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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52화 (52/156)

52화

“왕국…… 선포?”

이건 누구도 예상 못 한 스토리였다.

세상에나 엘프 왕국을 정식으로 공표한단다.

문제는 라이노스 장로에게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여왕으로 즉위하면 남편을 선택해야 한다. 공주 신분과 다르게 바로 후계를 이어갈, 의무가 생긴다는 것이다.

“난 안 된다 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냥, 축하하러 가줄 수만 있다.”

“그렇게만 해도 좋아요.”

엘리스가 방긋방긋 웃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정부, 사실은 헌터청이겠지만 이야기를 거의 끝냈단다. 마을, 대충 읍 정도의 수준으로 행정구역을 나누기로 했다고.

이면의 일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치외법권!

거의 행정자치구 수준으로 조정을 했다는 거다.

“그냥 와서 축하만 해주면 돼요.”

“뭐, 등산 간다 생각하면 되는 거니까.”

“예. 복잡한 건 시간에 던져 버리면 되니까요.”

저건 오래 사는 엘프만이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었다.

던져 놔둬라. 어차피 될 건 되는 거고, 안 될 거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진짜 초대를 하려고 온 거야?”

“으음, 그런 것도 있는데 저 여기서 일하고 싶어서요.”

“야!”

순간 버럭 해서 소리쳤다가 살짝 미안해졌다.

엘리스가 울상을 지었던 거다.

“아, 그게…….”

“예상했어요.”

“어?”

“제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배워보고 싶었는데, 달리 이야기할 곳이 없어서요.”

독립 엘프 왕국. 하지만 결국은 먹고 살아야 한다.

당연히 인간과의 교류는 필수고 주 수입원이 필요한 건 현실이다.

엘프 전사들이 용병 계약으로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거다.

그럼 결국, 하아, 기분 더러운 일은 생각하지 말자.

“안 돼!”

“왜요?”

“너 가면 쓰고 일할 수 있어?”

“미이라처럼 다 감고 일해도 돼요.”

하나에 꽂히면 아주 그냥 닥치고 돌진하는 스타일.

이게 참 좋으면서 곤란했다.

사실 정호석이 조심스레 물었다.

점심 장사 시간을 조금만 늘리면 안 되냐고.

왜냐고 물었더니 하루에 200명 전후로 받는데, 돌아가는 인원이 거의 50명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그 숫자가 매출의 20% 이상이면 많이 아깝다고 했다.

조금만 더 하면 그만큼 내가 많이 벌어갈 수 있다고.

문제는 그걸 버틸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는 거지.

“엘리스, 너 정말 다른 의도는 없는 거지?”

“저는 많은 사람들이 들러서 저희들과 교류해 주기를 원해요.”

“거기 식당이라도 차리려는 거야?”

무심코 툭 물었는데, 엘리스가 움찔했다.

“맞아요. 우린 벌어야 하니까. 사실 원래 계획은 세계수 아래까지 공개해서 카페 같은 걸 차리는 거였어요. 아무래도 그걸로는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확실히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지.”

카페 하나만 잘 차려도 벌어먹고 산다지만 엘프 마을 전체를 생각하면 한참 부족하다.

200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데 그거 하나로 되겠는가.

공주, 아니, 이제 여왕이라 해야 하나?

어쨌든 권리도 주어지지만 그 못지않은 의무가 생길 터.

그러니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거겠지.

“그래서, 정확히 우리 가게에서 뭘 해보겠다는 거야?”

“당연히 오빠가 있으니까…… 일도 배우고, 메뉴 개발 좀 해주세요.”

얘가 미쳤나?

아주 그냥 사람을 마구 부려먹으려 하네?

그때, 살짝 고민되는 제안을 하더라.

“저희 마을에 식당 하나 내줄게요.”

* * *

“흐음…… 2호점이라.”

전에 이예지가 넌지시 얘기를 꺼냈을 때부터 진지하게 고민하기는 했다. 지금 가게가 풀로 돌아간다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것이다.

특히 김요성.

언제였나, 한 번 들러서 바람을 넣는데 솔직히 혹했다. 번화가 라인에 가게를 내줄 테니 해볼 생각이 없냐고.

비용은 자신이 해준단다.

여기에 김병철과 이철구까지 가세했다. 확장을 해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연락하란다.

“진짜 두어 달 사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네.”

전포제 요리 대회.

칼국숫집은 세대교체를 했고, 자신은 땅을 사서 가게를 확장했다.

엘리스 때문에 원치 않게 게이트에도 들어가야 했고, 그 결과 머리 위 산 동네에 갑자기 엘프 마을이 생겼다.

그 외에도 자잘한 일들이 많았다.

정호석과 이호영의 가세로 점심 장사에서 반쯤 손을 뗄 수 있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영업하는 저녁 장사가 어느새 입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늘어, 거기에도 집중해야 했으니까.

그럼에도 행복 분식은 원활히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여기서 만족해도 충분하지.”

딱 이 수준이면 괜찮다 싶었는데, 뭔가가 자꾸 부추기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솔직히 메뉴를 더 늘리기도 해야 하고.”

말이 좋아 신식 분식집이지 라면에 김밥, 덮밥이 전부 아닌가.

특히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더워지고 있다는 것.

부산은 5월만 되도 사람들이 반팔에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다닌다. 슬슬 시원한 메뉴를 내놔야 할 계절이라는 거다.

“5월부터 9월 말까지니, 거의 5개월이네.”

일 년이 열두 달이니 절반 조금 못 되는 기간, 그렇기에 하절기 메뉴는 필수였다.

주방을 확장했으니 메뉴 두어 개 정도는 충분히 내놓을 수 있을 테고.

“시원한 메뉴, 시원한 메뉴라…….”

부산을 대표하면 역시 밀면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게가 전문점일 정도로 쉽지 않은 음식이기도 했다.

“물론 사기로 만들 수 있기는 하지.”

지금도 바로 만든다면 비슷하게도 가능했다.

그냥 지금 육수에 다시다를 왕창 때려 넣고 식혀서 따로 양념장만 올려도 되니까.

실제로 그렇게 하는 분식집도 많았다.

더 쉽게 가려면, 시판 냉면 육수 팩을 사서 해도 된다.

양념장만 제대로 만들고 지금 육수와 적당히 섞어서 시키면 그럴듯하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전문점이 아니고, 5,000원 가격대 이하는 그런 방식으로 많이 팔았다.

어차피 손님 취향대로 식초 팍팍에 겨자 훅 이면 대체로 비슷한 맛이 나니까.

물론 난 겨자는 거의 넣지 않는다.

향과 맛이 너무 강해서 다른 맛들을 다 덮어 버리니까.

“문제는 제대로 하려면 진짜 손이 많이 간다는 점. 면도 직접 뽑지 않고 사서 써도 되지만, 깊은 맛에서 확 떨어진다는 거지.”

결국 머리를 긁적이다 분식집을 나섰다.

맞은편 칼국숫집을 보니 정태수가 아주 열심히 반죽을 밀고 있었다.

“손님은 좀 빠졌네.”

하긴, 오후 4시가 넘었으니 여유가 생기겠지.

“안녕하세요.”

“오, 현성이 왔구나. 식사 안 했으면 칼국수 한 그릇 할래?”

“아, 괜찮습니다. 먹고 왔어요.”

이성남이 환하게 반겨주면서 저쪽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가게가 커졌지만 오히려 인원은 줄었다.

이제는 정태수, 이성남, 혜진 이모 이렇게 운영했는데, 그럼에도 놀랄 만큼 상당히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메뉴가 칼국수, 그리고 치수 식품에 주문 제작을 맡긴 손만두, 이 두 개뿐이라서 가능한 거겠지.

“시원한 믹스 커피?”

“예. 감사합니다.”

마침 이성남도 혜진 이모도 쉬려는 듯 냉커피를 탔다.

큰 컵에 믹스 두 봉지를 넣고 뜨거운 물을 반쯤 부은 뒤 휘휘 젓고, 적당히 섞이면 찬물에 각 얼음 세 개.

그걸 마시면서 섞으면 시원 달달한 냉커피가 된다.

흠, 뭔가가 떠오를 것도 같은데?

“자, 마셔.”

“감사합니다.”

“태수도 이제 좀 쉬고 해!”

“예. 다 끝났어요.”

정태수도 손을 씻고 앞치마에 닦은 뒤 자리에 앉았다.

“장사는 잘되시죠.”

“아이고, 말도 마라. 저거 앞에 유리 해놓고 태수가 칼질하니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라.”

“근데 태수야. 너 수염 너무 많이 긴 거 아니야?”

“형, 너무 어려 보인다고 해서 길렀어요. 좀 장인처럼 보여야 손님들이 오, 있어 보인다고 해서요.”

“하, 하긴. 잘 어울린다.”

정태수는 두어 달 사이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제법 기른 상태였다. 물론 수시로 미용실 가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말이다.

이 상태로 조리모와 투명 마스크를 쓰고 일한다는데 의외로 괜찮아 보였다.

애초의 목적이 아주 잘 맞아 들어가 나이가 참 들어 보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

대충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꼭 일 있어야 오나? 냉커피 한 잔하고 이야기도 할 겸 들른 거지. 아! 물어볼 것도 있고.”

“예. 물어보세요.”

“너네 여름 메뉴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우리야 뭐, 냉칼국수 하나죠. 딱히 다른 걸 만들기도 그렇고.”

“하긴, 칼국수 전문점이니.”

만드는 방법은 나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일 거들면서 해보기도 했으니까.

면은 평소보다 조금 더 삶아야 한다.

육수도 한 배 반 정도 진하게 우린 뒤, 미리 식혀놓는데 비린내가 나지 않게 멸치보다 양파와 파를 좀 더 넣어 단맛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여기에 각 얼음 대여섯 개 넣으면 끝.

확실히 이게 칼국숫집 방식에 맞았다.

손이 좀 더 가지만, 크게 바꿀 필요는 없었으니까.

“냉칼국수 말고는 생각해본 적 없어?”

“아직은 그 이상 하기에는 벅차죠. 지금 손님만 커버하기에도 힘든데.”

“그렇겠지. 근데 여름에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야 될 거야.”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는데. 저도 대충은 아는데 여름에는 면 삶는 게 다르다면서요?”

“당연히 냉방을 돌리니 평소보다 30초 이상? 이건 감각적인 부분이라 정확히 말하긴 곤란한데, 지금 너라면 칼국수를 조금 더 얇게 썰면 될 것 같아.”

“아!”

얘도 경험이 있긴 한데, 좀 고지식했다.

덕순 할머니야 손맛으로 그때 그때 알아서 했으니 됐던 건데, 얘는 그저 보고 배운 대로만 따라 했으니 개념적인 부분을 못 잡는 것이다.

“하다 보면 돼. 안 되면 계속 삶아서 한 가닥씩 먹어보면 되는 거고.”

“그, 그렇겠죠.”

“가만? 냉칼국수라…….”

냉커피도, 냉칼국수도 얼핏 보면 비슷하다.

좀 더 진하게 우리고 식힌 뒤, 얼음으로 마무리.

그렇다는 건 충분히 응용해 볼 가치가 있다는 건데.

냉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이야기하다가, 인사를 하고 나왔다.

“흐음, 냉라면도 괜찮을 것 같은데?”

* * *

“기본 육수 한 컵. 여기에 간장, 식초, 설탕 두 숟가락이라. 그리고 이것저것 올리면 끝.”

인터넷에 보편적으로 나와 있는 레시피였다.

만들어 보니 어느 정도의 맛이 나긴 났다.

“근데 뭔가가 약간 빠진 느낌이란 말이지.”

가만히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 봤다.

유명 라멘집에서 내놓는 냉라면은 평균 가격이 8,000원 선.

일반 분식집 냉라면은 4~5,000원 대였다.

“그 차이는…… 고명, 그리고 육수네. 거기에 라면 스프의 텁텁한 뒷맛을 빼는 게 관건이고.”

다행히 오늘은 저녁 영업을 안 하는 날이라 이것저것 해보기에는 여유로웠다.

하지만 생각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다.

베이컨을 넣으면 딱딱해졌고, 데친 숙주는 아삭하지 않았고 삶은 계란도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밀면집은 면 위에 양념장, 오이, 고기에 계란이 올라가잖아?”

그럼에도 뭔가 조화로운 느낌이었다. 분명 그들만의 노하우가 있겠지?

“아우, 머리야. 며칠 고민했는데도 왜 이렇게 해답이 안 나오지? 뭔가 풀릴 듯 안 풀리니 답답해 미치겠네.”

분명 방법은 있을 거다.

아직 그 실마리를 못 찾은 것뿐.

한참 머리를 쥐어뜯다가, 냉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달달한 믹스가 최고지.

가만, 믹스?

“그럼…… 냉라면과 밀면을 섞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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