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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84화 (84/156)

84화

“사기당한 기분이라네.”

이건 오송해의 진심이었다.

그 반응에 김요성도 어이없다는 듯 웃고 말았다.

확실히, 이 맛은 사기지.

“딱히 거창하고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조리 방식도 이것저것 섞인 느낌인데 맛은 또 기가 막히단 말이야.”

이 누룽지 버거는 확실히 흥미로운 맛이었다.

일단 전체적인 느낌은 예전에 반짝하다 사라졌던 밥버거에 가까웠다.

당시 밥버거는, 기존의 버거들은 양식에 치중했던 걸 한식 쪽으로 응용한 부분에서 큰 점수를 받았다. 거기에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대중에게 파고들었고 나름의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솔직히 짜게 평가하면 유명한 노량진 컵밥의 검증된 메뉴들을 버거 형태로 만든 것에 불과했다. 다양한 서브 메뉴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맛’ 이란 층면에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겉의 누룽지만 빼면 이건 ‘불고기 쌈’이었다.

밥의 맛이 약해서 오로지 속 재료의 맛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이다.

두 장의 양상추 위에 겉절이 양념 맛의 야채들이 더해지고, 마지막으로 불고기를 듬뿍 올려 한 입에 구겨 넣는 느낌이랄까.

푸짐한 속 재료들이 입속에서 어우러지니 제법 괜찮은 쌈밥집의 불고기 맛이 난 것이다.

그건 ‘제육볶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국물이 거의 없는 형태의 제육볶음인데, 신기하게도 고기와 김치를 한데 올려서 크게 한 쌈을 먹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제육볶음에 들어가는 양념이 비결인 모양이었다.

오송해가 그렇게 짧게 감상을 늘어놓자 김요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가씨가 전에 선생님께서 극찬하신 그 김치찌개집 따님입니다.”

“그…… 자네 소유의 아파트 상가 맞은편의 그 식당 말인가?”

“예. 그때 김치찌개 맛이 아주 깊다고 하셨었죠.”

“확실히 제육볶음치고는 깊은 맛이 난다 싶었는데…… 양념에 물 대신 김치찌개를 넣고 졸여서 숙성시킨 모양이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육볶음 퀄리티가 높을 수밖에 없죠.”

두 사람의 대화에서 유현성은 황당함을 느꼈다.

고작 양념에서 시작해 식당까지 맞춰 버리다니.

‘아! 중간에 강희가 끼여 있구나.’

김요성이 그 구역 대표였으니 불가능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근데 보통 아주 단골인 경우를 제외하면, 식당 집 딸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때, 김요성이 말했다.

“하나 더 먹어볼까 합니다만?”

“계란말이 버거라고 했나? 나는 그걸 고르겠네.”

“저랑 생각이 같으시군요.”

김요성은 그렇게 말한 뒤, 바로 손강희에게 주문을 넣었다.

“그 누룽지 버거는 단품으로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불호가 강해서 모듬에만 나가거든요.”

손강희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유현성을 쳐다봤다.

도와달라는 그런 눈빛이 분명했다.

“강희야, 이분들은 괜찮아. 적어도 음식 맛으로 트집 잡을 분들은 아니거든.”

“크흠, 트집 잡으러 온 거 맞는데?”

“어차피 어떻게 맛을 냈는지 궁금해서 그러시는 거 아닙니까?”

유현성이 짓궂게 웃자 김요성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들통난 건가?”

“선수끼리 그러지 말자는 거죠.”

“한 번 더 맛본다고 바로 파악할 수 있겠나?”

“더 먹어본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닐 겁니다.”

“자신감이 넘치는군.”

“때론 그 자신감이 판단에 착오를 주기도 합니다.”

오송해는 두 사람의 대화가 뭔가 어긋난다는 걸 깨달았다.

어쩌면, 둘만 아는 포인트를 빼고 돌려서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미친놈들의 대화 같았으니까.

“강희야, 계란말이 버거 두 개.”

“알았어요.”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손강희는 준비에 들어갔다.

동작은 아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저 섬세하게 불 조절을 해가며 누룽지를 만들 뿐이었고, 옆의 현지 역시도 미리 만들어놓은 계란말이를 가볍게 구울 뿐이었다.

샐러드 역시 마찬가지.

김요성과 오송해는 뭔가를 찾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

반대로 유현성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베이스가 되는 안쪽이 촉촉한 누룽지에 샐러드가 올라가고 소스가 뿌려졌다.

다시 양상추가 깔리고 계란말이가 올라간 뒤 또 소스와 야채가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누룽지가 덮였다.

현지는 그걸 포장하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네 모서리를 꾹꾹 눌렀다.

그렇게 버거 형태를 만들면 끝이었다.

“커팅해 드릴까요?”

“그래 주게.”

다시 두 조각이 된 누룽지 버거를 받아 든 김요성은 내부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형태만 보면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름 그대로 계란말이 샐러드에 가까웠던 것이다.

정말이지 비주얼은 ‘건강한 맛’ 그 자체였다.

“보는 것만으로는 모르실 겁니다.”

“지금 내 미각에 싸움 거는 건가?”

“진실입니다.”

유현성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손강희에게 따로 주문을 했다. 일명 고기고기 버거라고, 하나만 만들라고 한 것이다.

사실 특별할 건 없고, 모듬 메뉴에 들어가는 소불고기와 제육을 넣은 누룽지 버거였다.

김요성과 오송해는 그 주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계란말이 버거에만 집중했는데, 이상하게 머리카락이 빠질 것 같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지극히 평범해 보였으니까.

“크흑, 시다. 써. 근데 또 달아.”

한 입 베어 문 직후 터진, 김요성의 괴랄한 맛 표현.

더 황당한 건 오송해의 반응이었다.

“자네 말이, 정확하네.”

“이건 전체적으로 상큼한 맛이 맞습니다. 밸런스는 일단 그쪽으로 간 건데, 숨은 맛이 제법 강렬합니다.”

“나도 그 맛을 찾긴 했는데, 도통 뭔지 모르겠군. 계란말이에 요거트 소스라는 것도 놀랍긴 한데 그걸로 뭔가를 덮은 느낌이야.”

오송해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뒤 유현성을 쳐다봤다.

“계란말이엔 케첩이나 설탕이 보통인데, 요거트 소스를 응용하는 건 어디서 배운 건가?”

“너튜브요.”

“허.”

“거기 보면 술꾼들 방송 같은 게 있는데, 이것저것 안주 만들어서 실험하는 게 있더라고요. 과일 맛은 좀 호불호가 갈리는데, 순수한 떠먹는 요구르트를 부으니까 정말 색다른 맛이 나더라고요.”

이미 저녁 장사를 통해 검증된 맛이었다. 처음에는 선뜻 손이 안 가지만 몇 번 먹다 보면 묘하게 중독되는 것이다.

유일한 단점은 계란말이에 설탕이 제법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요거트의 새콤함과 서로 어우러져야 하니까.

때문에 칼로리가 높아 다이어트에는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으음. 나도 한 번 시도해 봐야겠군. 아니, 요거트 소스에 대해 전면적으로 테스트해 봐야겠네. 어쩌면 불고기하고도 어우러질 수도 있겠지.”

요거트 불고기라니, 정말 상상하기도 싫었다.

“선생님.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요?”

“원래 새로운 요리라는 건, 막 나가다 뒷발에 걸리는 거라네.”

“호텔에서 30년 근무하신 거 맞죠?”

“바닥에서도 10년 가까이 해봤지.”

“그래도 불고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요거트 소스에 찍어 먹는 양고기 케밥도 있는데 불고기라고 불가능할 건 없지 않는가?”

“어? 일단 말은 되네요.”

살짝 말린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오송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 케밥을 검색해 보면, ‘잘게 썬 고기 조각을 구워 먹는 터키의 전통 요리’라고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은 얇은 반죽에 고기와 야채 등을 넣고 둘둘 말아서 먹는 거로 되어 있었다.

그걸 살사, 혹은 칠리 같은 소스에 찍어서 먹는 게 대중화된 것이다.

분명 그중에 요거트 소스도 있기는 했지.

“오빠, 버거 나왔어요.”

“오, 그래?”

유현성은 누룽지 버거를 반 조각씩 오송해와 김요성에게 건넸다.

“이게 제 힌트입니다. 번갈아 가며 드셔야 제대로 파악하실 수 있을 겁니다.”

“확실히, 계란말이 버거만 먹으니 맛에 익숙해지는군.”

김요성은 소불고기와 제육이 반반 섞인 버거를 계란말이 버거와 번갈아 가며 먹었다.

아주 신중하게 음미하면서.

문제는 한 입씩 먹을 때마다 맛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하아~ 귀신이 환장할 노릇이군.”

김요성은 유현성을 노려봤다.

처음과 다르게, 갈수록 저놈의 요리는 비밀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 * *

“이게 신메뉴 짬뽕국밥입니다.”

강종곤이 내놓은 건 두 개의 뚝배기였다.

하나는 백짬뽕처럼 국물이 흰색이었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붉은색이었다.

그 국물 위로 불향을 잔뜩 입힌 야채들이 수북이 올라가 있었다.

“일단 식욕이 당기기는 하는데, 좀 평범한 느낌이군.”

김요성은 그렇게 말한 뒤 강종곤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설명을 하라는 거겠지.

“사실 짬뽕을 베이스로 다양하게 응용을 해봤습니다. 일반 면뿐만이 아니라, 흔히들 사리 모듬이라는 걸 다 써봤죠. 심지어 감자 사리면부터 저 강원도 옹심이까지요.”

강종곤은 대충 열 종류 정도를 말했는데 어느 정도 납득이 가더라.

“일본식 라멘에 들어가는 재료들까지도 시험해 봤습니다만, 제 해물짬뽕과는 어울리지 않더군요. 깔끔한 국물 맛을 너무 죽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예. 차라리 정면승부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직후 강종곤은 유현성을 쳐다봤다.

몇 번이나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는데, 솔직히 답이 나오질 않았다. 해물 짬뽕 만둣국으로 상을 받았지만 같은 방식의 응용으로도 적절한 메뉴를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현성이 그러더라.

부산 시민들의 소울 푸드로 정면 승부 하자고.

“이게 제가 선택한 음식입니다. 설령 평가가 박하게 나오더라도, 이 메뉴를 내놓을 생각입니다.”

“그 정도까지 각오했다니. 기대해도 되겠는가?”

“예. 실망하진 않으실 겁니다.”

이후 추가로 몇 가지 반찬이 더 나왔는데, 김요성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구성이…… 돼지 국밥과 거의 같았으니까.

“양념된 부추에 김치, 깍두기, 마늘, 고추, 쌈장, 심지어 국수사리까지.”

김요성은 강종곤을 가만히 쳐다봤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 강종곤은 그저 식사만 권할 뿐이었다.

결국 오송해와 김요성은 숟가락을 들었다.

한데 첫 국물을 뜨는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숟가락이 묵직하군.”

“국밥입니다. 그 본연에 맞게 든든해야죠.”

“이해했네.”

오송해는 가만히 야채들을 섞은 다음 크게 한 수저를 떴다. 거기에는 일반적인 돼지국밥처럼 두툼한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확실히 짬뽕하고는 다르군.”

흐읍.

들이마시는 호흡과 함께 한 숟가락이 입속으로 사라졌다.

우물우물.

가만히 맛을 보던 오송해는 다시 한 술 입으로 가져가더니 살짝 눈을 감았다.

국물은 확실히 짬뽕이었다.

하지만 짬뽕밥과는 다른 끈끈함이 느껴졌다. 밥의 전분이 국물에 풀려 생기는 것과는 다른 풍미가 미묘하게 들어왔던 것이다.

백짬뽕국밥 다음은 빨간짬뽕국밥이었다.

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평범한데, 뭔가가 다르군.”

“입에는 맞으십니까?”

“아주, 나 같은 사람한테는 딱일세. 안 그래도 다른 가게들은 취향이 젊…… 설마?”

김요성은 또다시 사기당했다는 표정으로 유현성을 노려봤다.

“뭐, 짐작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아무래도 가족 식당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요.”

“확실히…… 가게 하나하나로 보면 이 메뉴를 선택한 게 이해가 되는군.”

“예. 대표님과 이야기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본성 푸드가와 강종곤 해물짬뽕을 왔다 갔다 하다가 깨달은 겁니다. 여기가 공원이라는 사실을요.”

관광지라고 젊은 사람들만 오라는 법은 없었다. 어쩌면 가까운 거리의 가족들도 가볍게 즐기고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가족 외식 식당이 없더군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가게가 그 역할을 맡기에 충분하다 싶었습니다. 부모님은 국밥을, 아이들은 짜장면을 먹는 것도 제법 괜찮은 그림이니까요.”

“하나를 보지 않고 전체를 봤단 말인가?”

“하하, 아무래도 식당부 장관 일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때 잠자코 짬뽕 국밥에 집중하던 오송해가 살짝 손을 들었다.

“난, 합격을 주겠네.”

* * *

“후우…… 도통 의문이 풀리질 않는군.”

“뭐가요?”

“자네, 아니. 너, 이 망할 놈 같으니라고. 이렇게 치면 본성 푸드가가 제일 불리하잖아!”

“에이~ 메뉴 종류 자체가 다른데요. 뭘 그러시나.”

유현성이 씨익 웃는데, 김요성은 답답해 환장할 지경이었다.

근본적으로 따지면, 본성 푸드가는 퍼포먼스로 인한 고객 유인, 거기에 더해 음식 조리의 단순함을 이뤘다고 할 수 있었다.

포장까지 염두에 뒀으니 보다 다양한 메뉴들을 판매할 수 있겠지.

“그래, 전제 종류의 지분은 본성 푸드가가 절반 이상이겠지. 포장 판매 쪽은 자네 가게가 압도적일 테고. 하지만 제일 많이 남는 건 저 해물짬뽕집이 될 거야.”

김요성이 이렇게까지 단언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일단 메뉴 구성이 좋았다.

원래라면 중국집에서 잘나간다는 짜장면과 짬뽕에, 볶음밥과 잡채밥을 기본으로 옛날식 케첩 탕수육, 칠리 새우, 깐풍기가 전부였다.

하지만 추가된 짬뽕 국밥은 무척이나 강렬한 무기였다.

“유일한 술안주! 그리고 해장국.”

“오오~ 역시 대표님. 단숨에 거기까지 꿰뚫어보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자네…… 나 놀리나?”

“전혀 아닙니다. 솔직히 전 보름 가까이 끙끙거렸다고요. 뭔가 빠진 것 같은데 도저히 찾지를 못했죠. 결국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다 겨우 눈치를 챘고요.”

“그런데 왜 실실 웃고 있는 겐가?”

“아! 제가 웃고 있었나요?”

김요성은 고개를 저은 뒤, 두 손을 들었다.

“내가 졌네. 졌다고.”

“에이, 우리가 무슨 승부를 한 겁니까? 그냥 이렇다고 보여준 것뿐입니다만.”

유현성이 웃자 김요성이 버럭 했다.

“됐고. 다 토해내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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