 상태로.
“무슨 일이야?”
“일이 생겼어요.”
“너도 게이트?”
가볍게 찔러봤는데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일이…… 곧 분열한다는 건 아니겠지?”
“아뇨. 지금요.”
뚜루루루루-
오늘 이상하게 연락이 많이 오네.
이번에는 임혜리였다.
“무슨 일인데?”
-큰일 났어요. 집 앞에 게이트가 생겼어요!
어이가 없어서 엘리스를 쳐다봤다.
당연히 그녀는 다시 고개만 끄덕였다.
설마 이게 네가 본 그 예지몽은 아니겠지?
* * *
“정말이네.”
황당하니까 말도 길게 나오지 않았다.
왜! 내! 집!
마당에!
시커먼 게이트가 생기냐고!
“아카데미요. 그 안에 있던 거예요.”
“그게 출력 임계치를 넘어서 분열했다는 거야? 통제를 어떻게 했길래!”
골이 띵했다.
한 달인가 두 달인가 전에 봤던, 황령 터널 안의 그 불길한 게이트.
탐사 들어가 내부의 몬스터를 조절하거나, 혹은 밖으로 나온 마수를 정리하지 못하면 가끔 이런 현상이 생긴다.
더 강한 동료를 오기를 기다리며 게이트 입구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그 역시도 명확하게 원인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불안해진 게이트는 내부의 강한 힘 때문에 분열한다.
쏟아내기 위해 또 다른 입구를 만든다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가 붕괴되니까.
문제는 이게 랜덤이라는 것.
짐작할 수 있는 건, 아마 터널 내부에 공간이 좁다 보니 천장을 뚫고 튀어나온 모양이라는 정도.
근데 왜 내 집 마당이냐고.
“분명 선발대는 들어갔겠지?”
“일이 어려워질 것 같아요. 그 전에 게이트가 터질 것 같은데요?”
“미친!”
알토란 같은 월급으로 마련한 집이 날아간다고!
“같이 들어가요.”
“왜? 난 애들하고 마주치기 싫어.”
“그 전에 정리하고 나오면 되죠. 그리고 세계수가 느껴지거든요.”
미친, 이게 그렇게 연결된단 말인가?
하지만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발대가 실패하거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내 집이 사라진다.
진심으로 그것만은 피해야 한다.
“특별한 무장은 필요 없겠지?”
“모르겠어요.”
고개를 돌려 임혜리와 임수원을 쳐다봤다.
“혹시 모르니까 괴수화 상태로 대기하고 있어.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피해도 되는데 집이 부서지는 건 막자!”
“으헝, 그럼 우린 또 길바닥에서 자는 거예요?”
대체 어디까지 상상하면 저런 말이 나오는 걸까?
하지만 진심으로 울먹일 것 같아서 서둘러 정리했다.
“아냐, 절대 집 안 무너져.”
그때 엘리스가 내 손을 잡았다.
“가요.”
“하아, 그래…… 가자!”
집 지키러!!
* * *
탁한 악기. 지독한 피 냄새.
수백 수천의 지네들이 몸속을 기어 다니는 기분.
오랜만에 느끼는 이계의 기운이지만, 여전히 속이 울렁거렸다.
일종의, 신체가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해야 할까.
동시에 마지막으로 들어갔을 때가 기억났다.
그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 모른다.
이종족들의 도움과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다면, 나 역시도 살아나오지 못했겠지.
마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게 싫어서 그렇게 피했던 건데.
“엘리스, 선발대와 입구가 다른 것 같은데?”
“외각부터 정리하겠죠. 최소 오십 명 가까이 들어갔을 테니까.”
“그걸 어떻게 알지?”
“뻔하지 않아요?”
당연히 고요환이겠지. 아니면 박순신 아카데미 교장이든가.
일단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게이트 입구, 바로 앞에 커다란 늪지가 있었다. 거기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는데 무척이나 악취가 심했다.
“흐음, 이거 독인가?”
딱. 손가락을 튕겼다.
역한 냄새가 가시면서 호흡이 약간 편해졌다.
“무장하고 올 걸 그랬군. 급이 안 되면 이것만으로 픽픽 쓰러지겠는데.”
엘리스 말대로 노련한 헌터가 아니면 다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가스였다.
대충 마독 정도로 불리는데, 악취라고 생각하는 사이에 몸속으로 파고든다. 그리고 마력 중독이나 장기 부식 같은 걸 일으키는 것이다.
특히 이 정도 농도라면 아차 하는 사이 즉사하겠지.
“더 불길한 게 있어요!”
엘리스가 늪지 너머를 가리켰다.
어둑어둑한 새벽하늘 아래, 시커먼 무언가가 보였다.
그건 나무 같기도 했고 하늘에서 떨어진 커다란 번개 같기도 했다.
“설마 저 썩은 토막이 세계수는 아니겠지?”
“지금은요.”
“너네 종족의 전설 같은 이야기는 꺼내지 마. 쓸데없이 길어지니까. 요점만!”
엘리스는 눈을 감았다.
잠시 금발에서 황금빛이 뿜어진다 싶더니 앞으로 쓰러졌다.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가만히 안아 들었다.
영도자의 능력!
이렇게 해답이 없고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방향을 알려준다.
참 편리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수명이었다.
“이쪽이란 말이지.”
썩은 토막이 있는 곳과 반대쪽!
일단 엘리스를 업고 그쪽으로 신경을 집중시켰다.
무언가,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건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