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아, 파리 싫은데.”
보통은 제대로 된 곳은 꼬이지 않는다.
아주 냄새나거나 쓰레기통 같은데 살살 들이미는 게 파리였다.
하지만 김요성은 철벽을 쳤다.
“자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야.”
“그런데 왜 제가 듣게끔 말씀하신 거죠?”
“크흠, 혼잣말이 좀 과했네.”
“결국 해결이 안 된다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이건 사업상의 일이라…… 그나저나 선생님 잘 배웅하고 왔나?”
“말 돌리는 건 아직 미흡하시네요. 산책하면서 천천히 걸어 내려가신다고 해서 그…… 황 실장인가 하는 분에게 눈짓으로 인계하고 왔습니다.”
김요성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오송해를 바래다주는 것보다 급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글쎄다. 그럴 일이 있나?
“그분과는 자주 보는 사이이긴 하지만 좀 예의 없는 일이기는 하지. 하지만 같이하기로 한 부분이라 추후로 설명하면 될 일이라네.”
“예? 같이요?”
김요성은 잠시 망설이다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러다 얼마 없는 것도 다 빠질 텐데.
“동북전망대 공동으로 입찰하기로 했어.”
“여기 넘어 거기요?”
“그럼 다른 곳이 있겠나?”
“아니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냥 팍팍 투자를…….”
“그게 안 되니까 답답한 거지.”
김요성은 손으로 스윽 사업 계획서 일부를 내밀었다.
부산 시장이 직접 관여한다 치고, 세부적인 게 상당히 복잡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갈매기 길드?”
“그래. 거기서 요구하는 비용이 합리적이지가 않아.”
“수익의 15%라. 미쳤네요.”
계약상 경호비로 책정됐는데 이건 좀 문제가 심하다 싶었다.
매출에서 운영 경비 제외 후 순수익을 가르는데 부산시가 15%에, 경비가 15%면, 날로 먹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더 웃긴 조항은 따로 있었다.
사설 경비 고용은 갈매기 길드에 허가 받아야 된다는 점.
“이 새끼들이 강도네요. 안 하면…….”
순간 발끈하려다 계산에 들어갔다.
갈매기 길드, 사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기에 부산 시민들을 위해 게이트를 방어하고 싸웠다고 했다. 위험한 일에 몸을 던지고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큰 희생을 치렀다고도 들었다.
“근데 지금은…… 보호비 뜯어내는 조폭이네요.”
“갈매기 길드가 조폭들도 거의 정리했지. 원도심을 제외하고 다 쓸어버렸으니까.”
“나름 합법적 기업이란 말이죠?”
“아직 각성자 관련 법안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이라네. 실제로 경호 업체보다 헌터들에게 맡기는 게 저렴하긴 하지. 열 명 고용할 거 두세 명이면 되니까.”
“근데 이 서류는 다르게 적혀 있네요. 주야 24시간 36명 고용이라고…… 그 외 경호 인원도 따로 있고요.”
예상 하루 이용객 5,000명에 상주 경비 인원만 50명이 넘는다. 근무자에 야간까지 치면 주말 포함 200명이나 되는데 헌터 36명 고용이라니.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따지면 개소리였다.
실제 근무자는 그 반의반도 안 되는 게 이놈들 스타일이었으니까.
한 대여섯 명이나 나와서 제대로 일이나 할까 싶을 정도라고나 할까.
즉, 헌터라는 가면을 쓴 조폭들이 보호비를 받는 개념이라고 보면 될 거다.
“하, 이 새끼들이 사망적립금을 이런 식으로 쌓네.”
“흡…… 크흠, 무슨…… 관계가 있나?”
“아뇨. 별것 아닙니다. 그냥 알아서 사망신고서 도장 찍고 싶어 하는 것뿐이죠.”
잠시 멈칫하던 김요성은 유현성의 눈을 쳐다봤다.
아주 그냥, 사발면은 금방 익을 정도로 화끈하게 뜨거웠다. 기름만 있다면 아주 그냥 바로 통닭처럼 튀겨 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분명 이유가 있을 터.
하지만 김요성이 분석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가 열받은 건 전혀 다른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들 대가리가 감히 엘리스한테 청혼했다고 했지?’
좀 알아보니 그 속내가 뻔히 보였다.
그냥 엘리오스 마을을 통째로 삼키겠다는 그런 의도가 느껴졌던 것이다.
대충 세금을 올리고 날로 먹겠다는 거지.
하긴, 오죽하면 이상도가 그리 말했겠는가.
-그 새끼 결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냥 죽여 버려요.
“너 연애 못 했다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형님, 쓰레기는 쓰레기입니다. 결혼으로 재산을 몇십억대로 불린 데다가, 부인 사망 원인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기록대로라면 최근 이혼한 부인을 제외하고 앞서 두 사람 사망 경위가 불분명합니다. 게이트 사태를 이유로 두기에는 의심 가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뒷골목 현상금이 제법 된다고 그랬지?’
보통 이런 경우는 가족들이 거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케이스라면 장인, 장모 혹은 처가에서 걸었겠지.
암살자를 고용하는 건 불법이니까.
아마도 그걸 감수하고서도 현상금을 걸 정도라면 큰 원한이 있다는 뜻이겠지.
중요한 건, 그런 새끼가 엘리스한테 청혼을 했다는 거다.
“얼굴 좀 풀게.”
“예?”
“지금 자네 표정 보면 드래곤도 쫄아서 도망갈지도 몰라.”
“크흠, 하하. 괜찮습니다.”
“미간에 주름은 그대로인데?”
유현성은 다급히 손바닥을 펴 얼굴을 문질렀다. 그런 뒤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솔직히 좀 그렇죠. 부산의 관광지 하면 대부분 바다를 떠올리는지라, 모래만 겁나게 사요. 사실은 산이 많아서 부산인 건데.”
이전에도 몇 번이나 생각했다.
사실 부산은 산이 아주 많다 못해 넘친다.
여기 황령산, 옆에 금련산부터 시작해서 배산, 구덕산, 승학산, 만덕산 등등…… 전국에서 터널에 제일 많은 도시인 게 이유가 있었다.
그만큼 산이 많다는 소리지.
하지만 제대로 된 공원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최소 30분 이상 땀 뻘뻘 흘려가며 올라가야 쉼터가 나오는 것이다.
당연히 접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
그만큼 산 쪽에 대한 지원은 병신 같았다. 조금만 제대로 해도 수익이 팍팍 날 곳이 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모래 수십억을 사는 데 예산을 쏟아붓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실제로 부산을 둘러본다 치면 제주도 둘레길 수준으로 구덕산 꽃마을에서 승학산 갈대밭을 돌아 동아대 아래쪽으로 내려오면 거의 원도심을 다 볼 수 있었다.
‘뻥 뚫린 하늘에 시원한 바다까지. 그냥 한눈에 다 들어오는데 알려지질 않았으니.’
편의 시설이 하나도 없으니 누구도 추천을 하지 않는다.
데이트 코스가 바로 헤어질 코스가 될 정도로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부산 시장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 하지만 동북 전망대 공사를 발표한 이상 지원은 적지 않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김요성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대를 넘는 불편함이 존재한다는 것이겠지.
“갈매기 길드 말고 다른 길드와 계약하면…….”
“불가. 무조건 여기와 계약해야 한다고 적혀 있네. 더 황당한 건, 개인 고용까지 막아 놨다는 거지.”
“미친 새끼들이네요. 아주 그냥 대놓고 해먹겠다는 건데.”
독소조항.
아무리 수익이 크게 난다고 해도 저걸 받아들이면 간섭은 피할 수 없었다.
15%가 아닌 그 이상을 요구하겠지.
하지만 김요성 대표는 그 너머를 보고 있을 거다. 그러니 고민이 짙어질 수밖에 없을 터.
솔직히 나 역시도 김요성 대표가 인수해서 밀어준다면 상당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일단 기존보다 네 배 이상 넓어진 주차장.
화장실도 제대로 만들어질 거고, 여기 엘리오스 마을까지 길이 새로 나겠지.
즉, 동북 전망대 이용자까지 모조리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장사는 걱정 안 해도 되겠지.
거기에 식당을 늘려 수익이 더 올라간다면, 행복 분식 이상의 벌이가 될 터.
순간 유현성의 입가가 활짝 벌어졌다.
“큼, 자네가 여기, 엘리스 여왕과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는 건 알고 있네.”
“예? 갑자기 무슨…….”
“그래서 이것저것 관여하고 있지 않는가? 말로는 식당부 장관이라지만, 자네를 실세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네.”
“아닙니다. 절대 아니라고요.”
“그럼 물어보지. 원래라면 오늘 이 자리에 엘리스 여왕도 함께하기로 되어 있지 않았나? 그런데 왜 참석하지 않은 거지?”
“그게…… 라이노스 장로님이 갑자기 와서 그러더라고요. 피로가 너무 쌓여서 자고 있으니 그냥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엉? 말해놓고 나니 조금 이상하긴 했다.
실제로 엘리스가 오지 못한 이유는 세계수의 방향을 정하는 데 많은 마력을 집중해서였다. 엘프들의 염원을 모아 저수지의 물을 정화하는 데 온 힘을 쏟아 넣은 것이다.
그 덕에 에메랄드빛의 호수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김요성 대표에게 굳이 거기까진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
“조금 곤란하게 됐어. 일단 서류로는 만들어놓긴 하겠는데, 엘프 여왕이 어느 정도 납득할지는 모르겠군.”
“음식 중에 마음에 안 드시는 게 있습니까?”
“아니, 다 마음에 들어서 머리가 아프다네. 연인을 위해서 자네가 애쓴 것도 알겠고.”
김요성의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엘리스와의 사이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해명하길 포기했다. 말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일단 갈매기 길드가 제일 문제라는 거군요.”
“자네도 말 돌리는 건 미흡하군.”
어? 이거 괜히 한 방 먹였다가 카운터로 맞는 느낌인데?
“축의금은 넉넉히 하겠네.”
* * *
어우.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고작 가게 하나 확장하는 건데 뭔가 이상하게 꼬인 게 많았다.
물론 그 대부분은 장사 잘되기 위해 하는,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일단 기후가 시원해져야 한다.
그래서 신검 오로라를 가져왔고.
사람이 많아 와야 해서.
동북 전망대에 신경이 쓰이고.
우리만 잘되는 게 아니라 다 괜찮아야 해서.
각각 가게 메뉴를 다 살폈다.
간단히 말하면 푸드 코너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여기가 다 잘되면 내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라고나 할까.
하아.
그런데 신경 쓸 게 너무 많더라.
이건 그냥 가게 차리고 장사하는 수준을 많이 넘어선 느낌이었다.
다행히 이제 마무리 단계였다.
“그러니까 다음 주부터 마을 공개를 하겠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위대하신 존재께서 확장을 고민하는 느낌이라 좀 더 개방과 문화 교류를 통해 선택의 여유로움을 보이는 게…….”
“장로님. 솔직히 이야기하세요.”
“예. 식당 모집이 잘 안 됩니다.”
“하아~”
애초에 라이노스 장로는 대충 스무 개 정도의 가게를 예상했다고 했다. 하나 엘리스가 내게 전권을 넘겼기에 달랑 다섯 개만 오픈하게 된 것이다.
“메뉴 구성은 거의 커버가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국물 요리가 적은 게 좀 아쉽더군요.”
“술 좋아하시죠?”
“전 소주파입니다.”
“그래서 국물 요리를?”
“크하아. 돼지국밥 최고죠.”
이 장로 영감이 정말 한국 최적화가 된 것 같았다.
첫째가 돼지국밥, 두 번째가 가오리회 비빔밀면이라는데 거기에 소주 두 병이 딱이라고 하니 슬쩍 겁이 나더라.
더 황당한 건 따로 있었다.
“식해, 이게 참 매력적이더라고요. 아주 밥도둑이 아니라 밥 강도 수준인데, 수육이랑 씹을 때 감칠맛이 폭발하더군요.”
졸지에 식해도 만들 게 생겼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간단히 이야기하면, 식혜는 마시는 음료, 식해는 절임 생선이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겠지만, 대충 무말랭이 절임인데 생선 살을 넣은 거라 보면 된다.
가자미 식해라든가 명태 식해 같은 것들 말이다.
깊이 이야기하면 정말 백과사전급으로 길고.
결론, 적응이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겁나 맛있다.
쫄깃쫄깃.
찔깃찔깃.
향은 후아아앙- 밀려오고, 고기 기름이랑 겹치면 새콤달콤해진다.
개인차가 있으니 입에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만, 거의 한우 삼합에 비견할 정도의 맛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지금 가게들 대부분 라이트하지 않습니까? 뭔가 깊이 있는 가게도 들어왔으면 합니다만.”
라이노스 장로는 어지간하면 뭔가를 부탁하지 않는 편이었다.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면서 슬쩍 건네는 스타일인데, 이렇게 이야기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순간, 친구 놈이 떠올랐다.
족발집 하다가 이번에 뼈해장국으로 갔다고 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