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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70화 (70/156)

70화

데에에에엥-

머릿속에서 큰 종이 울리는 것 같았다.

그 여운이 한참이나 이어지는 가운데, 그때 느꼈던 ‘위화감’이 떠올랐다.

안 그래도 이상하긴 했다.

왜 왕푸짐 브랜드 일에 김요성이 돈을 대는가 싶었다. 단순히 사돈, 아니, 며느리 일에 쓰기에는 너무 큰돈 아니겠는가.

특히 이상했던 건 박산기였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던 사람이 김 원장을 물리고 오히려 내 시중을 받았다.

쓰러졌을 때 잠시 마력을 불어넣었었다.

그런데 병약한 신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더라.

당시 경황이 없어 깊게 생각하진 못했는데 적어도 당장 죽을 상태는 아니란 거였다.

그 외에도 미묘하게 거슬리는 게 있었다.

박수기는 자신을 푸드 컨설팅해 주러 온 사람으로 알고 있었으며, 끝까지 선생님이라 불렀다.

아, 이 부분은 괜한 오해일 수도 있으니 빼자.

하여간 내내 거슬리던 게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그럼 이예지는 뭐지?

분명 김요성 대표한테 가보라고 한 건 그녀였을 텐데?

“표정을 보니 뭔가 오해하는 모양이군.”

“너무 뜬금없어서 그럽니다. 황당하기도 하고. 아니, 이야기 전개가 왜 거기까지 갑니까? SF 푸드를 얻었다고요?”

“정식으로 인수한 건 맞아. 산기가 나한테 팔아넘긴 거지. 이제 은퇴하고 근처에서 전원생활이나 하겠다더군.”

“오늘내일 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흐음, 수술이 아주, 아주 잘됐어.”

김요성이 슬쩍 고개를 돌리는 걸 보니, 더 묻지 말라는 의미다.

하아.

어쨌든 얼굴 아는 사람이니,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좋은 거겠지.

하지만 속았다는 부분에서 약간 짜증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게. 죽기 직전까지 갔던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다행히 요양만 잘하면 앞으로 사오 년은 거…….”

“됐고요. 내막이나 속 시원히 이야기해 주시죠? 저 바쁩니다.”

후딱 들을 이야기만 끝나면 내쫓아 버릴 생각이었다.

김요성은 아이스 믹스를 한 모금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SF 푸드에 대해 이야기는 해줬으니 알 거고. 애초에 나 역시 지분이 있었네. 따지면 공동창업자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어, 어라? 그렇게 보면 맞기는…… 하네요.”

“박산기가 30%, 내가 20%, 다른 친구가 20%을 가졌고, 나머지는 자식들이 조금씩 들고 있었다네. 정기가 10%, 희영이, 그러니 내 며느리가 10%에 박수기가 10%였지. 막내는 예외고.”

“그럼 후계 싸움에 걸린 게 지분이었단 말이군요.”

“맞아. 하지만 의미 없는 짓이지.”

김요성의 목소리가 건조해졌다.

갑자기 뭔가 싸한 게 느껴졌다.

“왜…… 그런 겁니까?”

“나와 우리 희영이를 합치면 30%일세. 이미 다른 친구 놈 지분도 내가 가져왔으니 50%이지. 여기에 박수기도 내 편이야.”

순간 소름이 돋았다.

박수기도 김요성 대표 사람이라고?

이건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박수기를 도와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한 건 김요성 대표였다. 오히려 박산기는 그에 대한 부분에선 일절 이야기가 없었다.

그럼 그 이전부터 박수기는 김요성과 손을 잡았다는 게 맞겠지.

여기서 더 나가면, 어쩌면 박산기의 두 동생도 김요성 편일지도 몰랐다.

어쨌든 지분이 60%이면 과반이 넘어간다.

즉, 김요성이 원하면 언제든 SF 푸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돌아선 이유가 뭡니까?”

“박산기 이 친구가 너무 장남만 싸고돌았거든. 그래도 사업은 강단 있는 놈이 물려받아야 된다고 생각한 거지. 그래서 정기 그놈이 정신 차릴 때까지 기다리려고 한 거야.”

김요성은 다시 한번 아이스 믹스를 마신 뒤, 한숨을 내쉬었다.

“어릴 때부터 싹수가 노란 놈이었어. 안 될 놈은 파내야지, 그걸 왜 미련하게 붙들고 사고 칠 때마다 수습해 주는지.”

“그래서요?”

“그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소외감이 들 게 아닌가. 제일 열심히 일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말이야.”

“아무래도 좀 그렇겠죠.”

“나도 참다 참다 한 소리 했다네. 막내 놈이라도 창고로 보내라고. 그래야 큰놈이 경각심을 가질 것 아니겠냐고 했지.”

“흐음.”

“산기 녀석이 끝까지 반대해서 유야무야 넘어가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또 한 번 크게 사고를 치더군. 그 결과는 자네도 알 거야.”

“그 싸대기 폭풍 연타 말이군요?”

“맞아.”

하긴 그래도 자식은 자식이다.

아무리 열받았다 해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두들겨 패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이다.

더욱이 그걸 회사 홈페이지에 공개까지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그땐 재떨이까지 집어 들었다.

“그걸 보면서도 정기 놈은 느끼는 게 하나도 없는 모양이더군. 심지어 약까지 손 대다니…… 결국 나도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네. 놈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박정기가 대표님에게 제안을 했다고요?”

“자신의 지분을 25억에 사달라고 하더군. 그렇게 하겠다고 했네.”

헐, 무슨 복마전도 아니고.

이건 가족끼리 서로 믿지 못하고 통수 칠 준비를 했던 게 아닌가.

물론 그 선의 대부분이 김요성과 닿아 있었다.

“가만? 그럼…… 70%나 되잖아요.”

“맞아. 대신 조건을 걸었지. 내가 SF 푸드를 인수하면 준다고.”

“아…….”

이제 대부분의 의문이 풀렸다.

박정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25억을 받을 생각에 고삐가 풀렸을 거다.

하지만 김요성은 꼼짝도 하지 않았겠지.

이미 60%나 되는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니 의미가 없을 테니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박정기는 초조해졌을 거다. 그러니 아버지 눈에 들기 위해 뭐라도 해보자 한 거겠지.

그 결과가 행복 분식의 카피, 양념어묵덮밥이었다.

이후, 꼬이고 꼬인 상황에서 내가 끼어들어 불을 질러 버렸다.

묵혔던 폭탄들이 연쇄적으로 파파팡!! 터진 것이다.

“참 허탈하네요. 따지면 저 혼자 놀아난 격이군요.”

“아니야. 난 진심으로 자네에게 고마워하고 있네. 튀김 덮밥과 냉라면은 앞으로 왕푸짐 브랜드의 중심이 될 거야. 기존의 ‘저가의 양만 많은 분식집’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라네.”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절 끌어들인 겁니까?”

“크허흠. 결론은 그렇게 되긴 했네만, 다시 말하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어.”

김요성이 슬쩍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딱 보니 100%였다.

특히 처음부터 ‘는’에서 목소리가 떨렸던 게 확실히 느껴졌던 것이다.

처음이 아닐 순 있지만, 작정한 건 맞겠지.

“그럼 이예지 대표는 뭡니까?”

“말하기가 조금 곤란한 내용일세. 하지만 결코 자네에게 나쁜 일은 아니야.”

“더 폭발하기 전에…… 말씀하시죠. 평생 틀니 끼고 싶지 않으으으면…….”

순간 빡쳐서 내뱉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이건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는 꼴 아닌가.

“후우~ 협상을 맺었네. 자네가 곤란할 때 이예지 대표 선에서 처리하기 어렵다면 내가 도와주기로.”

“나쁜 내용은 아니네요. 그걸 나도 모르게 한 건, 왜죠?”

“잠정적인 동맹이니까.”

김요성이 짧게 설명을 했는데 좀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서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냥 미래를 생각해서 서로 간의 선을 그었다 정도?

“복잡하군요.”

“세상 일이 다 그렇지. 하지만 풀어서 보면 또 별거 없는 게 이쪽 일이고. 어쨌든 박정기 놈은, 마지막 기회까지 망쳐 버렸으니, 이제 되돌릴 수 없다네.”

“박 사장님은 정말 허탈하겠네요. 따지면 자식들 중 자기 편이 하나도 없었던 거잖아요.”

“그 정도나 되니 회사를 팔기로 한 거지. 그래도 공식적으로는 박수기가 사장 자리에 오르는 걸로 해줬네만.”

“일단은 해피엔딩인 건가요? 그래 봐야 어차피 대표님 회사일 텐데?”

“아무리 나라도 거기까지 세세하게 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네. 녀석이 하는 거 봐서 조금씩 지분을 넘겨줄 계획이야.”

오올~ 이건 진심인 것 같았다.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고, 나름 목소리에 힘도 실려 있었다.

“그건 제수씨하고 약속한 게 있어서라네.”

“제수…… 씨요?”

“사별한 산기 부인이지. 정희수 여사라고, 아,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애들 이름도 한 글자씩 따서 지은 거라네.”

“헐.”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진짜 본론으로 들어가지.”

“아직도 남은 게 있습니까?”

“이번엔 사업 이야기라네.”

어, 어라?

갑자기 김요성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방금 전까지는 뭔가 아련했는데, 갑자기 칼날처럼 돌변한 것이다.

“자네가 식당부 장관이라지?”

* * *

“미친!”

대가리에 쥐가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당장 할 일도 천지인데, 김요성은 황당한 제안을 해왔다.

첫 번째가 SF 푸드 사외 이사직이었다.

하는 일은 별것 아니라며 그냥 상반기, 하반기 단위로 신메뉴 개발을 도와달란다.

생각해 보니 별것 아닌 게 아니었다.

말이 좋아 신메뉴 개발이지, 거의 몇 달을 머리 쥐어뜯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 돈이 요물이었다.

솔직히 조금 갈등되더라.

연봉은 5억.

출퇴근 필요 없음.

월 1회 정기 회의만 참석하면 됨. 아니, 귀찮으면 그것도 빼준다고 했다.

일단 이번 ‘튀김 덮밥’이 대박을 쳤기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했다. 특히 박수기는 박수까지 요란하게 쳐가며 찬성했다고.

당연히 받아들…… 이기 직전에 가까스로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난 행복 분식을 운영하면서 나 스스로 행복해지는 게 첫 번째였다.

그다음은 내 식구들이 잘되는 것이었다. 그래야 손님들도 그 기운을 받아 행복할 게 아닌가.

단순한 메뉴 개발은 그 기준과 조금 거리가 있더라.

일단 고사하겠다고 하자, 김요성은 약간 삐친 것 같았다.

두 번째 제안은 약간 충격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정보를 얻었는지는 끝까지 밝히지 않더라.

다만, 엘리오스 마을에 같이 손잡고 들어가자고 했다.

솔직히 엘리스와 이야기를 나눴을 때 이 부분이 걱정되긴 했다.

행복 분식은 메뉴가 적었다.

특제 행복 라면, 행복 불라면, 기본 김밥, 장어묵덮밥에 냉라면, 그리고 얼마 전 마무리 지은 매운 냉라면까지.

따지면 고작 6개에 불과했다.

김요성 대표가 말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생긴 이종족 마을.

더욱이 그 종족이 엘프라면?

그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찾아올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최소 일일 방문자를 만 명 이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식당부 장관으로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더라.

여기서 놀란 건, 프리미엄 분식 체인 하나가 김요성 대표의 소유라는 점이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3대 주주 정도?

어쨌든 제법 발언권 있는 자리에 있다고 했다.

-본성 푸드가.

기본 김밥이 3,000원부터 시작하는데 퀄리티는 갑 오브 갑이었다. 미끼 상품인 게 어이가 없을 정도로 맛과 크기에서 기존의 분식집들을 압도했던 것이다.

여기에 해물 라면, 황금 우동, 모듬 라볶이가 유명했고, 특이하게도 간짜장 스타일의 짜볶이는 마니아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또 돌솥 비빔밥 쪽은 메뉴가 무려 여섯 개나 되었다.

기본 돌솥을 기반으로 김치 제육, 간장 불고기, 폭탄 알밥, 참지마요, 제대로 불닭 돌솥까지 모두가 안정적인 판매를 자랑했던 것이다.

그 외 돈까스를 비롯, 분식류로 포함되는 메뉴들도 제법 됐다.

즉, 본성 푸드가 하나만 제대로 입점해도 어지간한 메뉴는 다 커버된다는 의미였다.

유일한 구멍은 바로 라면.

김요성이 솔직히 이야기하더라.

기를 쓰고 나를 끌어들이려는 것 중 하나가 그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서라고.

“하아, 확실히 끌리는 제안이긴 한데.”

“저한테 좀 끌리면 안 돼요?”

“엘리스. 너까지 날 괴롭히려는 거냐?”

누군 생각할 게 많아 거실 구석을 뒹굴거리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엘리스는 감자 과자나 먹으면서 그걸 직관(?)하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복잡한데요?”

“너! 바로 너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전 항상 열려 있거든요? 언제든 오기만 하면 된다고요.”

“으으으. 그게 아니라고. 아니야. 정말 아니야!”

바닥에 대자로 누워서 머리만 마구 흔들었다.

그러다 뭔가를 느낀 듯 벌떡 일어났다.

반쯤 감은 엘리스의 몸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불길함은 느닫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이윽고 엘리스의 자그마한 입술이 달작거렸다.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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