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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66화 (66/156)

66화

“시간 참 빠르네.”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 6월 말이 되었다.

미엘과 리엘, 로엘은 가게에 완벽 적응한 상황이었다. 다음 달이면 마을로 올려 보내야 한다는 게 아쉬울 정도.

하지만 그만큼 2호점이 편해진다 생각하니 어쩔 수 없다 싶더라.

역시나 예정대로 진행되긴 했다.

2호점 점장은 손강희.

이전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가끔 나오는 요상한 행동을 제외하면 충분히 맡길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 완성된 행복 분식 냉라면을 분석할 때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부탁을 했는데, 당시에는 그냥 생각해 보겠다고만 하더라.

하긴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

어쨌든 나중에서야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아예 점장을 맡기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유현지가 불안한 것도 있었고.

지금은 점장 손강희, 부점장 유현지가 2호점 메뉴를 체크했다.

여기에 숙련된 엘프가 넷이나 붙으니 많이 힘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요리 센스가 좋았고 지금도 메뉴 개발에 집중하고 있기에 뽑은 것이다.

부점장은 유현지가 맡고, 숙련된 엘프가 넷이나 붙으니 크게 힘들 일은 없겠지.

슬쩍 가게를 둘러봤다.

막 안쪽에서 서빙하고 나온 조온달이 보였다.

“하, 저놈…… 나도 없는 팬카페가 생기다니.”

카페 회원수라고 해봐야 백 명이 조금 넘는 정도.

하지만 의외로 SNS상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며 가게 홍보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역시 남자는 얼굴과 매너인 모양이었다.

귀족 가문의 집사 콘셉트의 서빙이 먹히면서 인기가 폭발했으니까.

사실 다들 주방에서 땀나게 뛰어다니는데, 저놈은 폼 나게 걸어 다닌다. 힘쓰는 일도 애들이 다 하니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더라.

“얄미운 새끼.”

“저 말입니까?”

“그래.”

라이노스 장로의 손자라면서 한 번씩 귀족처럼 거들먹거리는데 엘리스가 왜 귀찮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

“정말 평범한 인간 아닙니까? 가끔 할아버지는 노망이 났는지, 위대하신 존재라고 하던데요.”

“그래, 위대해서 많이 먹긴 더럽게 많이 처먹지.”

일도 많아졌고, 이래저래 바빠서 먹는 양이 월등히 늘었다. 폭식 자매들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 한 끼에 2인분은 됐으니까.

중간에 간식과 야식을 포함하면 대충 10인분은 먹을 거다.

그걸 본 조온달이 한 소리 하긴 하더라.

자신들은 그렇게 안 먹어도 괜찮다고.

이슬만으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다면서 이슬 소주를 처먹는데 진짜 한 대 치고 싶었다.

어차피 내가 사장이고 회식도 내 돈으로 하는데 치킨 두 마리 정도는 먹을 수 있지.

“솔직히 전, 엘리스 여왕님만큼 미래를 느낄 순 없습니다. 하지만 기감은 여기 있는 누구보다 좋아요.”

“그래서.”

“여기서 사장님이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입니다. 저 변신 늑대와 호랑이도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고, 덮밥을 만드는 호석이 형도 외모만 보면 어지간한 사람은 찜 쪄 먹을 정도죠.”

“그럼 내가 호영이만 겨우 이길 수 있다는 거네?”

“근육의 결이나 체형만 보면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푸하하!!”

갑작스럽게 터진 건 정호석이었다.

하긴 녀석은 내가 얼마나 강한지 봤을 테니 웃는 거겠지.

그 직후, 임혜리와 임수원도 큭큭거렸고.

조온달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날 쳐다봤다.

“혹시 능력을 지워 버린 겁니까?”

“요즘은 마음대로 ON, OFF가 되니까. 굳이 마력을 줄줄 흘리고 다닐 필요는 없지. 평소에는 조금 싸움 잘하는 보통 사람 정도라 보면 돼.”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겁니까? 상위 전사인 제가 못 느낄 정도로요?”

“믿든가 말든가 알아서 해. 뭐 해? 손님 왔으니 주문받아.”

조온달은 불신의 눈빛을 던졌지만, 이내 집사 모드로 들어가더라.

“쯔, 따지면 저거랑 비슷한 건데…… 그나저나 라이노스 장로는 왜 괜한 소리를 한 거지?”

이전 신분은 지우고 나와서 이제 분식집 사장이다.

겨우 1년이 되어가지만 가게 이름대로 솔직히 많이 행복해졌다.

애초에 고요환도 내 사정을 아니 딱히 붙잡지 않았고, 그럴 만한 큰일도 없다더라. 대충 엘프 마을이 뜬금없이 생긴 게 가장 충격적인 대사건이라나.

이 때문에 정부 부처는 무척 바빠졌고, 부산 시장도 난감해했다.

신경 쓰이는 건 다달이 꽂히는 억대가 넘는 월급과 활동비였다.

정부 놈들이 시스템 체계를 얼마나 팔아먹는 건지 모르겠다.

고요환이 일러주길 대충 내 몫이 0.3% 전후란다.

그럼 달에 최소 300배 이상은 벌고 있다는 소린데.

“에이, 신경 끄자. 할 일도 많은데. 그나저나 이제 곧 사람도 뽑아야 하는데.”

얄밉긴 하지만 조온달 때문에 여자 손님이 부쩍 늘었다.

리엘, 미엘, 로엘의 영향도 있어 이게 음식 먹으러 온 건지 구경하러 온 건지 구분이 안 되더라.

“하긴, 엘프를 직접 볼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 있지.”

어쨌든 손님들이 늘어나고 인원이 많아져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영업시간이 길어졌다. 거의 오후 4시까지 하고, 6시부터 저녁 장사를 주 2~3일 하는 걸로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인터넷과 동영상을 보며 이런저런 걸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요리 실력이 부쩍 느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중간중간 왕왕 떡볶이 부산대점도 가야 했으니 바쁠 수밖에.

“그러고 보니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었지?”

* * *

“우와, 사람 많다.”

대학교 앞, 2층이라 월세에 비해 가게가 큰 편이었다.

딱 두 테이블 빼고 전부 손님이 차 있었다.

얼핏 봐도 60명은 넘을 것 같은데?

전에 말하길 원래 대학교 앞 호프집들은 단체 손님도 많이 받아서 가게가 크단다. 인수하고 단체석을 뜯어냈더니 공간이 무지하게 넓게 나와 난감했다고.

“와! 사장님 테이블 더 넣으신 거예요?”

“아이고, 선생님. 말도 마세요. 입구 계단에 대기줄이 생기니까 다른 가게들이 불편해하더라고요. 건물주도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라서 결국 테이블 여섯 개 더 넣었어요.”

“반응은 괜찮습니까?”

“터집니다. 터져요. 일단 급하게 아는 동생들 두 명 더 추가해서 저 빼고 여섯 명이서 풀로 일하고 있어요.”

조온달 이 새끼, 도움이 되기도 하네.

튀김 덮밥과 냉라면은 처음 이주 정도는 반응이 거의 없었다. 왕왕 떡볶이 서면점이 먼저 검색이 되면서 평가가 곤두박질친 것이다.

결국 머리를 싸매 연구한 끝에 레시피를 바꿨다.

기존 세 개의 튀김에 매운 어묵.

여기에 원래 팔던 동그랑땡을 두 개 추가시켰다.

그 아래 다진 당근과 텐카츠라 불리는 튀김 부스러기를 올려 색감을 더했고, 소스 양도 늘려서 뿌렸다.

맛과 퀄이 올라갔음에도 판매는 그저 그런 상황.

고민하다 조온달에게 슬쩍 지나가는 투로 팬카페에 음식 사진 좀 올려보라고 했는데…….

“사장님 레시피입니까?”

“어, 일단은.”

“알겠습니다.”

며칠 뒤, 팬카페에 사진이 올라왔다.

제목은 부산대 엘프남.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정장, 하얀 와이셔츠에 화려한 금발을 휘날리며 모델 포스로 튀김 먹는 사진이었다.

그 직후, 반응이 폭발하다 못해 SNS가 폭주해 버렸다.

-행복 분식 사장님이 직접 개발한 레시피.

-우리 가게 콘셉트와 맞지 않아 인연이 있는 분한테 전수함.

-역시 우리 사장님 음식은 맛 하나는 보장함. 내가 일하면서 라면을 찾아 먹게 될 줄은 몰랐음.

-부산에서 파는 곳이 세 곳밖에 없다고.

-운 좋으면 저와 마주칠지도 모름.

-서면점은 쓰레기.

이후 조온달이 다른 지점까지 들러서 찍은 사진까지 올렸다.

청바지에 흰 티, 거기에 청재킷.

그다음은 올 블랙 정장에 회색 베레모.

보통 소화하기 힘든 패션이지만 조온달이 걸치니까 아주 착착 들어맞더라.

아, 세상 불공평하다.

-실제로 봤는데 진짜 엘프 같은 느낌임.

-하루만 저 얼굴에 저 몸이면 좋겠음.

-님 얼굴은 어떻길래?

-엄마가 그러는데 어렸을 때 절구통에 빻던 떡처럼 생겼다고 함.

- ㅠㅠ 희망을 가지세요.

-괜찮음. 와이프가 절구통 몸매임. 같이 다니면 남매로 봄.

어쨌든 그 영향 덕인지 삼 주째부터 사람이 늘더니 이제는 아예 줄까지 길어졌단다.

설마 했는데 이렇게까지 많이 찾아오다니.

“다른 곳은 어떻습니까?”

“삼촌네도, 고모네도 아주 죽을 맛이랍니다. 행복해서 죽고 싶데요.”

“역시 SNS의 파급력이란 무섭네요.”

“그리고 서면점은 조만간 문 닫을지도 모릅니다.”

들어 보니 다른 지점 튀김 덮밥과 냉라면이 잘되면서 매출이 확 떨어졌다. 그래도 부산 중심 번화가라 타격은 크지 않았는데, 박정기가 한동안 마구 성질을 부렸다는 것이다.

결국 직원 두 명이 그만두고 나가자 가게 시스템이 망가졌다.

나머지 직원 다섯 명도 의욕 상실이라 음식도 대충 나가니 매상은 더욱 곤두박질칠 수밖에.

한마디로 점점 망해간다는 거지.

“특히 거기 월세가 엄청나거든요.”

“엥? 건물주라 하지 않으셨어요?”

“3층짜리인데 대출 이자만 어마어마해요. 근데, 또 사고 치는 바람에 거기 장사하는 사장들 줄줄이 나가기로 합의 봤답니다.”

한 번 미친놈은 죽어야 벗어나는 모양이다.

무려 70%가 대출이고 월세 받아서 대출 이자 내는 상황.

근데 따로 숨겨둔 빚이 몇 억이나 더 있단다.

건물에 입주한 사장들한테 반협박 비슷하게 천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 몰래 빌렸다고. 거기에 돌려줄 보증금까지 탕진했다고 하니, 너무 황당했다.

“그게 가능합니까?”

“도박에 빠지면 애미, 애비도 몰라본다는데, 후우~ 그래도 건물 팔아서 다 갚으면 몇억은 남는답니다.”

“헐.”

“근데 그거 형 재산 아니에요. 아버지가 다 몰수하시겠다고. 그리고 정신 차릴 때까지 섬에 박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서, 섬이요?”

“아버지 소유의 무인도 비슷한 게 남해 쪽에 있는데, 배가 열흘에 한 대 들어갔다 나옵니다. 낚시꾼들 상대로 먹고살라고. 그것 때문에 싸우고 난리도 아닙니다.”

아주 제대로 망했네.

역시 박산기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아무리 열받아도 장남을 섬에 박아 버릴 생각을 하다니.

하긴, 막내 싸다구 12연타를 때릴 때도 무시무시했었지. 심지어 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릴 정도라면 대단한 강심장이 분명했다.

“하여간 선생님도 피해를 보셨다고 들었는데, 저희 쪽 사정이 이렇습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돈은 김요성 대표한테 받으면 된다.

설마 모른 척하진 않겠지?

“그건 다 정리하고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일단 장사는 잘되죠?”

“예. 아주 잘돼서 정신이 없네요. 튀김 덮밥이 하루 300그릇 정도 팔리고 냉라면은 100그릇 정도 나갑니다. 떡볶이랑 튀김, 어묵만 남기고, 결국 순대는 빼 버렸습니다.”

잠시 계산해 보니.

500원 마진이면 15만 원, 냉라면 포함하면 20만 원도 안 남는다. 떡볶이, 튀김, 어묵이 상당한 매상을 올려준다고 해도 실질적인 월 수익은 800만 원 수준.

이걸로 월세 내고 월급 주면 과연 남을까?

“제가 달에 들고 가는 것만 500만 원 넘습니다.”

“예? 어떻게 계산이 그렇게 되죠?”

“생신 어묵 대표님이 대량구매라고 10% 할인해 줬습니다. 가게 네 군데서 나가는 양이 어마어마하니 오히려 꾸준히 팔기만 하라더라고요.”

부산대점과 동래점. 다른 가게 둘을 합치면 합쳐서 하루에 대략 천이백 개, 한 달이면 이만 오천 개가 훌쩍 넘어간다.

이런 거래처라면 10% 할인도 불가능하진 않겠지.

또 나중에 지점이 늘어날 것까지 예상한다면 미래를 위한 딜이 분명해 보였다.

역시 누님 선견지명 있으시네.

“잘됐네요.”

“예.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평균 달에 250만 원도 못 들고 갔는데. 무엇보다 이전보다 가게에 활력이 돌고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조만간 방학 되면 리모델링도 좀 해볼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하긴, 처음 왔을 때는 많이 부산스러웠지.

손님 대부분 음식에 집중하기보다 떠들기에 바빴으니 만드는 입장에선 큰 보람을 느끼기 어려웠을 거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음식을 가르치면서 선생님이란 말이 입에 붙은 뒤로 계속 그렇게 부르는데…….

이거 이상하게 뿌듯하네.

* * *

결전의 날!

박산기가 임시 퇴원을 했다.

중간에 몇 번 통화하긴 했는데 오늘 최후통첩을 날릴 거라고 했다.

시간 맞춰 서면 중심가로 나온 것도 그래서였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상황도 곧 끝나겠구나. 진짜 뭐가 이렇게 꼬인 건지.”

동시에 홀가분한 기분도 들었다.

그때 주차장 안쪽에서 휠체어가 나왔다.

바로 박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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