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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62화 (62/156)

62화

“아주 지뢰밭이네.”

아마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맞겠지.

장어묵을 대신한 업소용 핫바.

그래, 여기까지는 백번 양보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근데 초생강이라니.

우린 생강채와 파, 후리카케를 토핑으로 썼고 그 아래 계란지단을 채 썰어 깔았다. 다소 인력 소모가 들지만 맛을 위해 이런저런 부분에서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하지만 이건, 경악스러울 정도의 카피였다.

일단 삶은 계란 튀김 절반, 여기에 초밥집에서나 쓰는 채 썬 초생강이 뭉텅이로 담겨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물기를 뺐다는 것 정도?

사실 보통 사람들은 먹어봐야 안다. 바로썬 생강채와 업소용 초생강이 무슨 차이가 있냐 하겠는데, 애초에 쓰임 자체가 다른 것이다.

우리가 쓰는 생강채는 특유의 향이 장어의 기름짐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렸다.

궁합에 딱 들어맞는 조합이라고나 할까.

단순히 느끼함을 잡는 게 전부가 아니라 장어의 맛을 끌어내는 역할도 했다.

사람들이 괜히 이걸 찾는 게 아닌 거다.

하지만 초생강은 달랐다.

새콤과 달큼함이 먼저였고 다음에 약간 매콤하고 알싸한 자극을 준다. 이후 씹어야 비로써 약간의 생강향이 올라오는 거다.

즉, 초생강은 회나 초밥을 먹는 중간중간에 이전의 맛을 지우고 식욕을 돋우는 게 목적이었다.

장어맛 + 생강채 = 맛의 상승.

핫바 + 초생강 = 맛의 초기화.

정확히 이게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배우고 경험해본 결과, 대략적으로 이런 공식이 나온다. 생강은 식욕을 돋우는 것보다 잡스러운 맛을 지워 버리는 용도였으니까.

“으으, 정말 충격적인 조합이다. 이런 미친 생각을 할 수 있는 놈이 음식 회사에 있다니.”

어떤 의미로는 정말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능력을 성장시킨다면 음식으로 암살도 가능할 것 같았다.

먹여서 죽이는 게 아니라 성질 뻗쳐서 죽이는 방식으로.

“그, 그래도 맛은 봐야겠지.”

차마 손이 가질 않았지만 설마 군대 짬밥보다 더하랴.

아! 씨바, 더했다.

진짜 이건 군대 PX에서도 안 팔 수준의 핫바였다.

거의 분홍 소시지의 상위 호환 정도?

정말 용케도 이런 밀가루 범벅 핫바를 찾아낸 게 놀라울 정도였다.

식감이 탱글탱글이 아니라 푸석푸석 푸서석이었으니까.

다만 소스 맛은 그럭저럭 합격점을 줄 만했다.

처음 들어오는 간장 향은 업소용 냄새가 나지 않았고 짭쪼롬함이 적당했으며 뒤늦게 찾아오는 단맛이…….

어? 이게 왜 이렇게 오래가지.

흐어, 달다. 달어.

너무 달어.

미치도록 달다고.

황당하게도 단맛이 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물엿 한 바가지를 입에 넣은 듯한 끈적끈적한 달달함이, 숨이 막힐 것 같은 갑갑함을 전달했다.

결국 단번에 초생강 절반을 해치우고 나서야 겨우 숨통이 트였다.

“헉헉, 강하다. 이놈, 정말 무식하게 강해.”

잠시 노려보다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독약을 먹는 심정으로 조금씩 맛을 봤는데, 지독히도 끔찍했다.

우리 가게 장어묵덮밥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혹시나 남아 있을 느끼함을 잡기 위해 맑고 매콤한 소스를 더해 남은 토핑과 밥도 비벼 먹게 만든 것이다.

근데 이 새끼들은 그냥 떡볶이 국물을 부었네?

그 결과, 마치 불닭 소스에 물을 탄 것 같은 맛이 느껴졌다.

여기에 밥을 비벼 먹으란 뜻이겠지.

정말 치밀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진심으로 혀를 아프게 해서 느끼함을 못 느끼게 하려는 작전 같았다.

“후우~ 정말 어떤 의미로는 놀라운 요리다! 너희들은…… 어때?”

반응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는데, 임수원이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고 있었다.

“오빠. 한 입 먹어 봤는데,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저도 맛만 보고 바로 숟가락 놨어요…….”

“전 냄새만.”

임혜리와 금치수는 짜증 난 상태였고, 먹지도 않았다는 임수원은 종이를 움켜쥐었다 폈을 때 같은 표정이었다.

한마디로 오만상이라는 거지.

잠깐이지만 녀석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럼 다 먹은 건 나밖에 없네.”

말이 거의 끝나기도 전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형…… 음식 폐기물, 그게 입에 들어가요?”

* * *

챙그랑!

어, 갑자기 왜 숟가락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거지?

뭔가 싶어 가게를 돌아보니, 진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거의 앞쪽 홀 손님 대부분 음식 먹다가 그대로 굳어 버린 것이다.

원흉은…….

“엘리스?”

“헤헤, 네, 오빠. 저 왔어요.”

아주 작정한 듯 새 하얀 원피스 차림이었는데, 가게에 들어오자 겉을 감싼 로브를 벗어 버린 것 같았다. 대충 여신 강림 모드라, 손님들…… 특히 남자 손님들이 그대로 석화 마법에 걸린 것이다.

그 뒤로 네 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의 미모 역시도 상당했다.

남자 새끼 한 놈도 겁나 잘생겼으니 가게 분위기가 이상해질 수밖에.

“뭐…… 뭐냐?”

엘리스는 대답 대신 유현성의 양 볼을 손으로 잡았다.

동시에 입술을 내밀며 바짝 달라붙었다.

“야야. 스탑. 그만.”

가까스로 뿌리친 유현성은 엘리스를 노려봤다.

“아, 아깝다. 그냥 실수인 척해도 좋았는데.”

“야! 영업 중이거든.”

“더 좋죠. 이쪽 방식으로 도장 찍는다고 해야 하나. 헤헤, 오빠는 내 거, 딱 그런 거였는데.”

아주 눈매가 반달로 휘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심장도 휘어 버릴 것 같은 치명적인 미소였다.

어쨌든 엘리스의 등장으로 앞쪽 홀은 시간이 반쯤 굳어 버린 분위기였다.

이호영은 김밥 다 말고 설거지 돕다가 그대로 물 낭비를 시작했고, 정호석은 어묵 대신 손을 구울 뻔했으니까.

그나마 임수원과 임혜리만 몇 번 봤다고 멀쩡했다.

“애들 데려왔어요.”

“넷…… 이나?”

“사실 제가 직접 와서 배우고 싶었는데, 장로들이 극구 반대를 하더라고요.”

어, 나도 반대야. 넌 재앙덩어리니까.

“결국 지원자를 모집했어요. 먼저 오빠네 가게에서 일 시키기로 했거든요.”

“그게 얘들 넷?”

슬쩍 돌아봤는데, 다행히 미성년자로 보이는 이들은 없었다. 좀 어려 보이긴 해도 성인이라 우기면 될 정도의 수준이랄까.

“인사드려. 조온달.”

먼저 남자 엘프가 앞서 나와 오른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원래의 이름은 조르시 오른이라 합니다. 민증을 새로 발급받으면서 전포 조씨의 시조가 됐습니다. 조온달이라 부르시면 됩니다.”

“전포…… 조씨?”

“예. 엘리오스 마을 소속인데, 족보인지 뭔지 때문에 개명을 하면서 전포동을 본관으로 정했습니다.”

“아! 그, 그렇군.”

전포 조씨라니. 이거 행정이 너무 개판 아닌가.

근데 오른이면…… 라이노스 장로 할배 성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나 싶어 쳐다보니 조온달의 얼굴은 의외로 익숙했다. 딱 처음 라이노스 장로를 봤을 때의 그런 딱딱한 분위기랄까.

“난 아직 당신을 인정하지 않아!”

어째 복사 붙여넣기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역시 상황은 비슷하게 흘러가겠지?

엘리스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거면 꺼져.”

“여왕님, 어찌하여 인간에게……!”

“나를 대하듯이 하도록. 못하겠으면 돌아가.”

“그건 불가합니다. 얼마 살지도 못하는 인간에게 충성을 맹세하라니요.”

“넌 우리 오빠가 인간으로 보이니?”

조온달이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게…… 인간인데요?”

“그래서 안목을 기르라고 데려온 거야. 모르면 배워야지. 어떻게 오빠가 평범한 인간이야?”

졸지에 인간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

“조온달. 명령이다. 여기서 적응 못 하면 마을로 돌아올 생각 말도록.”

“여왕님.”

“라이노스 장로가 지팡이를 새로 장만 하겠다고 세계수의 허락을 받고 가지 하나를 받아 갔어. 거기에 비명을 입힐 생각은 아니겠지?”

한마디로 몽둥이로 겁나 두들겨 패겠다는 말이었다.

부들부들 떨던 조온달은 이내 고개를 숙였다.

“며,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리고 너희들은 이미 익숙하지?”

엘리스가 뒤를 돌아보자 여자 엘프 셋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하트까진 아니지만 호감을 뿜뿜 뿜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어라? 근데 눈에 익은데?

“미엘, 리엘, 로엘이에요. 오빠도 아시잖아요.”

“허…… 애들이 언제 이렇게 컸어?”

“세계수가 자리 잡으면서 그동안 성장이 억눌려 있던 애들을 해방시켰어요.”

게이트 나와서 거실에서 단체로 뒹굴거리던 꼬마 애들이 불과 몇 달 사이에 이렇게 크다니.

솔직히 진심으로 놀랐다.

어쨌든 뜯어보듯이 확인하니 진짜 우리 집에서 현지의 명령을 듣던 그 애들이 맞았다.

“열심히 할게요. 많이 가르쳐 주세요.”

까칠한 남동생은 제외하고, 졸지에 여동생만 줄줄이 생긴 느낌이었다.

“엘리스, 잠깐만 따로 이야기해.”

조온달인지 뭔지 하는 놈이 막아섰지만 무시하고 지나친 뒤 엘리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러다 입구에서 강한덕과 폭식 자매의 큰언니와 마주쳤다.

“오! 우리 사장님도 연애하는가?”

“어머나~ 여친분 정말 예쁘시네요.”

“아, 여친 아니고요.”

“예. 부인이에요.”

“엘리스!”

“틀린 말도 아니잖아.”

“어, 틀린 말!”

무슨 개그 코너도 아니고, 엘리스의 무신경한 말은 사람을 당황하게 했다. 나야 익숙했지만 강한덕과 여친은 말을 잇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두 사람을 지나쳐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사실 간간히 라이노스 장로가 연락을 하긴 했다. 마을을 새로 짓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면서, 특히나 지금 시대에 맞게 이것저것 구축한다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더라.

황당하게도, 엘프들 역시 도시가스와 보일러의 편리함에 길들여졌다나.

그 때문에 행사는 차일피일 미뤄졌다.

마을 행사와 가짜 즉위식도 어쩌다 보니 여름 정도에나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상업 구역도 공사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중간에 2호점이 들어설 가게를 확인하기도 했었고.

문제는 판매 메뉴 상당수가 도시락이라는 거였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알바 두 명을 쓰기로 했는데, 그 부분은 엘프 쪽에서 해결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줄줄이 데리고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리 이야기를 좀 하지 그랬어. 한 번에 네 명이나 받기에는 무리라고.”

“월급 같은 건 부족 차원에서의 투자라 걱정 안 해도 돼요.”

“그걸 말하는 게…… 일부는 맞네.”

아무리 그래도 공짜로 일 시킬 수는 없었다.

법적인 문제도 있고 인건비라는 게 딱 월급으로만 나가는 게 아니었으니까.

“주 2회, 치킨 혹은 피자. 쟤들 고용 조건이 그거예요.”

“헐, 진짜 그게 전부라고?”

“애들 꿈이 치킨, 피자 가게 차리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일단 음식 장사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려고 지원했대요.”

엘프 마을에서 치킨과 피자라 이거 대체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채식주의자용 투플 한우 스테이크 같은 느낌이랄까.

엘리스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부탁할게요. 애들 좀 키워주세요.”

* * *

“머리 터지겠네.”

약간의 막후 협상(?) 끝에 애들을 받았다.

덕분에 점심시간이 30분 늘어나게 됐다. 아주 그냥 줄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이전처럼 자르기가 애매해진 것이다.

물론 특단의 대책은 세웠다.

일단 임수원이 라면을, 정호석이 덮밥을 주도했고, 여기에 미엘과 리엘을 붙였다.

이호영이 마는 김밥이야 딱히 사람이 필요 없어서 로엘과 조온달은 임혜리에게 맡겼다.

서빙부터 차근차근 배우라는 의미.

문제는 입소문이 이상하게 나 버렸다는 거다.

SNS 태그가 맛집보다 눈호강 식당으로 더 많이 올라왔던 것이다.

특히나…….

“주문하신 라면 두 그릇과 불라면 하나 김밥 두 줄, 장어묵덮밥 하나 나왔습니다.”

“라면 하나 불라면 하나, 김밥 한 줄 나왔습니다.”

조온달이 서빙을 하면서 여자 손님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아니 왜, 중세 귀족 가문의 집사를 콘셉트로 잡냐고!

칼같이 다려 입은 하얀 셔츠에 청바지 느낌의 앞치마가 정말 잘 어울리긴 했다.

백금발을 단정하게 빗어 뒤에서 묶어 이마를 드러냈음에도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이었으니까.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조온달은 겁나게 잘생겼다.

당장 모델이나 연예인을 해도 손색없는 비주얼이라고나 할까.

어지간한 아이돌은 돌돌 말린 쭈꾸미로 만들어 버릴 정도라 연일 여자 손님들이 폭발하고 있었다.

실제로 연예 기획사 매니저란 놈들이 찾아와서 명함도 겁나게 주긴 하더라.

“이게 진짜 맞는 건가 모르겠네.”

보조가 붙은 뒤로 전체적인 매출 상승이 이루어졌다.

행복 분식 특제 라면의 경우 하루 200그릇이나 나갔다. 불라면이 100그릇 조금 안 되고, 김밥도 100줄은 준비해야 할 정도였다.

아쉬운 건 장어묵덮밥이었다.

가까스로 100그릇을 겨우 채우는 수준이랄까.

물론 원흉은 따로 있었다.

왕왕떡볶이의 양념어묵덮밥이 평판을 다 갉아먹고 있었으니까.

“하아…… 진짜 한번 가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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