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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71화 (71/156)

71화

검? 검이라고?

이게 보통의 헌터들이라면 무기를 생각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엘프, 아니, 엘리스의 기준이라면 해석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상황을 보면 단순히 ‘무기’라기보다 어떤 ‘의미’라고 보는 게 맞겠지.

벤다. 가른다. 혹은 단절시킨다 정도.

“어?”

엘리스의 머리가 앞뒤로 휘청거렸다.

딱딱한 거실 바닥이니 저대로 쓰러지면 위험하다 싶은 순간, 몸이 저절로 반응했다.

미끄러지듯 움직여 엘리스를 받아냈다.

그 직후,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오로라…… 코오오…… 크으으…….”

헐.

뭔 소린가 싶은 순간, 엘리스는 진짜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물론 길어야 10여 분 남짓이겠지만 조금 난감했다. 쪼끄만 할 때는 애 재우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뭔가(?)가 달랐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깨웠다간 더 길게 잘지도 몰랐다. 자다 중간에 깨면 더 피곤한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이대로 있는 게 최선이긴 한데.”

공식적인 여왕 즉위식은 기약 없이 미뤄지는 상황이었다.

그 이유는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게이트가 안정적으로 바뀌고, 그 직후 고위직에 오른 이들이 너무 미적거렸던 것이다.

“아마도 이권 싸움이라는 건데…….”

일전에 고요환이 경고해 준 대로, 헌터청은 여러 갈래로 쪼개진 상태였다.

물론 실질적인 무력이야 장악하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 칼날의 방향을 제시해야 할 놈들끼리 박 터지게 머리끄덩이 잡아가며 싸우는 중이란다.

떨어지는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기 위해서.

“자기들끼리 지지고 볶는 건 이해하겠는데 애먼 사람이 피를 보네.”

그런 걸 보려고 그 고생한 게 아니었다.

“정말 한 번 엎어야 하나?”

“으으…… 으음음.”

“헙, 그, 그러지 말라고?”

“으응…….”

분명 자고 있는데, 어째 목소리에 반응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내 가슴에 이마를 기댄 채 천천히 도리도리하더니, 묻자마자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지막한 코고는 소리.

“그래, 알았어.”

습관처럼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마치 웃는 것처럼 보였다.

일정이 미뤄진 만큼 엘리스는 종종 찾아왔었다. 특히 이번처럼 심란한 상태로 귀가하면 꼭 거실에서 뒹굴고 있더라.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그러는지는 알 수 없지만.

뭐,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

엘리스가 말하길, 즉위식은 좀 미뤄져도 괜찮다고 했다.

어차피 자신들은 인간들과 다른 시간대에 살기에 여유롭고, 진짜 종족의 즉위식은 이미 끝났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이미 세계수를 얻었다.

종족을 이어갈 수 있게 됐으니 오히려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나.

특히 엘리스와 장로들 입장에서는 마음속의 큰 짐을 내려놓은 셈이었다. 그러니 형식의 소소한 귀찮음 정도는 개의치 않는다는 식.

“싸움 안 나서 다행이긴 한데…….”

갑작스러운 예언의 발현이라니, 살짝 불안하긴 했다.

엘리스는 결코 좋은 일은 입 밖에 내는 법이 없었으니까.

잠시 졸고 있는 엘리스를 쳐다봤다.

본성 푸드가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당장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김요성 대표는 몇 가지 조건도 달아줬다.

내가 원한다면 메뉴를 조정해도 된다고 말이다. 1차로 여섯 개의 가게들이 들어오기로 했으니, 형평성에 맞게 조율해도 된다는 것.

“일단 두 곳은 확정됐고.”

행복 분식과 쿠폰 제휴를 하는 가게들이 있었다.

일단 폭식 자매의 ‘펑펑 크레이프’와 핫도그 사장님의 ‘초월 핫도그’.

우리 가게와 메뉴가 겹치지 않았고, 두 가게 다 디저트 방향이라 포장 판매에 강점이 있었다. 해서 슬쩍 제안을 해봤는데 반드시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어…… 가만? 뭔가가 연결되는 것 같은데?’

핫도그 사장님 뒤에는 김요성 대표가 있었다.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고 있었으니 정보가 흘러가도 이상하지 않을 터.

“끄응, 이건 진짜 생각지도 못했는데, 거기서 거기로 가다니. 일단 주의를 주긴 해야겠어.”

도리도리.

“아, 하지 말라고?”

끄덕끄덕.

“너 솔직히 안 자지?”

코오오. 크으으…….

살짝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엘리스는 깨어나면 기억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마 지금은, 예언의 잔향에 취해 반응하는 것일 터.

그럼 혹시 이런 건 되려나 모르겠다.

그러니까…….

“엘리스, 우리 메뉴 바꿀까?”

* * *

“오늘은 회식이닷!”

“오오예에에에에.”

“치킨 먹읍시다, 치느님을 영접하고 싶어요!”

“회식에는 삼겹살이지. 대패 삼겹, 냉삼겹, 생삼겹, 통삼겹, 실로 삼겹살 천하로다.”

“곱창 먹어요. 오늘 양념 곱창이 먹고 싶다고요.”

“능이버섯 백숙!”

갑자기 가게가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에 조온달이 있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팔짱을 낀 자세로 말이다.

“그, 그저 색다른 게 먹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메뉴도…….”

“그럼 패스. 형님, 이번에 제가 좋은 가게를 알아놨는데요. 직화 회전구이입니다.”

“회전구이?”

“예. 양꼬치집처럼 되어 있는데 여기에 삼겹살하고 수제 소시지, 목살 같은 걸 꼽아서 구워줘요. 스윽 빼서 삭뚝삭뚝 자르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습니다.”

“오, 신기하네.”

“직접 안 구워도 되니까 편하고요. 중요한 건 기름이 안 튄다는…….”

“찬성!”

또다시 가게가 조용해졌다.

역시나 주인공은 조온달.

“그저 깔끔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한 번 가보자. 이것저것 많이 먹어 보는 것도 요식업하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재산이니까.”

“그럼 미리 예약하겠습니다.”

정호석이 나름 적극적으로 말하니 어느 정도 믿음이 갔다.

배신까지 걸린 시간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정호석은 가게에 입장하자마자 거기 사장님을 삼촌이라고 불렀다.

* * *

지글지글지글~

테이블 여덟 개의 그리 크지 않은 고깃집.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휘이잉…….

마치 황량한 바람이 부는 느낌.

그나마 다행인 건, 털이 북슬북슬한 남자 사장한테서 발랄함이 전해진다는 점이었다.

일종의 긍정 에너지라고 할까.

“호석아. 어떤 분이시냐?”

“제 요리 스승님 중 한 분입니다. 전역하고 취사병 동기네 집에 놀러 갔는데 거기 주방장을 하고 계셨습니다. 덕분에 잠시지만 일도 하면서 많이 배우게 됐죠.”

“혹시 진짜 삼촌은 아닌 거지?”

잠시 정호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긴 나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그런 소리를 많이 한 모양이었다. 정호석이 산적 두목이면 저 사장님은 오크 부족 대장 같았으니까.

“크흠, 요리 솜씨 하나는 믿으셔도 됩니다. 정말입니다. 지인이라 팔아주러 온 건 아닙니다.”

“그래? 그렇게 자신 있어?”

“예. 여기 오픈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좀 휭해 보이는 겁니다. 한 달만 지나면 금방 찰 겁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왔으니까 맛있게 먹자.”

그러면서 주방 쪽을 쳐다봤는데, 미묘한 뭔가가 전해졌다.

“자, 나왔습니다.”

도마만 한 크기의 쇠로 된 사각 트레이가 테이블에 올랐다.

거기에 콩나물과 김치, 파절이가 있었고 중간에는 감자와 단호박, 팽이버섯이 상단에는 파전과 호박전이 보였다.

고기가 익기 전에까지 맛보라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독특하네. 이렇게 완전 한판 스타일은 요즘 보기 드문데 말이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장은 커다란 쇠꼬챙이 두 개를 가져왔다. 거기에는 반쯤 초벌된 두툼한 삼겹살이 끼워져 있었다.

사장이 사각 트레이 좌우에 쇠꼬챙이를 놓자, 뭔가 톱니처럼 생긴 게 빙글빙글 돌아가더라.

“이미 초벌된 7미리 통삼겹입니다. 7분 정도만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호오…… 이거 신기하네요. 철판 바깥에 왜 틈이 있나 했더니 이 사이로 불이 올라오는군요.”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해보려고 주문 제작했습니다. 보는 재미도 있고요. 제가 와서 잘라드릴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사장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었다.

순식간에 삼겹살과 싸 먹을 수 있는 야채 초무침과 폭탄 계란찜이 나오고, 서비스라며 음료수까지 각 테이블에 놓이더라.

“와, 타이밍도 기가 막히네.”

계란찜이 놓일 때, 삼겹살이 노릇노릇 제대로 다 익었다.

아마도 철저히 계산된 게 분명하겠지.

사장은 쇠꼬챙이에서 고기를 조금씩 빼서 잘라 사각 트레이 중간에 쌓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쌓이는 삼겹살은 군침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자~ 다들 먹자.”

탓, 타타타탓!!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젓가락 신공이 펼쳐졌다.

그걸 보니 흐뭇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잠시지만 당분간은 행복 분식 2호점에 집중하기로 했다. 즉 한동안 출근하지 못하니 온전히 이들만으로 운영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임시지만 점장을 뽑아야 했다.

누군가가 구심점이 되어야 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앞서서 처리해야 했으니까.

물론 이미 결정은 내렸다.

다만 공식적인 절차가 필요한 것도 사실.

원래라면 정호석이 딱이긴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녀석은 사양하더라.

아직 주방을 마스터하지 못했다며 숙련 수준을 넘어 나처럼 물 흐르듯 동시에 이것저것 해낼 때까지 좀 더 집중하고 싶단다.

그다음은 임혜리나 임수원이었는데, 말도 꺼내기 전에 덜컥 겁부터 냈다.

점장은 못하지만 다른 거 열심히 할 테니 제발 쫓아내지만 말라고 매달리는데, 그런 거 아니라고 설득하느라 한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

역시 아직 애들이긴 하지.

이호영은 말 꺼내기도 전에 거절.

미엘과 리엘, 로엘은 마을로 돌아가야 하니, 안 되고 남은 건 조온달 저 재수 없는 새끼뿐이었다.

점장 제안에 툭 한마디 하더라.

“그런 건 어렵지 않습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뭔데?”

“시간 날 때 맛집 투어 다니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그걸 왜 내 허락을 받느냐 했더니, 무조건 그래야 한다고 떼를 썼다.

안 그래도 라이노스 장로가 새 지팡이의 위력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고, 처맞을 수 있으니 내 허락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나 역시 조건을 달았다.

“뭡니까?”

“행복하게 일하라는 거지. 좀 웃고 다니라고.”

“……예.”

그래서일까?

조온달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소맥을 말더니, 짠 하고 마시자마자 크아하~ 하고, 환하게 웃었다.

평소보다 무척이나 밝아 보였다.

“자자~ 마셔, 마셔.”

“삼겹살 추가. 수제 소시지도 추가요.”

“버섯구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시켜, 시켜.”

회식이 이어지는 중에도 틈틈이 주방을 살폈는데, 정말 호석이 말대로 사장의 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특히 이런 방식의 단점을 초벌구이 하는 걸로 상쇄하고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더라.

잠시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렸다.

주문이 들어오면 생고기부터 오븐에 집어넣고 10분을 맞춘다.

그사이 파전과 호박전을 지지고, 커다란 트레이에 각종 밑반찬을 올린다.

아마 전 종류는 미리 해놨을 테니 오래 걸리진 않겠지. 데우기만 하면 되니까.

그렇게 판이 다 되면 테이블로 내오고 다시 들어가서 고기를 뒤집고 5분.

그사이 계란찜과 초무침 준비를 하고, 이번에는 고기를 꼬챙이에 끼워서 손님들 보라고 가져온다.

다시 들어가서 계란찜과 초무침을 완성시킨 뒤, 테이블로 와서 고기를 잘라준다.

“확실히 대단하네. 몇 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걸 실력으로 다 커버하고 있어.”

일단 처음에 음식 나오는 게 늦은 편이다.

테이블은 여덟 개지만, 혼자서 음식하고 서빙하고 고기까지 직접 잘라준다는 건 체력적으로도 쉽진 않을 터.

지금이야 초창기니 어떻게든 버티겠지만 직원을 쓰지 않는다면 오래 장사하기는 힘든 방식이었다.

“형님. 무슨 생각하시는 겁니까?”

“네 말이 맞다고.”

“예?”

“저 사장님. 대단한 실력을 가지신 분이시네. 이런 방식은 어지간해서는 힘들거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장이 달려들 듯이 다가왔다.

“하하, 알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여기 추가 주문, 그리고 서비스 나왔습니다!”

쇠꼬챙이 네 개를 툭툭툭 투욱, 놓더니 갑자기 나보고 윙크를 하며 손목을 까딱거렸다.

잠깐 나가지 않겠느냐는 신호였다.

“아, 예.”

“주방으로 오세요.”

“예?”

대답도 안 듣고 사장은 주방 안으로 대뜸 들어가 버렸다.

지인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방은 남의 집이나 다름없었다.

허락이 있었다고 해도 조심스러워야 하는 법.

“실례합니다.”

“하하. 너무 격식 차릴 필요 없습니다. 김윤희라고 합니다.”

“유현성이라고 합니다.”

“솔직히 꼭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우리 호석이랑 호형호제하기로 했다면서요.”

“아, 네.”

김윤희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고맙습니다. 당신 덕에 저도 제 가게를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엉? 이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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