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82화 (82/156)

82화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사람의 미각에 기름칠 마법(?)을 펼치는 맛이라니.

이게 맛이 있다 없다를 떠나 너무 맛이 한쪽으로 치우쳤던 것이다.

요리사 출신에게 잠깐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맛이 조금 애매한 식당들은 조미료, 소금, 설탕, 후추 등등을 팍팍 친다고.

그럼 손님들은 ‘어우~ 짜, 끄으~ 너무 달아, 와~ 향이 너무 강해’ 같은 식으로 표현하지, 절대 맛이 없다고는 하지 않는다고.

“어쨌든 달달 크레페는 그 선을 넘었지.”

‘와~ 달콤해’를 넘어서 ‘어우~ 달아’.

딱 이 정도만 돼도 괜찮았다.

이건 ‘끄아아아악!! 달아. 달아. 너무 달다고!’ 수준에 가까웠다.

들어 보니 미세하게 사각 하고 씹히는 식감을 위해 생크림에 설탕을 섞었단다.

여기에 같이 바르는 소스도 과일청이라고.

초콜릿은 말 안 해도 다들 아는, 달기로 유명한 그 브랜드.

더 황당한 건 상큼해야 할 과일 대신 과일 절임을 넣었다는 것!

각기 다른 단맛인데, 합쳐지니 괴물이 되었다.

“미각 파괴가 수준이 아니야. 이건 미각 코팅이라고.”

때문에 대부분의 음식들은 혀까지 파고들지 못했다.

맛을 느끼기도 전에 그냥 미끄러지듯 위장으로 직행해 버리니까.

그게 미각 코팅의 숨은 진실이었다.

“아마도 핵불닭이나 겨우 이길 수 있겠지. 이름 그대로 혓바닥에 핵폭발을 일으키니까.”

어쨌든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

설마, 오늘도 같은 음식을 내놓지는 않겠지?

“자네, 갑자기 왜 몸을 떠나?”

“아! 잠시 몹쓸 기억이 떠올라서요. 하여간 전 오늘 평가자라기보다 조언을 듣는 위치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드시고 냉정하게 감상을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앞장서게.”

오송해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먼저 걸음을 떼었다. 당장에라도 음식이 먹고 싶다는 걸 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걸 보니, 이상하게도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 * *

“돌솥철판 볶음밥입니다.”

오송해는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자신이 뭔가 잘못들은 게 아닌가 착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돌솥 비빔밥이면 비빔밥이고, 철판 볶음밥이면 볶음밥인데?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선 조리장 형님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번거롭긴 하지만 어떤 부분에선 강점이라고 하더라고요.”

유현성은 씨익 웃었다.

한동안 새 메뉴에 대해 서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점장 겸 조리장 변고웅은 나이가 벌써 오십에 가까웠다.

제법 경력이 있기에 본사 매뉴얼 대로 조리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메뉴를 만든다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라더라.

해서 식당부 장관 유현성과 본성 푸드가 엘리오스점 점장 변고웅은 머리를 맞대었다.

그러다 듣게 된 것이 그가 과거 일식 요리사였다는 것.

이걸 응용하면 어떨까 싶어 한창이나 고민한 결과, 차라리 철판 볶음밥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본성 푸드가의 주력 메뉴는 당연히 돌솥 비빔밥.

돌솥 내부에 참기름 발라주고, 밥 넣고 재료 올린 다음 불을 켠다.

고화력으로 돌솥이 달궈지는 사이 반숙 계란프라이를 하고, 타닥 타닥, 타타탁 소리가 나면 거의 끝이었다.

계란 올린 뒤 통깨 뿌리고 나가면 되니까.

그다음으로 잘나간다는 볶음밥도 조리법은 다들 아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달군 팬에 재료와 기름을 넣고,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밥을 넣는다. 열심히 슥삭 슥삭 볶다가 마지막에 계란프라이 올리고 깨 뿌리면 끝이었다.

여기에서 착안해 제안했다.

“애초에 전부 철판 볶음밥으로 해버리죠?”

“뭐라고?”

“그러니까, 제 생각은 이렇거든요.”

손님들이 볼 수 있게 퍼포먼스 식으로 철판 볶음밥을 한다. 가장 기본이 되는 야채 볶음밥을 최대한 기름기가 안 느껴지게 고슬고슬하게 볶는 것이다.

볶음밥 주문이 들어오면 즉석에서 김치를 볶고, 혹은 소고기를 볶은 뒤 밥과 합쳐주면 끝!

“흐음, 그것도 나쁘진 않겠군. 그럼 돌솥 비빔밥 주문이 들어오면?”

“말 그대로 돌솥에 기본 볶음밥을 넣는 거죠. 대신 참기름 두르는 과정을 생략하고 마지막 나갈 때 뿌리는 걸로요.”

“확실히 볶음밥 자체에 기름기가 있으니 돌솥에 달라붙지는 않겠군. 그런데 그 볶음밥을 또 비비면 이상하지 않을까?”

“그 부분은 당연히 전문가이신 형님께서 해결하셔야죠. 미리 말씀드렸지만, 전 자격증은 있어도 요리사는 아니잖아요.”

“그럼?”

“분식집 사장, 혹은 식당부 장관이죠. 지금은 주방보다 관리가 주 업무랍니다.”

한마디로 기획자라 해야 하나?

어쨌든 아이디어를 냈으니 만드는 건 공돌이, 크흠, 아니, 조리장님이 하세요, 라는 사악한 방식이었다.

근데 변고웅은 이걸 또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일종의 도전 정신을 깨달았다나 뭐라나.

“일단 스페셜로 한 그릇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주문에 변고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눈빛에 결기가 가득하더라.

그때 김요성이 손을 들었다.

“난 김치 돌솥으로 부탁하네.”

“예. 추가해 드리겠습니다.”

변고웅은 그간 많이 연습하고 준비했는지 철판에 야채부터 볶기 시작했다.

적당히 색이 변했다 싶을 때 밥을 넣었고, 그렇게 순식간에 철판 볶음밥 2인분이 만들어졌다.

변고웅은 퍼포먼스라고 화려한 불쇼를 한 번 하더니 커다란 철판 한쪽으로 밥을 밀었다.

그 직후, 직원 하나가 바로 옆 화구에 돌솥을 올렸다.

특이한 건 참기름을 바르는 게 아닌, 스프레이 형식으로 뿌렸다는 거다. 이렇게 하면 아주 적은 양으로도 향이 충분히 난다나 뭐라나.

티틱. 티틱.

철판 한쪽에선 계란프라이 두 개 만들어지고, 다른 쪽에서는 김치가 볶이고 있었다.

“합!”

낮은 기합과 함께 변고웅의 손이 움직였다.

볶음김치와 밥이 섞이자, 순식간에 김치볶음밥이 완성되었다. 그걸 돌솥에 넣고, 남은 야채 볶음밥도 다른 돌솥에 들어갔다.

원래보다 작은 사이즈로 잘린 나물들이 돌솥 위에 올라갔고, 마지막으로 계란, 통깨로 마무리되었다.

“대단하군.”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합격입니다.”

정말 모든 게 순식간에 후다다닥 만들어지는 느낌이었다.

때문에 김요성과 오송해는 진심을 감추지 못했고, 은근히 웃고 있었다.

음식에 기대감이 생긴 거겠지.

“으음, 미리 밥을 볶아놨다고 가정하면 테이블까지 나오는 데 6분 정도군. 돌솥 비빔밥 기준으로는 제법 괜찮은 편이야.”

김요성의 평가에 오송해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맛 아니겠는가.”

“당연합니다. 저는 냉정하게 평가할 생각입니다.”

“여기 양념장이 있습니다. 취향껏 비벼 드시면 됩니다.”

타이밍에 맞게 양념 고추장을 내밀었다.

솔직히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먼저 맛을 보기는 했다.

기대감 덕분인지 적어도 맛은 평균 이상이었다.

오히려 순식간에 돌솥이 비워진 게 아쉬울 정도라고나 할까.

“나물도 넉넉하고, 양념장의 염도도 적당하고, 밥은 크흡……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군.”

“나도 그 생각을 했네. 볶음밥의 식감과 돌솥 비빔밥의 누룽지 식감이 이렇게 어울릴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오묘한 맛이야.”

“예. 적어도 식감에서는 호불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김요성이 갑자기 쳐다보며 물었다.

“이 방식은 자네가 생각한 건가?”

“아닙니다. 조리장님과 같이 고민하다 나온 겁니다.”

“분명 음식의 밸런스는 변 조리장이 맞췄을 거야. 오랜 경력에서 나오는 그런 부분이 확실히 느껴졌으니까. 삼색 나물의 길이며 씹히는 정도, 특히 양념장이 강하지 않아서 좋았네.”

“입맛에 맞으니 다행이네요.”

“판매는 어떤 식으로 할 예정인가?”

“당연히 포장은 볶음밥 위주죠. 하지만 비빔으로도 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 즉시 변고웅은 조리에 들어갔다.

아까와 마찬가지의 과정이 끝난 뒤, 옆에서 준비한 컵밥용 그릇에 볶음밥을 담고 나물과 양념장을 올린 것이다.

“대신 추가 요금을 더 받을 계획입니다.”

“손님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미리 이야기해야죠. 돌솥으로 드시고 싶으시면 가게에서, 그냥 야외에서 먹겠다고 하면 그 부분은 추가라고.”

“선택권을 주겠다는 말이군.”

“그래야 군말이 없죠.”

김요성은 씨익 웃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광지 특성을 감안해서 매장에서 먹는 가격이 8,000원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네.”

“그럼 통과라는 거군요.”

“다음에도 또 와서 먹고 싶을 정도라네.”

결정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

이제 다음 가게 차례인데, 오송해가 불쑥 묻더라.

“기대해도 되겠나?”

* * *

“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확실히 정통파는 아니야.”

“그럼 사기꾼?”

“푸하하! 자네 이전보다 농담이 늘었어.”

말투와 다르게 오송해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김요성은 눈치 보는 듯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 너머에는 변고웅과 하이파이브 한 뒤 정리를 도와주는 유현성이 보였다.

“묻고 싶은 게 뭔가?”

“음식의 수준을 결정하는 부분에서는 확실히 변 조리장의 실력이 맞는 것 같습니까?”

“당연하지. 이 정도 밸런스를 맞추는 건 오랜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네. 일단 철판 볶음밥을 담백하고 깔끔하게 만드는 것부터가 쉽지 않아.”

“식감 부분은 어떻습니까?”

“이게 또 기가 막혀. 기존의 비빔밥은 뭔가 있어 보이게 나물 대부분을 길게 올리지. 여기에 당근이나 콩나물 같은 기본 야채도 적당히 까는 편이고. 하지만 저 조리장은 나물 종류를 줄이되 양을 늘려 버렸어.”

“확실히 저도 놀라긴 했습니다. 나물 향이 볶음밥에 지지는 않더라고요.”

“조리장의 경력에서 나온 센스 같다네. 저 친구는 아직 제대로 나물을 다룰 수준은 아니니까.”

오송해의 말에 김요성은 솔직히 인정했다.

사람들은 나물 만지는 것보다 고기를 다루는 걸 더 쳐주더라.

하지만 진짜 요리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파고들면 들수록 그 깊이는 한계가 없었다.

오십 평생을 면 하나만 삶았다는 요리사도 그 끝을 보지 못했다고 했으니까.

다만 익숙한 걸 보다 능숙하게 할 뿐.

그렇게 따지면 유현성의 요리 레벨은 한참이나 떨어진다고 볼 수 있었다.

“확실히 경험 부분이 많이 부족하긴 합니다.”

“하지만 감각이 있어. 그건 아무나 타고 나는 게 아니라네.”

“맞습니다. 특히나…….”

김요성은 갑자기 말을 아꼈다.

자신에게 부족한 것 중에 하나가 번뜩이는 아이디어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 안에서 발버둥 쳐서 여기까지 올라왔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꼈던 것이다.

“자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겠네. 나야 음식 만드는 데 특화된 경우고, 자네는 사업가 쪽이겠지. 그런데 저 친구는 하나의 음식을 마케팅까지 바로 가져간다는 거겠지?”

“맞습니다. 처음에는 퍼포먼스 때문에 커다란 철판을 가져다 놓고 볶음밥 하는 줄 알았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그냥 나온 게 아니더군요.”

보는 즐거움, 빠른 조리 시간, 손님에게 기대감을 주고 바로 수저를 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장 중요한 포장 판매까지 염두에 두었으며 그에 따른 부작용과 이윤까지 계산했다.

특히 조리 과정을 생각하면 소름까지 돋을 정도였다.

기본 베이스가 되는 밥을 대놓고 철판 볶음밥으로 만들어서 나간다는 건 어디서도 듣지 못했으니까.

아니,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분식집 클래스에선 아니었다.

“이번엔 내가 물어보겠네. 여기가 저 친구 가게는 아니지 않는가?”

“예. 맞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뭔가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야. 내가 속사정을 모르니 조금 답답해서 그렇다네.”

“그냥 이 일대 전체를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여긴 조금 다른 케이스라고 들은 것 같은데? 대한민국과 다른 법체계의 국가라고.”

“예. 저 친구가 그래서 열심히 하는 겁니다. 이쪽 나라의 장관이니까요.”

“뭐? 농담하나?”

“아닙니다. 저 친구가 정말 식당부 장관이 맞습니다.”

김요성의 진지한 표정에 오송해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이건 또 무슨 메뉴란 말인가?”

“일단 누룽지…… 밥버거군요.”

“또 먹어봐야 아는 건가?”

“그게 저 친구 특기잖습니까. 아주 그냥 낚시꾼입니다. 입질의 천재예요.”

“하긴, 나도 낚었으니.”

오송해가 한숨을 내쉬는데, 그건 김요성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한 다리 건너서 메뉴에 대해 전해 듣기는 했다.

하지만 말로 들은 것과 직접 먹어보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두 분 뭐 하세요? 주문하셔야죠.”

유현성이 얄밉게 웃으며 재촉을 하는데, 답이 나오질 않았다.

결국 김요성과 오송해는 동시에 주문했다.

“전체 모듬으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