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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64화 (64/156)

64화

“하, 기분이 영 그러네.”

부산대학병원을 눈앞에 두니 좀 싱숭생숭했다.

호스피스 센터로 향하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랄까.

말기 폐암.

이미 폐 한쪽을 잘라 냈는데 나머지 부분에서 전이가 심하게 됐다더라. 안쪽 장기까지 퍼져서 반년 생존을 자신할 수 없단다.

그런데.

“야이, 호로비치 십상시 내장 빼서 줄넘기할 새끼야! 이걸 먹으라고 내온 거냐?”

“병원식 중에 제일 특식입니다.”

“너나 처먹어. 누굴 관짝 들어가 뚜껑 덮은 시체로 아나. 이걸 먹으라고?”

“그, 그래도 식사를 하셔야…….”

“지 새끼는 설렁탕 먹고 주댕이에 깍두기 국물 묻히고 와서 환자한테 이걸 먹으라고 하면, 잘도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다.”

“헉, 그, 그걸 어떻게?”

“입에서 곰탕 내 풀풀 나. 깍두기에 설탕 사이다 냄새도 심하고. 하여간 그 집 맛없으니까 다른 가게 가라고. 뭣하면 내가 추천 좀 해줘?”

“예. 가까워서 선배님들하고 가는 가게이긴 한데 좀 멀건 느낌이 들더라고요.”

“요 밑에 완월…… 큼, 초장동 입구 라인에 오래된 곰탕집이 있어. 입구에서 좀 구리구리 냄새가 나는데 거기가 진국이다. 나무로 된 테이블만 해도 니 나이보다 많아!”

아주 그냥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병실을 뚫었다.

근데, 나도 모르게 그 가게를 메모하게 되더라. 초장동 입구 곰탕, 38년 됐고 이쪽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 제대로 된 집이라고.

다만 위치상, 손님들 구성이 조금 신경 쓰이겠지만 밥 먹는 데는 가장 좋다고 했다.

제대로 된 보양식이라나.

“사장이 후하게 내죠. 가서 얼굴 비추고 하다가 손님들도 좀 봐주고 그래.”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맛집 기록은 주머니에 챙겼다.

호통의 주인공은 한숨을 내쉬면서 식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연신 한숨을 내쉬는 것이 영 당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먹으면서 투정과 욕설, 평가가 이어졌지만 묘하게도 정이 가득한 느낌이었다. 의사한테도 이것저것 챙겨주는 분위기가 전해졌던 것이다.

더 웃긴 건 같은 병실의 환자들도 좋아한다는 거다.

적어도 하루 이틀은 아니라는 거겠지.

사실 김요성 대표에게 연락처를 받고 이래저래 알아봤다.

SF 푸드 사장 박산기.

남동생과 여동생이 두 개의 가게를 운영했는데, 의외로 평판이 좋았다.

맛은 모르겠지만 양에서는 압도적이라고 해야 하나.

남동생이 서동, 여동생이 하단에서 운영을 했다.

첫째 아들이 서면과 남포점을 맡고 있었고, 둘째가 부산대와 동래를 맡았다.

평점은 서면이 최하위, 그다음 남포점이었다.

의외로 부산대점은 인기가 제법 많더라.

남은 두 개는 회사 직영점이었는데, 그중 덕천점이 막내가 사고(?)친 바로 거기였다. 사장이 빡쳐서 본사로 돌린 후, 막내를 창고로 보냈다고 했다.

솔직히 아무리 막내아들이라도 그렇게 패는 건 좀 아니다 싶었는데, 알아보니 나도 패고 싶을 정도였다.

걸린 것만 음주 운전 2회.

부인과 싸우고 살림 박살 내서 이혼. 막말은 기본에 종업원 갑질까지 터졌더라.

여기에 손님 무시 발언까지 이어졌으니 폭발하는 게 당연하겠지.

애초의 취지를 무시해 버렸으니까.

“실례합니다.”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누구 손님인가 쳐다보는데, 일단 고개부터 숙인 뒤 박산기를 쳐다봤다.

“뭐야? 내 손님?”

“연락 없이 들러서 죄송합니다. 여러 번 통화 시도를 했는데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뭐? 잠시만. 이게 충전이 잘 안 돼서.”

박산기는 폰을 확인하더니 눈살을 와락 찌푸렸다.

충전기에 연결하고 켜자마자 띠링~ 띠링~ 하고 부재중 문자가 몰아쳐서였다.

“으음, 자네가…… 하~ 불편하겠지만 앉게.”

간병인용 간이침대 한쪽을 가리켜서 일단 앉았다.

잠시 휴대폰을 확인하던 박산기는 몇 번이나 고개를 내저었다.

“대충 이런 일이 있었군. 이 썅놈의 새끼 같으니라고. 잠시만 양해 구하겠네.”

“아드님한테 연락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아주 그냥 머리카락을 다 뽑아 버리려고.”

그만큼 열받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었다. 애초에 배 째라 스타일이라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아서였다.

“저기…… 그 전에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왜, 요성이가 말 안 해줬어?”

“직접 듣는 게 저한테 도움이 될 거라 하시더라고요.”

“에이, 하여간 능구렁이 같은 새끼. 그래, 궁금한 게 뭔가. 어차피 곧 디질 놈이니 질펀하게 떠들어 주마.”

희한하게 뭔가 말속에 해학 같은 기분이랄까.

자포자기랑 다른, 애초에 누군가 말 걸어주길 바란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SF 푸드라는 건…….”

자식들이 현금 삥땅, 그러니까 신고 제대로 안 하고 그 돈으로 술 처먹으러 돌아다녀서 회사를 만들었단다.

회계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라나.

“왕푸짐이야 원래 스타일이야. 애들한테는 많이 퍼 맥이자는 취지였지.”

갑자기 박산기는 침대에 몸을 묻었다.

아련한 과거를 떠올리는 듯, 얼굴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러니까…… 우린 고등학교 동창이었지.”

* * *

박산기, 김요성, 그리고 또 한 친구.

셋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결국 학교 마치고 알바까지 한 뒤, 국밥 골목 근처에 모였다.

당시 돼지국밥은 3,500원.

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그게 아니었다.

그 앞에는 리어카 떡볶이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떡볶이 한 접시 1,000원, 어묵 하나 200원, 여기에 순대 한 접시가 1,500원이었다.

특히 인기 메뉴가 파전.

작은 프라이팬 크기인데 겨우 500원이었다.

진짜 파도 별로 없고 부추 조금 들어간 밀가루 전에 가까운데, 이걸 떡볶이 소스에 찍어 먹으면 하루가 행복했단다.

“당시 한 달 월급이 12만 원이 안 됐어. 주5일도 아니어서 공장들이 쉬는 일요일만 놀았거든. 하루 네 시간 넘게 그릇 치우고 설거지해서 받는 돈이 그 정도였지.”

90년도 초반.

고등학생이 학교 마치고 할 수 있는 일은 드물었고, 그나마도 감지덕지였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식당 사장이 음식을 해 먹이는 것도 당시에는 참 잘해주는 경우라고 하더라.

그렇게 평소처럼 밤 10시에 마치고 나와서 먹을 수 있는 건 많이 없었다. 국밥도 비싼 편이라 월급날 돌아가면서 사는 게 전부라 했다.

“그 앞에 분식집이 우리한테는 천국이었지. 특히 삼오정이라고 유명한 삼계탕집 앞 집 아줌마가 잘해줬어. 애들은 잘 먹어야 된다면서 떨이라고 막 주는데…… 하~ 진짜 고맙더라고.”

파전 세 개를 천 원에 줬다.

떡볶이 두 접시를 박박 긁어서 한 접시라 우겼고, 비록 오래 불려서 흐물흐물해졌지만 어묵은 접시에 그냥 막 담았다.

그렇게 어린 고등학생 셋은 배고픔을 이겨냈단다. 동전 박박 긁어서 낸 2,500원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 그냥 많이 주니 좋다고…… 대학 가고 군대 갔다가 들렀는데 돌아가셨다더라고.”

“아…….”

“나중에 들었는데, 당시 나만 한 손주들이 있었다 하더라. 그중 애 하나가 사고로 가서…… 우리 또래들 오면 챙겨줬다고 들었어.”

솔직히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아서 모른다.

하지만 박산기의 얼굴에서 아픔이 느껴졌다.

“내가 왕푸짐을 차린 것도 그래서다. 맛이 좀 없을 수도 있긴 해. 하지만 애들 배불리 먹이겠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없다!”

단호하게 말하는데 막 공감이 갔다.

확실히 맛은 떨어지지만 양에서는 누구도 불만이 없는 가게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었다.

“그런데 동업했다 갈라졌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요성이 놈은 합리적인 가격에 맛을 추구하고, 난 남겨서 버릴지언정 배고프게 가는 아이들은 없게 하자는 주의였거든. 거기서 간극이 생긴 거지.”

“근데 지금은…….”

“우리 애 새끼들이 너무 배불렀지. 그렇다고 애비가 되서 애들 굶길 수는 없으니 넉넉하게 먹인 건 맞는데, 다 커서 배고픈 애들 마음을 모르게 됐어.”

박산기는 꿈지럭거리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이게 허리가 아파서 오래 누워 있으면 위산이 올라오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그런 증상이라네. 이해 좀 해주게.”

“아, 저는 괜찮습니다.”

유현성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부축했고, 살짝 마력을 흘려 넣었다.

적어도 통증만은 줄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다.

“호오, 이상하게 좀 편한 느낌이 드는군. 어쨌든 그런 과거가 지금의 우리를 만든 거지. 솔직히 말하면 자식 농사는 한 놈 빼고 실패했어.”

“예?”

“우리 둘째 만나보게. 아마 자세한 이야기는 그놈한테 듣는 게 빠를 거야!”

박산기는 그렇게 말하고는 약기운이 도는지 눈을 감았다.

사실 이야기는 정말 길었다.

어릴 때부터 살아오고 일했던 게 상당했고, 당시 아르바이트로 근처 떡볶이 가게에서 일하던 부인에게 반해 청혼했다고 했다.

그렇게 아들 셋, 딸 하나를 낳았다.

아들, 딸, 아들, 아들.

지금 이들이 편 갈라서 싸우고 있단다.

“후우…… 뭔가 일이 많아지는 기분이네. 그냥 우리 음식 카피하지 말라는 건데,”

김요성이 묘한 어조로 말했다.

도와주면 좋겠다고.

성격상 공짜도 아닌, 무려 착수금만 천만 원을 부르더라.

그걸 떠나서 이건 확실히 해결해야 했다.

피 터지게 고생해서 만든 냉라면이 인터넷상에서는 아직도 욕을 처먹고 있었으니까.

결국 난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다.

목표는 부산대였다.

* * *

“어우, 으그그, 끄어어.”

기지개를 켜는데 온몸에서 뚜두두둑 소리가 났다.

한 자리에서 계속 튀김을 튀기고 떡볶이를 만들어서였다.

왕왕 떡볶이 2호점.

서면에 생긴 다음에 차렸기에 2호점이었는데, 단골들은 다르게 불렀다.

‘왕삼촌 떡볶이.’

그냥 1인 사천 원 내면 어지간한 건 다 나오는 곳이었다. 떡볶이, 어묵, 순대, 내장에 각종 튀김까지 한 접시에 마구 골라 담을 수 있었으니까.

심지어 그 접시가 뷔페에서나 나올 정도니 학생들의 사랑을 받는 건 당연했다.

대신 남기면 알바 모드 전환이었다.

소소한 정리를 도우면 벌금 면제란다.

“시스템이 참 특이하네.”

유현성은 가게 입구 계단에 적힌 문구들을 읽으며 천천히 올라갔다.

정말 희한한 게 많기는 했다.

뷔페식 운영은 둘째 치고, 튀김 3+1에 어묵 국물 사발 리필, 딸 바보 사장한테 애교 떨면 순대 반 줄 공짜.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면 회원 등록에 한해 1회 공짜라고 했다.

물론 5,000원 한도 내에서.

대신 그 친구들은 충성 고객이 되겠지.

“확실히 젊은 친구들 마음을 잘 아는 것 같기는 하네.”

아주 맛이 없으면 모를까, 그럭저럭 먹을 만한 걸 더 팍팍 준다 방식이면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가게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훅 열기가 느껴졌다. 시끄럽고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이게 요즘 애들 문화려니 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일단 자리에 앉았는데…….

“주문은 셀프고요. 결제는 키오스크로 하면 돼요.”

쪼르르 달려온 직원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망설이다 키오스크로 한 접시 결제를 했다. 그러자 영수증이 나왔고, 그걸 카운터에 건네주자 접시 하나를 내왔다.

“이거, 우리 가게에 적응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임혜리가 수첩을 들고 예약석을 다니는 게 떠올랐고,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단 한 접시를 주문했는데.

“깻잎이랑 고추 튀김 말고는 대부분 평범하네. 떡볶이 소스도 시판에 양념 조금 넣은 정도고.”

황당하게도 쥐포 튀김에선 강 여사의 맛이 났다.

한마디로 설탕 절임 느낌이라는 거다.

그렇게 느긋하게 접시를 비우는 와중에 브레이크 타임이 오더라.

기름통을 비우고 이래저래 치우는데 마침내 목표물이 보였다.

박산기의 둘째 아들.

바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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