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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48화 (48/156)

48화

“하, 이런 미친…….”

고요환은 어이가 없었다.

게이트 너머에서의 추방당했단 말은, 말 그대로 그 세계가 붕괴되면서 다른 곳으로 튕겨난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튕겨 나가는 곳이 어디가 될지 모른다는 거다.

재수 없으면 지옥에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거지.

자신이 아는 한, 돌아온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으니 확인할 바는 없지만. 어쨌든 좋은 일은 아니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그 시커먼 나무가 점점 밝아지면서 오염이 정화되더니, 다들 중독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랬기에 간신히 시간 맞춰서 원래의 입구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황당한 건 그 직후.

게이트가 소멸되는 순간 지진이 일어났다.

결국 터널 상당수가 무너지며 또다시 긴급히 대피해야 했고.

그리고 나타난 것은, 아카데미 뒷동산에 자라난 커다란 나무였다.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벼락이 떨어지며 쪼개진 시커먼 나무가 초록색 광휘를 뿌리며 산 정상에 나타났다.

그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빌어먹을. 빨리 파악해야 하는데…….”

게이트 사태가 벌어지고 3년 정도 지날 무렵, 다른 나라들과 달리 대한민국은 빠른 안정에 들어갔다.

역시 빨리빨리의 민족이랄까.

6년째인 지금은 막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무수히 많은 시스템을 개발해서, 서울을 비롯해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마다 조기 경보기를 설치했다. 때문에 어지간한 게이트 문제는 순식간에 정리할 수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 저곳은 왜 경보가 안 울린 겁니까?”

고요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묻자 박순신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카데미까지가 경계일세. 저 너머는 그 밖이야.”

“그게 말이 됩니까?”

“이봐. 부청장. 자네가 예산을 넉넉하게 내려줘도 우선순위가 있는 법일세. 첫째…….”

“압니다. 인구 밀집 지역, 주요 상권, 관광지…….”

“그래.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긴 하지만 저긴 빈민가야. 이전 사태 이후 주거지로써의 기능을 상실했지.”

고요환은 눈살을 찌푸렸다.

정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변이 벌어졌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자네 혹시 3차 변이를 예상하는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게이트 사태가 1차, 이종족의 등장이 2차.

그 이후로 아직은 특이점이 생기지 않았다.

하나 게이트는 아직 무조건 이렇다 정의 내리면 안 되는 존재였다. 어떤 변화와 상황이 생길지, 가진 데이터와 다른 상황을 최대한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게이트가 그랬다.

분명 측정기로 대략적인 환경과 위험도, 생물들의 분포도까지 나왔다.

하지만 미묘한 노이즈.

자신과 정부 최고의 헌터들이라면 그 정도는 무시하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뜻밖의 강력한 오염에 발목이 잡혀 꼼짝도 못했다.

“혹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제 입장에선 무척 곤란합니다. 다시 조사대를 꾸려…… 가만?”

고요환은 잠시 멈칫하더니 아카데미 운동장에서 산 정상을 쳐다봤다.

그곳에 꽃피운 나무는 너무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거대했고, 그 일대에 빛을 뿌리고 있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저기…… 사람이 삽니까?”

“버스 한 대 안 다니는 산 정상에 사람이 살겠는가? 저긴 집 한 채도 없는 동네일세. 괜히 등산 코스가 아니야.”

“그럼 혹시…….”

고요환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폰을 들었다.

“잠시 통화 좀 하겠습니다.”

“난 신경 쓰지 말게나.”

“감사합니다. 중통부 연결. 기밀라인 00. EX2.”

한참 보고받던 고요환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런 의미였었나?

* * *

“이거 생각보다 너무하네.”

-상사 이상도. 일단 공식 보고서대로만 보냈습니다.

“그럼 더하다는 거잖아.”

-제가 현장 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그 부분은 솔직히 모릅니다.

“너, 이 쌕…… 너 내 편이냐? 아오, 그만.”

-당연히 월급 주는 편입니다. 큭큭.

“됐다. 끊자.”

뚜뚜뚜뚜-

말 끝나기도 전에 먼저 끊어 버렸다.

저놈 저거 죽을 놈 괜히 구해줬나?

일단 대충 훑어본 내용부터 다시 확인했다.

엘프족 현재 새로 주민등록자 183명, 그중 전사 32명. 마법 보조 3명.

불과 일 년 넘는 사이에 전체 일족의 3분의 1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다.

게이트 안에서.

그만큼 세계수를 찾는 게 절실했다는 거겠지.

“엘리스가 이해는 되는데…… 너무 알려주지 않은 게 많잖아.”

솔직히 거기까지 생각하기에는 머리가 복잡했다.

아니, 이제 복작복작이라고 해야 하나.

어떻게 하루 만에 적응을 하는지, 애들 때문에 집안은 정신없이 초토화 상태였다.

“언니, 피자! 피자 맛있어요!”

“아니, 치킨이 제일 좋아. 후라이드, 양념, 고추장, 마늘 간장, 숯불 직화부터, 맛없는 게 없어!”

“헤, 탕수육! 짜장, 짬뽕, 탕수육.”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

“그러면 치킨 열 마리요!”

“치즈 그라탕은 뭐예요?”

“파스타. 후루룩 먹을 수 있대요.”

원인은 현지였다.

애들이 귀엽다며 통 크게 쏜다고 주문했는데, 당연하게도 결제는 내 카드였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나름 현대의 신문물을 접해서인지, 아니면 어려서인지 벌써 발랄하게 뛰어다니더라.

“얘들아! 정렬!”

“예, 대장님. 하나, 둘, 셋, 넷…… 열셋 번호 끄…….”

“열넷.”

“열다섯.”

여기에 임혜리와 임수원까지 장단을 맞추니 현기증이 날 정도다.

아무래도 날 잡아서 제대로 굴려야겠군…….

일단 편의상 다크 엘프, 라 부르기로 했는데, 겁나게 먹고 미친 듯 돌아다니니 이 집이 좁아 보일 정도였다.

어쨌든 현지의 군대놀이로 대충 정리가 되긴 했다.

얘가 은근히 카리스마가 있네.

“다른 집을 하나 더 얻어야 하나?”

그렇게 고민하는데 갑자기 한 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라이노스…… 장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고대 엘프라 불리는 할배 세 명이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당황해서 나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저들 식의 인사를 했다.

손을 가만히 이마에 대는 방식.

“예? 왜, 왜 이러십니까?”

“일족의 은인이십니다. 다시금 부탁드리는데 저희들의 영도자가…….”

“미쳤…… 크흠,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엘프도 아니고요.”

“준비를 다 해주셨잖습니까. 이제 일족의 영도자가 되어서 후계를 이어주시면…….”

하아,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난 그냥 가게 장사나 열심히 하면서 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꼬이는 건지.

진짜 옛날 성질대로 다 엎어버릴까도 했지만.

“허허. 과거의 빚은 오히려 저희가 은혜를 입었습니다. 거기에 이번 숙원까지 해결해 주셨으니 어떤 일족도 반대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저 삼백 살인가 사백 살인가 먹은 노인이 무릎까지 꿇고 이야기하는데 대놓고 욕하지는 못하겠다.

심지어 라이노스 장로 옆의 두 사람은 왼팔이 없었다.

그때의 전투에서 잃었다.

그 덕에 나도 살아 있다 생각하는 것이고…….

“제가 마음만 받겠습니다. 그리고…… 으헉!”

갑작스러운 소란에 돌아봤는데, 다크 엘프 아이들이 현지를 집어 던지고 있었다.

당황해서 잡으러 가려는데.

“와. 신난다! 한 번 더!”

다크 엘프 아이들 여섯이서 현지를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장난치고 있더라.

이런 미친, 무슨 행가레가 놀이인 줄 아나!!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상황.

“엘리스 공주님께서 하명하셨습니다. 저 아이들은 저희들의 새로운 마을에서 키울 예정입니다.”

“그럼 데려가려고 온 겁니까?”

근데 장로 셋, 전사가 대충 스물 이상…… 나머지를 전부 합치면 백여 명이 훨씬 넘어 보였다.

가만? 저 정도면 일족 거의 전부가 온 게 아닌가?

“예. 저 아이들도 살아갈 마을을 지을 겁니다. 세계수를 중심으로.”

어? 그게 되나?

* * *

“헐, 되네.”

나도 이제 생각을 포기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상황만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지.

드드드드드드-

세 명의 장로가 세계수에 이마를 대고 팔을 활짝 폈다.

라이노스 장로를 빼면 두 명의 장로가 한 팔이었지만, 순간 셋이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세계수에서 나온 빛이 길게 연결된 거다.

그 이후, 놀랍게도 지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전망대 주차장 아래로 나무뿌리들이 들썩들썩거리더니 호빗 영화에서나 볼 듯한 집들이 생겨났다.

그게 대충 스무 채.

“잠깐만요. 엘리스는 어디에 있습니까?”

훅 성장한 엘리스는 어느 순간 새벽에 사라졌다.

아무래도 그때 일족에게 연락한 거겠지.

“공주님은 과도한 마력 소모 탓에 수면에 들어가셨습니다. 한동안은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어, 얼마나요?”

“벌써 걱정하시는군요. 역시 공주님과…….”

“됐습니다. 제발 더는 오해하지 말아주시죠.”

이 영감님들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자꾸 엘리스처럼 선을 넘으려고 한다.

오래 살기에 성격 느긋한 엘프?

개소리다.

저 일족은 한 번 꽂히면 직진 수준이 아니라 과속 충돌을 목표로 한다.

하긴. 엘프라는 명명조차 그냥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붙인 거니까 다른 게 맞긴 하다.

“궁금한 게, 저렇게 지어진 집에 살 수는 있습니까?”

전기, 수도, 가스, 이런 걸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았다. 공간만 만들었다고 다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섬을 팔았습니다. 약간 무리한 조건이 따르긴 했지만 이 일대를 살 수 있을 정도는 될 겁니다.”

“여기 그린벨트 지역으로 아는데요?”

“추가 협의를 해야 하지만,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전망대에 이미 시설이 다 갖춰져 있고…… 어떻게든 끌어 쓰면 되려나.

라이노스 장로가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원하신다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 겁니까?”

이걸 고민할 필요가 있나?

“저야 라면 팔러 가야죠.”

* * *

“하…… 가게 오니까 왜 이리 편한지 모르겠네. 진짜 확 늙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집 앞에 게이트가 생기고, 얼떨떨하게 들어갔다가 적당히 깽판 치고 나왔다.

뭐, 세계수는 확실히 신기하긴 했다.

라이노스 장로가 설명하길, 평소 엘프들은 세계수를 보고 거의 매일 기원을 한단다. 그러면 대충 인간 기준으로 마력이 모인다고.

그걸로 일정 시기의 엘프들을 성장시키고 각성까지 이루면, 드디어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거다.

“하, 굳이 내가 이해할 필요는 없지.”

“실례합니다.”

한숨 돌리고 움직이려는 그때, 가게 안으로 곰이 들어왔다.

곧이어 팬더도 들어왔다.

어떻게 타이밍이 그렇게 맞았는지 정호석과 곽준열 삼촌이 동시에 들어온 것이다.

둘이 있으니 통로가 꽉 차네…….

“어라? 이 친구는?”

“어? 삼촌 아는 사이에요?”

“그게, 크흠.”

분위기를 보니 역시 내 짐작이 맞는 것 같았다.

새로 넓힌 가게 뒤편. 그 아주머니 아들이겠지.

“내가 좀 실수했나?”

“아니요. 삼촌. 일단 수습으로 쓰기로 했는데, 혹시나 싶어서 미리 불렀어요.”

“어, 그래. 애는 아주 괜찮으니까…… 서로 잘 맞춰봤으면 좋겠네.”

살짝 머쓱해하는 것을 보니 역시 준열 삼촌 작품이 맞군.

“정호석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

“그냥 호석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쉽게 이름 부를 수 있는 외형은 아니었다.

러시아 불곰을 부르면 먹이가 되든가, 산 채로 외과 수술을 해야 하지 않았나.

“일단 호칭 정리는 합니다. 가게 안에선 무조건 사장님. 밖에서는…… 좀 봐서 형이든 평대를 하고, 저는 당분간 호석 씨라 부르겠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상관없습니다. 편하게만 대해주시면 됩니다.”

사람 외모 보고 평가하는 건 진짜 아니지만, 나조차 위압감을 느낄 정도면 임혜리와 임수원, 이호영이 어떻게 생각할지 좀 걱정됐다.

저 정도면 솔직히 지리산 전사 오거들도 움찔하고, 대충 태백산맥에 사는 백곰족급의 덩치니까.

“일단 다락방 그거 점검하러 왔어. 당일도 확인 다 했는데 네가 없어서.”

“아, 그게…… 죄송합니다.”

“가게 도어록 번호 아니까 어떻게든 진행했는데 그래도 마지막에는 사장이 봐야지.”

“예. 그건 맞죠.”

“맞는 게 아니고 기본이지. 그럼 올라가서 확인해보자.”

곽준열 삼촌이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아…….”

나, 삼촌, 정호석.

계단과 다락방이 좁은 게 아닌데도 대충 190 전후의 키에 나 빼고 다 100㎏가 넘으니 숨이 턱 막혔다.

“죄송합니다. 제가 내려가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결국 곽준열 삼촌과 둘이서 점검까지 다 마쳤다.

진짜 신기한 게, 쟁반을 걸치고 옆에 버튼을 툭 치니까 거의 자동문처럼 유리가 열리더라.

“간단하고 편한데, 단점이 있어.”

“전기 보조 배터리죠?”

“오올, 우리 현성이.”

“그래도 알아는 봤어요. 수시로 체크 안 하면 아예 잠겨 버린다고 하던데요. 보통 반년에서 일 년 정도라고요.”

“오, 정확하네.”

“그래도 전기 연결이 제대로니까 괜찮을 겁니다.”

씨익 웃으면서 이야기하니 곽준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확인하고 내려오니, 정호석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가게가 더러운 건 아니었지만 며칠 비어 있었으니 약간의 먼지가 쌓인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왜 청소를…….”

“그냥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고개를 숙이는데, 하! 이상하게 마음이 훅 가더라.

그때 곽준열이 조용히 속삭였다.

“저 동생, 착실하다. 야무지고 꼼꼼해.”

“일단 봐야죠.”

곽준열이 피식 웃으면서 한마디를 더 던졌다.

“은근히 너 닮았어.”

나를?

그러면 더 곤란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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