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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85화 (85/156)

85화

“대체 뭐가 그렇게 궁금하신 겁니까?”

“전부, 하나에서 열까지.”

김요성의 시선은 행복 분식에 머물러 있었다.

확실히 그게 제일 궁금하다는 의미겠지.

“사실 별것 아니긴 한데요. 일단 순서대로 짚어가는 게 먼저일 것 같거든요. 안에 들어가서 시원한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믹스 냉커피 준비됐다더군. 선생님도 같이 가시죠.”

김요성은 그렇게 말한 다음 본성 푸드가 안으로 들어갔다.

“아, 시원하네. 역시 에어컨 밑이 최고라니까.”

유현성이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오송해는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김요성 혼자 분위기를 잡고 있었으니, 조금은 가볍게 가자는 신호였다.

오송해에게는 시원한 녹차가, 유현성과 김요성은 시원한 믹스 냉커피를 받았다.

그렇게 홀짝거리며 더위를 식히는데 김요성이 자꾸 눈치를 주더라.

“일단 역순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엘리오스 카페야 특이점은 별로 없습니다. 흔히 많이 볼 수 있는 익숙한 카페 딱 그 수준이죠.”

아메리카노, 라테, 스무디, 요거트 등등 번화가의 어지간한 카페들과 메뉴는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유일한 차별점은 젊은 여자 엘프들이 거의 모든 일을 한다는 것.

그 이상 딱히 필요한 건 없었다.

매상이야 어차피 엘프 덕후들이 와서 다 올려줄 테니까.

“하지만 독점이지. 자네가 허락하지 않으면 어떤 카페도 들어올 수 없고, 더욱이 지금도 다른 가게들이 음료 취급하는 걸 어느 정도 제한하고 있지 않는가.”

“기본적인 콜라, 사이다, 판타 등등은 여기 본성 푸드가도 파는 데 제한 없습니다. 그건 행복 분식이나 강종곤 짬뽕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건 제가 정한 게 아닙니다. 특히 엘리오스 카페는 실질적으로 원로원에서 운영하는 겁니다. 이쪽 입장에서는 최대한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는 엘리스 소유라는 게 맞을 거다.

원로원이라 해봐야 장로는 고작 다섯이고, 나름 최대 파벌(?)이라 할 수 있는 라이노스는 엘리스에게 절대 충성이었다.

다시 엘리스는 총관리 권한을 나한테 몰아줬으니…… 어라? 따지면 내 가게네?

“크흠, 하여간 거기 방침에 따르는 게 우선이라는 거죠.”

김요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본성 푸드가 같은 규모의 분식집이라면 음료 판매 수익도 적지 않았다.

다른 직영점의 경우 콜라, 사이다 수준을 넘어서 녹차, 홍차 같은 것들도 팔았으며 계절마다 한두 종씩 신제품을 내기도 했던 것이다.

딸기딸기 라테, 얼음 수박 스무디, 달디단 단밤 초콜릿 등등이 히트를 쳤었지.

“계절 음료의 경우는 협의만 하면 가능하도록 해드리죠. 최소한 겹치지만 않으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너무 부정확하네. 그리고…… 솔직히 믿기도 어려워.”

“행복 분식에서는 매실꿀차를 팔고 있죠. 허가는 받았고요.”

“누구한테?”

“당연히 저죠.”

“이런 쓰…… 선생님, 죄송합니다.”

김요성은 다급히 튀어나오던 욕을 삼키고, 오송해에게 양해를 구했다.

지금은 사업 영역의 대화였다.

당연히 오송해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으니 먼저 말을 꺼낸 자신의 실수였던 거다.

“그 부분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짬뽕국밥의 경우, 선생님도 그러셨지만 나도 합격이야. 적어도 중장년층이 좋아할 만한 음식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죠.”

“대신 과음으로 인한 문제가 있으니 소주는 1인 1병으로 제한하게.”

“의견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짬뽕국밥 맛은 어땠습니까?”

유현성을 질문하면서 시선을 오송해에게 돌렸다.

오랜 경력의 요리사가 해주는 평가가 보다 정확하다 싶어서였다.

“기존의 카테고리와는 좀 다르다고 봤네. 중식보다는 한식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사실 돼지국밥 중에도 맵게 나오는 게 있기는 하지.”

오송해는 식당 몇 군데를 이야기하다 가볍게 웃었다.

“돼지국밥을 맵게 한 것과, 짬뽕을 돼지 국밥 식으로 내는 것. 분명 맛도 다르고 구분도 다르지.”

“그야 굳이 분류를 하자면 사골을 쓰냐 안 쓰냐의 차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있지만, 인식의 차이도 있다네. 부산 사람들이 봤을 때는 짬뽕맛 돼지국밥이 되는 셈이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돼지고기 가득 짬뽕밥이 되는 거니까.”

“흐음, 확실히 선생님 말씀이 맞는 것 같군요.”

김요성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솔직히 저도 딱히 이거다, 라고 규정짓기는 어렵더라고요. 분명 얼큰한 짬뽕밥이긴 한데, 국물만 빼면 돼지국밥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돼지 국밥 식으로 두툼하고 넓적하게 썬 고기에서 뭔가 묘한 감성이 느껴지더군.”

역시나 두 사람을 부르길 잘한 것 같았다. 실력도 경력도 적어도 자신이 아는 한 최고였으니까.

그걸 증명하듯 단 한 번의 시식으로 핵심을 파악해 버렸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됐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짬뽕은 제가 아는 바가 별로 없어서 정말 애를 먹었습니다. 그 형님이 웃으면서 말해서 그렇지, 진짜 고생 많이 했거든요.”

강종곤 짬뽕의 기본은, 형님네 가게에서 가져오는 최상급의 해물로 내는 육수였다. 그 베이스 안에서 새로운 요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가이드가 있었기에, 선택에 많은 제한이 있었던 것이다.

고급 중식 스타일의 건짬뽕, 볶음짬뽕도 만들어 봤고, 칼국수 방식으로도 다양한 맛을 내봤다.

그 와중에 종곤이 형은 편의점 하나를 털어 버렸다.

짬뽕 관련된 사발면에 라면, 심지어 짬뽕맛 꽃게 과자까지 싹 쓸어버린 것이다.

진짜 오죽 답답했으면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다.

그렇게 고민에 궁리에 연구가 거듭된 결과.

딱 1톤 반 정도 육수를 버린 뒤, 강종곤이 선언했다.

“나 포기할래.”

“예? 여기서요?”

“하, 요즘 젊은 친구들 입맛에 맞춘다는 게 진짜 뭔지 모르겠다고. 그냥 짬뽕은 남자건 여자건, 나이니 뭐니 안 따지고 다들 좋아하잖아.”

“……예. 형 말이 맞아요. 그러니까 차라리 정공법으로 갑시다.”

“정공법?”

“형 말대로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좋아하는 음식이 또 있잖아요.”

“그야 많지.”

“짬뽕으로 국밥 갑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짬뽕 국밥이었다.

기획 유현성, 제작 강종곤.

돼지국밥처럼 밑에 토렴한 밥이 깔리고, 돼지고기를 두툼히 썰어 넣는다.

반찬도 국밥집 스타일 그대로였다.

특히 양념 겉절이 부추는 국밥과 ‘영혼의 단짝’ 었다. 진정한 소울 푸드를 느끼게 하는 키포인트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렇게 한 상을 냈으니 김요성과 오송해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서 최소 반평생 이상을 살아왔기에.

어쨌든 합격을 받았고, 어필도 충분히 했으니 더 이상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할 것 같았다.

“그럼 짬뽕 국밥은 넘어가죠.”

사실 할 말이 넘치도록 많았지만 이 두 사람을 상대로는 시간 낭비에 가까웠다.

이후, 몇 가지 평가가 이어졌다.

“핑크색 크레페에서 일단 점수를 주고 싶더군. 대회 때보다 맛의 퀄리티도 많이 올라갔고.”

“확실히 색감이 젊은 친구들이 좋아할 만하겠더군요.”

“식용 색소 두 가지를 조합해 톤을 만들어 반죽에 섞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벚꽃색 크레페라 할 수 있죠. 아마 겨울 시즌에는 녹차색이나 눈꽃색으로도 시험해 본다고 했습니다.”

“그건 괜찮군. 하지만 좀 많이 달더라고.”

“역시 저랑 비슷하시군요. 선생님은요?”

“우리 손녀나 좋아할 맛!”

“그럼 단맛을 더 줄일까요?”

“나름 강점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차라리 단계를 나누는 게 좋을 듯하네. 상중하 정도로 해서 올리고당, 꿀범벅, 설탕 폭탄 정도로 맞추면 괜찮을 것 같군.”

“오, 그것도 괜찮은 방법 같네요. 의견 참고하겠습니다.”

그렇게 폭탄 자매 크레페는 넘어갔고, 이제 핫도그였다.

신메뉴는 리얼 해물 핫도그였다. 잠시 짬을 내서 생신 어묵 대표 김은희 누님을 소개시켜 줬는데, 거기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도깨비 방망이라 불렸던 핫도그 스타일 그대로였는데, 이번에는 큐브 어묵을 박았다.

여기에 추가로 고추냉이 소스를 준비했는데, 좀 알쏭달쏭하더라.

“차라리 고추냉이 소스를 더 활용하는 게 나을 것 같더군. 그러니까 완성된 핫도그에 칼집을 내고 거기 소스를 쭈욱 짜 넣는 것이지.”

김요성의 조언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갓 튀긴 핫도그는 약간 폭신폭신한 팽창감이 있었다. 거기에 세로로 길게 칼집을 내면 순식간에 쫘악 하고 벌어진다.

“그 안에 소스라. 이건 좀 테스트 해봐야겠습니다.”

“그래, 디저트는 그렇게 넘어가고. 우리 제일 중요한 걸 정산해야 하지 않겠나?”

김요성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몰아쳤다.

아오, 누가 안 알려준다고 그랬나.

참 성격이 급했다.

“길게 시간 끌 것도 없으니까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두구…….

김요성은 머릿속에서 막 누가 드럼을 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에.”

“이 씨…….”

“아니,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아, 욕이 아니라, 크흠 크흠. 목이 좀 안 좋아서.”

“아까 분명히 답을 찾았다고 하셨잖습니까? 계란말이 누룽지 버거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김요성은 잠시 눈치를 본 뒤, 본인조차 믿기 어렵다는 투로 말했다.

“적어도 18년 이상 숙성시킨, 발사믹 식초의 맛이 나더군. 은은하게 퍼지는 식욕을 일으키는 고급스러운 신맛이라고 해야 할까. 근데, 그 썩은 표정은 뭔가?”

“우린 동네 분식집이거든요?”

“아, 알지.”

“그런데 한 병에 수백만 원이나 하는 숙성 발사믹 소스를 쓰는 게 말이 됩니까?”

“나도 이해가 안 돼서 답답해서 하는 말 아닌가.”

유현성의 어이없다는 반응에 오송해도 거들었다.

“그 소스는 나도 쉽게 못 써. 한두 방울만으로도 요리의 품격을 올릴 수 있지만 정말 여러모로 비싸고 어려운 소스야.”

“저도 알긴 압니다만, 경험상 그 비슷한 느낌을 주는 건 그게 유일하더군요.”

김요성은 이제 대놓고 쳐다봤다.

빨리 답을 내놓으라는 거겠지.

“제가 쓴 건 오미자 엑기스입니다.”

* * *

오미자.

달고, 짜고, 씨고, 쓰고, 심지어 매운 맛까지.

하여간 다섯 가지 맛이 느껴지는 열매라고 해서 오미자라 불린다.

“오, 오미자라고?”

“예. 그걸 갈고 졸이고 해서 농축시킨 소스에 냉동 체리를 갈아서 요거트와 섞은 거죠.”

“하, 색상만 보면 딸기인 줄 알았는데…….”

“맛도 딸기던가요?”

“솔직히 비슷한 맛이 나기는 했지.”

김요성이 인정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오송해를 보는데, 김요성과는 반대로 표정이 심각하더라.

“애초에 속이려 한 건 아닙니다. 그냥 신맛에 몰빵 하자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찾다가 좀 더 고급스러운 신맛으로 가자, 하고 바뀐 거죠.”

“그게 오미자다?”

“예. 그런데 막상 조리해 보니까 그렇게까지 신맛이 강하진 않더라고요. 결국 레몬즙과 냉동 체리로 커버하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 묘한 걸 경험했습니다.”

사실 오미자 자체가 아주 크게 대단한 맛을 가진 건 아니었다. 좀 더 우리고 농축해야 맛이 약간 두드러진다고나 할까?

하지만 졸여서 몇 가시 소스들과 섞으니 한층 고급스럽게 바뀌더라.

숨겨진 찌르는 듯한 신맛이라고나 할까.

쓸까 말까 고민하다 일단 질렀다.

그리고 전체 모듬에 들어가는 계란말이의 메인 소스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오미자 요거트 소스가 계란말이하고 잘 어울리더군요.”

“솔직히 나 역시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네.”

오송해가 나름 칭찬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요거트 소불고기는 좀 아니었다.

어쨌든 다락방에서 손님들 받을 때도 요거트 소스가 호평을 받았는데, 거기에 오미자 농축액과 레몬즙이 들어가니 한층 맛이 도드라진 것이다.

특히 이 소스가 입에 남은 상태에서는 소불고기와 제육의 양념 맛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더라.

“오미자가 그런 느낌일 줄은 몰랐군. 어째 아주 미묘하게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고는 느꼈지만.”

“사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런 거 못 느낍니다.”

“뭐?”

“보통 사람들은 그냥 새콤한 샐러드다 정도로만 느낀다는 거죠. 하지만 김 대표님은 미각이 너무 섬세하셔서, 남들이 모르는 숨은 맛까지 다 찾아낸 겁니다.”

“그래서 달기도 했고, 쓰기도 했고, 짜기도 했다는 말인가?”

“예. 미각이 출중한 개들이나 그걸 구별할 겁니다.”

솔직히 임혜리는 구분 못 했다.

반대로 임수원은 그 미묘함을 세 번 만에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음~ 조금 이상한데?’ 두 번째는 ‘어? 맛이 달라지는데?’ 세 번째는 ‘여기 뭔가 다른 게 들어갔구나’ 하는 정도로.

즉, 이 두 사람의 미각이 그 정도로 섬세하다는 거겠지.

오송해는 약간 심각한 표정이었고, 김요성은 머리를 붙잡고 괴로워했다.

“개라니…… 내가 개……?”

유현성은 피식 웃으며 아까 했던 말을 반복해 전해줬다.

“때론 미각에 대한 그 자신감이 판단에 착오를 주기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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