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조합 그대로 어묵 반죽을 납품해달라?”
“사실, 네가 대상 받고 나서 그런 주문이 많이 들어와. 대부분은 우리는 요리에 대해 모른다고 하는 걸로 마무리 됐는데, 여긴 좀 집요하더라고.”
“어딘…… 데요?”
“명함에는 SF 조인트 그룹이라는데. 알아?”
“예.”
SF라고 거창하게 말하지만, 말 그대로 풀면 슈퍼 푸드다.
브랜드명은 왕푸짐.
이름 그대로 맛은 조금 부족하지만 양으로 승부하는 회사였다.
옆집에서 짜장면 5,000원에 팔면 여긴 곱배기를 5,000원에 파는 걸 경쟁력으로 삼았다. 혼밥혼술의 경우 크게 문제는 없었지만 여럿이서 함께했을 때는 나름 우선 순위에 올라가는 가게가 된 것이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폭발이었다.
여길 어떻게 알게 됐냐면, 현아 때문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번화가를 나가게 되면, 어쩌다 한 번씩 들르게 된다고 했다.
한창 나이라 맛보다는 양이 우선이라나.
다행히 그럭저럭 먹을 만한 수준이지만 아주 맛있지는 않다고 했다. 그냥 적당히 수다 떨면서 집어먹기에는 나쁘지 않은 정도라고.
“너한테서 비법을 알아내면 자기들 회사에서 열 배 이상 주문해서 팔아주겠데. 그게 가능할 리도 없는데.”
“와! 거기가 그 정도였어요?”
“넌 잘 아는가 봐?”
“예. 부산에만 여덟 군데가 있고요. 특이하게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다 직영점이라고 들었거든요.”
“그게 차이가 있나?”
“대충 직영은 가족 경영이고, 프랜차이즈는 남 등처먹는 경영이라고.”
“푸하!”
역시 누님은 옛날 사람이 맞았다. 요즘 애들은 바로 노잼이라고 할 텐데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됐어요?”
“어, 너네 납품가에서 20% 올렸지.”
“헐, 그건 사기.”
“야! 원래 그게 정가거든? 오빠 때문에 많이 깎아준 거야.”
당연하게도 오빠는 정갑용 사장님일 터.
“아이고. 이래서 제가 누님을 좋아합니다. 아시잖아요. 하하하.”
“너, 얼굴 근육이 안 움직인다?”
“여기, 어두워서 그래요. 나름 입꼬리가 확확 올라가고 있습니다.”
“일단 믿어는 줄게.”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났어요?”
“비싸다고 기겁을 하면서 물러나더라고.”
어쩌면 그게 당연할지도 몰랐다.
따지면 직영점이라고 할지라도 일종의 프랜차이즈를 표방하는 회사였다.
당연히 단가 싸움은 필수.
계산 뽑아봤을 테니 그 가격으로는 비슷하게 만들기는 어렵다는 걸 느꼈겠지.
“결국 안 하기로 한 거군요.”
“그렇기는 한데, 이 바닥 소문이 좀 그렇더라고. 자갈치 라인의 소규모 회사 쪽으로 노선을 틀었다고만 들었어.”
“그럼 어떻게든 하겠다는 의지인 건데, 누님은 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괜찮겠어?”
“훗, 겉핥기로 맛은 흉내 낼 수 있지만 가품은 가품이죠.”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보기에는 단순하지만 장어묵덮밥은 진짜, 우리 가게 음식 중에 가장 과정이 복잡했다.
조리 방식이야 보고 따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들어간 노하우는 최소 냉라면의 두 배 이상이었으니까.
“자자, 누님. 남편님께서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바깥양반이 그럴 사람은 아니거든?”
“근데 계속 이쪽 보고 있더라고요.”
“어머나. 그랬어?”
갑자기 목소리에 애교가 깃들자 종잡기 힘들었다.
분명 싫다고 말하면서 좋아하는 표정을 지으니 혼란스럽다고나 할까.
일단 시선을 돌리자 진짜 가게 앞에 스무 명 넘게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결국 내가 마지막 인사하기 전까지는 가지 않을 분위기라는 거다.
곧 정호석이 미리 이야기해둔 박스 하나를 가져왔다.
2리터짜리 PET 병에 담아둔 매실꿀차였다. 그걸 손님들 손에 하나하나 직접 쥐여 주었다.
뒤늦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유 사장. 오늘 진짜 잘 먹었어.”
“그래. 호강하고 가네. 우리 사위 놈 생각하면 자네는 진짜 진국이야!”
“그러게, 우리 며느리가 참, 유 사장 반만 따라가면.”
“이 새끼가 싸우자는 거냐?”
“사돈이고 나발이고 같이 죽자!”
퍽!!
“덤벼…… 악!!”
“끄억!!”
중간에 끼어든 사람은 놀랍게도 정갑용 사장이었다. 매실꿀차가 든 PET 병으로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이것들이 사장이 가만히 있으니 가마니로 보이나. 먹을 만큼 먹은 놈들이 이 무슨 추태야!”
“아니. 그게요. 저놈이……!”
“진짜 사위 놈이 잘하기는 하는데, 딸 도둑 좋아 하는 장인이 어디…….”
“윽!”
“억!”
매실꿀차 벼잉 또다시 통수를 두들겼다.
“하여간 주둥이만 살았지. 그런 놈들이 맨날 둘이서 술 빨러 다녀! 엉? 나도 입이 있는데 니들끼리만!”
어? 아무래도 진짜 원인은 뒷부분 같은데.
“자! 슬슬 정리하고 가자.”
정갑용이 그렇게 말하자 창용상회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그건 생신 어묵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건 형님네 냉동 식구들뿐이었다. 듣기로 근처에서 한 잔 더 하고 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사실, 아직 저녁 8시도 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오후 3시 반부터 무려 4시간 넘게 마셨는데 괜찮으려나.
“그럼 수고하게.”
정갑용 사장이 지나가고.
“아따. 오늘 잘 먹었네.”
강성곤 대표도 어깨를 두드렸다.
“동생. 담에 우리 회식 때 놀러와.”
김은희 누님이 살짝 안아주고 떠났다.
“어? 어어. 저기…….”
“형님. 저희 어머님 말씀이 이럴 땐 가만히 있는 게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그렇지. 이건…….”
“대신 다른 걸로 보답하는 게 동생 일이라고 합니다.”
“아니…….”
그 잠깐의 머뭇거림 사이 사람들이 우수수 사라졌다.
손에 남은 건 세 개의 봉투뿐.
대접하려고 불렀는데 다들 은근슬쩍 찔러주고 잽싸게 도망가 버린 것이다.
“하하, 이게 참.”
괜히 머리가 가려워 긁적거렸다.
그거 이상으로 간질간질한 건 이상하게도 심장 쪽이었다.
더 황당한 건 또 있었다.
가게 안에 들어왔더니 임수원이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넌 또 왜?”
“형. 저 이거.”
봉투가 또 하나 있었다.
근데 그걸 쥔 임수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뭔데?”
“그 오 선생님이란 분이 주고 가셨어요.”
어우, 진짜 고수는 그분이었나 보다.
슬쩍 받아서 확인해봤다.
아, 나도 굳어 버릴 것 같았다.
단위가, 확실히 다르더라.
* * *
“형, 혀- 어엉! 드, 들었어요?”
금치수가 후다닥 들어오면서 숨 넘어갈 듯이 말했다.
그럼에도 다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오픈 주방 바에 양손을 올리고 다시 소리쳤다.
“형!!”
“귀 안 먹었다.”
“아니, 저 밑에 왕왕 떡볶이, 후우, 거기 있잖아요!”
“어. 알기는 알지.”
나름 요지라 할 수 있는 부전도서관 맞은편의 퓨전 분식 가게였다.
좁은 1층보다 같은 가격에 넓은 2층을 선호하는 방식.
박리다매 스타일로 맛보다는 양을 추구했고 때문에 테이블도 많았다.
특히 유명한 건 산더미 같은 튀김이었다.
오픈 주방 앞에 튀김을 종류별로 쌓아 올리는 걸로 시선을 확 잡아끌었고, 주문 즉시 한 번 더 튀겨 내주는 식이었다.
당연하게도 맛은 약간 떨어진다.
그 튀김이 언제 튀겨놨던 것인지 알 수 없으니까.
여기에 업소용 매운 소스+고추장, 물엿의 조합으로 보다 자극적인 맛의 떡볶이를 내놨다. 튀김의 느끼함을 그걸로 잡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역시나 그럭저럭 먹을 만한 맛…… 이라고나 할까.
그게 왕푸짐 브랜드의 스타일이었다.
“형, 거기 지금 줄 서 있어요.”
“그런데?”
“메뉴가 장어묵덮밥하고 비슷하대요. 말 그대로 거의 카피라는데…….”
금치수가 다급히 말했음에도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사실 김은희 누님의 경고 이후에 그쪽을 한 번 조사했으니까.
정말이지 충격과 공포였다.
어이없게도 왕푸짐 브랜드는 몇 번이나 카피 제품을 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환장할 방식으로.
한동안 텐동이 유행할 때, 가게의 튀김으로 카피를 만들었다.
대충 비슷한 간장 소스 같은 걸 구해 와서 밥 위에 뿌리고, 삶은 계란 튀김을 반 잘라서 올린다.
그다음 손님 취향대로 튀김을 토핑하고 따로 매운 소스를 따로 담아주는 방식이었다.
확실히 겉모습은 텐동하고 비슷했다.
거기에 가격은 절반.
‘하지만 퀄리티는 텐동의 반의반도 안 됐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왔다.
소스야 업소용에 약간의 가미를 더해 그럴듯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텐동의 메인은 튀김이었다.
분식집 스타일의 두꺼운 튀김으로 그걸 흉내 냈으니 그 인기가 얼마나 가겠는가.
결국 저렴한 튀김+간장밥 수준으로 전략.
고객들의 외면을 받고 욕도 박히는 바람에 석 달도 못 버티고 접고 말았다.
그다음 유행이 아마 ‘치밥’이었을 거다.
말 그대로 밥에 치킨을 올려 먹는 음식.
이 미친놈들은 정말 신박한 방식으로 그걸 흉내 냈다.
분식집용 저가 닭꼬치를 구워 그대로 올린 다음 기본 소스를 뿌려, ‘왕푸짐 치밥’이란 메뉴를 내놨던 것!
당시 1,500원짜리 닭꼬치 세 개를 올려 5,900원이란 금액을 받았었다.
손님 하나가 왜 가격이 이렇게 비싸냐 했더니, 직영점 사장 하나가 희대의 망언을 투척했다.
공기밥 500원에 업소용 후리카케가 900원이나 뿌려진다고.
결국 분노한 본사 대표가 그 사장을 불러 싸대기를 후려쳤다. 직원이 그 사진을 찍어 본사 홈페이지에 올리고 대표가 사과하는 장면을 이어붙인 것이다.
사건이 여기서 끝났으면 다행일 텐데, 아니었다.
사진 조작이라고 고객들이 항의하기 시작한 것.
거기에 이런 얄팍한 수법으로 우롱하지 말라 따지고 들기까지 하면서 논란이 된 것이다.
결국 대표는 본사 회의실 CCTV를 우투브에 올려 버렸다.
싸대기 한 방인 줄 알았는데 12연타 콤보였다.
진짜 얼마나 열받았는지 재떨이 집어 드는 걸 직원들이 말리는 장면까지 고스란히 나왔다.
다소 폭력적일 수 있는 영상.
하지만 논란은 금세 사그라졌다.
오냐오냐 키운 개차반 막내아들이란다.
그 사건 직전 음주운전으로 차를 벽을 처박았고, 술버릇 때문에 이혼까지 당했다나 뭐라나.
그렇게 대표 동정론이 퍼지면서 왕푸짐 브랜드는 적당히 욕먹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유현성이 이 황당한 사건을 몰랐던 건, 당연히 군대에 있어서였다.
또, 크지 않은 브랜드라 며칠 만에 논란이 꺼지기도 했고.
어쨌든 그렇게 알아본 결과.
‘희한하게 속이 개운해지네.’
오히려 어이없게도 카피로 논란이 더 커졌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더라.
“치수야. 다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흥분할 필요 없어.”
“형은 화 안 나요?”
“굳이 화를 낼 이유가 있나?”
“아니, 형네 음식을 그대로 베껴서 냈다는데요.”
“거긴, 그래도 될 것 같아. 어쩌면 더 열심히 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들거든.”
진심을 담은 내 말에, 금치수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마, 말도 안 돼. 형은 성인군자가 아니잖아요. 혹시 약 잘못 먹었어요? 아니면, 먹으면 안 되는 약이라도……?”
“왜? 내가 먹는 약, 먹여줘? 확 회까닥 돌아 버리게?”
“사양합니다. 진심…… 흐갸갸갹!!”
단순히 양파를 썰기 위해 중식도를 들었을 뿐인데, 금치수는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쯔, 오해할 필요 없는데.
솔직히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다.
왕푸짐 브랜드가 이번만은 제발 성공하길 빌었다.
기왕이면 오래오래 말이다.
* * *
“형, 저 왔어요.”
막 점심 영업이 끝나고 믹스 커피 한잔하는 타이밍인데, 희한하게도 어제 왔던 금치수가 또 찾아왔다.
“짠, 이게 뭐게요.”
“뭔데? 어…… 왕푸짐?”
커다란 비닐에 분명 왕푸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고급 분식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SF푸드’라는 문구까지 선명하게 보이더라.
“너…… 설마.”
“예. 세 그릇 포장해 왔어요.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적을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잖아요?”
진짜 마음은 기특하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저쪽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미사일이 아니라, 시한폭탄을 등에 매달은 형국이었다.
그것도 투척용이 아니라 자폭용으로.
“오냐. 사 온 정성이 있으니 맛이라도 보자.”
정말 별생각 없이 말했는데.
그게 재난의 시작이었다.
일단 포장을 벗기고 뚜껑을 열었다.
대충 비주얼은 그럴듯했다.
다만 우리처럼 통 어묵이 아닌, 분식집 납품용 핫바가 두 개 올라가 있었다.
여기서 살짝 빡쳤는데, 슬쩍 들쳐내자마자 욕이 하고 싶어지더라.
하아. 초밥집용 초생강이 여기서 왜 튀어나오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