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74화 (74/156)

74화

“흠, 이거 난감하네.”

네 개의 뼈 채찍이 사지를 휘감은 상황.

거기에 몸까지 살짝 들린 상태라 내 입장에서는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이게 뭐가 문제냐?

주먹을 뻗어도, 다리를 움직여도 동작은 가능하다.

한데 앞으로 나가지 못해 공격은 안 된다는 것.

“이거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인데?”

“큭큭, 표현 한번 마음에 드는군.”

“우주 유영하면 이런 느낌인가? 마치 무중력실 훈련 같은데?”

“몇 놈은 그렇게 말한 적이 있기는 하지.”

“이게 비장의 한 수냐?”

“내 필살기다.”

“풋…….”

“마음껏 비웃어라. 이제 곧 진가를 알게 될 테니까.”

성일태는 여유로운 얼굴로 유현성을 살폈다.

역시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 촉감은 좀…… 괴롭네.”

신체를 조이거나 관절을 꺾거나 하는 게 아니라서 이 정도는 대수롭지 않았다.

문제는 전신을 괴롭히는 독특한 감각.

보통 주먹으로 맞으면 욱신거린다.

둔기로 때리는 듯한 공격이라 충격이 속까지 파고드는 거다.

칼이나 송곳 같은 걸로 찔리면?

따끔하고 화끈하다.

거기다 출혈까지 겹치니 두려움이 배가된다.

전기 공격은 맞는 순간 짜릿짜릿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그 부분이 저려오면서 신경계가 혼란을 일으켜 불가능한 움직임을 하게 만드는 거다. 몸을 마구 뒤틀고 발광한다고나 할까.

‘그런 식이라면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은데 말이지.’

근데 이 촉수 공격은 달랐다.

대충 어떤 느낌이냐면, 참기름 바른 산낙지 수십 마리가 온몸을 휘감은 기분이랄까?

분명 전기 공격도 아닌 것이 신체를 오그라들게 만들고, 또 어떤 부분은 미친 듯이 간지러워서 신체가 내 의지를 벗어나 경련까지 일으켰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말 기분 더러운 감각.

“으으음, 아…… 이거 스킬 훼방인가?”

“눈치챘군. 맞아. 내 스킬에 걸린 상대는 어떤 능력도 사용하지 못하지.”

솔직히 막 몸을 문지르고 간지럽히는데 맨정신인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즉, 이런 상황에서 정신 집중이 필요한 마법이나 기술을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아니…… 생각해 보니 석화나 강철 계열을 제외하면 거의 무적이네.

“방식이 너무 더러운데. 아으으, 혹시 너, 변태냐?”

“뭐?”

“으으, 보통 이런 유니크한 스킬 개방은 시전자의 심상하고 관련이 있는 거잖아. 어우, 씨. 간지러워!!!”

“하! 그냥 세발낙지를 좋아할 뿐이다. 어쨌든 발버둥 치면 칠수록 좋아. 그만큼 네놈의 마력이 몇 배나 빨리 고갈될 테니까!”

성일태는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듯 비릿하게 웃어댔다.

확실히 대단한 스킬은 맞았다.

상대에 대한 신체 통제, 스킬 봉쇄, 거기에 마력까지 빨아가고 있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의 절망적인 상황.

자신의 마력을 가져가 스킬을 유지하는 식이니 거의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갑자기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으으, 야, 이거 고문 맞지?”

“……맞다. 고통을 주는 것보다 절망을 주는 편이 상대를 쉽게 포기하게 만드니까.”

“확실히 변태 맞네.”

“이 새끼가…… 풋, 그런다고 달라질 건 없지. 넌 이대로 서서히 마력이 빨리다 말라죽을 테니까.”

성일태가 자신만만해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C등급이었지만, 이건 B등급의 유니크 스킬이었다.

한 등급 위의 상대라도 걸리기만 하면 쉽게 벗어나지 못하니 무척이나 위력적인 것이다.

실제로 갈매기 길드에서 성일태를 고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 스킬 때문이었다.

특히, 부길드장 공소철은 그를 회유하러 몇 번이나 찾아오기도 했었고.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겠지.

“어쨌든, 후우…… 뒷처리하기 난감하군.”

성일태는 상대가 완전히 제압됐음을 확인한 후 천천히 주위를 돌아봤다.

정말이지 한바탕 회오리가 쓸고 간 듯 사무실은 엉망이었다.

바닥 일부도 뜯겨 가벽의 대부분 박살 나 있었고, 특히나 황당한 건 뻥 뚫린 천장.

사실 이런 부분은 돈을 바르면 금방 해결된다.

온 사방에 늘어진 저 병신 같은 수하들 역시 좀 비싼 치료사를 섭외하면 금방 끝날 터.

“문제는 지금이 미묘한 시기라는 거지. 최소 서너 달은 꼼짝도 못…….”

그때, 성일태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 방향에 있는 것은,

‘하얀 운동화?’

빠악!!!!

성일태가 날아갔다.

두 번이나 바닥에 튕기고, 벽에 부딪힌 뒤에야 회전하던 그의 육체가 멈췄다.

‘뭐지?’

일순간 상황이 인식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고 나서야 서서히 현실 감각이 돌아왔다.

‘내가 왜 바닥에 누워 있는 거지?’

“어우, 참 괜찮은 스킬이긴 하네.”

“뭐…… 뭐?”

“근데 상대를 잘못 만난 게 문제구만.”

“어, 어떻게…… 푸, 풀어낸 거지?”

“그냥 잘.”

말은 쉽게 했지만, 아니, 실제로도 쉬웠다.

이 멍청이는 상대의 마력을 흡수한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일종의 양날의 검이지.’

몸에 흡수한 상대의 마력이 더 강한 지배력을 가지는 순간, 쫄딱 망하니까.

“어, 어째서? 최소 A급 헌터라도 이걸…….”

“그런 규격이 잘못됐다는 거다. 그리고 필살기란 건 말이야, 쓰면 반드시 상대를 죽여야지. 이렇게.”

순간, 성일태의 눈에 처음으로 유현성의 주먹이 보였다.

천천히 느릿느릿 다가오는데, 마치 그 안에 커다란 빌딩 수십 채가 들어있는 듯한 중압감이 느껴졌다.

저걸 맞으면 무조건 죽는다!

“자, 잠깐!!! 후우우웁……!!”

바로 코앞에서 멈춘 주먹.

“유언이 있나?”

“너…… 이건, 살인…… 이다.”

“너네는 사람 안 죽여?”

“우, 우린 그 정도까진 아니다.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편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

확실히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스스로 죽고 싶게 만들었지.

“우, 우린 합법적인 경호, 그래, 경호업체라고. 그리고 지금 상황은 우리가 피, 피, 피해자다.”

“그래서?”

“우리 뒤를, 누가 봐주고 있는 줄 알아?!”

“누가 봐주는데?”

“겨, 경찰서장이 우리 편이다. 너, 여기서 안 멈추면 살인죄로 잡혀간다고!! 알지? 각성자들 때문에 법이 엄격해진 거!! 적어도 몇십 년은 노역형…… 어?”

성일태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그건 휴대폰이었다.

유현성이 폰을 귀에 가져다 대었다.

“거기, 서장님.”

-예. 듣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미 출동 대기 중입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그럼 끊겠습니다.”

유현성은 폰을 집어넣고, 성일태의 뺨을 툭 쳤다.

“오늘 일은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넌 날 모르는 거야. 알겠지?”

“무, 무슨…….”

“얌전히 살다 나오는 게 좋을 거다. 괜히 변호사니 뭐니 하면…… 하긴, 마약쟁이 편을 들 변호사는 없겠지만.”

성일태의 눈이 커졌다.

‘괜히 사무실을 박살 낸 게 아니었어……?’

게다가 수하들까지 모조리 기절시켰다.

“서, 설마…… 비밀 금고를 찾으려고?”

“글쎄, 모르겠고. 선택권을 주지.”

유현성이 다시금 주먹을 말아 쥐자 성일태는 마른침을 삼켰다.

“유언을 남길래, 증언을 남길래?”

위용위용-

아찔한 싸이렌 소리가 울리자 성일태는 눈을 감았다.

대답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게 먼저였다.

* * *

촤아아악-!!!

“으어, 허어어어, 어푸푸……!!”

촤아악!!!

“흐어, 사, 살려. 하악, 하악.”

차일수는 미친 듯 버둥거렸지만 연이어 찬물이 쏟아지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십 차례인지도 세기 힘들만큼 물세례를 받고 나서야 상대의 행동은 멈췄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제발 살려…… 사…… 주세요.”

차일수의 목소리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눈앞의 상대가 누구인지 떠올라서였다.

의식을 잃기 전, 자신을 찾아온 미친 그 새끼였다.

“자, 깨어났으면 우리 계산해야지?”

“예, 예?”

“치료비는 건강보험 덕에 거의 나오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이 좀 아파서 말이야.”

유현성은 씨익 웃으며 검지로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난 10억 정도면 적당하다고 보는데…….”

“무, 무슨…….”

차일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곳은 분명 일문 길드 사무실이었다.

그런데 뭔가 퍼퍼펑, 콰콰쾅 하다가 휙 고개를 돌렸을 뿐인데 퍽! 하더라.

“여긴 일문 길드가……?”

“생각을 좀 해봐. 내가 거기서 널 데리고 가겠다고 말해서, ‘걔들이 얼씨구나 데려가십시오. 택시라도 잡아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모셔다……’ 이렇게 했을 것 같아?”

“아, 아닙니다.”

오히려 유현성이 잡혀 그 반대의 상황이 되는 게 정상이겠지.

“그럼 거기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유현성은 피식 웃은 뒤, 후련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김요성의 부탁을 받고 SF푸드의 일에 개입했다.

거기서 가장 뜬금없었던 게 바로 박정기가 마약을 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같은 느낌이랄까.

알아보니 박정기가 마약에 빠진 건 의외로 오래되었더라.

도박 빚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접했다가 끊지 못했고, 끝내 중독자가 되었다.

이후 조금씩 이지를 잃어가면서 그런 어이없는 일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다.

세상에, 세입자들 삥 뜯는 집주인이라니.

내 요리를 카피한 것도, 가족들을 전부 적으로 돌린 것도, 박산기가 준 마지막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보낸 것도 마약이 일부나마 영향을 줬다 할 수 있었다.

원래도 쓰레기였는데, 마약이 그걸 증폭시켜 재활용 불가 쓰레기로 만들었다고나 할까.

하긴, 제정신이면 못 할 짓이었지.

문제는 이 마약이 애초에 합법적인 물건이라는 점이었다.

‘통칭 헌터용 각성제, A6.’

전투 중 부상을 입었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중추 신경을 흥분시켜 피로와 공포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싸우다 무력감에 죽는 것보다는 약물에 의지해서라도 살아 나와라’라는 개념에서 만들어진 것.

‘그때도 어이가 없긴 했지.’

게이트 사태 이후 정부가 뿌린 것인데, 이후 개량을 거듭해 버전 6까지 나왔다.

하지만 게이트 안정화 시기를 겪으며 남아돌게 되자, 그걸 어떤 빌어처먹을 새끼가 마약으로 만들었다. A6를 희석시켜 몇 가지 약품을 첨가함으로 일반인도 사용 가능한, 보다 자극적인 마약으로 바꾼 것이다.

그 유통의 일부를 담당하던 곳이 바로 일문 길드였던 것이다.

특히 성일태는 뒷구멍으로 그런 부분을 장려했고, 그 결과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

이상도의 보고에 의하면, 경찰은 이미 몇 번이나 일문 길드 사무실을 수색하려 했단다.

하지만 영장을 가져가도 각성자들이 무력으로 입구를 막는 바람에 뚫지 못했다고 했다.

사무실을 뒤질 수 없으니 증거조차 확보할 수 없어 몇 번이나 조사가 무산됐다나?

그런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속에서 열불이 찼다.

결국, 삼차 클랜 일을 정리하는 김에 거기도 뒤엎어버리기로 마음먹었던 것.

일부러 소주 한 병을 몸에 뿌리고 그 시간에 쳐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왜?

우리나라는 술 처먹고 하는 개지랄에는 관대하니까.

물론 처벌받을 일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경찰 체면을 밟아버리는 것도 곤란했다.

‘더욱이 이번처럼 부려먹을 때는 배려하는 게 맞지. 그럼.’

아마 지금쯤 경찰서장은 꼭지가 돌았을 거다.

현미경으로 개미 똥구멍 살피듯 일문 길드 사무실을 샅샅이 뒤지고 있겠지.

특히 스피커폰으로 자신의 이름까지 거론된 상황이니 물불을 가리지 않을 터.

유현성이 씨익 웃었다.

그 표정이 차일수를 더욱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자! 저쪽은 이제 끝났으니까. 우리 일만 생각하자고.”

“예? 그, 그게…….”

유현성은 차일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우리 계산 해야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