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그럼, 실례 많았습니다.”
“아, 아닙니다. 혹시 가시는 길 불편하시면 모셔다 드릴까요?”
이 아저씨가 미쳤나!
나보고 경찰차 타고 가게로 가라고?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오해받기 딱 좋았다. 소곤소곤 입소문에 손님 발길 떨어지면, 통장에 펑펑 꽂히던 게 피시시식 꺼질 테니까.
어이없다는 내 표정을 본 걸까?
한쪽 어깨에 무궁화 네 개씩 박혀 있던 아저씨가 갑자기 당황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저엉말 괜찮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교통 통제를 해서라도 바로 집까지…….”
“그만!”
“옙!”
대체 한 지역구의 경찰서장이란 사람치고는 반응이 너무 과했다.
물론 내가…… 정확하진 않지만 눈앞의 아저씨보다 직급상 세 단계인가 높을 거다.
공식적으로는 헌터청 특무 이사로 등록되어 있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경찰서장이 저렇게까지 하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숨 걸고 나라를 지킨 게 저런 꼴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 없는 사람입니다.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가는 거죠. 아시겠죠?”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보통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겁니까?”
“무, 무얼 말씀하시는지?”
“……아뇨. 됐습니다. 하여간 앞으로 불필요한 일로 연락 없었으면 합니다.”
“옙.”
“그럼 수고하세요.”
문 앞에서 머리를 숙이자 경찰서장도 당황해하며 허리를 잔뜩 구부렸다.
탁.
가볍게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2초 뒤에야 경찰서장은 몸을 일으켰다.
“후우~ 하아~ 십년감수 했다.”
처음 서장에 부임하자마자 지방 경찰청장이 은밀히 불렀다.
받은 건 경찰서 서장용 단말기 칩.
4계층까지 접속할 수 있는 암호가 내장되어 있어, 공무용 폰에 끼워 사용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건 국가 기밀에 한층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의미였다.
반대로 경보가 온다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이고.
그게, 오늘 반년 만에 처음 울렸다.
누군가 경찰서 내부 네트워크로 특별 신분을 조회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바로 정보부장을 호출.
두어 번의 통화 끝에 위치를 확인하고 상대를 조용히 모셔오라 했다.
그사이 경찰서장은 신분 조회 결과를 확인했다.
“헉……!”
현재 대한민국 최고 실세는 헌터청이었다.
밝혀진 예산만 경찰청의 대략 두세 배, 밝히지 않은 부분은 결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 어떤 국회의원도 시비 걸지 못했다. 애초에 헌터청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이미 지옥도로 변했을 테니까.
물론 일반인들을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헌터청의 특무 이사란다.
청장, 부청장, 그다음으로 강력한 실권을 쥐고 있다는…… 그 숫자조차 밝혀지지 않은 신분인 것이다.
한데, 아직 서른도 안 된 뽀송뽀송한 청년이 올라오는 게 아닌가.
하지만 절차는 절차.
기밀 코드가 왔다 갔다 한 뒤 확인이 끝나자마자 전화가 왔다.
경찰청장이었다.
모든 편의를 봐줘라.
그 짧은 한마디에 상황은 끝났다.
상대는 간단하게 당시 내용을 구술을 하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사실 들어 보니 별 내용도 없더라.
어쨌든 CCTV 확인만 하면 끝날 일.
방금 살짝 위협적이긴 했지만 청년은 웃으며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명함을 받았지.
경찰서장은 주머니에서 그걸 조심스럽게 꺼냈다.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010-XXXX-0000
행복 분식 대표, 유현성.
뒷면은 더 황당했다.
-본 쿠폰을 제시하시면 음료 or 매실꿀차 한 잔을 무료로 드립니다.
* * *
“에이, 쪽팔리게.”
경찰서를 나오자마자 실책이 떠올랐다. 경찰 아저씨가 갑자기 명함을 주자 엉겁결에 습관적으로 쿠폰을 내민 것이다.
아무래도 몸에 밴 장사 습관 때문인 것 같다.
“뭐, 이름도 연락처도 있으니 명함이 맞긴 하지. 암, 그건 명함이 맞아!”
리모델링 직후, 곽준열 삼촌이 명함을 하나 해주긴 했다. 이후 오픈하면서 이래저래 뿌렸고, 요리 대회 때 교환하면서 거의 다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그게 크게 신경 쓰이진 않았다. 솔직히 집-가게-집-가게가 일상적인 코스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없다 생각해서 새로 파지 않은 것이다.
“2호점 오픈 준비하려면 필요하긴 하겠어. 그건 그렇고…… 머리 아프네.”
홧김에 힘을 쓰는 바람에 미묘한 조절에서 실패를 하고 말았다.
난폭하게 위협을 하긴 했지만 상대는 사람이었다.
게이트 안에서 싸웠던 마수들과는 엄연히 다른, 그저 연약한 존재에 가까운.
평소에 마력을 OFF 시키고 다니는 게 그래서였고.
“아무리 개망나니라도 좀…… 신경 써야겠어. 문제는 그 이후란 말이지.”
경찰과 김 원장이 동시에 가게로 들어왔다.
앰뷸런스까지 와서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졸지에 가해자로 몰리기까지 했다.
지구대에서 동창 얼굴 확인하고 간단히 조회.
진술서만 쓰면 나갈 수 있다고 해서 뭐라 뭐라 불러주는데, 정신 차려 보니 경찰서장 방이었다.
간단히 처리하고 나온 상황이었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느껴지는 ‘위화감’이었다.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가?”
혹시나 다시 한번 톡 내용을 확인하는데 정말 별것 없었다.
일단 박수기가 보낸 연락은 이러했다.
박정기는 진정제를 맞고 자고 있다고 했고, 반대로 박산기는 바로 깨어났단다.
다만 당분간 면회가 어려울 것 같다며 자신을 통해서만 연락해 달라고 했다.
“다행이긴 다행인데…… 이거 마무리가 너무 찜찜하네.”
박산기는 다시는 이번 같은 일은 없을 거라 단언했다. 비슷한 레시피라면 과감히 포기하겠다고 약속까지 해준 것이다.
날 선생님이라 부르는 박수기는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했으니 역시 문제거리는 아니었다.
김요성은 대화를 나눈 그날 저녁 바로 1억 천만 원을 보내왔다.
‘필요 경비+레시피 가격’이라면서.
나중에 형식적인 서류를 보내줄 테니 서명만 해달라고 하더라.
“확실히 남는 장사이긴 한데…… 으아악!! 모르겠다.”
게이트란 미지를 접하게 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 하지 마라.
차라리 그 시간에 고기라도 한 점 더 뜯는 게 인생의 진리다!
* * *
“좀 덥네. 호석아, 지금 몇 도냐?”
“밖은 39도랍니다. 진짜 올 여름 너무하네요.”
폭염이 쏟아진 건 7월 초부터였다.
이후,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온도가 내려가지 않았다. 야금야금 35도를 넘기더니 40도를 목전에 두었던 것이다.
“그래도 부산은 바람이라도 많이 불어서 다행이지. 어휴~ 저, 내륙 불반도는 죽어나겠구나.”
대구에서 춘천까지 직선을 그었다 쳤을 때, 그 라인 인근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춘천 44도를 시작으로 비슷한 온도로 쭈욱 내려오는데 대구에서는 무려 49.5를 찍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건, 비가 오지 않아 습하지 않다는 것과 바람이 제법 선선하게 분다는 점이었다.
“진짜 헬지옥이 온 건가?”
“형님은 천국 아닙니까?”
“내가?”
“저 위에 엄청 시원하다면서요? 아름다운 엘프들도 많고.”
“맞다. 시원하다. 그리고 인간들의 미적 기준이라면 다들 아름답지.”
“아! 깜짝이야. 조온달. 기척 좀 내고 다녀.”
어느새 정호석 뒤에 조온달이 있었다.
얼음 가득한 믹스 커피 세 잔과 함께.
“더울 땐 아이스 커피믹스가 최고지. 마셔라.”
조온달은 컵 두 개를 무심히 툭툭 내려놓더니 남은 한 잔을 들고 의자에 살포시 앉았다.
“야. 왜 너만 빨대냐?”
“실수로라도 튈까 봐.”
“그럼 나는?”
“넌 앞치마. 난 흰 셔츠.”
하여간 얄밉게도 말하는 놈이었다.
저 모난 성격으로도 행복 분식 식구들과 잘 어울려 다니는 게 신기하긴 했다. 이상하게 누구도 싫어하지 않았던 거다.
확실히 고민되긴 하네.
한동안 일주일에 최소 사흘, 혹은 그 이상 엘리오스 마을에 머물러야 한다.
때문에 나 대신 행복 분식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
일종의 임시 점장이라고나 할까?
미엘과 리엘, 로엘은 돌아간다고 했지만 의외로 조온달은 남고 싶다고 했다.
좀 더 세상을 알고 싶다나 뭐라나.
그게 자신의 의무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의심이 갔다. 우리 가게에서 제일 소맥을 잘 마는 놈이 조온달 저 녀석이었으니까.
와그작, 와그작.
정호석의 입에서 얼음이 아작 나고, 조온달은 그걸 보며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보니 미녀와 야수 같기도 한 조합이네.
“잠시, 시간 좀 되는가?”
“어? 대표님께서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특히나 이 계절, 아니 이런 날씨에요.”
“산타처럼 살쪘다고 놀리는 건가?”
“하, 죄송합니다.”
김요성은 고개를 돌려 조온달을 쳐다봤다.
“거기 잘생긴 총각. 혹시 아이스 믹스 좀 부탁해도 되겠는가?”
오히려 조온달은 말없이 날 쳐다봤다.
허락을 구하는 의미겠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자 조온달과 정호석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자리를 피해주자마자 김요성이 맞은편에 앉았다.
솔직히 썩 편한 관계는 아니었다.
하지만 1억 입금 이후로는, 적어도 불편하게 대화할 상대는 아니라는 게 느껴지더라.
김요성에 대한 기준을 잡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사업가.
딱 그 정도로만 보기로 했다.
“그래, 소식 들었지?”
“예. 간간이 연락이 오긴 옵니다.”
박수기는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소식을 전했다.
일단 박정기는 큰 부상 없이 의식을 회복했다.
유일한 피해는 치아를 틀니로 바꿔야 했다는 것.
누구한테 맞은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게 이를 악무는 바람에 치아 전체가 산산조각이 났단다. 앞니 일부만 멀쩡했는데, 하는 김에 전부 갈기로 했다고.
순간 뜨끔했지만, CCTV에는 혼자 발광하다 쓰러진 걸로 나오니 문제될 건 없겠지.
문제는 그 이후.
박정기가 이상하게 고분고분하다고 했다.
사람이 갑자기 바뀐 건지, 아니면 그게 원래의 성격인 건지는 모른다. 어쨌든 순둥이가 되어서 헤헤 웃고 다닌다니 나쁜 건 아니겠지.
“궁금한 게 있네. 어떻게 한 건가?”
“뭘요?”
“박정기!”
“CCTV 보셨다면서요. 혼자 발광하다 필름이 끊긴 겁니다.”
“잡아떼지 말게. 자네가 대단한 헌터란 사실을 알고 있어.”
“이건 그 건과 무관합니다. 전 딱히 뭔가를 하지 않았어요. 그저 정당한 시식평…… 아…… 생각하니 또 토 나오려고 하네.”
“그만큼 끔찍했나?”
“예. 특히 그 어묵은…… 악마가 씹다 뱉은 껌 느낌이 식감이라고나 할까. 소름 끼칩니다.”
진짜 팔에 닭살이 돋는데, 그걸 본 김요성도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 잠시 상상해 본 모양이다.
“어쨌든 박정기는 실형은 피할 수 없을 거야.”
“다 자업자득이죠.”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경찰서장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경찰들이 와서 왕왕 떡볶이를 샅샅이 뒤졌다고 했다. 그러다 가게 화장실 휴지통 안쪽에서 주사 바늘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거기서 박정기의 지문이 나왔다.
도박 중독에 마약까지 손댔으니 실형은 당연하겠지.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황 실장 말과 너무 달라서.”
“누군데요?”
“황무기 헌터라고 모르나? 자네랑 아주 친했다고 하던데?”
“모릅니다. 제가 아는 애들은 얼마 안 되고, 반대로 저를 아는 사람이 몇만…… 지금 뭐 하자는 거죠?”
“미안하네. 괜히 떠보려고 한 게 아니라 내 작은 호기심이 툭 튀어나온 거라네. 사과하지.”
김요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려 하자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그래? 그럼 앉겠네.”
“와, 태세 전환이 무척 빠르시네요.”
“그래야 살아남는 게 사업이란 놈이거든. 허허.”
김요성은 그렇게 말한 뒤, 빙긋 웃었다.
“어쨌든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네.”
“또, 뭘요? 며느님 일 때문에요?”
“아니.”
때마침 조온달이 테이블에 아이스커피 믹스를 내려놨다.
돌아가는 걸 확인한 뒤에야 김요성이 말하더라.
“자네 덕에 SF 푸드를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