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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72화 (72/156)

72화

얼떨떨한 것도 잠시.

악수한 손을 떼는데 뭔가가 느껴졌다.

투박하단 말이 어울릴 정도로 굵은 손가락은 의외로 부드러웠다.

기타리스트의 손 같은 느낌. 수십 번 이상 굳은살이 생겼다가 터지고를 반복한 뒤에야 생기는 새로운 피부 같다고나 할까.

즉, 제대로 된 실력자라는 말씀.

“호석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눈매가 무척 부드러웠다.

덩치나 외형은 진짜 호석이와 피가 이어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만큼 체구가 컸고 골격 자체가 남달랐던 거다.

하지만 오랜 연륜이 만들어낸 인상이랄까?

상대를 더 없이 편안하게 해주는 표정에서 마음이 놓이더라.

결론. 이 사람은 정호석 타입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믿을 수 있는 성격이라 보면 되는 거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는데, 상대가 훅 들어왔다.

“사장님 가게 시스템을 조금 베꼈습니다.”

“베꼈…… 다고요?”

“그렇습니다. 미리 이야기드릴까 했는데 좀 애매한 게 있어서 기회가 될 때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뭐지?

솔직히 오늘 회식을 하면서 음식이 나오는 중에도,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분식집과 삼겹살집은 방향성이 전혀 다르지 않나?

“대체 뭘 베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가게는 주말 제외하고 딱 하루 열 테이블만 받습니다. 절반 이상은 예약이고요.”

“그게 왜?”

“한정판매죠. 왜 그 생각을 못 했는지…… 호석이한테 듣고 나서야 고기 장사 20년 만에 처음으로 의식이 깨이더군요.”

아.

대충 뭘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깃집은 한정판매 같은 게 없다. 뭉터기 당일 도축 육회나 일부 특수 부위 같은 걸 제외하면, 손님이 오는 대로 받는 방식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건 숙성육 가게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소 3~5일 정도의 여유를 두니 고기가 떨어지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뭐, 한정판매 식당도 드물지만 존재하긴 했다.

특히 고오오급이라 칭해지는 가게들은 그렇게 팔기도 하는 것이다.

대신, 겁나게 비싸지!

“근데, 하루 판매량을 정해놓고 파는 가게들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요?”

“삼겹살집은 그러기가 쉽지 않죠. 그리고 전 고기 양을 정하는 게 아니라 테이블 수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아!”

김윤희 사장이 말하길, 독립할 생각은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단다.

하지만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 고민했는데, 정호석이 술자리서 우리 가게 이야기를 자꾸 하더라고 했다. 거기서 실마리를 얻어 고민하다가 지금의 시스템이 됐다는 것이다.

“원래 고깃집은 처음이 제일 바쁩니다. 기본 상차림에 손이 많이 가죠. 이후에는 고기만 내어주고 추가 반찬은 셀프로 하면 되니 어려울 건 없습니다.”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요.”

“고기야 눈앞에서 익어가는 게 보이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여유롭게 기다립니다. 클레임 들어올 건수가 없다는 거죠.”

“흐음…… 맞네요.”

“안 그래도 혼자서 꾸려 나갈 계획이라 고민을 많이 했는데, 테이블 수만 정해지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싶더군요. 독립을 결정한 게 그래서입니다.”

일단 그 정도로 정해졌다면 혼자서 기본 상차림을 끝낼 수 있었다.

고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 준비하는 양은 기본 55인분.

모임의 경우 평균 1.4인분에서 1.8인분 먹는다는 계산에서 나온 공식이었다.

수제 소시지에 돼지 껍데기 주문은 거의 필수로 따라왔고, 대부분 후식으로 된장라면 혹은 찌개밥까지 추가했으니 양에선 부족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고기 먹고 소시지에 껍데기, 후식 된장밥이면 누구나 배부르겠지.

거기다 처음에 나오는 파전에 호박전, 서비스 메뉴인 비빔만두에나 나올 법한 야채 초무침과 폭탄 계란찜까지 더해지면 결코 양으로라도 적다고 할 수 없었다.

“상차림만 준비되면 손이 가는 게 없다라…….”

순간, 고민거리 하나가 머릿속을 스치다 사라졌다.

뭔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장님 솜씨가 없으면 안 되죠. 솔직히 오늘 음식, 하나하나 다 맛있었습니다.”

“하하! 칭찬 감사합니다. 제가 다른 요리는 잘 모릅니다만 고깃집 관련해서 나오는 건 공부 많이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한 거지만…….”

그러면서 먼저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는데, 조금 울렁거리는 게 있더라.

고등학교 중퇴.

중졸 학력으론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었다고 했다.

결국 아는 사람 소개로 고깃집 불판 닦는 알바부터 시작했다가 주방에 들어가게 됐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아마 그 과정에서 많은 멸시와 고난이 있었을 건 분명했다.

독립을 생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가게 차리는 걸 대체 얼마나 고민…… 하신 거죠?”

“한 7년 정도 될 겁니다. 이게 참 직접 장사한다는 게 엄두가 안 나는 일이기는 하더라고요. 솔직히 경쟁이 너무 치열하거든요.”

일반적인 고깃집은 너무 많았다.

맛은 기본에 특색이 있어야 하고, 후식까지도 염두에 둬야 하는 나름의 코스 요리에 가깝다나.

또 이색적인 볼거리에 차별화까지 추구해야 하는데, 문제는 그걸 혼자 할 수 있는 시스템은 보지 못했다고.

확실히 나오는 게 독특하기는 했지.

처음 나오는 사각 철판 트레이만 해도 시선을 끌었고, 올라간 음식들도 색색의 조화가 상당했으니까.

어쨌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장사 이야기가 즐거웠다.

뭔가 느껴지는 것도 있었고.

그렇게 대화를 하다 보니 순식간에 이십여 분이 훌쩍 지났다. 중간중간 필요한 건 호석이가 알아서 챙겼으니 우리를 찾지는 않았는데, 조금 눈치 보이기는 했다.

그때, 김윤희가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사실, 뵙고 싶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예? 무, 무슨…….”

“저한테 아들 하나가 있는데, 절 닮아서 그런지 좀 사고를 치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시비가 붙었는데…….”

차태명.

이 양아치 새끼들 이름이 여기서도 나오네.

분명 삼차 클랜인가 뭔가 하는 이름을 등에 업고 삥 뜯으러 다녔던 놈들이었지.

“아들 녀석이 이야기를 안 해서 저도 한동안 몰랐습니다. 한 두어 달 정도 괴롭힘을 당했더라고요. 고작 길에서 어깨 좀 부딪쳤다고 치료비를 천만 원이나 내놓으라고 하더랍니다.”

“하, 그래서요?”

“일반인이 각성자를 이길 수는 없죠. 이런저런 알바하면서 조금씩 주고 있었는데, 아들이 돈이 없으니 결국 일하는 가게까지 찾아왔더군요. 저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제가 봐도 어이가 없네요.”

“그렇죠? 하여간 영업에 피해가 되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계속 돌려보냈는데…….”

차태명과 그 일당(?)들이 가게 앞에 죽치고 있었다고 했다.

일종의 영업 방해를 가장한 협박이었다. 심지어 그 짓을 거의 일주일 넘게 했단다.

“그런 타이밍에 호석이가 짠, 하고 나타나더군요. 그랬더니 애 하나가 오줌을 질질 싸고, 다른 녀석들을 겨우 부축해서 사라졌습니다.”

“헐, 그랬나요?”

확실히 죽일 듯 살릴 듯 협박했으니 트라우마는 상당할 터.

거기에 잠깐이지만 레어로 끌고 가서 공포감을 잔뜩 주입시켰다. 다시는 근처도 얼씬거리지도 말라는, 일종의 경고를 준 셈이다.

“그때 호석이가 대략적인 전말을 이야기해 주더군요.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윤희가 다시 내 손을 붙잡는데, 뭔가 찡한 게 올라왔다.

뭐, 그건 그거고.

이 새끼들은 진짜 제대로 한 번 손 봐야 할 것 같았다.

떨리는 김윤희의 손에서 그간의 고초도 느껴졌고, 동시에 무언가 빡침 같은 게 불쑥 튀어나왔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대접하고 싶습니다. 편하게 드시다 가시면 좋겠습니다.”

“아! 그래도 영업하는데…….”

“제가 오늘은 예약이 늦은 시간 두 테이블 밖에 없어서 일부러 꼭 모시고 오라고 한 겁니다.”

“호석이가 평소와 좀 다르다고 느끼긴 했습니다만. 계산은 계산이죠. 회식은 사장이 쏘는 게 국룰 아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계산은 하신 걸로…….”

“애들이 저러는데요?”

내 손짓에 김윤희의 시선이 돌아갔다.

조온달 이 새끼가 이슬이 부족했는지 냉장고를 털어먹고 있었다.

옆에 놓인 소주병만 서른 개가 넘어가더라.

거기에 밑반찬 통에 김치와 콩나물은 아작이 났고, 서비스 아이스크림 통은 이미 냉장고 밖에 나와 있었다.

한마디로, 정호석의 지휘 아래 가게가 초토화되었다.

왜냐?

기분 좋은지 정호석이 만취했다.

그 덕에 마치 자기 가게나 된 것처럼 이것저것 꺼내서 먹고 있었던 것.

진짜 거덜날 것 같은 상황이었다.

새끼. 기뻐하긴.

어쨌든 회식은 깔끔하게 끝났다.

조온달을 차기 점장으로 정식으로 공표하면서 마무리.

당연하게도 내 카드는 그날 울어야 했다.

* * *

“상도야.”

-예.

“삼차 클랜이라고 좀 알아봐 줄 수 있냐?”

-잠시만요. 흐음, 5등급 길드 이하면 거의 바닥이라 기본 정보밖에는 등록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그냥 좀 짜증이 나서.”

-오오, 드디어 히어로 활동하시는 겁니까? 정 귀찮으시면 저희 쪽에서 정리할까요?

“모르겠다. 일단 자료 보고 결정하려고.”

-시끄럽게 하시면 들통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이미 엘리스도 알고 고요환도 아는데 더 감춰봐야 의미 있냐?”

실제로 반쯤 은퇴 비슷하게 한 이유가 저 둘 때문이었다.

엘리스야 항상 귀찮게 결혼하자고 달려들었고, 고요환은 끝까지 자신과 함께하길 원했으니까.

물론 그 외에 다른 이유도 있지만, 따지면 시답지 않은 수준.

-이런 지시는 처음이라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만.

“됐고, 내일까지.”

-예?

“나 바쁘거든. 한동안 출장 가야 해서 그 전에 미리 주변 좀 정리해 놓으려고 그러는 거다.”

삼차 클랜의 일이 아닌, 양아치들만 몰래 벌인 일이라면 방향은 달라지겠지.

하지만, 못내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다.

김윤희가 말하길, 아들을 통해 들었는데 비슷한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란다. 특히 그날 함께 있었던 아들 친구들 여럿이 치료비 명목으로 돈을 뜯겼다는 것이다.

게이트 사태 이후, 법이 바뀌었다.

헌터, 혹은 각성자는 일반인을 건드려선 안 된다.

안 그래도 마수들과 싸운다는 이유로 많은 피해를 감수하는 상황.

단순히 집이 박살 나는 정도를 넘어 인명 피해까지 상당했으니, 정부로써는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헌터들의 범죄에 대해선 가혹했으며 처벌 수위 또한 높았다.

왜냐?

힘에 취한 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수배자가 각성해 빌런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강력 범죄 역시 기존의 것과 수준이 달라졌다.

연쇄살인의 경우 서너 명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수십 명 단위로 벌어지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정부로써는 과한 형벌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조무래기 각성자까지는 신경 쓰지 못하겠지.

그게 내가 움직이려는 이유였다.

“내일 점심 영업 끝나기 전까지 보고하도록.”

* * *

쾅!

쾅!

문짝이 부서질 듯 흔들렸다.

“무슨 일이야?”

“모르겠습니다.”

“모르면 다냐, 이 새끼야! 빨리 처리해!!”

성일태는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입구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중요한 협상 중이었는데 마치 산통을 깨려는 것같이 느껴져서였다.

“저쪽은 신경 쓰지 말고. 그래. 확실하게 결정 내린 거지?”

“예, 형님. 저희 클랜을 받아주시기만 하면 일문 길드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 요즘 세상에 누가 충성이란 말을 쓰나. 이건 비즈니스, 비즈니스라고.”

말투와는 다르게 성일태는 씨익 웃었다.

삼차 클랜 인원까지 받게 되면 이로써 140명에 가까운 전력이 된다. 서면에서 문현동 일대까지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니 보다 상위 길드와 줄을 대는 것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오가 길드, 이 새끼들.’

원래 길드의 주수입은 일종의 ‘보호비’였다. 물론 겉으로는 경호업체를 표방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쪽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차츰 영향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갈매기 길드 산하의 양현 길드.

최근에는 큰 힘이 없어 에이전시 비슷한 역할을 주로 했는데, 상당수가 오가 길드에 파견을 나갔다. 그러다 그중 한 명이 요식업계의 유명한 사람에게 붙었는데, 그 결과 그쪽 거래처가 싹 끊겨 버린 것이다.

즉, 수익이 3분의 1이나 감소한 상황.

성일태가 홧김에 열받아서 항의하러 갔는데.

“솔직히 배경을 안 본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럼, 저희가 갈매기 길드 소속이 되면 거래가 재개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하지만 다시금 협상 자리에는 올 수 있을 걸세. 자, 난 이만 바빠서.”

성일태는 그렇게 쫓기듯이 나왔다.

이후 이를 간 그는 두 개의 클랜을 더 흡수, 길드의 덩치를 키웠고, 숱한 술자리를 만들어 갈매기 길드와 줄을 만들었다.

이제 삼차 클랜까지 산하에 두면 규모 면에서는 꿀리지 않을 터.

그렇게만 되면 양현 길드처럼 갈매기 길드와 다이렉트로 연결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 좋아~ 정식으로 받아주지. 길드 이름으로 각종…….”

“모르겠고. 일단 10억 내놔.”

“뭐?”

성일태는 서류에 서명을 하려다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앞에 있던 삼차 클랜 차일수 역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아닙니다.”

“그럼 누가…….”

휙 고개를 돌리자, 술 냄새가 확 풍겼다.

거기엔 한 청년이 있었다.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 하더라.

“치료비 10억 내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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