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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51화 (51/156)

51화

“가게 생기기 전에, 이쪽이 반 정도 뒷골목이였잖습니까.”

“으음, 그랬지.”

“동네 애들이 몰래 숨어서 담배 피우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좀 심해서요.”

매일 청소하는데 하루에 꽁초만 사오십 개가 나왔다고 했다. 거기에 침은 얼마나 뱉는지 양동이로 물을 서너 번이나 뿌려야 했단다.

그러다 시비가 붙었다.

“그냥 조용히 이야기했습니다. 흡연 구역 가라고.”

“그랬는데?”

“저한테 침을 뱉는 건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근데 담배꽁초를 집에 던졌습니다.”

“이 새끼들 미친놈들이네?”

“이후에도 여러 번 일을 벌여서 집을 개방적으로 트고 장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확실히 상가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면 그 길에서는 대놓고 담배 피우긴 어렵겠지.

단순히 그냥 장사를 해보려 한 게 아니고 오랜 고민을 했던 거였다.

“근데 얘들이 쩌리라 해도 각성자인데?”

“예. 그 이야기하면서 너무 깐죽…… 표현이 좀 죄송합니다.”

“아냐. 얘들 가게 와서도 개껄떡거려서 소금 샤워 시켰거든.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네.”

“소, 소금 샤워…… 요?”

“그런 게 있어. 근데 각성자 놈들이라 일반인보다는 셀 텐데?”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담배 불에 엄마가 다쳐서 홧김에 주먹을 날렸는데…… 기절할 줄 몰랐습니다.”

넌 곰도 기절시킬 수준인데 뭘 몰라.

어쨌든 들어 보니 바닥의 이놈이 개지랄 떨다 처맞았다는 소리였다.

문제는 그 이후, 신고하고 치료비와 합의금을 요구했다는 거다.

그 금액이 무려 5천만 원.

안 주면 ‘차차차’인가 뭔가 하는 클랜이 나서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단다.

아, 갑자기 빡치네.

각성자 혹은 헌터 관련해서 일반인들한테 상해를 못 하게 되어 있는데.

이게 왜 개판이 된 거지?

“얼마나 준 거냐?”

“아직 이천 정도 남았습니다.”

“그럼 이 새끼들 다 죽이고 그 클랜 없애 버리면 안 갚아도 되는 거네?”

정호석은 뜨억 하는 표정을 지었다.

“허, 사장님. 제가 사람을 때렸으니 치료비를 내는 건 당연한 거라 생각합니다.”

“아니지. 쓰레기를 청소했으니 오히려 보상금을 받아야지.”

“그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불쌍한 녀석…….

너무 올곧다 보니 사기만 엄청 당할 것 같았다.

“씨바. 맞은 건 나라고!! 치료비 받으러 오는 건 당연한 거잖아!!”

차태명이 소리를 지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근데 그게 되나.

유현성은 몸을 쭈그리고 금발 머리를 붙잡았다.

“그럼 너 죽으면?”

“니가 어떻…….”

차태명의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저렇겠지. 동시에 몸을 덜덜덜 떨면서 거의 퍼지듯 힘을 뺐다.

“흐…… 억…….”

“동네 양아치 정도라면 적당히 눈감아 준다. 하지만 사기, 협박까지 가면…… 그냥 세상에서 말소시키는 게 사회 정의 아니겠니?”

“살려주세요. 사, 살인은 범죄입니다.”

“아! 난 괜찮아. 살인 면허도 있거든.”

“그게 말이……!!”

“진짠데? 보여줘?”

피식 웃으며 말하는데 묘한 냄새가 올라왔다.

새끼. 지리다니.

근데 살인 면허는 진짜가 맞았다.

게이트가 터지고 제일 우선은 국민들의 안전.

그에 반하는 행위의 빌런들에 한해서는 존재 자체를 지워도 처벌이 없었다.

아니, 상식적으로 당연하지.

사람이 수백, 수천이 죽어 나가는데 그걸 막고 지키기 위해서라면 빌런 몇을 먼저 정리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호석아.”

“예. 사장님.”

“안에선 사장, 가게 밖에선 형.”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어떻게 해줄까?”

“저는 그래도 법대로 제가 낼 건 다 내고 떳떳하게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도 그렇게 사셨고 그렇게 살라고 배웠습니다.”

교과서보다 더한 녀석.

그래서 계속 곁에 두고 싶었다.

“그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사적 보복이 허용되지 않지.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을 생각해 봐야 된다고 생각해.”

“예?”

“영화. 영화. 나쁜 놈들은 계속 나쁜 짓을 하거든. 한 놈이 참 많은, 평범한 시민들을 괴롭혀요. 근데 그게 또 각성자나 헌터란 말이지.”

법은 있는데, 법을 넘어서면 당연히 합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 판단은 내가 한다.”

“저는 사장…… 형님만 따르겠습니다.”

“대신 넌 평생 나랑 일해야 해.”

“나쁜 일만 아니면…… 믿고 가겠습니다.”

주저주저하면서 말했지만, 저런 녀석이 진짜다.

실제로도 그랬지. 게이트 안에서, 나를 위해 대신 죽어간 이들이.

유현성은 금발 머리를 잡고 다시 올렸다.

“야, 돈 도로 가져와.”

“그, 그건…….”

“아니면 여기서 죽던가.”

“크헉…….”

“그 아버지? 삼촌? 다 불러. 뭘 병신 같은 놈들이 각성하고 헌터가 됐다고 어설프게 조폭 놀음 하냐?”

“아, 아닙니다…….”

“너네가…… 진짜 지옥을 봤어?”

후우우우우---

순간 서늘한 바람이 주위를 휘감았다.

5월의 춘풍이 서리가 된 듯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지고.

동시에 다들 굳었다.

남은 두 양아치도 오줌을 지렸고.

“귀찮으니까 짧게. 할래? 말래?”

* * *

“가, 감사합니다.”

정호석이 거의 절하기 직전 수준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 역시 어머니한테 무릎을 꿇었다.

“인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 아이고…… 너무 그게…….”

어머니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어찌할까 주저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호석이, 일 잘합니다. 오래 데리고 있고 싶습니다. 어머님, 괜찮으시겠습니까?”

“우리 아들 잘 부탁드릴게요.”

이전에 계약할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집이 좁아지고, 살림이 궁색해졌지만 어딘가 얼굴의 그늘이 가신 느낌이랄까.

“애가 의지할 데가 많이 없어서 마음고생이 좀 많았어요.”

“어머님, 편하게 이야기하셔도 됩니다.”

“그게 부모 마음이, 참 쉽지가 않네요.”

“가게 자주 놀러 오시고 편하게 보시다가…… 그냥 종종 오세요.”

뭔가 속에서 올라오는 게 있는데, 그게 이상하게 말을 막더라.

우리 강 여사도 저런 심정이었을까 하는.

“호석아.”

“예. 사…… 형님.”

“우리 분식집은 점심에 바쁘지만, 너도 알잖아? 다들 모여서 편하게, 어머님 종종 모셔.”

“예. 노, 노력…… 해보겠습니다.”

유현성은 정호석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마! 처음만 어려운 거다! 해보면 다 별거 아니야!”

* * *

“이게…… 이런 의미였나?”

재오픈하고 한 달 보름. 쿠폰 정산을 했다.

무려 500만 원 가까이 들어왔다.

뭔가 계산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냥 이예지가 맞다고 계속 우겼다. 나야 땡큐이긴 한데, 좀 말이 안 된다 싶은 부분도 있어서 말이지.

“이참에 회계나 계산 쪽으로 빠른 직원을 하나 뽑아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당분간은 의미 없을 것 같았다.

지금 행복 분식도 미쳐 돌아가고 있으니까.

원인은…….

“강 여사님. 주문하신 감자전, 오겹살 두부김치 대령입니다.”

“히야~ 역시 막걸리에는 딱이지!”

“강 여사님. 요구하신 계란말이 대령입니다.”

“이게 참, 묘하게 상큼하단 말이지.”

“강 여사님. 해장 라면…….”

“오, 속풀이에 좋지!”

“강 여사님, 마지막 꿀차.”

“우리 아들 센스 있어!”

우리 강 여사님께서 좋다고 토닥거리고, 덕순 할머니는 장하다고 머리를 끌어 안아줬다.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이야기 하세요.”

“어이쿠, 벌써 여덟 시네. 이만큼 먹었으면 됐지, 됐어.”

“우리 현성이 때문에 푸짐하게 먹었네. 이거 집 가서 애들 밥이나 해줄 수 있을…….”

“제가 챙겨 놨습니다. 들고 가세요.”

“어우, 이거 미안해서 어떻게 해?”

“그래 봐야. 우리 강 여사님이 마신 막걸리값 반의반도 안 나올 텐, 아악!”

등짝에 불이 났다.

“아들놈이 가게 물려줬더니 막걸리로 구박해?”

“에이, 강 여사님, 그래도 등짝은 좀 살살…….”

“에휴, 어릴 때 더 패서 키울 걸 그랬나. 현지도 말썽이더니.”

“저 요즘 착실합니다. 이런 아들 드물어요.”

일단 이 정도에서 끊었다.

괜히 즐거운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나름 첫 개시여서다.

칼국숫집은 리모델링 이후, 일주일에 두 번 쉬었다.

그건 덕순 할머니의 권유 때문이었다.

반죽 숙성도 그랬지만 손으로 밀고 칼국수 써는 게 보통 노동이 아니란다. 오래 장사하려면 중간중간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요일, 일요일 쉬는데.

수요일날 갈 데가 없다고 아주머니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다락방을 내어 드렸는데…… 우와우, 유리문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냥, 잔치 잔치 열렸네. 하는 그런 느낌?

덕분에 유현성과 정호석은 정신없이 안주를 만들고 가져다 대령했다. 거의 네 시부터 여덟 시까지 수발을 들었다고 보면 된다.

근데,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솔직히 이유는 모르지만 흥겹다고 해야 하나.

특히 정호석이 열심이었는데, 진짜 어머님이 들른 타이밍에 우리 강 여사가 들이닥쳤다. 그래서 얼쑤, 얼쑤 하면 손잡고 다락방으로 올라간 것이다.

어어? 어? 하면서 올라갔다가 술판에 합류했다.

현지의 친화력과 카리스마가 엄마 유전이었나…….

일단은 그렇게 좋은 시간 좋은 마무리를 했다.

다만 나갈 때 덕순 할머니가 봉투를 하나 쥐여 줬다.

“할머니, 저 괜찮은데요.”

“알어.”

“근데 이건…….”

“손주 용돈이야. 오늘 너무 잘 먹어서 그런 겨.”

“아유, 제가 얻어먹은 게…….”

“안 받으면 다음에 안 올 거야. 그러니까 넣어 둬.”

이런 상황이면 일단 받는 게 맞다.

“감사합니다.”

“그려, 고생해.”

그렇게 열댓 명이 훅 빠져나가자, 묘하게 진이 빠지는 걸 느꼈다.

“호석아, 고생했다.”

“사장님도 애 많이 쓰셨습니다. 오늘은 일단 정리할까요?”

“그래, 닫고 쉬…….”

딸랑, 딸랑.

“오빠, 보고 싶었어요.”

당황스럽게도, 엘리스가 들어서서 환하게 웃었다.

동시에 정호석은 그대로 석상이 됐다.

“여…… 여신……?”

“아냐. 요물이야, 요물.”

툭 말하고는 달려와 안기려는 엘리스의 이마를 밀었다.

“거기까지.”

“왜요? 거의 한 달 가까이 자다 일어나서 바로 오빠 보고 싶어서 달려왔는데.”

후우, 왜긴? 너무 치명적이라서 그러지.

“나 피곤해, 퇴근해서 쉬려 한다고.”

“그럼 집에 같이 가요.”

“가면 나 괴롭힐 거 아니야.”

“오! 그걸 기대했어요?”

엘리스가 방긋 웃는데, 정호석이 고개를 휙 돌렸다. 표정이,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하는 것 같다.

“하아, 호석아, 들어가라.”

“예. 사장…… 형님.”

뭔가 곰이 축 늘어져서 걷는데, 패배자의 기운이 물씬 풍겨졌다.

아오, 그런 게 아니라고.

일단 매실 꿀차를 데워서 엘리스와 테이블에 앉았다.

피로 회복에는 이만한 게 잘 없었으니까.

“그래, 무슨 일로 온 거야?”

“보고 싶어서 오는데 이유가 필요해요?”

“넌 나한테 퀘스트 NPC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공주님하고 엮이면 항상 뭔가 터졌다.

“애들이 오빠 보고 싶다고…… 아가씨도 초대하고 싶대요?”

“아, 아가씨?”

“오빠 동생, 유현지. 애들이 그렇게 찾더라고요.”

피자에 치킨에 하여간 내 카드로 긁어서 그렇게 팍팍 쏴줬으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근데 아가씨?

엘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을 펼쳤다.

“공식적으로, 엘리오스 마을의 첫 손님으로 오빠를 초대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한마디가 툭 이어졌다.

“제 여왕 취임식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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