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68화 (68/156)

68화

“정기 이놈!”

“아, 아버지……!”

“이 아버지가 35년이나 한 일이 분식집이다. 중간에 몇 번 엎어지고 새로 오픈하고, 또 가게를 팔아서 새로 도전하고!”

뭔가 한이 서린 목소리였다.

박산기는 잠시 이를 악물었다가 다시 힘을 냈다.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식품 공장도 차리고 여기까지 올라왔다. 비록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분식집은 열 개도 되지 않지만, 우리 제품을 받는 분식집들은 백여 곳도 넘는단 말이다!”

“아~ 진짜,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런데, 네가 우리 회사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느냐? 현장을 뛰며 손님들을 겪어본 뒤에 본사로 오라는 내 뜻을 정녕 모르겠느냐고.”

“아버지! 이거 좀 놔요!”

박정기가 버럭 하며 멱살을 뿌리쳤다.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박산기를 재빨리 받아냈다.

혹시나 하며 지켜보던 상황이라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저런 후레자식을 봤나!

자기 아버지가 환자인 것도 알면서도 과하게 힘을 썼다. 게다가 자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완전히 맛이 간 것 같았다.

“이…… 이 자식이!”

“아~ X발! 아버지. 솔직히 말할게요. 나 장사 싫다고요. 회사 들어가서 일하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무슨 일만 생기면 여기로 처박히는 것도 이제 신물이 납니다!!”

“사람 마음도 모르는 놈이 식품 회사를 운영하겠다고?”

“뭐, 맨날 남는 거 없어도 사람 마음은 잡아야 된다고 그러시면서 많이 퍼 주라고 하는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요. 요즘 누가 싸게 배 채우자고 먹습니까?”

“뭐!”

“그냥 분식집은 유행에 맞춰서 적당히 그럴듯해 보이면 와서 먹는다고요.”

“이, 이놈이…… 이게 네 초심이냐?!”

“이 정도면 됐죠. 뭘 얼마나 더해야 합니까? 우리가 분식집이지 요릿집이 아니잖아요. 아! X발!!”

열받은 박정기가 테이블 위를 팔로 쓸어 버렸다.

챙캉, 쨍그랑!!

그릇과 음식들이 쏟아지며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그나마 몇 안 남은 손님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주 그냥, 망해가는 가게에 사망선고를 찍는구나.

“하아…… 기본이 뭡니까? 우리가 장사꾼이지 자선 사업가예요? 목 좋은 곳에서, 적당히 팔리는 걸 만들어 돈만 벌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만! 그만해라!”

“뭘 그만해요. 제가 틀린 말 했습니까? 요즘에 누가 아버지처럼 장사합니까? 그리고, 여긴 번화가예요. 사람들이 돈 쓰러 오는 곳이지 이딴 허접한 분식 같은 거 먹으러 오는 게 아니라고요!”

박정기가 발악하듯 고함을 지르며 바닥의 튀김을 짓밟았다.

그 직후, 가슴의 명찰도 뜯어 버렸다.

“X파. 직함만 사외 이사면 뭐 해. 뭔 일만 생기면 책임지라고, 여기서 튀김이나 튀기고 있는데. X만 한 애들 상대로 웃어가며 일하는 게 쉽냐고!”

엉? 사외 이사?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다.

분명 생신 어묵 김은희 누님께서 그랬지. SF 조인트 그룹 사람이라며 회사에 찾아왔다고.

그게 이놈?

와…… 그렇게 생각하니 아귀가 맞아떨어지네.

“좀…… 말려, 허억, 허…… 어억.”

호흡이 가빠진 박산기의 목소리에 다급히 마력을 집어넣었다.

그사이 박정기는 반쯤 돌아 버린 것처럼 테이블을 들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콰지직!

그건 분명 박산기가 보라는 듯한 행동이었다.

자신을 말리지 말라며, 건드리면 다 박살 내버리겠다는 듯 말이다.

역시 김요성의 말이 맞았다.

* * *

간극!

박산기와 박정기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큰 틈이 있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해서 알아보려 했는데, 개뿔, 내가 뭘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기껏해야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뒤져보는 게 전부였을 뿐이었다.

결국 인맥 다이렉트로 부딪히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박수기는 그저 곤란한 표정만 지을 뿐 내막을 밝히지 않았다.

그걸 보니 진짜 뭐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결국 참다못해 그를 찾아갔다.

“잘 왔네.”

김요성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웃기까지 하더라.

반대로 난 속이 반쯤 뒤집어질 것 같았다.

분노, 원한 같은 게 아니라 이 알 수 없는 갑갑함에서 오는 짜증과 울분 같은 거였다.

“일단 그쪽에 앉게. 차는…… 믹스?”

“이제 제 취향까지 조사하신 겁니까?”

“나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네.”

“저도 그러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나도 좋네.”

“몇 가지만 물어보고 가겠습니다. 그때 착수금 천만 원을 주겠다는 건 무슨 의미였습니까?”

“으음, 아! 깜빡했군. 나도 좀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건 지금 보내주지. 상금 받았던 계좌면 되겠나?”

“아, 예.”

역시 입금은 불편한 사이의 앙금마저 치워 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갑자기 대화할 생각이 무럭무럭 들었고, 막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찾아왔던 것이다.

흐음, 역시 최강의 무기는 돈이구나.

“자, 잠시만요?”

“왜 그러나?”

“그니까 이 착수금은 무슨 의미입니까?”

“당연히…… 레시피 개발에 들어갔을 경비일세. 뭐라도 만들려면 재료 사야 하지 않겠는가?”

“설마 무, 당근, 이런 거 사는 데 쓰는…… 비용이란 거죠?”

“만약 소고기 같은 걸 쓴다고 생각해 보게.”

“흐음, 확실히 소량으로 완성품을 만들어 나갈 때는 크게 들지 않겠지만, 실제 영업장에서 나가는 용량을 기준으로 하면…… 한 번에 백만 원 가까이 깨지겠네요.”

“역시 빠르군.”

“하지만 이미 다 끝난 일인데…….”

튀김 덮밥은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었고 날이 더워지며 냉라면 역시 매출이 상승하고 있었다.

이제와 경비니 개발비니 하는 게 부질없을 정도.

그때, 김요성이 미묘한 웃음을 흘리며 손가락을 들었다.

“레시피 가격은 1억이면 되겠나?”

“예. 아, 아니…… 쿨럭, 1억…… 이요?”

“적으면 더 불러.”

짧은 순간,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반대로 몸은 정직하게 고개를 숙이려 하고 있었다.

심지어 손까지 내밀기 직전인 상황.

정신 차려라, 내 이성아.

“……됐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참 야망이 없군. 남자라면 자고로 꿈은 크게 가져야 하네.”

“그딴 꿈 없어도 행복하게만 살 수 있으면 됩니다.”

서둘러 거절한 이유는 저 웃음 때문이었다.

1억에서 냄새가 났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정당히 레시피 개발비로 받는 부분이야 문제가 될 게 없겠지.

하지만 이런 말이 있지 않는가?

호의는 돼지고기까지라고.

분명 이유 없는 소고기는 없다.

과한 대가에는 반드시 조건이 붙게 되는 것이다.

“그럼 용건이 뭔가?”

김요성은 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서 내 생각이 맞았음을 눈치챘다.

“전에…… 박산기 사장님하고 연락 안 하는 것처럼 툭툭거리셨잖습니까? 알고 보니 사돈 사이라면서요?”

“친구였다고 다 친할 순 없는 거고, 사돈이라고 다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네. 특히 그놈의 새끼는…… 후우…… 진짜 용건은 그게 아닌 것 같고, 그래. 물어보게.”

“박산기 사장과 그 장남과의 관계가 궁금합니다.”

“허, 고작 그게 궁금해서 날 찾아온 건가? 난 다른 이유 때문에…… 아니, 아니지. 그 둘 사이라…… 박산기는 조금 똑똑한 돈키호테지.”

“예? 그게 무슨…… 문학 소설 뜯어먹는 소립니까?”

김요성이 조금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러다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상관없겠지. 일단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네. 배고팠던 세 친구는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

SF 조인트 그룹.

이름부터 그럴듯했지만 쉽게 풀면 ‘좋은 식품을 연결해 주는 모임’ 정도가 된다.

한마디로 ‘분식집 식자재 납품 회사’라는 거지.

특히 ‘고급 분식의 대중화를 선도하는 SF 푸드’를 강조했다는 건, 말 그대로 가성비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유치하다 싶겠지만 30년도 전이야.”

살짝 뜨끔했다.

나 역시도 회사 홈페이지에서 그 내용을 보기 전까지는 ‘공상과학 영화’ 정도의 의미만 떠올렸으니까.

“박산기는 상상력이 뛰어났지.”

전역하자마자 자취방을 구했고 대문 옆에서 떡볶이를 팔기 시작했단다.

“냄비에 고추장, 간장 조금 넣고 설탕을 때려 부은, 달아 죽을 맛이었어. 근데 그게 묘하게 인기를 끌었다더라고.”

“불법…… 아닙니까?”

“하루 버스 열 대도 안 다니는 깡촌에 그런 게 어디 있나? 경찰들도 와서 주문해서 먹고 갔는데. 그리고 당시 시골에는 별다른 먹거리도 없었다네.”

당시 박산기는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를 모셨다.

둘째는 군대를, 셋째는 고등학생인 상황이니 다들 이해해 줬단다.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만 달랑 하나 있는 시골이니 그럭저럭 눈감아준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이놈이 군대 가기 전에 사고(?)도 쳤더군.”

“예. 사고요?”

“됐고. 하여간 장사가 잘됐지. 그래서 둘째 전역하고, 셋째가 졸업하자마자 마을을 나왔다더군.”

이후 5일장을 따라다니며 떡볶이를 팔았고, 몇 년 만에 작은 점포를 얻게 됐다.

“내가 군대 갔다 와서 대학을 졸업했을 때, 녀석은 벌써 덕천 일대의 유명한 떡볶이 가게 사장이 됐지. 확실히 난놈은 난놈이었어.”

김요성이 붙고 또 한 친구까지 합류했다.

국밥 골목길에 있는 리어카 떡볶이 집에서 동전 긁어 겨우 파전을 먹던 세 친구가 드디어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SF 푸드가 그렇게 나온 거라네. 왜? 좀 구린가?”

“아, 아닙니다.”

“표정이 썩었는데?”

“에이, 설마요.”

“그러면서 얼굴은 왜 만지나?”

“일단 뒷이야기나 마저 해주시죠?”

“뭐, 그 뒤는 뻔한 사업 이야기고, 좀 장사가 잘돼서 가게가 커지고, 나도 가게 하나 맡으면서 체인점 비슷하게 하게 된 거라네.”

“그럼 동업이란 게 그런 의미였습니까?”

“그럼 뭐가 있겠나?”

김이 빠지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뭔가가 떠올랐다.

“동업은 왜 깨진 겁니까?”

“한 곳을 보지만, 서로 가는 길이 달랐다니까. 그리고 사고도 있었고. 에휴…… 대충 듣게.”

분식집이 여섯에서 일곱 개 됐을 때, 다른 친구가 관리하던 식품 공장이 망해 버렸다.

홍수로 인한 침수 피해가 결정적이었다. 식품 쪽은 위생에 특히 민감했기에 결국 창고에 보관 중이던 원재료 대부분을 폐기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부도가 났고, 친구는 책임감에 자해를 했단다.

다행히 미수에 그쳤지만.

“그게 박산기의 방아쇠를 당겨 버린 거지.”

결국 박산기는 지인들의 반대에도 불구, 가게 전부를 묶어 팔아 버렸다.

“허허, 내 가게도 말이지. 크흠, 그 정도 일로 틀어질 사이는 아니라네. 어쨌든 다시 공장을 세웠고, 난 나대로의 길을 가기 시작한 거야.”

SF 푸드는 분식집 납품용 식자재를 만들고, 왕푸짐 브랜드로 분식집도 차렸다. 손님들의 반응을 보면서 왕왕 떡볶이의 맛과 회사의 식자재 수준을 끌어 올린 거다.

“그런데, 그 아들은 왜 그럽니까? 박산기 사장하고 사이가 무척 안 좋은 것 같던데요. 혹시 사장이 일에만 매달려서 삐뚤어지거나…….”

“그냥 애가 개새끼인 거지.”

잠시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요?”

“자네는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군. 날 대할 때는 노련한 것 같더니만…… 의외로 장사꾼보다 연구자 타입인가?”

“아, 그건 아니고요. 이게 참, 튀김 덮밥 레시피로 끝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서 그 아들이…….”

“사람 복잡하게 보지 말게. 걔는 그냥 원래부터 막되어먹은 놈이었어.”

김요성도 주먹을 꽉 쥐는 걸 보니 뭔가 원한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 며느님…… 오빠란 관계가 참 애매하긴 하죠.”

“크흡! 그, 그 썅놈 새끼, 술 처먹고 지 동생 가게 와서 깽판이나 부리고. 돈이나 처달라고 하지 않나. 불 질러버리겠다고 협박도 하고…….”

분명 그때 박수기가 그랬다.

누나는 다 접고 가정에만 충실하겠다며 앞으로는 장사 안 할 거라고.

즉, 그 원인조차 박정기 때문이었던 거구나.

어쩌면 박수기나 다른 가족들에게도 같은 짓을 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다들 사정을 말하길 꺼려 하면서도 복수에 동참한 것이겠지.

막내야 같은 개차반이니 짝짝쿵이 잘 맞았을 것이고.

“후우…… 하여간 그놈은 자네가 아는 모든 진상의 집합체라고 보면 돼!”

와! 실로 강력한 한 방이었다.

잠시 호흡을 진정시킨 김요성이 말했다.

“이제 더 물어볼 건 없나?”

“네. 일단 조언 감사드립니다.”

“아니야. 자네 덕에 나 역시 확실히 결정을 내렸네. 정 불편하면 여기서 손을 떼도 되네.”

뭔가 의미심장하게 들리더라.

박산기 사장이 해결 못 하면 김요성 대표가 직접 뭔가를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에이…… 설마 아니겠지?

김요성은 내 속마음을 읽은 듯 고개를 저었다.

“난 사업가라네. 그럼 다음에 잘 부탁하겠네.”

* * *

전에 박문수 어르신이 그랬다.

어차피 쉽게 변하지도 않겠지만, 사람은 한결같이 꾸준히 해야 한다고.

그 말대로라면 저 새끼는 한결같이 패악질을 부렸다는 뜻이겠지?

순간, 속에서 깊은 빡침이 느껴졌다.

“너, 입 다물어.”

텁!

와지직!

박정기가 굳어 버렸다.

큰 충격을 받은 듯 번쩍 들었던 의자를 그대로 놓았고, 그게 떨어졌다.

정확히 정수리로.

쿵.

그럼에도 비명 하나 들리지 않았다. 무릎 꿇고, 뒤로 넘어갈 때까지 찍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꽉 다문 입 사이로 피까지 뿜어지는 상황!

곧 누군가의 신고로 경찰들이 찾아왔다.

박산기와 박정기는 앰뷸런스에 실려 갔고, 황당하게도 나만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직원들이 난동의 원인이 나와의 말싸움이라고 했으니까.

어째, 참 거지 같은 하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