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아 가격이 오르긴 많이 올랐구나.”
번화가를 돌아다니면서 가격표를 봤는데, 아주 그냥 세상모르고 폭동 중이었다. 지금 대통령이 임기 말이라 제대로 컨트롤 안 된다고 보면 된달까.
하여간 짜장면값이 6,000원이 넘는 시대.
찌개에 4~5찬이 더하기 밥이면 7,000원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고기, 밥이면 더 올라가는 게 현실이겠지.
“아오, 머리 아파 죽겠네.”
다들 고기에 환장한 모양이었다.
라이노스 장로가 추가 식당으로 요구한 가게들이 소불고기, 돼지갈비, 갈비찜에 연탄구이부터 특수 부위 고깃집까지였으니까.
“다 한 번에 넣기는 무리고, 일단 뼈해장국부터 해보자.”
이 친구가 나름 인맥이 많으니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했다. 프랜차이즈 비슷하게 흉내를 내서 취급하는 종류도 많았으니 끌어들이기만 하면 한 방에 해결되겠지.
“안 되면 정육점을 인수해서라도 맞추면 되니까.”
분명히 군대 후임이었는데 나보다 먼저 제대해 버린 놈이었다.
나이는 동갑인데 가업을 이어야 된다고 나간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데 큰 프랜차이즈 족발집이 들어오는 바람에 업종을 바꿨다고 들었다.
저녁 장사 인기 메뉴인 차슈를 가르쳐 준 것도 이 친구였지.
“그러고 보니 연락이 좀 뜸하기는 했네.”
간만에 엘리오스 마을을 벗어나서 번화가로 들어오니 좀 신선하기는 했다.
텁텁하고 후덥지근한 느낌이랄까.
일단 행복 분식을 들르고 우리 강 여사님과 저녁 데이트를 한 뒤, 본가에서 하루 자고 나왔다.
“오랜만에 왔더니 가게 위치가 가물가물하네.”
서면 1번가, 라고 말하지만 거의 망한 상권이었다. 복개천 안쪽인데 다니는 연령대가 조금 높은 편이라 최근 10여 년만에 사람이 뜸해진 것이다.
한때 최고의 월세를 자랑하던 동네였는데, 지금은 노래 주점과 몇몇 노포들만이 자리했다.
“제주 뼈해장국이라. 간판을 바꿨나 보네.”
한데,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상황이 조금 묘했다.
“손님이 한 테이블밖에 없네.”
“어서 오세…… 이 새끼 살아 있었네.”
“정철아, 가게 망했냐? 지금 한창 바쁠 시간 아니야?”
분명 점심 피크 시간인데 가게가 한산했다. 거기에 손님도 단 셋뿐인데 뚝배기는 달랑 하나.
“야야, 주방으로 들어와라.”
“무슨 일 있어?”
박정철은 말없이 손짓만 했다. 아무래도 홀에서 이야기하기 곤란한 모양.
슬쩍 주방 안에 들어가니, 끓고 있는 게 달랑 한 솥뿐이었다.
예전에 휴가 나와서 차슈 배울 때는 거의 세 솥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많이 안 좋아진 것 같았다. 심지어 정철이 이 녀석, 서른도 안 됐는데 벌써 옆머리에 흰 새치가 보이더라.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거겠지?
“휴우, 나. 너네 가게 가봤다.”
“어? 우리 분식집에?”
“손님 많더라. 다들 싹싹하고, 그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녀석만 재수 없더라고.”
“조온달?”
“그래, 아주 그냥 귀족 가문 집사 느낌이라 남자가 보기에는 좀 그렇더라고.”
“그놈 스타일이 원래 그래.”
가볍게 농담하면서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박정철이 화제를 애써 피하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돌려 말하기 그래서 툭 까놓고 물었다.
“진짜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흔한 이야기지. 건물주가 새로 계약할 때 월세를 20%나 올려달라네.”
“그럼 빼야지.”
“그게 말이 쉽냐? 여기 간판하고 인테리어 다시 한다고 들어간 비용만 이천이다. 여기 나가도 어디 갈 데도 없어.”
“이 동네 빈 점포가 넘치던데?”
“나도 다 알아봤지. 거기도 다 월세 기본이 이삼백이다. 가게 옮기면 또 인테리어하고 간판도 바꿔야 되는데 또 수천 깨져.”
확실히 현실적인 문제가 있네.
근데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너 근데 장사는 좀 되는 편이냐? 주방이 좀 그렇다?”
“하아, 반쯤 포기다, 포기. 시발, 건물주 새끼가 월세 안 올릴 거면 나가라고 지랄하는데…… 양아치들까지 끌어들일 줄은 몰랐지.”
“뭐?”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어. 쟤들 뒤에 헌터 길드가 있거든.”
홀 쪽을 슬쩍 보는데, 한 녀석과 시선이 마주쳤다.
어? 분명 어디서 봤던 것 같은데?
삼차 클랜이었나, 아니면 일문 길드?
“그러니까 재들이 가게 죽치고 손님들 시비 건다는 거지?”
“나 먼저 제대한 후에 너 각성한 건 듣긴 했다. 하지만 상대는 조직이야. 괜히 그러다 너네 분식집도 피해 볼 수도 있다고.”
이 친구가 나보다 먼저 군대를 나온 건 부모님 사고 때문이었다. 갑자기 양친이 돌아가시면 독자가 된 것이다.
그 직후 게이트가 터졌지.
“정철아, 나 걱정 안 해도 돼.”
“이 새끼야. 세상 그리 만만한 게 아니잖아.”
“지옥에서도 살아 돌아왔는데 뭘.”
이제 이 정도는 일도 아니다.
진짜 중요한 용건은 따로 있었고.
“그리고, 너 메뉴 뭐뭐 만들 수 있냐?”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그냥 고기 종류로…….”
“그야 어지간한 고기는 다 하지. 지금이야 뼈해장국 하지만 원래는 족발을 했는데, 제주 생고기 앞다리만 써서 단가가 조금 안 맞더라고. 수입은 이상하게 식으면 맛이 애매하고.”
박정철은 나름 진지하게 한참이나 메뉴 이야기를 늘어놨다.
족발은 의외로 힘들지만 다른 한식보다 조리 자체는 또 쉬운 음식이라고 했다. 꼼꼼히 손질하는 노력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새벽에 생고기를 받아서 핏물을 빼고 이미 손질되어 오지만, 다시 면도기로 털을 제거하고, 또 토치를 그을려서 깔끔하게 정리한다.
그다음 족발을 삶는데 온족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하루 두 번 조리해야 한다는 거다.
“문제는 사람을 쓰지 않고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해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우리 가게는 여유도 없고.”
“결국 건물주랑 저 새끼들 문제라는 거지?”
“이건 내 일이야. 차라리 가게 옮기는 게 나을지도…….”
“잘됐네. 너 나랑 고깃집 하자.”
“뭐야? 왜 갑자기 급발진을 해?”
피식 웃고는 툭 하고 물었다.
“너 계약 얼마 남았냐?”
* * *
“진지하게 미친 새끼…….”
박정철이 기억하기론 분명 그랬다.
거의 일 년 가까이 같은 내무실에서 지냈기에 성격도 어느 정도는 알았다.
일단 뒤를 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철이 없다 할 수도 있지만, 한다고 하면 기어이 해내는 스타일인 거다.
같은 부대 후임이었던 이상도에게 듣기로 위험한 임무를 계속하면서 진급했다고 하는데.
대체 어디까지 간 걸까?
“나 다음 달 계약 끝나. 그러니 건물주가 저 지랄하는 거지.”
“오케이. 가게 자리는 내가 구해놨으니까 몸만 와라.”
“미친놈.”
“그리고, 그 전에 정리할 건 정리해야지.”
유현성은 박정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어? 갑자기 마비가?’
박정철은 순간, 이상하게도 몸이 그대로 굳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걸 본 유현성은 씨익 웃더니 바로 홀로 나갔다.
정말 테이블을 보니 가관이었다.
세 명이서 뼈해장국 달랑 한 그릇.
여기에 맥주 두 병과 소주 한 병.
다른 건 모르겠고, 그냥 이것만 봐도 시간 죽치고 있는 쓰레기라는 사실이 이해가 됐다.
그때 셋 중에 아까 주방에서 눈이 마주쳤던 녀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전형적인 근육질 돼지에 팔뚝을 도배한 문신까지.
여기에 검은 정장에 소매를 걷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조폭 아니면 양아치였다.
“참으로 행복한 시절이다.”
“뭐야, 너는?”
“어째서 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살아 있을까? 진심으로 내가 한 일의 가치를 망치는구나.”
“이 새끼 돌았나? 크헉……?!”
유현성은 말없이 상대의 목을 붙잡았다.
그런 뒤 번쩍 들어 버렸다.
“아! 가게 집기가 상하면 안 되지.”
그대로 밖으로 걸어 나가려고 하는데, 다른 두 녀석이 유현성의 허리와 멱살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유도 스타일인 모양인데?
“어? 어?”
하지만 두 사람이 힘을 쓰는데도 그대로 질질 딸려갔다. 마치 손이 그대로 달라붙은 듯 떼기도 어려워서, 가게 바깥까지 그냥 같이 따라 나가게 된 것이다.
“남의 식당에서 영업 방해를 했으면, 그 반대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니?”
“이, 이 새끼가…… 이거 놔!! 으헉!!”
목을 잡은 양아치를 그대로 내던졌다.
놈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바닥을 꼴사납게 나뒹굴더니 바로 일어나서 소리쳤다.
“으윽, 너…… 뭐야?!!”
“식당 주인 친구?”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양아치? 조폭?”
그렇게 말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행인 없는 뒷골목이라 신경 쓰는 사람도 없어서 심적으로 부담이 없었다.
“됐고, 받아!”
자신의 멱살을 잡고서도 질질 끌려왔던 녀석도 그대로 던져 버렸다.
“으헉!!”
“악!! 형님……!!”
그다음은 허리에 매달렸던 놈.
“으아아아……!!”
“컥, 비, 비켜!!”
사이좋게 셋을 포갠 뒤, 유현성은 씨익 웃었다.
가볍게 한 발 올렸을 뿐인데 다들 꼼짝달싹도 못하고 버둥거리기만 했다.
“컥. 이 시발!!”
“다음은 없다.”
옆에 있던 전신주를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순간 푹 하고 구멍이 나버렸다.
“아…… 공공기물에도 손상이 나면 안 되지.”
손바닥으로 슬쩍 문지르자 구멍 난 흔적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걸 본 양아치들은 안색이 바뀌었다.
“어, 어디서 오신 분이십니까?”
“그걸 알 필요가 있나?”
“저, 저희는 영웅문 길드라고 합니다.”
“아이고, 이름 한 번 더럽게 거창하네. 근데 하는 짓은 영웅이 아니라 양아치 같은데.”
“아, 아닙니다. 이것도 의뢰받고 하는 일이라서…….”
“누가?”
“저, 저기 건물 사장님 조카가 길드 소속이라서 저희한테 일이 떨어진 겁니다.”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겁에 질린 것 같았다.
그럼 그 수준의 강자들을 만나봤다는 거겠지?
“건물주 조카란 새끼가 너네 소속이라고?”
“아닙니다. 갈매기 길드…… 저희가 그쪽 산하라서 가, 가벼운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하, 여기서 또 그 이름이 나오네?”
분명 갈매기 길드는 고작 300여 명 수준. 규모로 치면 중대형 길드 정도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알아보니 거기 간부들이 자신만의 부하들을 데리고 있다는 것.
적게는 십수 명에서 많게는 백여 명 이상의 길드를 밑에 두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영웅문 길드 같은 애들이 그런 쪽이구만.’
즉, 갈매기 길드의 실제 인원 동원 능력은 수천 명이라고 봐야겠지.
“참 골치 아프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어디서 나오신 분이십니까? 혹시 갈매기 길드에서…….”
“대한민국에서.”
“예?”
갈매기 길드 이놈들이 참 문제네.
솔직히 계속 뒤로 밀었건만, 결국 한 번은 부딪히긴 해야겠다.
일단 김요성 대표 말로는 동북 전망대에 그치는 수준이 아니라고 했었다.
엘리오스 마을에 들어가는 물품까지 세금을 매기려고 한다나?
“사실 귀찮기는 귀찮지만…….”
국가 공인으로 끌어들이면 참 쉬운 해결이 될 텐데, 갈매기 길드가 그걸 받아들이진 않을 터.
게다가 일문 길드 일을 처리하면서 마약 관련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했으니, 아마도 뒷골목과도 끈끈할 것 같았다.
“전부 다인지, 아니면 일부인지 좀 더 알아보기는 해야 할 텐데.”
아직은 간접적으로만 부딪치는 상황이긴 했다.
애초에 분식집 사장이 헌터 길드와 엮일 일은 거의 없으니까.
놈들이 직접적으로 건드리면 모를까, 아직은 괜찮았다.
거기다 엘리오스 마을은 엘리스가 세율을 정하니까.
근데 그 새끼가…… 감히 엘리스한테 청혼을 했다고 했었지?
“은근히 열받네…….”
“예? 죄, 죄송합니다.”
“됐고, 깜빡할 뻔했는데, 애들아.”
“옙!!”
유현성은 살짝 발을 떼면서 툭 하고 내뱉었다.
“그래도 밥값은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