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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89화 (89/156)

89화

“야…… 너.”

박정철은 조금 당황했다.

분명 유현성이 양아치들을 끌고 나가는 건 봤지만, 이상하게 꼼짝도 하기 힘들었다.

물론 마비는 금방 풀리긴 했다.

이후 부리나케 나가보니 유현성이 5만 원짜리 열 장을 내밀더라.

“뭐냐?”

“밥값. 애들이 통이 크더라고.”

“협박한 건 아니고?”

“앞으로는 안 올 거야. 다시 보면 전신주랑 한 몸으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거든.”

하도 어이없는 말에 박정철은 피식 웃어 버렸다.

하지만 농담이 아닌 진심이라는 게 무서운 거지.

“정철아, 여기 정리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냐?”

“얼마는 무슨, 열흘 동안 손님 스물도 못 받았다. 건물주가 보증금만 내주면 당장에라도 나가지.”

“그 정도야?”

“마지못해 하는 거니까. 미친 건물주 새끼가 족발집 뒤에 족발집을 차렸으니 입에 풀칠만 하고 사는 거지.”

“허, 어이없네.”

진짜 밖을 둘러보니 건물 뒤편 도로가 쪽에도 족발집이 보였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라 그런지 간판도 으리으리하게 달아놨고, 얼핏 종업원도 열 명 가까이 되더라.

확실히 규모에서는 박정철 가게가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그래서 뼈해장국으로 바꾼 거냐?”

“먹고는 살아야 되니까.”

“참 너도 꼬이긴 꼬였구나.”

“새끼,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이 이것뿐인데. 할 수 있을 때까지 해보려고 했는데 더는 힘드네.”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양친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갑자기 물려받게 된 식당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내쫓기듯 나가야 된다니 답답하겠지.

박정철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물었다.

“근데 궁금한 게, 대체 어디서 가게를 열겠다는 거냐?”

“잘 아는 건물주가 있거든. 걱정 없이 장사해도 괜찮아.”

따지면 건물주 수준이 아니었다.

이쪽은 무려 여왕님이었으니까.

“아이고, 주변에서 겪은 이야기들이 많거든. 믿을 건물주는 없다더라.”

“니가 못 겪어본 거겠지.”

“왜 니 놈 마누라라도 되냐? 그 정도 아니면 절대 안심하면 안 되거든?”

“나 싱글이다.”

근데 엘리스가 자칭 마누라 행세를 하는 게 좀 부담스럽긴 했다.

“나흘 뒤에 올라가니까 그때 보자고.”

“오, 올라가? 어딜?”

유현성은 씨익 웃더니 황령산 정상을 가리켰다.

그 시선을 따라 박정철의 고개도 함께 움직였다.

“저기 세계수 아래.”

* * *

“으어, 바쁘다, 바뻐.”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일이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이거 엘리스의 꼬임에 공짜 가게 얻는다고 들어왔다가 덤터기를 쓰게 된 것 같은 상황이랄까.

“일단 행복 분식 2호점은 손강희가 맡으면 될 거고, 새로 직원도 뽑았으니 괜찮겠지.”

누룽지 밥버거는 소소하게 손볼 게 많았다. 새로 만들어낸 요리라 약간 미묘한 부분에서 더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다행히 손강희가 점점 익숙해져 가면서 조금씩 맛이 안정적으로 되고는 있었다.

“문제는 다른 가게들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 본성 푸드가의 철판 볶음밥도 시간 계산을 조정해야 하고, 짬뽕 국밥도 토렴 부분을 손봐야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전체 관리를 다 하게 된 것이다.

대신 수익은 팍팍 늘어 가는데.

뭔가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

“통장 잔고가 그냥 숫자로만 느껴지네.”

아직 마을 오픈도 전인데, 엘프들이 와서 팔아주는 게 수천만 원이었다. 그중 일부가 내 몫으로 들어오는 상황이니, 신경 안 쓸 수가 없는 것.

다행인 건, 엘리스가 무려 네 명이나 보내줬다는 거다.

점심 타임에 둘, 저녁에 두 명이었다.

문제는 저녁의 한 녀석인데, 이게 참 골치가 아프더라.

“나 결혼할래.”

현지의 갑작스러운 선언.

박정철을 만나기 위해 잡은 휴가인데, 때마침 현지도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알바로 뽑은 그 엘프랑 함께.

“후우…… 어지간하면 찬성하려 했는데…… 그래도 정도가 있지.”

“뭐 어때? 어차피 다 성인인데.”

“이, 이 친구가?”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대충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꼬마 아이.

내 허리보다 조금 큰 정도였는데 확실히 귀엽긴 귀여웠다.

백금발에 초록색 눈동자.

누가 봐도 귀하게 큰 것 같은 외모였으니 딱 현지 취향이라고 해야겠지.

“예, 형님. 한국 식으로 조달수라고 합니다.”

대체 엘프들은 어떤 식으로 이름을 짓는 건가 싶었다.

조온달도 따지면 민속촌스러운 느낌이 강했는데, 얘는 더 그러네!

“제가 내년에 정식으로 성인식을 치릅니다.”

“나, 나이가 어떻게…….”

“제가 올해 49살입니다.”

아, 엘프들 나이는 외모만으로 평가하면 안 되지.

“한참 연상이신데…… 현지야, 너 괜찮니?”

“일단 귀엽잖아.”

하지만 외모가 막 초등학교 졸업한 정도라서 상당히 난감했다. 진짜 조선시대 꼬마 신랑 같다는 느낌이랄까.

“현지야. 니가 귀여운 거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그게, 결혼이란 게, 그렇게 쉽게 결정할 게 아니거든.”

“내년에 성인식 치르면 괜찮단다.”

“그, 그야 뭐 달라지기는 하겠지만은…….”

엘리스의 경우만 봐도 그랬다. 갑자기 훌쩍 커져서 심하게 당황스러웠지.

그렇다면 저 꼬마도 그렇게 된다는 건데.

“제가 아직 생식 기능이 안 돼서 일단 약혼만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푸하!!!”

아오, 마시던 냉커피가 코로 나오는 줄 알았다.

엘리스처럼 이 녀석도 직설적인 스타일인 모양이었다. 그러니 현지랑 사귀는 거겠지만.

“너……! 어라?”

그냥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마력의 양이 조온달과 비슷한 급이었다.

최소 중급 이상. 어쩌면 성인식 이후 상급 엘프 전사가 될 가능성도 보였다.

“설마 내가 못 본 귀족이었어?”

“조부님께서 장로직을 맡고 있습니다. 한때 형님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라이노스 장로님은 아닐 테고, 혹시?”

“그때 왼쪽 팔을 잃으셨다고 합니다.”

“아……!”

라이노스 장로와 함께 다니는 두 장로 중에 한 명이라는 의미였다.

그 혈통이라면 엘프들이 철저히 보호하려 했을 테니 존재를 감추었을 터. 전투에서 보이지 않았던 게 이해가 되었다.

아니, 아직 성인식도 치르지 않았으니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거겠지.

“후우…… 좋아. 일단 반대는 안 하는데, 좀 성급한 느낌도 있고. 우리 강 여사님이 허락하실지가…….”

“엄마는 바로 좋다고 하던데?”

“그렇게 쉽게?”

“오빠는 다 컸잖아. 귀여운 아들 하나 생긴다면서 바로 허락하더라고.”

뭔가 사기당한 기분까지 들었다.

정작 집안의 가장은 난데, 나만 모르고 있는 느낌이랄까.

“현아도 너 결혼하는 거 좋대?”

“걔도 내년에 바로 할 거라는데?”

“컥…….”

이번에는 진짜 냉커피가 코로 나왔다.

정태수 이 새끼, 대체 어떻게 우리 현아를 꼬신 거지?

“뭐, 사실 태수야 성실하니까. 그리고 솔직히 십 년 이상 봐왔잖아. 그 정도 일편단심이면 난 괜찮다고 봐.”

“걔가 그렇게 현아를 좋아했었나?”

“오빠 군대 있을 때, 대신 아들처럼 한 게 태수거든. 우리 강 여사님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솔직히 덕순 할머니도 현아를 손녀처럼 보고 있고. 딱히 반대할 이유도 없잖아.”

“현아 아직 고3이다.”

“내년에 졸업하고 한다는 거지.”

현지는 무척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자신도 결혼하는 걸 반대하지 말라는 투로.

그 직후, 조달수가 현지의 손을 잡았다.

“형님, 저희 잘살겠습니다. 평생을 지켜주고 싶어요.”

그러면서 꽁냥꽁냥거리는데 갑자기 서러움이 느껴졌다.

동시에 한숨도 나오더라.

“하아, 나만 싱글이네.”

* * *

“뭐? 보증금을 못 주겠대?”

하도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대체 그 건물주라는 새끼가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이상하게 짜증부터 나더라.

폰 너머로 박정철의 한숨이 들렸다.

-계약은 곧 끝나지. 근데 가게 원상 복구 해놓고 나가란다.

생각해 보니 건물주 입장에선 당연한 요구이긴 했다. 그래도 보통은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따지진 않는데.

들어보니 좀 느낌이 싸하더라.

“완전 철거라고?”

-어, 가스랑 전기선만 남기고 수도도 잠가놓고 싹 치우라더라.

“견적은 받아봤어?”

-업체에 물어보니까 최소 600만 원 정도 예상된다고 하더라고. 적어도 폐기물이 세 트럭은 나올 것 같다는데 솔직히 모르겠다.

“뭐가 또 있구나?”

-건물주가 자신이 철거한다고 보증금에서 빼고 준단다. 이주 안에 마무리 못 하면 끝낼 때까지 안 주겠다네.

이거 뭔가 수상쩍은 냄새가 났다.

가끔 뉴스에서 기사로나 봤던 그런 느낌이랄까.

아마 박정철이 나가도 건물주가 철거는 안 하겠지. 애초에 몇천만 원이나 들였다는 인테리어에 집기 대부분이 일 년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그걸 하나하나 정리한다고 해도 제값 받기는 힘드니, 차라리 업체를 통해 한 방에 처리하는 게 나았다.

금액이 적더라도 마음 고생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진짜 건물주가 철거해 달라고 한 거야?”

-아마 진심은 아닌 것 같기는 한데, 일단 보증금은 안 주겠다고 하니까.

대충 날짜를 보니 계약 만료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건물주가 월세 올려주지 않을 거면 나가라고 먼저 했고, 몇 번이나 통보까지 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정철도 내심 나갈 고민으로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고 했다.

그 타이밍에 내가 같이 하자고 했으니, 마침 잘됐다 싶기도 했다고.

“그럼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다는 건데, 왜 갑자기 완전 철거를 해달라는 거지?”

-아마도 그 양아치들 쫓아낸 것 때문이 아닐까?

“아!”

입단속을 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소문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어차피 걔들 입장에서야 먼저 말을 꺼내진 않겠지만, 영웅문 길드에선 또 다르겠지.

이렇게 일이 꼬일 줄 알았으면 연락처라도 받아놓을 걸 그랬다.

“그럼 오늘 못 올라가겠네?”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 시간이 날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지.”

“기다려 봐. 내가 가게로 갈 테니까.”

“야, 니가 온다고 뭔 수가 나겠냐?”

“그야 모르지.”

단순 철거라면 집기 치우고 비워서 정리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건물주는 내부 칸막이 벽까지 다 뜯어달라는 요구까지 했다는 거다.

그럼 나름 대공사가 되는 판인데, 뭔가가 걸렸다.

“그래. 뜯어달라면 뜯어주는 게 맞겠지?”

* * *

“사실은 혼자 해도 되긴 되는데…….”

어차피 평범하게, 소박하게, 그러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가급적 마력을 쓰지 않는 게 맞는 거겠지.

무엇보다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르고, 이상하게 싸우면 싸울수록 계속 사건이 꼬이더라.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인사해, 이쪽은 내 동생들.”

-이라 말했지만, 대체 엘프들은 나이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라이로스 장로의 명령을 받아 내려왔다.

무려 여덟 명의 파괴(?) 전문 엘프들. 남들 시선을 의식해서 일부러 몇 명을 부탁했는데, 저들이 온 거다.

다행히 다들 평범한 인간 같은 외모였다.

아마 엘프들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거겠지.

“이분들이 철거를 도와줄 거라고?”

박정철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엘프들을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에 전부 호리호리한 편이니 큰 힘을 쓴다는 생각은 못 하겠지.

“아니, 철거가 아니야.”

“뭐? 그럼?”

“생각해 보니 어차피 위쪽에도 주방기구나 설비를 들여야 하잖아.”

“그, 그렇기는 하지.”

“그게 귀찮아서 여기 가게를 통째로 뜯어가려고.”

그 말에 박정철은 멍해졌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서다.

“밖에 버스 두 대 있으니까 충분히 실리기는 할 거야.”

엘프 전사들 전용으로 개조한 버스였다. 조만간 마을 오픈할 거라, 남들 시선을 고려해 엘리스가 작정하고 구입한 것이다.

아무래도 마법으로 다들 날아다니면 이상하게 보일 여지가 많을 테니까.

유현성은 박정철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럼 공사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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