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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76화 (76/156)

76화

“일단 넘버가 붙습니다.”

“넘버?”

“그냥 군번 비슷한 겁니다. 그냥 00부터 100까지, 작전의 편의상 붙이는 거죠.”

“하아…… 나도 가끔 그런다네. 꿈에서 군번을 소리치기도 하고, 아직 총번도 외울 정도니…… 에휴, 군대 이야기는 그만하지.”

김요성이 고개를 마구 흔드는데, 얼마나 진저리처지는 군 생활을 했는지가 뻔히 보였다.

대충 계산해도 40년 전이지 않는가.

황무기는 크게 웃지 못해 가볍게 미소만 지었다.

“상위 10위부터 네임드라고 합니다. 고유의 명사가 붙는 거죠. 물론 대부분은 우리끼리 이야기하는 겁니다만.”

“그 친구는 뭐…… 크흠, 아니…… 일단 듣겠네.”

“됐습니다. 이미 여기까지 왔으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미안하네.”

황당하게도 김요성이 쑥스러운 듯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게 황무기에게는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고민 많이 했었다.

경호 대상을 포기한다는 건 진짜 큰 문제였다.

이후 김요성이 다시 부를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당혹스럽게 다시 자신을 원한다고 연락이 왔다.

조일섭 본부장이 담당하고 있던 경호를, 아예 통째로 실장 자리까지 준다며 불러들인 것이다.

원래라면, 아니, 엮인 부분을 생각하면 거절이 맞았다.

하지만 오담비가 손까지 잡으면서 부탁하니 크흠,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수락했는데, 김요성은 그런 부분까지 생각했는지…… 솔직히 잘 챙겨줬다.

더 황당한 건, 유현성과도 가깝게 지낸다는 것.

보통 그 정도 사고면 아주 친하게는 아니더라도 좀 거리감이 있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이후 유현성은 웬일인지 김요성 앞에 불쑥불쑥 나타나기 시작했고, 김요성 또한 스케줄을 미루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대해줬다.

느낌이 이제 반쯤은 부자지간 같이 보인다고나 해야 할까?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였다.

그랬기에 결국 이런 이야기까지 꺼내게 된 거겠지만.

“크흠, 빨리 넘어가면 저희들은 10번까지 네임드라 칭합니다. 10위부터 치면 신속검, 만능드릴, 철갑방패, 바느질 어그로 등등이 있습니다.”

“그렇군, 그럼 크흠, 그 친구는?”

“네임드임에도 이질적인…… 사실 이명이 여럿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진짜 최고 국가 기밀이라서요. 그걸 다 덮는다고 보면 됩니다. ‘니들이 뭘 해도 내 밑에 조원이다’ 같은 느낌을 가지고 계시는 겁니다.”

“일종의…… 대표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되겠나?”

“전체 헌터의 상위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영웅 고요환 헌터보다 위라는 건가?”

“정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그분은 코드네임 00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대체 그 코드네임이 뭔지 모르겠군.”

“00을 붙여보십시오.”

김요성은 잠시 생각하다 무심코 내뱉었다.

“무한대?”

“저는 더 이상은 이야기 못 드립니다.”

황무기는 그대로 입을 닫았다.

“이상하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감이 안 잡히는군. 그 친구는 대체 무슨 존재란 말인가?”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진짜 이 대한민국을 지킨 분이시죠.”

“후우…… 그 친구에 대해 조금 안다 싶었는데, 자네 말은 너무 예상을 넘어간 것 같네.”

“일반인들은 그렇게 들리실 겁니다. 실제로 제가 그분 작전에 투입된 적 있습니다만, 대표님의 상상은 ‘그저 상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영웅이라 칭해지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조장님 밑에서 배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미친…… 진짜 맞는가?”

“더 이상은 국가 최고 기밀이라 이야기드 릴수 없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김요성은 더 답답해졌다.

이건 뭐 파도 파도 예상을 훌쩍 넘는 거고, 더욱이 본인에게 묻기도 어려우니 실체가 잡히지 않는 느낌 아닌가.

결국 황무기는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대한민국의 헌터 시스템을 만든 게 그분입니다.”

* * *

“저 왔습니다.”

유현성이 웃으면서 인사하자, 김요성은 피식 웃고 말았다.

흰 티에 청바지.

보통은 그렇게 입고 다니면 깔끔하다고 하는데, 요리하다 왔는지 살짝 얼룩 같은 게 있었다.

“계란을 튀겼군.”

“어? 어떻게 아세요?”

“내가 음식 장사만 30년이 넘었다고 하지 않았나?”

“애들 볶음밥에 계란프라이 올려준다고…… 하하. 좀 튀었나 보네요.”

“그게 좋아. 무엇보다 사장이 다정하면 직원들의 결속력이 단단해지는 법이지. 자네는…… 정말 좋은 사장이 맞는 것 같네.”

순간 뭔가 가슴에서 올라와 애써 침착했다.

누구에게 인정받는 이런 감정이 얼마 만인지 모를 정도라 살짝 울컥하기까지 하더라.

“진짜 궁금한 게 있다네. 자네는 군대에서 뭘 했나?”

“군바리가 뭘 합니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들어가야지. 삽 하나로 산도 파는 게 군인 아닙니까?”

나름 유들유들하게 대꾸하자, 김요성은 슬쩍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그래, 괜한 과거 이야기는 할 필요 없지. 본성 푸드가 메뉴는 어떻게 정했나?”

“일단 면류 종류는 빼주십시오. 포장 위주의 메뉴로만 해주시고 가능하면 심플한 운영을 바랍니다.”

“손이 많이 가는 메뉴를 빼달라는 거지?”

“본성 푸드가는 기본 직원이 몇 명이나 됩니까?”

“최저 여섯 명 정도 된다네. 큰 규모는 스물 이상도 되고, 애초에 메뉴가 많지 않은가.”

“흐음, 이건 제 생각인데…….”

사실 엘리스의 반수면 예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손님들이 무슨 느낌으로 올까 싶습니다.”

“그야 당연히…… 흐음…….”

“환한 공원 같은 곳을 들르는 기분일 거라 생각합니다. 피크닉 같은 기분으로 당연히 포장 음식도 가져올 테고, 대부분 가벼운 먹거리를 선호하겠죠.”

“부담을 최소화하자는 거군.”

“넵.”

잠시 생각하던 김요성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대로 다시 계획을 짜야겠군.”

“나중에라도 상황 봐서 규모를 늘리면 되니까요.”

“후우, 확실히 일이 많기는 하네. 내가 하는 일들은 좀 미뤄두고 여기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 같으니, 그래도 우리 차 한잔할 정도의 시간은 되지 않나?”

“믹스가 좋습니다.”

“크흐, 취향은 변하지 않는군.”

거절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김요성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저 친구 매력 있다.

‘에이, 그 라면 맛 보는 게 아닌데.’

이상하게 자꾸 끌리고, 뭔가 해주고 싶다는 느낌이 들어 가까이 두고 싶었다.

“우리 솔직히 이야 하지. 어차피 내 과거는 검색만 해도 거의 나오고, 이예지 양이 말하면 다 밝혀질 거고. 서로 믿고 가려면 말이야. 근데 자네가 너무 말을 아끼네.”

“그냥 분식집 사장으로 보시면 되죠, 뭘 자꾸 신경 씁니까? 전 그냥 지금이 좋습니다.”

“꿈을 묻는 걸세. 어디까지 보고 있는가.”

“우리 가게 이름이 뭔가요?”

“행복 분식?”

“예. 전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그 이상의 욕심은 없습니다. 아니, 해서 뭐 해요?”

김요성은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요식업 꿈의 상당수가 전국 프랜차이즈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지만, 터지면 수십, 수백억이 벌린다.

가게 열 개 간판만 많이 달아도 일이천이 벌리는 곳인데, 인테리어부터 집기까지 때려 넣으면 얼마나 벌겠는가?

그 많은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도 기본 일 년 순수익이 백억대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수익을 목표로 하면 기업화가 정답인 것이다.

그걸 할 수 있음에도, 유현성은 소박하게 나가길 원하고 있었다.

“정말 모르겠군.”

“뭐, 군대에서 7년간 정말 죽자 살자 했었습니다. 이제는 좀 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김요성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 실장의 말대로라면 수십 수백 번 생사를 넘었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 것이다.

그쪽은 진저리가 나겠지.

“……자네 말대로 가겠네. 세부적인 건 상황 맞춰서 진행하도록 하고. 더 해줄 말은 없는가?”

“엘프 마을은 자치 도시죠. 최대한 인성 위주로 사람을 뽑았으면 합니다. 괜히 사고라도 치면, 아마 끌려가서 강제로 땅굴 파야 될지도 모르거든요.”

“푸훗, 알겠네. 식당부 장관님 뜻대로 알아보지.”

“그렇다고 마음에 안 드는 직원들 보내시면 곤란합니다.”

“이런, 들켰나.”

유현성이 웃고, 김요성은 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얼마 만에 이렇게 마음을 풀게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둘은 한동안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마지막으로 유현성이 말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죄송합니다.”

“아…… 이제 좀 기억이 나네요.”

고개 숙인 황무기를 보고 유현성은 미소를 지었다.

“전신 강화 계열에 돌격형, 그리고 이능을 가졌었죠?”

“자랑할 수준은 아닙니다, 조장님.”

“저 은퇴했어요. 그렇게 부르지 마십쇼.”

“아닙니다. 전 진심으로…….”

“지금은 분식집 사장입니다. 다음에 놀러 오시면 맛있게 대접해 드릴게요.”

유현성이 손사래를 치니, 황무기는 약간 민망해졌다.

자신이 알던, 그 카리스마를 보이던 사람과 너무 달라 보여서였다.

결국 대답은 길지 못했다.

“예. 다음에 꼭 한 번 들르겠습니다.”

* * *

“약간 싱숭생숭하네.”

과거 인연과의 만남은 싫어도 그 시절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다행인 건, 이제 홀가분하게 올라가도 된다는 거지.

“이제 중요한 건 신메뉴를 다시 짜야 된다는 건데…… 으…… 현지한테 한 소리 듣겠네…….”

손강희랑 꽤나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다.

애초에 그 동네는 통화가 되다 안 되다 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주 연락을 주고받기도 어려웠다.

뭐, 반쯤은 휴양지에서 지내는 기분이라고 했지만.

하긴. 폐쇄적인 동네지만 풍광은 진짜 괜찮았고, 무엇보다 세계수 아래에서의 생활은 질이 달랐다.

나름 자동 정화 기능이 있으니 몸이 더욱 건강해지는 거지.

“우리 강 여사도, 덕순 할머니도 한 번 모시고 가야 하는데. 대체 무슨 여행을 보름씩이나 가는 건지 모르겠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 강 여사님은 맛집 투어라는 명목하에 아주 전국을 돌고 있었다. 내 용돈으로 아주 즐겁게 놀려 다녔는데 이상하게 흐뭇하더라.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 분식집을 운영하면서 딸 둘까지 키워냈다. 그러다 몸까지 상해 혜진 이모한테 가게 맡기고 종종 병원을 다녀야 했으니.

이제는 좀 여유를 부리셔도 된다.

현지야 2호점 직원으로 부리면 될 테니 크게 걱정할 건 없고, 현아는 칼국숫집에 들어간단다.

정태수 놈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예전부터 좋아하는 티를 팍팍 냈으니 안 될 건 없지만. 조금 서운하네.

어쨌든 가족들이 다 잘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또, 행복 분식 식구들도 잘 풀리고 있었고.

‘그래. 가족들 다 무탈하고 즐거워하니 이런 게 행복 아니겠는가.’

아마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김요성 대표와의 대화 때문일 거다.

안 그랬으면 돌아보는 것도 해보지 않았을 테니까.

“오빠는 가끔 혼자 히죽거리네요.”

“어우, 깜짝이야! 엘리스, 좀 깜빡이 켜고 들어와.”

집 앞 골목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엘리스는 금발을 그대로 드러내고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여신 자태라는 게 이런 거겠지.

하여간, 남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과감하게 모습을 드러낸 것 같았다.

솔직히 남자라면 설레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그때, 엘리스가 갑자기 유현성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래도 잘생겨서 좋아요.”

“갑자기 무슨…… 내가 좀 생기긴 했지.”

“솔직히 외모는 조온달이 더 낫긴 하지만.”

이건 반박할 수 없구나.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놓고 까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도 제 마음속에 최고는 오빠죠.”

“됐고, 용건이나…….”

“시간이 많이 늦어졌지만 마을 건설이 거의 마무리예요. 조만간 정식으로 오픈할 거고. 나머지 문제는 오빠가 해줘야죠.”

“앵? 또 뭔데?”

“공소철이란 사람이 연락을 보내왔어요.”

“누군지 모르는데? 아니…… 기억을 못하는 건가?”

엘리스는 갑자기 팔짱을 껴왔다.

“그냥 오빠가 나랑 결혼하면 되는데.”

“그 이야기는 패스. 그래서 그 인간은 누구냐고.”

“저한테 청혼했어요.”

……어?

이상하게 빡치네?

순간 주먹에 힘이 훅 들어가는데, 엘리스가 말했다.

“갈매기 길드 부길드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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