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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90화 (90/156)

90화

“아마 답답해 미치겠지? 큭큭.”

김창주는 족발집 점심 수금을 마치고 건물을 한 바퀴 돌았다.

눈에 가시 같던 뼈해장국 집.

5년 전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물려받은 3층 건물인데, 저 집만 월세를 올리지 말라고 했다. 일주일에 꼭 한 번 이상은 가는 단골 식당이라나.

“아들이 계약 승계하고 해마다 월세를 조금씩 올리기는 했지만, 많이 부족하다 이거지.”

사실 인근 상권이 죽으면서 2층 이상은 빈 점포가 종종 생기곤 했다. 그래도 한때 부산 최고의 번화가였기에 1층은 여전히 인기가 많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눈독 들이고 있는 카페 여사장이 친히 부탁하더라.

1층에 자리만 나면 들어오고 싶다고.

“이참에 희숙 씨가 들어오면 박가 놈은 아예 접근 금지시켜야지.”

김창주는 맞바람을 피우다 걸려 이혼한 상태였고, 박형식은 아내가 병으로 사망했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돌싱에 카페 사장인 금희숙이 들어온 거다.

문제는 금희숙도 눈치가 빨라 둘 사이를 저울하고 있었다는 점.

“어차피 집기 대부분이 새거니까 그대로 써도 될 거고, 간판만 근사하게 바꾸면 되겠지.”

김창주는 이참에 돈을 들여서라도 확실하게 금희숙을 잡을 계획이었다. 곧 50살이 되는 자신이 열 살 가까이 차이 나는 여자를 만날 기회는 앞으로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정말 철거하진 않겠지?”

고작 보름도 남지 않았으니 시간상 불가능할 거다.

보통의 철거 공사라도 제대로 하려면 일주일 이상 걸린다. 잘하는 업체도 알아봐야 하고, 집기만 제값 받고 팔기에도 빠듯한 것이다.

“보증금에서 철거비 빼고 주면 집기나 테이블은 거저 얻는 거지. 그걸로 희숙 씨 마음만 사면…… 큭큭, 몸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고.”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생각만큼 대형 프랜차이즈 족발집이 남는 게 많이 없더라.

본사에 들어가는 금액과 인건비를 제외하면 차라리 월세를 받는 게 더 나은 수준이었으니까.

지금은 뼈해장국집, 그 가게를 내보내기 위해 프랜차이즈 족발집 계약을 한 건 맞는데.

이게 딱 계륵 느낌이랄까.

“해장국집만 확실하게 나가면 그때 족발집도 정리하자.”

김창주는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고 뼈해장국집으로 다가갔다.

근데, 가게가 없어졌다.

“어? 자리는 분명 여기가 맞는데?”

황당하게도 불과 하루 전까지 영업하던 식당이었는데, 누가 뚝 떼어간 것처럼 공간이 텅 비었다.

그것도 아주 깨끗하게.

“이게…… 가능한 거였나?”

* * *

“이게 가능한 거네?”

박정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좌석을 전부 뗀 버스 한 대에 테이블과 의자, 주방 기구들을 다 때려 넣으니 어떻게든 들어가긴 하더라.

나머지 벽체는 간단했다.

엘프들이 단검을 꺼내 마력을 돌렸고, 그걸로 스스슥 하니 깔끔하게 떨어졌다. 거기에 번호표를 붙여서 순서대로 남은 버스 한 대에 포개 실으니 거의 딱 맞았다.

“하아, 정말 눈으로 보면서도 실감이 안 나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내일은 전기, 수도, 가스 정리해. 그런 다음 보증금 달라고 하면 되겠지.”

유현성은 그렇게 말한 뒤, 엘프들을 쳐다봤다.

확실히 라이노스 장로의 말대로 파괴(?) 전문이 맞구나.

어쩜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하는지 철거 업체를 차리면 초대박이 날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직접 할 수 있지만, 보는 눈들이 있으니까.

“올라가서 조립하고 인테리어 조금 손보면 되니까 넉넉하게 4~5일 정도 잡으면 될 거야. 어차피 가게 자리는 거의 정리가 됐거든.”

강종곤 짬뽕집 옆으로 들어가면 아마 손님들이 꽤나 고민하겠지.

퓨전식 짬뽕국밥이냐, 전통의 뼈해장국이냐.

아마 그걸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았다. 게다가 박정철의 족발집도 소주, 맥주를 팔기로 했으니 술집 두 개를 붙여서 알코올존으로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고.

“그럼 족발 뜯는 엘프들을 볼 수 있는 건가?”

“직원까지 지원해 준다면서? 그럼 뼈해장국도 해야지!”

“메뉴 많으면 감당이 되겠냐?”

“당분간 점심 장사 포기하고 저녁만 할 거야. 어느 정도 손이 익으면 시간을 늘릴 거고, 애초에 새 가게 적응하는 기간도 필요하거든.”

생각보다 말이 술술술 나오는 게 박정철도 제법 고민 많이 했던 모양이었다.

이 수준이라면 딱히 크게 도와줄 게 없을 것 같은데?

박정철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깔끔해진 가게를 돌아봤다.

“현성아, 이게 시원섭섭하다는 거겠지?”

“오히려 새 출발 하니 후련해야지.”

“그래도 참 정이 많이 들었는데…….”

저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부모님 손때가 묻은 식당이었으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겠지.

유현성은 박정철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아악!! 이 새끼가 무식하게 힘만 세서!!”

“야, 억지로 힘내라곤 안 한다. 하지만 올라가 보면 후회하진 않을 거야.”

거긴 엘프들의 마을이다. 선남선녀가 즐비하니 고민 같은 건 금방 사라지겠지.

혹시 또 모른다.

어여쁜 엘프 만나서 장가가게 될지도.

* * *

“그나저나 건물주가 조금 괘씸하네. 남의 가게를 거저먹으려고 하다니.”

철거 후, 근처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세 잔 샀다.

그런 뒤 가까운 부동산에 들러 커피를 주면서 살짝 운을 띄웠다.

거기 사장으로 보이는 중년 아저씨가 몇 번이나 혀를 차더라.

“이게 요즘 이 동네 건물주들이 쓰는 수법입니다. 보증금을 미끼로 시간을 촉박하게 한 다음 철거 못 할 것 같으면 그냥 내보는 거죠.”

“그럼 불법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하지만 부동산 사장의 설명은 달랐다.

“어차피 집기라고 해도 업체에 땡처리 하면 얼마 받지도 못해요. 보증금 쪽이 몇 배나 큰돈이니 차라리 포기해 버리는 거죠.”

“하, 양아치네요.”

“어쩌면 그게 편할지도 모르죠. 일단 철거비가 안 들어요. 그것만 해도 돈 천만 원 나갈 텐데, 여기에 적당한 권리금까지 챙겨주면 맨몸으로도 나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그만큼 이쪽 골목은 불경기라는 건데요?”

“예. 예전에나 맛집 골목이었지, 상권이 양쪽 백화점 뒤편으로 다 옮겨가는 바람에 대출이나 빚만 없어도 성공했다 할 정도거든요. 보증금만 제 날짜에 줘도 건물주가 양반 소리 듣는 거죠.”

내가 군대 있는 사이 뭔가 많이 변하기는 한 모양이다.

“원래 이쪽 상권은 어르신들이 많아서 금액대가 있지 않나요? 크게 복작복작하지 않아도 매출이 적당히 나오는 동네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죠?”

“모르셨어요? 거의 4년 전인가, 복개천 광무교 밑에 게이트가 두 개나 생기는 바람에 난리가 났죠. 특히 교통량도 어마어마한데 거의 한 달이나 거기가 막혔으니…… 상권이 옮겨간 거죠.”

“아!”

범내골에서 서면으로 진입하는 구간에 작은 다리가 있었다. 이쪽 상권으로 오려면 거의 그쪽을 지나야 되는데 다리가 막혔으니 난리가 났을 거다.

“대충 4년 전이면…….”

그 시기라면 서울 경기 쪽 게이트를 돌고 있어 정신이 없을 때였다. 아마 휴가 나오기 전에 헌터들이 정리한 모양이었다.

“갈매기 길드가 그때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커졌고요. 여러 길드를 산하에 두게 됐죠. 결국 양현 길드도 세력이 약해지는 바람에 갈매기 길드와 손잡았고요.”

가만? 황무기 실장이 원래 양현 길드 소속이라고 하지 않았었나.

확실히 이쪽도 파보면 뭔가 나올 것 같기는 했다.

그때 분명 게이트 돌던 군인들이 제대해서 만든 길드라고 했으니, 민간 헌터들과 손잡을 일은 없을 테니까.

근데 갈매기 길드 이름이 여기서도 나오다니 조금 당황스럽더라.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제가 그때는 장기 출장을 갔거든요.”

“부산분 아니세요?”

“지금은 완전히 돌아왔는데, 당시에는 멀리 있었죠.”

게이트 넘어 아주 멀고 먼 차원으로 끌려갔었지. 지옥 속 악마들과 피 터지는 동고동락(?)을 하기도 했고.

아마 베나레스가 없었다면 거기가 내 무덤 자리가 됐을 터.

“지금은 작은 분식집 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한 번 오시기 전에 전화 주시면 서비스 팍팍 나갈 겁니다.”

유현성이 행복 분식 명함을 내밀자 부동산 사장이 조심스레 받았다.

“적어도 이쪽 상권으로 오진 마세요. 맛집들은 대부분 떠났고, 지금은 노래방하고 이상한 주점들이 장악했어요.”

“그렇게 보이기는 하더라고요.”

“그나마 프랜차이즈 족발집이라고 큰 거 하나 있는데 개판입니다. 거기 사장이 수금만 하고 가게를 관리 안 하니까 직원들이 제멋대로 굴더라고요.”

“저기 저쪽 족발집요?”

“제가 여기서 십오 년 넘게 있었는데, 장담하죠. 분명 반년 안에 망할 겁니다. 맛은 고만고만한데 한 번씩 누린내가 심하게 나더라고요.”

원래 식당이라는 게 그렇다.

사장이 있고 없고의 차이에 따라 직원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그러다 나태해지면 그게 음식 맛으로 표시가 나는 법이지.

정호석에게 고마운 게 그거였다.

믿고 맡기는 거지만 사람 마음이 한결같기가 쉽지 않더라.

하지만 조온달의 이야기로는 여전히 잘하고 있단다.

기특한 자식.

올라가기 전에 그 직화구이집에 들려 회식이나 한 번 더 해야겠다.

간만에 사장님도 뵙고 비법도 슬쩍 물어보고……!

“하여간 이쪽 상권은 거의 끝났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많이 심각한 모양이네요.”

“예.”

건물주 식당이 망한다고 해서 그런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부동산 사장이 진지하게 말했다.

“허허, 원래 상권에 가망이 없으면 가장 마지막에 떠나는 게 어딘지 아십니까?”

“그, 글쎄요?”

“부동산이죠. 더는 뽑아먹을 게 없으니까요.”

“그럼?”

부동산 사장은 다소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예, 저도 조만간 여긴 폐업할 겁니다.”

* * *

“이야, 우리 조카가 무슨 일로 이런 자리에 다 부르냐?”

곽준열 삼촌은 여전히 팬더처럼 보이는 복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팔토시가 열심히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나 뭐라나.

“삼촌, 인테리어 하시니까 괜찮은 식당들 아시죠? 좀 소개시켜 주세요.”

“이 자식이 맨입으로?”

“하하, 원하시면 당장에라도 소주 한 병 통째로 입에 부어드리죠.”

“차라리 죽으라고 해라.”

“일도 하나 가져왔는데, 소소하게 하실 만할 겁니다.”

박정철의 해장국집을 통째로 뜯어 왔지만 조립은 일반인이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 기존 가게보다 크기에 구석구석을 매워야 했고, 전기 공사나, 수도 계량기, 가스까지 전문적으로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 위쪽에 식당 하나 새로 생기거든요. 거기 공사 좀 해줬으면 해서요. 일단 통으로 다 떼 왔으니 조립만 하면 돼요.”

“대충 견적은?”

“천만 원 안쪽으로 될 것 같은데요?”

“그거야 내가 봐서 정하는 거고.”

“인력은 이쪽에서 준비할 거니까, 삼촌은 지시만 내리면 돼요.”

새로운 식당에서 라이노스 장로의 눈빛이 달라졌다.

접해본 적 있다지만 여기에 족발까지 더해진다니 열의를 불태우더라.

삼백 살인가, 사백 살인가, 대충 그렇게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앞으로 딱 백 년만 맛있는 거 먹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단다.

참 욕심도 창대하다.

어쨌든 라이노스 장로는 엘프들을 동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솔직히 엘리오스 마을에도 딱히 일이 없기도 했고.

특히 고요환과 일전의 일로 게이트 의뢰는 일부만 받았으니, 젊은 엘프들도 무료하기도 했을 터.

“현성아, 그런데 우린 기술자가 필요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쓸 만한 애들 많아요.”

솔직히 파괴 전문 엘프들 보니까 공사 감독만 잘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실제로 그렇게 깔끔하게 떼어낼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아마 곽준열 삼촌이 나선다면 조립도 크게 어렵진 않겠지.

“그럼 하는 거죠?”

“일단 다른 일정은 없는데, 잠시만.”

곽준열은 스마트폰을 꺼내 다이어리를 확인했다.

“모레부터 사나흘 정도 시간 나네.”

“오, 딱 좋네요. 그럼 콜?”

“당연하지. 소주에는 콜라다.”

이 삼촌이 언제적 사람인가.

보통 그렇게 마시면 훅 취할 텐데.

심지에 센스까지 없으니 인테리어를 맡겨도 되려나?

이거 살짝 불안한데.

이 타이밍에 곽준열이 씨익 웃었다.

“하하. 뭘 신경 쓰는지는 알겠는데, 공사는 제대로 할 거니까 걱정하진 말고. 대신 부탁 하나만 하자.”

“뭔데요?”

돌아온 건 전혀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 소개팅 좀 시켜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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