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오늘도 열심히!”
정말 요즘만 같으면 살맛이 나겠다.
일단 가게가 손님들이 넘치는데도 잘 돌아가고 있었고, 거의 별다른 사고가 없었다.
“오빠! 나 대학 때려치우려고.”
빌어먹을.
너무 안심했나 보다.
갑자기 현지가 와서 폭탄선언을 했다.
잠시 멍해졌지만, 찬물 한 잔을 마시고, 길게 호흡한 다음 다시 물었다.
“너 1학기만 하면 졸업 아니야?”
“학점은 다 땄는데, 교수 이 씹…… 흠, 좀 일이 있었어. 자꾸 껄떡거려서.”
“누구냐!!!”
진심으로 분노가 화르륵 피어올랐다. 교수고 나발이고 학교까지 다 박살 내버릴 기세로.
보통은 현실 남매 어쩌고 하지만 그래도 내 여동생 아닌가!
“때렸다.”
“그래, 때……! 뭐?”
“자꼬 이래저래 피곤하게 해서 때렸다고.”
……현지 성격이면 그냥 싸다구 정도는 아닐 텐데.
“나 알바 시키도. 여서 일할라고.”
“우리 가게에?”
“오빠는 기억도 못 하나? 군대 튀는 바람에 내가 여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 쏘리. 그런데 현지야. 그 대학 쪽 일은 좀 풀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
“그 새끼 임플란트 다섯 개 했다더라.”
오우.
이건 진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넘었구만.
교수를 어떻게 때렸기에 그 정도란 말인가!
“치, 치료비는?”
“지도 쪽팔린지 됐다 카더라. 짤리는 것보다 그게 낫겠지. 그때 콱, 틀니로 돌려야 했는데.”
그 정도면 사람 죽어 나가는 수준 아니냐.
일단은 해결됐다니 다행이긴 한데, 문제는 이후라는 거다.
“우리 강 여사님은 뭐라고 하시니?”
“니 인생 니가 알아서?”
“현아는?”
“고3이 그거 알면 스트레스 받지.”
“나 일할 때 진짜 깐깐한 거 알지? 혜리도 수원이도 그렇게 이야기했을 텐데.”
“장난하나? 내 손이 얼마나 매운데. 그리고, 애들은 이미 내…… 러브러브다.”
중간에 뭔가 생략된 것 같지만 여동생 버프로 넘어갔다.
가만 생각해 보니 확실히 현지가 카리스마는 폭발이었다. 누굴 데려다 놔도 아주 그냥 예쁘게 휘어잡으니까.
특히 임혜리와 임수원은 현지가 오기만을 무지하게 기다렸다. 뭔가 툭 해도 탁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인데 그게 오히려 기쁘다나?
특히 임수원을 예뻐하는데, 진짜 강아지처럼 다뤘다.
“손~”
탁.
“누워.”
발라당.
“옆으로.”
데굴데굴.
흐음, 이게 바로 천생 조련사인가?
“이건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야.”
“내도 그 정도 생각은 있거든?”
만약 가게에 현지가 있으면?
……어? 나쁘지 않은데? 내가 없어도 된다는 거잖아.
“그래도 일단 졸업은 하자! 우리 강 여사님 생각하면 그건 안 맞겠니?”
“신청해 놨다. 임플란트 새끼가 해주면 되고, 안 해주면 틀니 만드는 거지.”
지도 교수가 그 정도로 권한이 있었나?
아니면 뭔가 크게 개지랄한 놈이라는 건데…… 이거 따로 알아봐야 하나?
“일하는 건 찬성. 하지만 대학 부분은 마무리한 다음이다.”
이 부분은 내가 결정하기 곤란한 게, 아버지 어머니 영향이 좀 있었다.
자신들이 제대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는 설움이랄까.
때문에 자식들은 대학 졸업장은 달았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학사모에 사진도 찍고 싶다고.
근데 난 군대로 튀었고…….
현지는 무사히 들어갔으니 당연히 오빠로서 밀어줘야 하는데, 이 무슨 사고란 말인가.
“일단 꼬이면 이야기해라.”
“먼 힘이 있다고?”
“필요하냐?”
“뭔 뜻이고.”
“그냥 다 박살 내면 되지.”
진심으로, 제대하면서 맹세한 게 있다. 우리 가족 건드리면 다…….
지울 거다!
“학업과 졸업에 집중해. 단, 오빠가 약속할게. 그때도 니가 일하고 싶다면 받아 줄게.”
“콜!”
현지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데, 어…… 왜 갑자기 습기가 느껴지지.
모른 척하자.
“자, 우린 마무리하고 쉬러 가자고.”
그렇게 직원, 아니, 솔직히 반가족이 됐다 생각하는 이들과 열심히 청소하고 정리하는데 누군가 우르르 들어왔다.
이제는 갑자기 가게에 누가 들어오면 덜컥 걱정과 짜증이 앞선다.
“또 누구냐!”
* * *
“오빠! 저희들 왔어요.”
“이건 선물.”
“아니, 라면 먹으러 온 건 아니고요. 주면 좋지만 오늘은 아니고요.”
폭식 자매들이 크레페 한 박스를 종이 호일 포장을 해서 가져왔다.
“와, 어마어마하네?”
대용량 크레페인지라 하나가 기본 2인분이었다.
“대충 30인분 정도요?”
“오오오, 누님들 사랑해요!!”
임수원이 환호를 하며 반겼다.
손님에서 좋은 단골, 잠깐이지만 경쟁자, 이제는 적극 지원자가 된 케이스인데 솔직히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이 호의로 다가오는데 거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제일 황당한 건 따로 있었다.
“크, 어머님 좋아하시겠네요. 반은 앞집에 가져다줄게요.”
임혜리가 그렇게 말하고 분식집을 나갔다.
한 달 사이 칼국숫집 공사도 다 끝났는데, 우리 브레이크 타임에도 강 여사님과 덕순 할머니,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종종 모였다.
거기 가져다준다는 거다.
특히 우리 강 여사가 조리퐁 크레페에 훅 가더라.
옛날 맛과 좋은 맛이 섞여 있어서 이상하게 계속 당긴다고.
심지어 덕순 할머니까지 맛있다고 하니 별수 있나.
해서 직접 만들어보려고 분석을 해봤다. 크레페야 밀전병으로 대체하면 된다 생각하고서.
“으으. 이건 안 돼.”
결론은 포기였다.
시판 조리퐁 과자가 아쉽게도 그 팡팡한 느낌을 내지 못했다. 크림과 초콜릿으로 커버해도 과일의 수분이 먹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재현이 어려웠던 것이다.
무엇보다 우린 뻥튀기 기계가 없었다. 바로 튀겨낸 맛이 핵심이었던 것.
때문에 폭식 자매가 가져오는 저 크레페는 환영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걱, 우걱.
“우움, 크허, 하~ 좋다.”
“아, 달달, 달달, 흐어어어.”
“사장님도 드셔보세…… 어, 없네요. 제가 새거를…….”
설마 하던 정호석까지 눈을 감고 감탄하는데 대체 저 마력을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어쨌든 선물이고 친절이니 거부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게 뭔가요?”
“그냥 놀러 온 거죠.”
“사장님도 이제 쿠폰 정산 시기잖아요.”
어? 그걸 생각 못 했네.
대회 우승하고 협회에서 쿠폰을 뿌렸다. 대부분 계산을 임혜리가 하니 그런가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엄청나게 쌓였더라.
그럼 이달 내가 가져가는 게 800만 원 수준이 아니라는 건데?
“저희 쿠폰만 200만 원이 넘어요.”
“어? 그, 그 정도예요?”
“사장님은 최소 두세 배는 될 걸요?”
“그건 확인을 해봐야…….”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저희랑 제휴하면 안 될까요?”
폭식 자매들 넷이서 번갈아 말하는데 솔직히 좀 산만했다.
결국 마지막에 큰 언니가 정리했다.
“사장님 가게에서 만 원 이상 먹고 가면 저희 가게 10% 할인 쿠폰을 주는 건데. 마찬가지로 우리 가게에서도 쿠폰을 주는 거예요.”
의외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들은 더 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핫도그 사장님도 찬성했거든요. 네 개 이상 사 가면 쿠폰 주겠다고 했어요.”
아, 그 사장님.
이건 이예지가 뒤에 이야기해 준 건데, 김요성 대표가 구역을 순순히 내주는 대신에 그 핫도그집 선계약을 잡았다고 했다.
가게 폐업할 상황에서 계약금으로 2억을 줬다고.
거기에 자기 구역의 공실 가게도 하나 내줘서 다시 시작했는데, 지금은 미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대신 확실히 준비되면 프랜차이즈 하기로 하고 권리를 일부 가져갔다고 했다.
김요성, 이 사람 다시 봐야겠네.
하긴. 미각만은 진짜였지.
“이런 제휴가 확실히 서로한테 득이 되는 겁니까?”
“되죠. 실제로 하고 있는 가게들 있는데 할인보다 매출이 더 잡힌다고 하더라고요.”
“흐음, 일단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연거푸 이런저런 사고(?) 겸 제안이 들어오니 여유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게 대충 용건은 마무리 지었는데, 이후에도 직원들과 폭식 자매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뭐야, 이놈들. 썸 타나?’
의심하던 그때, 의외의 인물이 또 등장했다.
“어? 유 사장. 쉬는 시간 아닌가?”
강한덕 선생이 무려 20리터짜리 봉투에 뭔가를 가득 채운 채 들어왔다.
어느새 최고 단골에서, 아주 지인들 다 끌고 오는 덕에 많이 친해진 사이였다. 어차피 직장이 바로 옆 아카데미니 틈틈이 들르곤 했던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 시간에?”
“크흠, 뭐 지나가다 들렀네.”
툭 하고 봉투를 올리는데, 거기서 아이스크림만 수십 개가 나왔다. 그러면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라.
폭식 자매들 중에 제일 큰 언니와 둘이 눈을 마주치자 서로 얼굴이 붉어졌다.
뭐야, 이 말도 안 되는 연결은?
“유 사장, 흠, 난 잘 먹는 사람이 좋아.”
“호호, 저도요.”
황당한 건 그러면서 둘이 나가더라.
그러고 보니 우리 가게에서 먹는 양으로는 저 두 사람이 거의 1, 2위다.
모르겠다.
이건 생각할 게 아니야. 그냥 그런가 하고 넘겨야지.
그때 정호석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저, 사장님. 잠깐 나갔다 오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일 있어?”
“집에 좀 다녀오려고요.”
저녁 장사 준비까지 거들어주기에 늦게까지 남던 정호석이었다. 보통 이 시간에 가게를 비우지 않았지만,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뭐라 하겠는가.
“그런 건 어렵게 이야기하지 마. 어차피 뒷문으로 나가면 1, 2분도 안 걸리잖아.”
“그래도 사장님 허락은 받아야 합니다.”
너무 예의가 바르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정호석의 표정이 많이 어두웠다.
“그래, 어머님도 뵐 겸 같이 가자.”
“예?”
“가게 놀러 오시라고 해도 한 번도 안 오셨잖아. 사실 내가 먼저 인사드리러 가는 게 맞는데 이게 참, 재오픈 한 달 동안 정신이 없어서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사장님.”
“에이, 따지면 바로 옆집인데. 가자.”
뒷문 열고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집이었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나가는데, 이번엔 그 쌍놈의 양아치들이 보이네.
“아! 씨바.”
“야. 튀어.”
보자마자 욕하면서 몸을 돌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유현성은 가볍게 검지를 들어 아래로 내렸다.
쿠쿵.
“끄아악!!”
“아오!”
금발의 양아치, 차태명이 바닥에 엎어졌다. 그런데 거기가 너무 더러운 곳이었다. 담배꽁초 서너 개, 거기에 침을 얼마나 벹었는지 보기도 불편할 정도.
“아우, 더러워!!!”
“사, 사장님…….”
“왜? 뭐 있어?”
“그게 저 때문에…… 그런데 헌터셨습니까?”
“자, 말 돌리지 말고. 호석아, 설마 쟤들 때문에 그랬던 거야?”
갑자기 정호석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제는 좀 죄송 그만할 때 안 됐냐?”
“그게…… 죄송합니다.”
흠, 천성이 그렇다니 이해해야지.
유현성은 다시 검지를 스윽 안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양아치 셋은 데굴데굴 굴러와 바로 앞에 엎어진 상태가 되었다.
“분명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조폭 사장 새끼. 내가 진짜 너 죽여 버린다!”
“능력은 되고?”
“씨바. 우리 아버지 삼촌들이 가만있을 것 같아!!!”
아…… 분명 전에 임혜리한테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차차차 클랜이었나?
차태명이 발악하듯 소리치는데 좀 상태가 이상했다.
눈에 피멍이 아직 다 가라앉지 않았고 턱이 살짝 돌아간 느낌.
“좀 풀어줘!! 난 합법적으로 온 거라고! 바로 확 신고한다?”
“그 합법적인 내용 좀 들어보고 싶은데?”
“씨바. 그건 옆에 돼지 새끼한테 물어보고!!”
“뭐?”
슬쩍 고개를 돌렸는데 정호석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저 친구를 때렸습니다.”
뭐?
각성자가 일반인한테 쥐어 터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