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전체 모듬 둘, 주문 들어왔습니다.”
현지의 말에 손강희는 바로 철판에 불을 켰다.
화력이 강한 만큼 금방 달궈졌고, 그 즉시 식빵 크기의 사각 빵틀이 올라갔다.
손강희는 그 안에 기름을 뿌렸다.
치이익-
살짝 연기가 피어오를 즈음 약간 촉촉한 밥을 가운데 넣고 손으로 살살 폈다.
그런 다음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철틀에 맞게 사각으로 만든 누르개였다. 그걸로 꾸욱 눌렀더니 마치 호떡처럼 밥이 쫘악 펴지더라.
“호오, 신기하군. 분명 누룽지 버거라고 했는데 말이야.”
“확실히 여러 가지가 섞인 조리 방식이긴 합니다.”
유현성은 가볍게 웃으며 손강희와 현지를 지켜봤다.
확실히 그동안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움직임이었다.
동작 군더더기가 없었고 오히려 능숙함에서 오는 여유까지 보인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런 방식으로 순식간에 네 개의 누룽지가 만들어졌고, 다시금 반복되었다.
그사이 현지 역시 조리에 들어갔다.
일단 주문표를 확인한 다음 토핑들을 준비했다. 그걸 옆 조리대에서 작업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조리된 소불고기는 소량의 물을 뿌려 다시 볶았고, 제육 볶음은 토치로 그을려 불 맛을 입혔다.
그런 다음은 함께 들어갈 샐러드였다.
길쭉길쭉하게 썬 양상추, 양배추, 파채 등등을 섞더니 적당량의 설탕을 뿌렸다.
여기에 소스가 더해져서 무치듯 비벼지니 약하게나마 새콤달콤한 향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저건 고깃집 겉절이가 아닌가?”
“약간 비슷하기는 합니다만 수분 조절이 관건입니다. 샌드위치용 빵이 아니니 어떻게 잡힐지는 판단이 서질 않는군요.”
“확실히 식빵과 밥은 수분 흡수 자체가 다르지.”
그걸 들었는지, 아니면 원래의 조리 과정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현지는 가볍게 웃으며 방금 비빈 샐러드를 손으로 꾸욱 눌러 물기를 짜 버렸다.
그 직후, 손강희에게서 두 개의 누룽지가 도착했다.
“베이스.”
“콜, 베이스.”
현지는 그걸 받아 들자마자 샐러드를 깔았고 그 위로 양상추 한 장을 더 올렸다.
다시 위아래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토핑이 올라갔다. 졸여진 소불고기와 불향 가득한 제육이 듬뿍듬뿍 더해진 것이다.
“양이 어마어마하군.”
“저는 한입에 안 들어갈 것 같습니다만. 적어도 속 내용물로는 누구도 뭐라 못하겠군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저렇게도 먹는가?”
“일단 나오는 걸 봐야 알 것 같습니다.”
현지의 입가 주변이 꿈틀거렸다.
좋은데 티를 내기 애매할 때 나오는 바로 그 표정이었다.
어쨌든 토핑 위에 다시 양상추가 깔리고 그 직후 두 개의 누룽지가 도착했다.
현지는 그걸 올려 덮은 뒤 꾸욱 누르고 바로 포장에 들어갔다. 버거처럼 싸면서 테두리를 잡아서 원형으로 만든 것이다.
하여간 무식하게 힘만 좋아서인지 정말 동그랗게 버거처럼 되더라.
“샌드위치인지 버거인지 모르겠군.”
“일단 형태는 시중의 햄버거와 비슷하긴 합니다. 하지만 라이스버거와는 많이 다르네요. 하아~ 솔직히 혼란스럽습니다.”
김요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이 순식간에 전체 모듬이 만들어졌다.
“커팅해 드릴까요?”
손강희가 웃으며 묻자 오송해와 김요성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각각의 누룽지 버거가 절반씩 잘려서 종이 케이스에 들어갔다.
전체 모듬, 일단 가칭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살짝 어색한 느낌이 들긴 했다.
아무래도 조만간 명칭을 새로 정하긴 해야겠지.
어쨌든 1인분이 버거 두 개였다. 네 조각으로 나뉘어서 예쁘게 담긴 상태로 나왔던 것이다.
“오른쪽부터 제육볶음, 간장 소불고기, 어묵 스테이크, 계란말이입니다.”
손강희의 설명에 오송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해가 가는 순서였다. 아무래도 염도와 양념의 강약을 따진 거겠지.
물론 계란말이 샐러드만 제외.
아마 중간중간 한 입씩 먹으면서 미각을 정돈하라는 의미 같았다.
“이거, 생각보다 부담스럽진 않겠군.”
오송해가 보기에 누룽지는 의외로 얇았다.
철틀의 높이가 1㎝ 정도였으니, 구우면서 수분이 날아가 한쪽이 바삭해지면서 얇아진 모양이었다.
“확실히 깔끔한 모양새입니다. 샌드위치나 버거처럼 빵이 크질 않으니 맛이 바로 입으로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일단 드셔보시죠.”
“그러지.”
오송해가 고개를 끄덕이고, 김요성이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유현성은 음흉한 미소를 드러냈다.
* * *
“맛이라는 건, 나름 상당한 계산이 필요한 것 같더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린데?”
“현지 너는 고깃집 갈 때 주로 뭘 따지는데?”
“보통은 맛, 가격 이런 거 아니가?”
“그거야 당연한 거고, 그다음 코스 있잖아. 취향마다 조금씩 갈리는 거.”
“그리 말하면 모른다. 딱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딱 말해줘야 알지.”
현지의 단호한 태도, 아니, 단단히 여며쥔 주먹에 장난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어차피 더 진도 나가기는 글렀으니까.
“넌 양파 간장에 고추냉이가 나오는 게 좋냐? 아니면 파채 겉절이가 좋냐?”
“간장보다는 파채가 좋다.”
“이유는?”
“양념 돼지갈비나 소불고기는 간장 맛 아니가. 거기에 양파 간장이면…… 내 스타일은 아니지.”
“확실히 매콤한 게 좋다는 거네?”
“당연하지. 고소한 삼겹살 기름에 밥 볶아 먹을 때도 파채는 그냥 썰어 넣음 되지만 양파 간장 붓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 그래서 메뉴를 조금 손보자…… 아야!”
현지에게 방심하는 사이 손강희가 등짝에 스파이크를 날렸다.
물론 알고도 맞아준 것도 있지만.
근데 현지야. 오빠한테 스트레이트, 좌우 훅 콤보는 조금 아니지 않니?
“뭔 개소리를 쳐씨부리나 했더니 또 바꾸자고? 진짜 그러다 죽는다!”
“맞아요. 진짜 오빠 너무한 거 아니에요? 훅 어디 갔다 오면 뭘 손보자고 하고, 또 어디 갔다 오면 이거 고치자고 하고.”
분명 성질낼 걸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반응이 격렬할 줄은 몰랐다.
내가 무슨 대역죄인도 아니고.
사실 내 입장에서는 다른 가게들도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엘리스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지만 약간은 현실적인 부분 때문이었다.
대부분 고정 월세가 아니었다. 수익에서 일정 비율을 엘리오스 마을에 세금으로 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길게 보면 이득이었다.
일단 관련 메뉴는 거의 선독점에 가까웠고, 이로 인한 홍보 효과가 상당하다 봤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공짜라는 거지.’
전기, 수도, 가스. 그 외 기타 등등.
딱 쓴 비용만 내면 끝이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필요한 집기도 엘프들이 알아서 다 해줘, 공사나 수리비도 없었고, 심지어 현지와 손강희가 지내는 집도 무상에 가까웠다.
결국 받은 만큼은 해줘야 하는 셈이니 다른 가게들도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행복 분식 메뉴의 허점들이 보였다.
시그니처 메뉴의 부재.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누룽지란 특색을 제외했을 때, 그냥 평범하다는 거였다.
물론 몇 가지 감춰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목숨(?) 걸고 고치자고 한 건데…….
그 전에 맞아 죽을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으으, 다 같이 잘되자는 말이야…… 그리고 오히려 두 사람한테는 더 좋다고.”
“진짜 좋은 거 맞나?”
“속고만 살았냐?”
“속고만 살았으니 이러는 기다. 내 진짜 디지면, 속에서 사리가 몇 개나 나올지 모르겠다.”
“크, 크흠.”
자동적으로 슬쩍 고개를 돌리게 되더라.
하긴. 현지는 나한테 몇 번이나 통수를 맞았으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손강희까지 눈에 불꽃을 피우는데, 이상하게 찔리더라.
“이건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 일단 이야기부터 하면 안 될까?”
“일단 들어는 준다.”
“그래. 그러니까, 보편적 취향이라는 게 있다는 거야.”
“개소리는 거기까지, 쓸데없이 말 돌리지 말고 뭘 어떻게 하겠다고.”
와, 바로 들통 났다.
사실 이야기를 조금만 복잡하게 만들어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보려 했는데, 지금 상태로는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았다.
“그냥. 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하자는 거지. 막 고기만 먹으면 금방 물리니까 중간중간 파채나 장아찌 같은 걸 먹는 것처럼 말이야. 그래야 고기를 더 먹을 수 있잖아.”
“결론은?”
“중간에 파채 같은 버거를 넣자. 이거지.”
현지는 와락 인상을 찌푸렸고, 손강희는 뭔가 생각하는 듯 손으로 턱을 괴었다.
물론 협상이란 건 일방적이 될 수 없다.
당연히 서로 간에 적절하게 맞춰가야 하는 법이지.
“대신 다른 메뉴 다 없앤다. 어때?”
“그 정도면 못할 건 없는데…… 강희 네 생각은 어떤데?”
“일단 찬성.”
한 고개를 넘었으니 이제 밀어붙어야 할 때였다.
“버거 하나만 제대로 손보자!”
* * *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큼 만듦새는 예쁘군.”
오송해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제일 먼저 어묵 스테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바사사삭!
순간, 눈이 크게 떠졌다.
고소한 누룽지, 그 안쪽의 쫀득하고 달달한 밥맛. 곧이어 샐러드의 새콤함과 두툼한 어묵에서 느껴지는 간간한 맛이 한꺼번에 터져 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미각이 섬세하지 못한 사람도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을 터.
“호오~”
오송해는 감탄을 하며 옆을 돌아봤다.
우걱, 우걱.
잠시 황당함이 뒤통수를 때렸다.
분명 김요성은 많이 못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벌써 버거 두 개를 해치운 상태.
중간중간 입맛을 정리해 준다는 계란말이 버거는 겨우 한 입 남았다.
특히나 표정이, 이율배반이었다.
이마의 주름과 부릅뜬 눈은 절의 사대천왕 같았는데, 입은 부처처럼 웃으면서 버거들을 씹고 있었다.
“허어, 자네 진짜 푹 빠진 모양이군.”
“더 드셔 보시면…… 큽, 컥, 아실 겁니다.”
“그, 그러지.”
김요성의 행동이 무얼 말하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새로운 식감에 홀딱 빠진 것이겠지.
솔직히 자신도 식빵과 번을 대신한 누룽지가 이 정도일 줄은 상상 못 했다. 겉은 아주 크리스피하게 바삭했고, 안쪽은 찰떡같은 쫀득함이 있었다.
왜 저 친구가 다른 건 하지 않고 굽는 데만 집중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아마도 수십, 혹은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겠지.
그 정도 노력이 아니라면 이 퀄리티를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을 테니까.
반대로 이게 그렇게까지 먹을 맛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요리사에게 필요한 건, 의심보다 확신.
“휴우…….”
짧게 한숨을 내쉰 오송해는 어묵 스테이크를 한 입 오물거린 뒤, 이번에는 계란말이 버거를 집어 들었다.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상큼함이 폭발했다.
‘뭐지?’
삽시간에 혓바닥의 세포들이 곤두섰는데, 정말이지 짜릿할 정도라고나 할까?
이건 라씨도 아니고, 식초도 아니었다.
떠먹는 요구르트 같은데도 신맛이 강했는데 그 끝에 오묘한 단맛이 느껴지더라.
막 식욕이 솟구친다고나 할까.
오송해는 바로 소불고기를 한 입 가득 씹었다.
와사사사삭!
또다시 머릿속에서 누룽지 박살 나는 소리가 울렸다.
‘으음, 이거 묘하군.’
묘한 쾌감에 전율이 일었다.
동시에 스트레스 같은 게 훅 날아가는 기분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오송해는 좀 더 신중하게 접근했다.
먹는 걸로 화를 푼다는 개념을 넘어 맛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소불고기는 분명 달달 간간했다.
맛이 강하진 않았으나 불고기라는 존재감은 확실히 느껴졌고, 여기에 샐러드까지 더해져 부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계란말이 버거를 한 입 먹고, 다시 소불고기를 먹어 보니 풍미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진짜 마술에 홀라당 속아 넘어간 기분이랄까.
“신기하군. 정말 사기당한 것 같아.”
소불고기, 계란말이, 제육볶음, 계란말이.
그렇게 미묘하게 변하는 맛을 즐기다 보니 순식간에 종이 케이스가 텅 비어 버렸다.
그때, 김요성이 불쑥 묻더라.
“어떠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