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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67화 (67/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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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김 원장은 차에서 대기해 주게.”

“절대 안 됩니다.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 친구가 있으니 괜찮아.”

박산기가 턱짓으로 유현성을 가리켰다.

“저 친구가 의사라도 됩니까?”

“글쎄. 하지만 날 지켜줄 정도는 된다네.”

김 원장은 잠시 망설이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박산기의 고집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아서였다.

“젊은 친구. 부탁 좀 하겠네. 그리고 이건 내 명함이니…… 바로 전화 주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차에서 대기하겠습니다.”

솔직히, 박산기를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발을 했는지 머리카락이 깔끔했고 좋은 향기가 나는 기름 같은 걸 발라서 넘긴 상태였다.

안에는 하얀 면티를 입었지만 겉은 고급스러운 투 버튼의 회색 정장이었다.

몸도 잘 가누지 못한 환자가 이 정도까지 준비했다는 건 그만한 각오를 다졌다는 거겠지.

“제가 밀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가족들은 안 오십니까?”

“장사꾼은 영업시간에 장사를 해야지. 다들 오지 말라고 했네.”

“그래도 중요한 일인데…….”

“크, 크흡. 오, 오히려 분란만 커질 뿐이라네. 그리고 요성이한테 자네 이야기를 들었어.”

“아…….”

“꽤나 대단했던 헌터라면서?”

뭔가 조금 이상했다.

김요성 대표가 그걸 알 리도 없었고, 일반인은 그럴 능력도 되지 않았다.

그럼 뭔가 다른 방향에서 눈치를 챘다는 건데.

설마, 지속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게 그래서였나?

“그저 흔한 군인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휠체어를 밀고 가는데 이상하게 자꾸 말을 걸고 싶어졌다.

“거의 1년 만에 게이트 사태가 벌어졌죠. 경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우니 정부는 군대를 동원했고, 어쩌다 보니 게이트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제법 오래 있었나 보군.”

“작년에 전역했고, 재작년 가을까지는 게이트 안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독히도 처절했던 기억.

그게 슬쩍 떠오를 무렵 왕왕 떡볶이 건물이 보였다.

“이런.”

박산기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작 네 칸에 불과한 계단이지만 일반인의 허리 아래 높이었다. 그리고 달리 휠체어로 갈 만한 다른 경사로도 보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휠체어째로 들어 가볍게 올렸지만, 박산기는 오히려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로 대단하군.”

“장사하다 보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한때는 시멘트 네다섯 포대씩 지고 다녔는데요.”

“으응?”

보통 시멘트 한 포대가 20㎏ 아니었나?

박산기는 잠시 의아했지만 그런가 하고 넘겼다.

정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 * *

뭐지? 이 낡아빠진 기운은?

이렇게 생동감 없는 식당은 처음이었다. 왕왕 떡볶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거의 무력감뿐이었던 것이다.

단 한 명, 커다란 덩치의 돼지를 제외하고.

박수기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박정기의 기합과 체격은 대단했다.

무제한급 유도 선수 같은 느낌이랄까.

“오셨습니까?”

“너 술 마셨냐? 미쳤어?”

“따, 딱 한 잔 마셨습니다. 정말입니다. 오늘 같은 날까지 취할 정도는 아니라고요.”

“하~ 됐다. 약속은 지키마. 너도 잊지 마라.”

“예.”

박정기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달그락 소리가 들리는데, 박산기가 불쑥 물었다.

“의외인가?”

“좀 당황하긴 했습니다.”

솔직히 접시가 날아다니고 괴성이 터지고, 뭐, 그런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정적만이 흐를 뿐이었다.

“음식 하는 사람은 음식으로 증명해야 하는 법.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네. 다시 한번 실력을 인정받고 싶다더군.”

“확실히 그런 거라면야, 저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열심히 해보겠다면 기회를 주는 것도 맞겠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가게 분위기만 보면 도저히 아니었다.

직원들은 수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특히 한 명은 표정이 많이 어둡기까지 했다.

음식이 그만큼 절망적이라는 거겠지?

“나왔습니다.”

보자마자 저 새끼 멱살 잡을 뻔했다.

누굴 열받아 죽게 할 일 있나?

이건 우리 가게 장어묵덮밥과 튀김 덮밥을 섞은 요리에 가까웠다. 두 음식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끔찍한 혼종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박산기는 그걸 알고 날 불러낸 것 같았다.

“자네가 평가해 주게.”

“잠시만요. 아버지가 평가해 주셔야죠.”

“아니, 이 친구가 평가하는 게 맞아.”

박산기가 그릇을 앞으로 내밀자 박정기가 날 노려봤다.

“어디서 근본도 모르는 새…….”

“적어도 나보다는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원 주인이지.”

“예?”

유현성은 살짝 손을 들어 두 사람을 말렸다.

“제가 평가하겠습니다.”

솔직히 양념어묵덮밥의 악몽이 재현될까 겁났다.

그건 혀를 괴롭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독극물 융단폭격을 퍼부어 미각을 파괴시키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어우, 생각만 해도 소름 돋네.

어쩌면 튀김 덮밥을 만든 이유가 그때의 충격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였을지도.

“일단 비주얼은 나쁘지 않군요.”

넓은 그릇 위, 앞쪽에는 장어묵과 비슷한 놈(?)이 간장 소스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뒤쪽은 텐동집에서나 쓸 만한 큰 크기의 새우튀김 두 개와 고추 튀김이, 마지막으로 왼쪽에는 온천 계란이 보였다.

그 아래는 다진 당근과 실파를 적당히 뿌린 밥이 있었다.

“이 음식, 판매 가격은요?”

“그, 그게 원가율이…….”

“아마 재료 등급에 따라 다르겠지만, 3,200원에서 4,200원 사이에 나오겠네요.”

“그, 그럴 겁니다.”

“새우튀김 두 개 1,400원, 고추 튀김은 150원 정도? 아~ 속에 만두소를 채웠으니 200원 잡읍시다. 계란이 300원. 어묵은 1,000원 잡으면 되겠네요.”

하나씩 설명하면서 앞접시에 튀김이 눅눅해지지 않게 먼저 덜었다.

“밥은 200원. 토핑은 당근 50원, 실파는 요즘 시세가 좀 헛갈리는데 100원 잡으면 될 거고…… 양념은 넉넉하게 300원 잡겠습니다. 물론 대략적인 판단이니 정확하진 않아요.”

“아, 알겠습니다.”

“원가 3,500원을 잡고, 튀김 기름값, 월세, 전기세, 공과금, 세금에 인건비까지 남기려면 한 그릇에 최소 6,000원, 혹은 그 이상의 가격에는 팔아야겠죠?”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닙니까?”

“여기서 하루에 500그릇씩 팔 수 있습니까?”

흠칫 놀란 박정기는 바로 인상을 쓰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박산기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다 가르쳐 줬던 건데…… 잊어버렸구나.”

“그, 그건…….”

“일단 맛 평가나 해주게.”

고개를 끄덕인 뒤, 하나하나 아주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의외로 튀김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바삭함이 살아 있었고 고추 튀김도 적당한 향이 남은 상태였다.

하긴. 방금 튀긴 거니 맛이 없을 수가 없겠지.

일단 밥과 토핑을 섞어서 맛을 보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체 이게 무슨 맛이지?

순간 머릿속에서 ‘애미야, 국이 짜다’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아삭해야 할 당근은 서걱거렸고, 향을 살려야 할 실파는 풋내가 났다. 깨끗이 씻고 제대로 말리지 않았다는 증거겠지.

물론 보통 사람이라면 크게 거슬리진 않겠지만, 이 자리가 자리인 만큼 냉정할 필요는 있었다.

“흐음.”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정도면 조리법만 살짝 주의를 주면 끝날 문제였다.

일단 넘어가자.

이제 마지막 코스, 제일 중요한 장어묵 비슷한 놈에게 도전을 하기로 했다.

한입 물자마자,

“이 X새끼가 진짜!”

유현성이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박정기를 노려봤다.

‘헉! 무, 무슨 눈빛이…….’

박정기는 움찔하면서 두어 걸음이나 물러났다.

진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마치 뽕 맞은 사람이 사시미를 들고 달려드는 느낌이랄까.

“아…… 죄송.”

유현성은 대충 사과하고 그릇을 노려봤다.

열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간장 양념은 골고루 잘 스몄는데 어묵 식감에서 오래된 두부가 느껴진 것이다.

순간 추억의 분홍 소시지가 떠오르더라.

“이건 어묵이 아니잖…… 아니, 맞기는 한데, 밀가루 배합이 너무 많아으으…… 요.”

간신히 화를 참기 위해 입을 다물었다. 다시 짧은 한숨을 내쉰 뒤에야 겨우 진정될 정도로 속에서 울컥한 게 올라왔던 것이다.

그 지옥 같은 양념어묵덮밥이 떠올라서였다.

일단 천천히 복기를 해보자.

“튀김은 좋게 봐서 딱 평균 수준. 밥의 간은 튀김의 느끼함을 잡기 위해 좀 짜게 했는데, 여기에 다진 당근과 파가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그래도 적당히 먹을 만하긴…….”

“개뿔. 사람이 말이냐?”

“뭐?”

“크흠, 실수. 대체 이딴 건 어디서 구한 겁니까?”

짜증스럽게 젓가락으로 어묵을 가장한 밀가루 덩어리를 가리켰다.

“그냥 시장에서 모양이 좋은 걸로 산 겁니다. 어차피 간장 양념 하면 맛은 다 비슷할 것 같아서요.”

“먹어는 봤습니까?”

“그냥 밥이랑 먹으면 적당히 먹을 만하더라고요.”

그래, 모르고 먹으면 먹기야 하겠지.

그냥 어묵이 좀 이상하다 정도로.

하지만 이런 음식을 지속적으로 판다는 건, SF 푸드의 이름에 먹칠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여기만 망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튀김 덮밥까지도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속에서 천불이 나네.

“진심으로 궁금한데, 이 음식 어떻게 만들게 된 겁니까?”

목소리를 억눌러 가며 묻자, 박정기는 홀린 듯 대답했다.

“유, 유명한 요리사가…… 올린 동영상들을 참고로 해서 여, 연구해 만들었습니다. 오송해 선생님이라고…….”

“헐.”

어이가 가출한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 * *

오송해 선생님.

요리 대회 때 처음 만났고, 이후 우리 분식집에도 오셨다.

나가실 때는 무려 50만 원이나 주고 가시더라.

그분은 전에도 요리 학원 홍보 겸 몇 번 인터넷에 음식 만드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이후 덮밥 관련 영상을 두어 개나 더 올리셨다.

당연히 연락을 받았고, 나 역시도 그걸 살펴봤다.

조회수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역시 관록이 있는 분이셨다. 댓글에 나 역시도 알 만한 이름난 요리사들이 여럿 보였던 것이다.

특히 그 동영상에, 슬쩍 우리 가게를 칭찬하기도 해서 더욱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랬는데, 그걸 보고 이딴 걸 만들어?

“확 씨…….”

움찔.

박정기는 황당했다.

여름 같은 날씨에 한기를 느끼다니. 몸이 허해졌나?

“크흠, 저도 아는 선생님이군요. 분명히 요리 학원 홍보 겸해서 한식, 일식 기본이 되는 동영상을 수십 편 올리셨죠.”

“아, 예…….”

“거기에 이런 음식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그러니까…… 제가 연구했다고.”

“그래요. 여언…… 구 하셨군요. 그 결과, 이런 음식이 나오다니. 대단하십니다.”

“직접 수십 번이나 먹어 보고 만든 겁니다.”

휙 고개를 돌려 박정기의 눈을 쳐다봤다.

반쯤 동공이 풀린 걸 보니 도박 중독에만 빠진 게 아니라 약도 하는 모양이었다.

미각 상실이 아니라면 결코 이게 맛있다고 하진 않을 텐데?

순간, 정신이 돌아왔는지 박정기가 버럭 소리쳤다.

“야! 그 정도면 나름 맛있지. 직원들도 다 먹어 보고 괜찮다고 했어!”

“괜찮은 거랑 돈 내고 사 먹는 거랑 다르지. 이게 손님 먹으라고 만든 거냐? 사람이 말이냐고!”

“X발~ 어디서 굴러온 놈이, 네가 요리 평론가냐?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그런 거 잘 몰라. 그냥 양념 범벅만 하면 적당히 먹는다고!”

“하아…… 손님 무시하네.”

“야 이 새끼야. 가격도 이 정도면 저렴한 편이지. 그리고 고급 요리집도 아니고, 여긴 분식집이야! 고작 분식집이라고!”

이놈이 분식집을 무시하네!

순간 열받아서 노려보는데…….

짝!

박정기의 머리가 휙 돌아갔다.

한 발 먼저 박산기가 일어나 뺨을 후려친 것이다.

빠르시다!

박산기가 박정기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뭐! 고작 분식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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