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다들 맛있게 드셨습니까?”
유현성이 다락방에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아이고, 우리 유 사장. 다 맛있어. 다 맛있다고!”
항상 점잖던 김은희 누님의 남편이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
정말이지 놀랄 정도의 반사 신경이었다.
“난 우리가 만드는 어묵이 제일이라 생각했는데, 이게 장어 맛으로 변신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아, 가, 감사합니다.”
“앞으로 우리 마누라가 안 내준다고 하면 전화해. 내가 아주 그냥 냉동 창고를 털어서라도 내주라고 할 테니까.”
“하, 하하하.”
이마에서 땀이 삐직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김은희 누님께서 노려보고 있어서였다.
어쨌든 이후로도 음식 맛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순 없었다.
유현성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입가심하시라고 다음 주부터 판매될 신메뉴를 가져왔습니다. 시원한 냉라면이고 양도 적당하니 깔끔한 마무리로 괜찮을 것 같아서요.”
“와~ 또 먹어야 돼?”
“징하다. 징해.”
“아니지. 너무 기름진 것만 먹은 것 같아서 입이 깔깔했는데 잘됐어.”
“이 돼지 새끼야. 네가 제육 다 처먹었으니 그런 거 아냐.”
“얼래? 혼자서 감자전 두 판이나 먹은 놈이 무슨.”
“싸우자!”
“나와라!”
“술값 내기.”
“콜!”
열받은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쿠쿵!
“악!”
“컥. 끄어어억…….”
두 사람이 다락방 천장에 정수리를 박고, 나란히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황당한 광경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고.
“자자, 한두 젓가락 분량이고요. 국물은 넉넉하게 담았으니 입가심하시면 됩니다.”
유현성이 커다란 쟁반을 내밀자, 앞에서부터 안쪽으로 전달, 전달 방식으로 모두에게 그릇이 놓였다.
특히, 오송해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비슷한 음식을 여러 번 먹어봤기에 특유의 새콤함을 예상했다. 그 덕에 자연스럽게 입안에 군침이 돌았던 것이다.
“하, 이거 딱 술 깨기 좋은 음식 같습니다.”
“허허. 그래요? 양배추가 수북하게 올라간 밀면은 처음 봅니다만.”
“예? 이건 냉라멘이라고, 차가운 라멘입니다만?”
“글쎄요. 제 눈에는…… 조금 색다른 밀면처럼 보이는데.”
“오호, 그렇게 보면 또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군요. 하지만 형식이나 그림은, 전형적인 냉라멘에 가깝네요.”
“먹어본 적은 없는데, 그런가 봅니다.”
정갑용은 그렇게 넘긴 뒤 젓가락을 들었다.
그때 유현성이 말했다.
“옆에 식초는 취향껏 넣어 드시면 됩니다. 그 전에 육수 맛을 보고 추가하시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겨자는 없나?”
“향이 너무 강해서요. 정식으로 판매할 때는 가져다 놓긴 할 건데, 드셔보시면 알 겁니다. 딱히 필요가 없어요.”
유현성이 웃으며 말하자 다들 그런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손강희도 자신과 비슷하게 먹었다.
일단 밀면이 나오면 먼저 육수 맛을 본다.
그다음 양념을 풀어서 또 한 번 맛보고 이후에나 식초와 겨자를 추가하는 식이었다.
“허어업!”
“어우야, 이 시린다.”
“크아압~ 흐으.”
다락방 곳곳에서 괴상망측한 신음들이 연이어 터졌다.
속을 짜르르 울릴 만큼 시원함과 개운함이 입속을 강타했고,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폭포수 같은 청량감이 이어져서였다.
“흐어, 이거 속이 뻥 뚫리네.”
“그러게. 한 잔 더 해도 될 것 같은데?”
“난 두 잔.”
“그럼, 난 석 잔이다.”
“싸우자.”
“나와라.”
쿵! 쿵!
“끄아아악.”
“아혹!”
분명 5분 전에도 저랬던 것 같은데.
술이 사람을 망각의 동물, 아니, 짐승으로 만드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다들 냉라면 맛을 보는데 유독 한 사람만 심각한 표정이었다.
바로 오송해였다.
후루룹.
천천히 첫맛을 느끼고, 살짝 눈이 커졌다.
냉라멘의 신맛이 전혀 없어서일 터.
하지만 해물 육수의 은은함과 담백함, 거기에 서늘할 정도로 시원한 깔끔함에 적지 않게 놀란 표정이었다.
오송해는 살살 젓가락을 흔들어 양념장을 풀고 다시 맛을 봤다.
약간의 매콤함에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싶더니 갑자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살짝 화- 한 느낌이 순식간에 사라져서였다.
동시에 익숙함과 어색함도 같이 느껴지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라면 스프는 최강이지. 암, 한국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오송해는 특제 장어묵이 올라간 고명을 한입 베어 물었다.
탱글탱글.
면을 입으로 가져가서 감상하듯 오물거렸다.
쫄깃쫄깃.
그 직후 육수까지 쭈욱 빨아당겼다.
후루루룹. 후룹.
짜릿 짜릿, 흐아아아아…….
그렇게 두어 번 하니 금세 그릇이 비었다.
딱 감질날 정도의 양.
하지만 냉라면의 맛을 음미하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오송해와 시선을 마주쳤다.
바로 손짓을 하더라.
빨리 오라고.
잠시 양해를 구하면서 제일 안쪽에 들어갔는데, 오송해가 텁 손목을 붙잡아당겼다.
“이거 뭔가?”
“예? 냉라면이요.”
“아니, 양념장 말일세. 크험. 평소라면 나도 맞추기는 하겠는데, 오늘 술이 좀 돼서. 궁금해서 불렀네만.”
“하하, 분식집 라면이 뭐 특별한 비법이 있겠습니까?”
“아니야. 나도 호기심에 인터넷에 도는 레시피대로 수십 가지 냉라면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네. 근데 결이 달라.”
슬쩍 눈이 마주쳤다가 소름이 돋았다.
이글이글, 이글이글.
진짜 눈빛 안쪽에서 화염이 피어나고 있었다.
저대로만 불타면 아주 가게까지 홀라당 태울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화끈했다.
원래 요리사 오래한 사람들은 다 저런가?
결국 그 열정(?)에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양념장 섞을 때 라면 스프를 썼습니다. 딱히 비법이랄 건 없죠.”
“아! 라면…… 스프. 허, 허허허. 스프라니.”
오송해의 뒤통수에서 뭔가 영혼 같은 게 빠져나오는 것 같았다.
그만큼 허탈했다는 의미겠지.
“과정을 복기해 줄 수 있겠나?”
“그게 이야기하면 꽤 긴데요? 여기서 하기에도 적절치 않고요.”
“그럼 내 감상을 먼저 이야기해 주겠네.”
“예. 감사히 듣겠습니다.”
갑자기 오송해가 목소리를 낮췄다.
“육수는 맛이 너무 약해.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딱 적당하게 느껴지더군.”
“일부러 간을 약하게 했습니다. 전체적인 조화가 우선이라고 봤거든요.”
“정답일세. 그럼 양념장은?”
“최대한 깔끔한 맛을 내기 위해 고추장은 빼고 가루만 썼습니다. 과일 같은 건 비싸고 해서 배 음료수로 대체했고요.”
“편법이지만 괜찮은 선택이군. 생각보다 맛이 안정감이 있더라고. 특히 첫맛은 맵다 싶었는데 면과 섞이면서 금세 사라지고, 또 육수의 시원함이 그걸 확실히 지워 버리더군. 노리고 한 건가?”
오송해는 진짜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왠지 여기서 감췄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았다. 우연이라 뻥을 치려고 했는데,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것이다.
“당연히, 계획대로 만든 겁니다. 시행착오가 무척 많았다고만 이야기드리겠습니다.”
“그럼 고명은 어떻게 된 건가?”
“전체적으로 최대한 지금 운영과 무리가 안 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있는 거 가져다 쓰기로요.”
“그래서 고기 대신 장어묵덮밥에 쓰이는 어묵을 올린 거군.”
“맞습니다. 써 보니 제법 괜찮더라고요. 오히려 탄성이 더 살아난다고 해야 할까.”
“흐음, 튀긴 게 아니라 구운 거니, 냉육수와 만나도 기름이 나와 느끼할 일은 없겠군. 정말 대담한 발상일세. 이건 진심이야.”
“감사합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이거…… 호텔식으로 바꿔줄 수 있겠나?”
“예?”
뭔가 갑자기 훅 급전개되는 느낌이었다.
분식집 냉라면을 호텔식으로?
오송해는 진지하게 말했다.
“아마도…… 자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걸세.”
* * *
하, 하하.
무슨 이런 어이없는 제안이 들어오다니.
아니, 자꾸 쓸데없이 일이 커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분식 코스 요리’ 라는 말에 살짝 설렜다.
솔직히 못할 것도 없다 싶었지.
전채는 속을 포근히 달래는 어묵 국물 스프로 시작하고.
메인으로 김밥 지옥 스폐셜인 돈까스+쫄면+김밥 세트가 한 접시에 나간다.
마지막 후식으로 메론바를 잘라서 고춧가루만 뿌리면, 나름 그럴듯한 코스가 되긴 할 거다.
어중간하면 믹스 냉커피로 마무리하면 되겠지.
대충 8~9,000원 정도 받으면 되려나?
또, 메인이 정 애매하다 싶으면 통순대를 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스테이크처럼 우아하게 직접 순대를 칼질해서 먹는 것도 나름 그림이 될 테니까.
당연하게도 소스는 떡볶이 국물 혹은 쌈장이었다.
여기에 당면 순대, 카레 순대, 땡초 순대식으로 내가서 찍어 먹게 하면 이 역시도 풀코스 아니겠는가.
솔직히 이건 피식 웃자고 하는, 쓰잘머리 없는 잡생각에 가까웠다.
말 그대로 구색 갖춰서 팔면 재밌다 싶을 정도인 수준.
그랬는데, 오송해가 뜬금없이 냉라면을 마지막 후식 전의 음식으로 내고 싶다고 했다.
-상상 파괴 미식 전쟁.
그 타이틀로 대회가 아닌 요리사들 사이의 교류회가 있다면서 말이다.
1년에 한 번씩, 장난삼아 노는 행사라고 하더라.
문제는 거기 오는 인간들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
요식업계에서 그 대단하다는 김요성조차 명함을 내밀기 힘들 정도라고 했으니.
“허허, 교류회는 여름휴가 시즌 전후가 될 걸세. 포인트는 반전이야!”
“반전이라면…….”
“맵게 보이는데 안 맵고, 시원하게 보이는데 뜨겁고, 그런 식이라고 보면 되네. 중요한 건 상상력의 한계를 두지 말라는 거지.”
“흐음, 제 냉라면이 거기에 적합하다고 보시는 겁니까?”
“맛이 재밌으니까.”
뭔가 알쏭달쏭했지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솔직히 행복 분식의 음식들은 어딘가 조금씩 틀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오 선생님께서 직접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 나이에 관절 나갈 일 있나? 보통은 제자들이 만든다네. 우린 어드바이스 이상은 하질 않아.”
자신뿐 아니라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요리를 낸다고 했다. 절반 이상이 은퇴자이거나, 현역이라 하더라고 격한 일은 하지 않는단다.
대부분 나이가 있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거다.
다만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자극받길 원할 뿐.
“에휴…… 모르겠다. 급한 건 아니라고 했으니 일단 젖혀두자.”
진짜 코앞에 닥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김은희 누님이 일러준 그 이야기 때문이었다.
오늘 회식의 목적은, 일단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어서였다.
이건 박문수 아저씨한테 배운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염치가 있어야 하고, 짐승이 아니기에 은혜를 알아야 한단다.
고마운 사람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라나.
솔직히 정갑용 사장님은 가게에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야채와 채소를 팔았다. 그것도 시중가보다 저렴한 도매가로 말이다.
단점은 내가 직접 가야 하는 거지만, 신선한 걸 고를 수 있으니 오히려 좋았다.
강성곤 대표는 좀 달랐다.
어머님을 구해줬다는 게, 바이크 박살 따위를 신경 쓰지 않게 할 정도로 고마워했다.
결국 같은 걸 주문해도 자신의 안목으로 고를 수 있는 최상의 건어물을 보내줬다.
냉동 꽃게에 건새우, 냉동 홍합에 기타 등등.
특히 어묵 반죽에 쓰기 위해 근처에서 샀던 새우 가루나 동태살 같은 걸 더 좋은 가격에 준비해 줬다.
그 결과, 음식의 퀄리티가 더욱 올라갔다.
그렇게 다들 행복 분식의 메인이 되는 부분에서 절대적인 거래처가 됐기에, 한 번 정도는 대접하고 싶었었다.
그건 생신 어묵 역시 마찬가지.
기업 비밀이란 이유로 어육 믹스 비율은 못 알려준다고 했다.
호의로 받았던 것이, 코가 꿰이는 함정이란 걸 뒤늦게 눈치챘다.
그걸 베이스로 또 이것저것을 섞었으니 계속 그것만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다른 곳과 거래를 하려고 해도 배합비를 모르면 처음부터 다시 삽질을 해야겠지…….
정작 중요한 건 그래도 가격은 생신 어묵보다 높다는 점이었다.
그 약점이 황당하게도 강점으로 작용했다.
“소문이 났어. 너네 가게 장어묵덮밥 재료가 우리 회사에서 나간다고 알려지자마자 아유~ 주문이 얼마나 들어오는지!”
김은희 누님께서 날 보자마자 와락 끌어안은 게 그래서였다. 정식으로 대기업 식품 회사에서 같은 비율로 시제품을 만들어 보겠다고 연락까지 왔다는 것이다.
“괜찮겠어?”
“어차피 소스도 쉽지 않을 거고요. 생강채나 다른 고명 비율까지 생각하면 똑같이는 못 만들 겁니다. 이참에 누님도 돈 많이 버셔야죠.”
“어유, 우리 동생 예쁘기도 하지.”
“대신 납품가 좀 낮춰주세요.”
“내 권한으로 팍팍 해준다.”
“콜!”
김은희 누님은 반쯤 취한 상태에서 슬쩍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남편분도 흐뭇하게 웃더라.
가게 옆 골목 그늘에서 갑자기 김은희 누님께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근데 너, 조심해야 해.”
“예? 무슨 일…… 있어요?”
“얼마 전에 프랜차이즈 한다는 사람이 찾아왔더라고. 그러면서 조건을 걸더라?”
“흐음.”
“너네 가게하고 똑같은 비율 제품을 납품해달래.”
“그럴 수도 있겠죠.”
김은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해달라더라고. 비용은 충분히 지불하겠대.”
엥? 이건 무슨 개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