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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자는 분식집을 합니다-91화 (91/156)

91화

곧 겨울이 와서 그러나?

왜 다들 연애하려는지 모르겠다.

현지는 나름 조달수와 잘 만나고 있었다.

또 2호점 장사도 열심히 했다. 이제는 믿고 맡겨도 될 만큼 실력 역시 부쩍 올라갔던 것이다.

하긴 영장 일찍 나와서 입대했을 때 나 대신 가게를 지킨다고 정말 고생 했었지.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선생님 허락하에 저녁 장사를 도왔고, 방학 때는 분식집에 살다시피 했으니까.

그러다 성적이 떨어져 장학금을 못 받았지만, 어째어째 복구해서 대학까지 들어갔다.

심지어 이번에는 조기 졸업까지 한다고 했으니!

“확실히 한다면 하는 애였지.”

듣기로 그즈음 정태수가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을 많이 도와줬단다.

짐도 날라주고 부식도 나눠주고.

우리 강 여사님 분식집에서 식사도 해주고.

현아는 그런 정태수의 헌신적인 모습에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암, 장모님한테 잘하는 남편감 만나기는 쉽지 않겠지.

동시에 정태수가 칼국숫집 물려받을 결심을 진지하게 한 것도 그때라는 것이다.

어쨌든 둘도 잘 만나는 상태였다.

그래 봐야 칼국숫집 마치면 함께 근처 공원 돌고 헤어지는 게 전부였지만.

“현지는 아직 모르지. 하지만 현아는 헤어질 것 같진 않으니 신혼집을 알아봐 줘야 하나?”

당장 급한 건 아니지만 일단 염두에 두어야겠다.

어쨌든 강한덕도 폭식 자매의 첫째란 분과 종종 분식집에서 데이트를 즐긴다고 했다.

내년 봄에 청첩장을 보낼 거라고.

벌써 펑펑 크레이프 가게 근처에 신혼집까지 얻었다고 하더라.

서른 중반과 이십 대 후반이면 나이도 있으니까 서두르는 게 맞겠지.

“가만? 곽준열 삼촌도 마흔이 훌쩍 넘었지.”

요즘 같으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니지만 슬슬 걱정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팬더가 되고 나서 거의 죽어라 일만 하게 됐다고 했으니까.

“아, 복잡한 건 패스. 어차피 계속 일거리 주면서 마을에 붙잡아 놓으면 알아서 하겠지.”

오히려 급한 건 따로 있었다.

정철이 쪽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것!

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시간 낭비는 불필요했다.

유현성은 폰을 들었다.

“예. 부탁드릴 일이 있어 연락 드렸습니다. 시간 잠시 괜찮으시겠습니까?”

* * *

“그러니까 보증금을 달라?”

김창주는 조금 난감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가볍게 웃은 박정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법대로 철거도 다 했고, 계약도 끝났습니다.”

“그, 그렇지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어쨌든 건물주 입장에선 임대차 계약법상으로 원상 복구를 요구할 수 있어.”

김창주는 그렇게 말한 뒤 뼈해장국집을 둘러봤다.

보통 이정도 규모의 철거라면 집기부터 들어낸 뒤, 테이블과 의자를 치운다.

그런 다음 공구를 사용해 벽체와 바닥을 깨부수고 뜯어낸다. 그러니 그 과정에서 자잘한 흠집이나 파손이 생기는 것이다.

예상했다는 듯 박정철이 말했다.

“확인해 보시죠.”

“그, 그러지.”

김창주는 뭐라도 흠을 잡기 위해 뜯어낸 임시 가벽 주변까지 꼼꼼히 살폈다.

그럴 줄 알고 유현성은 미리 곽준열과 엘프 셋을 불렀다. 소소한 긁힘까지 깨끗하게 갈아서 벽부터 바닥, 거기에 천장까지도 매끈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다음 깔끔히 청소해 폐기물까지 모조리 정리했다.

보이는 건 오로지 천장의 전기선과 벽의 콘센트, 수도 시설과 가스 배관뿐.

“저희가 들어오기 전보다는 훨씬 깨끗할 겁니다.”

“윽. 이건…….”

박정철은 운이 좋았다.

돌아가신 어머니 폰에서 처음 가게에 계약할 때의 사진을 찾아냈으니까.

그걸 자신의 폰으로 옮겨 김창주에게 내밀었다.

“대, 대체 이걸 어떻게…….”

“인테리어 전이랑 거의 같지 않습니까? 설마 이 지저분한 먼지랑 모서리의 거미줄, 그리고 주방 바닥의 찌든 때까지 그대로 해달라는 건 아니겠죠?”

“그건…….”

김창주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이런 경우 뭐라 해야 할지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피식 웃은 박정철은 오른손을 허리 뒤로 돌려 엄지를 세웠다.

다 끝났다는 신호였다.

그때 곽준열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유현성에게 소곤거렸다.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해. 더 트집 잡으면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거지. 어차피 임대인 들어오면 인테리어도 다시 해야 하거든.”

“그 과정에서 또 문제가 생긴다는 거군요.”

“보통은 그렇지. 아쉬운 건 집기나 시설물 넘기고 받을 수 있는 권리금이 날아간다는 건데, 이럴 땐 털어 버리는 게 나아. 이렇게까지 요구하는 건물주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거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오히려 정리할 수 있을 때 정리하는 게 맞죠. 그리고 대신 새 가게 차리는 비용이 확 줄어드니까 그걸로 만족해야죠.”

“벽체 통째로 뜯어갔다고 했지?”

“붙이는 건 금방이면 된다면서요?”

“그야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오래는 안 걸리겠지. 숙련자들 여럿에 이 정도 평수면 하루 이틀에 다 하니까.”

곽준열을 그렇게 말한 뒤, 박정철 쪽을 살폈다.

확실히 건물주의 얼굴이 어두워 보였다.

“크흠,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렇게 깨끗하게 할 수 있었나? 집기랑 설비는 다 어쩌고?”

“그냥 버렸습니다.”

“뭐? 그걸 왜?”

“시간이 부족해서 팔기도 그렇고, 또 제가 거기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죠. 임대 계약대로 원복 다 해놨으니, 날짜 맞춰서 보증금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박정철은 더는 할 말 없다는 듯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입구 옆에서 눈치 보고 있는 여성을 쳐다봤다는 게 맞겠지.

‘이 옆에, 옆에 2층 카페 사장이잖아?’

거긴 깔끔한 이미지라기보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니는 옛날 찻집 분위기가 적당히 섞인 가게였다.

몸을 파묻듯 쉬는 소파가 절반, 나머지는 테이블 자리.

또 창가에는 화분 7~8개 정도가 있어 동네 아주머니들이 좋아하는 형식에 가까웠다.

문제는 저 여사장의 심기가 몹시 불편해 보인다는 거다.

마찬가지로 김창주 역시 영 인상이 좋지 못했다.

아마도 가게와 시설 집기 등을 내주는 걸로 환심을 사려 했는데 그 계획이 망해 버린 거겠지.

‘역시 그랬나?’

유현성은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부동산에서 들었던 걸 알려줬다.

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건물주도 따지면 그냥 사람이다.

성격이 좋은 분을 만날 수도 있고, 더럽고 꼬인 놈을 만나기도 하는 법.

이 경우 이전 건물주는 좋은 단골손님이기도 했던 것인데, 아들놈이 문제라는 거겠지.

박정철의 귓속에 유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두 사람 표정 봐라. 썩어 들어가잖아. 우리는 크게 한 방 먹인 걸로 만족하자고.”

박정철은 피식 하더니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김창주에게 서류 파일을 내밀었다.

“입금은 이쪽 계좌로 해주시면 됩니다.”

“이…… 이, 은혜도 모르는…….”

그때 뒤쪽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김 사장님, 말이 다르잖아요!”

“아니. 금 사장. 그게 아니라…….”

“마무리하고 오세요.”

금희숙은 뒤도 보지 않겠다는 듯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김창주는 일이 제대로 꼬였다는 울컥하고 말았다.

그때, 박정철 뒤에 있던 유현성이 슬며시 앞으로 나왔다.

“그쪽이 건물주라 하셨죠?”

“그래!”

“일단 계약 마무리는 이걸로 끝낸다 치고, 이제 저랑 볼일 좀 보시죠.”

“뭐? 제가 뭔데 나서?”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들은 바 없습니까?”

김창주가 보기에 특별한 것도 없었다.

짧은 헤어스타일에 약간 키 크고, 몸 좋은 청년?

좀 특이한 건 피부가 뽀얗고 팔뚝에 잔근육이 섬세하다는 점이었다. 그냥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주치는 평범한 인상에 가까웠다.

그러다 뭔가를 떠올렸다.

“아! 영웅문……!”

“오, 먼저 실토하시는군요.”

김창주는 슬쩍 박정철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이 고의로 영업 방해를 했다는 걸 실수로 말해버리고 만 것이다.

그사이로 끼어든 유현성은 정말 태연히 김창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에이, 계약도 다 끝난 상황인데 뭘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워, 원하는 게 뭐야?”

“그 영웅…… 무슨 길드인가 뭔가 하는 애들 좀 불러주시죠. 아무래도 이야기할 게 있어서요.”

“허, 젊은 친구가 겁이 없군. 혼자서 그들을 상대하겠다고?”

“아! 그 잘났다는 조카도 부르시죠. 얼마나 실력이 되는가 보게.”

유현성은 보란 듯 얼굴을 내밀며 피식 웃었다.

안 그래도 성질난 상태였다.

여기에 유현성의 연이은 도발이 들어오자 김창주는 흥분하고 말았다.

“너 같은 건 상대도 안 돼!!”

“쌍방이 치료비 안 받는 걸로 하고, 옵션 하나 더! 제가 지면 여기 보증금도 포기하죠.”

순간 김창주의 눈이 살짝 돌아갔다.

방금 금희숙 앞에서 당한 망신을 되돌릴 수 있을 거란 생각만이 머릿속에 자리 잡았으니까.

“진짜 후회 안 하지?”

“다 녹음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유현성은 폰 화면을 김창주 앞으로 내밀었다.

확실히 녹음 중이란 표시가 보였으니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았다.

김창주는 비릿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잠깐…… 잠깐 기다려.”

* * *

다시 말하지만 뼈해장국은 망한 상권에 자리했다.

그 옆에 칙칙한 뒷골목이 있었는데 한때 취객들이 오물을 쏟아내던 자리였고.

지금은 지나가는 행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여기는 좀 더 해가 기울어야 더욱 밝아지는 지역이었으니까.

“어우, 이 냄새는 어쩔 수 없네.”

유현성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제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긴 뼈해장국 주방 뒷문과 연결된, 한마디로 쓰레기를 내놓는 장소였다.

전부 깨끗이 치웠다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 배여 있던 그 특유의 향은 희미하게 아직 남아 있더라.

“어차피 치울 거 이런 데가 제일 적당하지 않겠니?”

유현성은 그렇게 말하며 위를 힐끗 본 뒤, 다가오라는 손짓을 했다.

영웅문 길드원이라고 온 녀석들은 모두 열둘이었다.

아까 기다리면서 건물주란 인간한테 몇 마디 물었더니 정말 어이가 없더라.

헌터 길드라면서 하는 일은 도로 좌우의 노상 유료 주차장 관리가 절반이었다.

취객도 많아 항상 시비가 끊이질 않았으니 평범한 주차수금원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인근의 유료 주차장과 주차타워는 상당히 부족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노상 주차장은 식당 바로 앞에 세울 수 있었고, 바로 도로여서 차를 넣고 빼고 하는 것도 자유로웠다.

대신 1시간에 4,000원이란 금액과 얌체 불법주차가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단다.

“참, 길드라는 애들이…….”

그 외 하는 일은, 보호비를 받는 주점 같은 곳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말린다는 것 정도?

“아무리 봐도 그냥 옛날 조폭이잖아?”

유현성의 비아냥에 정면의 덩치가 나섰다.

왼손으로 오른 주먹을 감싸고 손을 푸는데, 그 폼만 봐도 알 것 같았다.

아주 익숙하다는 걸.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린 합법적으로 하는 거다. 시에서 허가받고 정당하게 요금 받는 거라고!”

“술집 보호비를?”

“대부분 우리 쪽 지인들 가게만 관리하지. 전혀 모르는 쪽은 건드리지 않아.”

“그럼 왜 내 친구 가게에 와서 영업 방해를 한 거야?”

“그건…… 몰라.”

슬쩍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는데, 유현성이 피식 웃었다.

“모르긴 뭘 몰라. 됐고, 어이, 거기 뒤에 셋, 앞으로 나와봐.”

목소리의 힘 때문일까?

일전에 맞고 터져 나갔던 그 길드원 세 명이 주섬주섬 앞으로 나섰다.

그들을 보며 유현성이 손가락을 들었다.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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